제7과 은혜(5/16/09) > 안교교과

사이트 내 전체검색

안교교과

제7과 은혜(5/16/09)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5.05 03:43 조회수 4,369
글씨크기

본문

 

5월 16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35분)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기억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연구범위: 출 25:8, 사 53장, 롬 5:18-19, 고후 3:16-18, 엡 2:4-10, 딛 2:11-14.

 

중심 사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계획을 가르치시기 위해 사용하신 상징들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속죄란 무엇인가?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는 데 있어서 대속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안식일 오후

비교종교에 관한 어떤 회의가 영국에서 개최되고 있었는데, 세계 각국에서 온 전문가들은 그리스도교만이 갖는 독특한 교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교리 중에서 독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성육신? 다른 종교에서도 신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야기를 한다. 부활? 역시 다른 종교에서도 죽은 자가 되살아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토론이 계속되던 중, 저명한 그리스도인 작가 루이스(C. S. Lewis)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루이스는, '무엇을 그렇게 진지하게 토론하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의 동료들은 세계 종교들 가운데 그리스도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고 했다. 루이스는 주저 않고, '아, 그거야 쉽죠. 은혜입니다'라고 대답했다."(필립 얀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1997년, 45)

지난주에 우리는 죄의 무서운 현상과 "불법의 비밀"(살후 2:7)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개입을 통해 해결책이 제공되었음을 보았다. 하나님의 개입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이번 주에 공부할 것이다.

 

핵심본문: 롬 5:8

 

학습 목표

깨닫기: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분의 은혜가 우리에게 영생을 보장해 줌을 깨닫는다.

느끼기: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모심으로 미래가 보장됨을 느낀다.

행하기: 하나님을 따름으로 그분의 은혜에 반응한다.

 

교과 개요

I. 은혜를 깨달음(사 53장)

A. 예수님은 구약 전체의 중심이시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별에서 은혜와 구원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말해 주는가?

B.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 53:12). 우리가 영생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한 주님의 고난 때문이다. 그분의 고난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II. 은혜를 받아들임(엡 2:8)

A. 은혜가 참으로 위대한 것은 그것이 값없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이 개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은혜를 잘 깨닫도록 어떤 예증들을 사용하셨는가?

B. 은혜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는가? 이와 같은 과분한 선물을 받는 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지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감사함이 느껴지는가?

 

III. 은혜로 변화됨(고전 15:10)

A. 바울이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되었듯이, 우리도 변화될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의 선물을 믿고 받아들임으로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가?

 

요점: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영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잃어버린 바 되었을 것이다.

 

일요일(5월 10일) 하나님께서 구원을 제공하심(창 22:8)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신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그분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지 못한 이삭은 단지 희생을 드리러 가는 줄로 생각하고, 왜 희생제물을 가져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아브라함이 대답한 예언적인 말은 신약뿐 아니라 구약의 모든 페이지마다 메아리치고 있다.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

 

1. 아브라함의 말은 이삭에게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까?

답: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고 한 아브라함의 말은 이삭이 희생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대속물(代贖物)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2. 구약에서,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속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다른 구절들은 무엇입니까? 그 구절들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예, 창 3:15, 출 25:8, 사 53장)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출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사53:1-12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답: 원복음(原福音)으로 알려진 창세기 3:15을 비롯하여, 구약에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이르러 온다는 수많은 기별들이 주어졌다. 가장 생생한 기록 중 하나는 이사야서 53장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중심이시다. 지상성소의 목적은 메시야의 초림을 가리키는 것이었다(참조 히 8, 9장). 그분의 초림 전에 있었던 구속사의 모든 사건들은 십자가를 예표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때를 기다리셨다. 그러다가 “때가 차매”(갈 4:4)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오셨다.

“각 시대를 통하여, 매 시간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타락한 인류에게 베풀어져 왔다. 사람들의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은혜의 표징들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때가 찼을 때에 구원의 경륜이 성취될 때까지 결코 방해되거나 철회되지 않을 치료하는 은혜의 홍수를 세상에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시대의 소망, 37)

 

여호와이레의 하나님

“아브라함은, …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대신하여 희생 제물을 준비하신 사실에서, 자기를 위하여 스스로 속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선언되었다. 이교의 희생 제도는 하나님께 전혀 가납될 수 없었다. 어떤 아버지도 속죄 제물로 자녀를 드려서는 안 될 것이었다.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께서만 세상의 죄악을 담당하실 수 있으셨다.”(시대의 소망, 469)

 

<부가설명> 은혜라는 말을 “전혀 받을 자격이나 가치가 없는 대상에게 무상으로 베풀어지는 호의”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호의(好意)를 받은 자격이나 가치가 없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선악과를 먹은 결과로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영생을 회복할 수 있도록 여자의 후손으로 대속의 조처를 하신 것을 은혜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의 위를 취하여 사람 되어 오셔서, 죽을 사람,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시고 죽은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은혜이다.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최초로 어린양이라는 말이 창세기 22:7에 나온다. 바로 이삭의 질문이다. 그리고 신역성경에는 요1:29에 처음으로 어린양이라는 말이 나온다. 침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외친 말이다. 구약의 질문에 신약의 대답이다. 그것이 구약과 신약에 처음 나오는 어린양이라는 표현인 것이 얼마나 인상적인가. 구약은 묻고 신약은 대답한다. 예수님이 모든 질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때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구원의 계획을 성취시키셨다. 모든 것은 예언대로 정확히 성취되었다.

 

월요일(5월 11일) 은혜의 기적에 대한 상징(사 53:7)

 

세 살짜리 아이에게 전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아프리카의 정글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신호등이 무엇이며, 엘리베이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물리학자가 초등 교육만 받은 사람에게 어떻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의사소통에서 이보다 더 큰 장벽에 직면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에 나타난 거룩한 사랑은 인간의 언어로 충분히 묘사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속의 계획에 관한 합당한 개념을 갖기를 바라셨다. 그분께서는 성경 기자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몇 가지 상징들을 사용하여 그분의 은혜의 신비를 깨닫게 하고자 하셨다. 이 상징들 중 어떤 것도 다른 개념과 관계없이 별개로 사용될 수 없다. 우리는 이것들을 함께 취함으로써 경이와 무한한 감사를 느끼게 된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 심오한 은혜의 신비를 깨닫게 하시고자 어떤 특별한 상징을 사용하셨습니까?(사 53:7, 요 1:29)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답: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에 비유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심오한 은혜의 신비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

 

2. 속죄의 진리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하기 위해 또 어떤 상징이 사용되었습니까?(마 20:28, 행 20:28, 고전 6:20)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행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고전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답: 예수께서 흘리신 피를 통해 속전(贖錢)을 지불하고 우리를 구속(救贖)하셨다는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속죄의 진리를 깨닫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상징이다.

우리가 어떤 특정한 상징을 사용할 때에 다른 '상징들'과 별개로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속죄에 관한 모든 상징들을 종합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상징하고자 한 본래의 의미를 충만히 깨닫게 된다. 그런데 우리를 위해 값비싼 대가가 치러졌다는 속전(ransom)의 개념은 참으로 강력한 하나의 상징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값을 지불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셨다. … 이 은유를 통해 배울 교훈은 (a) 구원의 대가는 비싼 것이며, (b) 우리는 노예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구속이란 소유권의 이전을 의미한다."(에드워드 W. H. 비크, 확신을 드립니다, 퍼시픽 출판사, 1968년, 33)

 

영원한 연구의 주제인 갈바리 십자가

“광대한 우주의 무수한 세계들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그분, 그룹과 영광의 스랍들이 즐겨 경배하는 사랑받는 하나님의 아들, 하늘의 왕께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자신을 낮추시고 죄의 치욕과 슬픔을 지시고 아버지의 얼굴에서 숨겨진 채 마침내 잃어버린 세상의 죄 때문에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심장이 터지고 생명이 떠나간 사실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온 우주의 창조자시며 모든 운명의 결정자께서 인류를 위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영광을 버리시고 스스로를 낮추셨다는 것은 영원히 우주의 경이와 존경을 자아낼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51)

 

<부가설명> 예수께서 우리의 죄 값을 갚으셨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갚으셨다. 누구에게 죄 값을 주었으며 누가 그 죄 값을 받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사단에게 죄 값을 주었다고 말한다. 얼마나 엄청난 오해인가. 사단은 죄를 짓게 한 장본인으로서 그가 죄의 값을 갚아야 할 존재이다. 예수께서 하나님께 죄 값을 갚으셨다. 인류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는 이것을 분명히 기록하였다. “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4).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통하여 양을 속죄 제물로 드린 사실을 통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면 그 상징이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려고 여러 가지 상징들을 사용하셨는데, 이 중에서도 우리는 속전의 개념을 잘 이해해야 한다.

 

화요일(5월 12일) 갈바리에서 일어난 일(사 53:4-5)

 

속죄의 교리에 관하여 신학자들 사이에 많은 주장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두 가지 개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나는 속죄에 대한 객관적인 견해이며, 다른 하나는 주관적인 견해이다. 첫 번째 개념은 역사적인 사건, 즉 우리에게 구원의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 예루살렘 밖의 한 언덕에서 일어난 실제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두 번째 개념은 십자가에서 보이신 예수님의 사랑과 자기희생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강조점을 둔다. 즉 우리가 그 위대한 사랑을 묵상할 때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견해는 다 사실일 뿐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기 때문에 함께 이해해야 한다.

 

1. 죄인인 우리가 당했어야 할 죽음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당하신 것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설명합니까?(사 53:4-5, 롬 5:18-19)

사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롬5:18,19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답: 예수께서 찔리고 상하신 것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인함이라고 묘사하였다. 그가 맞고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고 평화를 누린다. 그분의 고난과 순종으로 우리가 의인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는 영원한 죽음을 면하게 되고 그분께서 제공하신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주로 대속(代贖)의 개념과 관계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개념을 싫어한다. 그들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라든가 이러한 법적 용어의 사용에 대해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하나님께서 합당한 방법으로 죄 문제를 다루신 것이 분명하다. 그분께서는 의로우시기 때문에 죄를 묵과하실 수 없으며, 사랑이시기 때문에 죄인을 버리실 수 없으시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므로 영원한 죽음의 형벌이라는 대가를 스스로 지불해야만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기꺼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이다. 우리를 위한 그분의 대속적 죽음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는 그분의 사랑에 이끌리며,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도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개인적인 부분에 해당한다.(요 12:32, 롬 5:1)

 

갈바리 십자가에서 베풀어진 은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늘의 행복과 영광을 버리시고 궁핍과 수치, 잔혹한 고통과 무서운 죽음을 당하신 것을 기억할 때 아무리 완악한 마음이라도 녹아지지 않겠는가? 만일 그분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에게 소망의 문을 열어 주시지 않았을 것 같으면, 우리는 흑암의 공포와 절망의 비극 외에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은혜와 축복을 받은 우리의 현 상태로서는 우리가 어느 정도 깊은 수렁에서 구원을 받았는지 깨달을 수 없다.”(증언보감, 2권, 109)

 

<부가설명> 예수님의 대속 사건은 갈바리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이루어졌다. 인류가 자기 죄의 값을 스스로 갚아야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예수께서 하신 일을 믿을 때 그렇게 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롬5:10). 갚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신 것을(딤후1:9,10) 확신할 때 그는 부활의 생명을 얻어 영원한 구원에 이른다(롬5:10). 갈바리에서 이런 일을 이루신 것이다. 아담의 후손은 한 사람의 예외 없이 이 은혜를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이렇게 베풀어놓은 엄청난 은혜가 바로 자신의 것이 된다. 그래서 그는 예수 안에서 죄 없이 죄 짓지 않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교훈: 갈바리의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구속이 분명한 역사적 사건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우리 자신의 반응이다

 

수요일(5월 13일) 마음의 변화(고후 3:16-18)

 

갈바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비할 데 없는 긍휼과 은혜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바로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분의 사랑을 바라봄으로 변화되었다.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 중 하나는 예수님이 특별한 분이시고, 그 수치스런 죽음 후에도 미래를 가지신 분임을 알았다(눅 23:39-43). 로마 백부장도 그분께 아무 죄가 없음을 깨달았다.(47절)

 

1. 예수님과 그분의 대속적 사역을 묵상하는 일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줍니까?(고후 3:16-18, 히 12:2-3)

고후3:16-18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히12:2,3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답: 예수를 깊이 생각하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 역사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된다.

“회개하는 죄인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에 그 눈을 고정시키도록 하라.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변화를 받게 된다. 우리의 공포는 기쁨으로, 의심은 소망으로 변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오른다. 돌 같은 마음이 깨어진다. 사랑의 조수가 심령에 밀려온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임재하심으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신다. …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십자가에서 고통의 죽음을 당하신 광경을 깨닫게 될 때 자아는 더 이상 인정받기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자신의 냉담함과 무기력과 이기심을 수치스럽게 생각할 것이다.”(시대의 소망, 439-440)

 

2.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더불어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인들은 무엇입니까?

답: 가장 집요한 요인은 자아를 인정하려는 정신이다. 자아를 쉽게 버리지 않는다. 자아는 우리 의식 안에서 기득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는 바로 인간적 기득권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것이다. 발에 신을 벗는 일이 쉽지 않다. 기득권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기심인데, 기득권은 전혀 이기심 같지 않은 이기심이기 때문에 버려야 한다는 의식을 하기도 힘 든다.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더구나 가시 많은 광야에서 말이다. 그래도 그것을 벗어야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에 참여할 것이다.

 

신학자들은 속죄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을 제시한다. 하지만 어떤 이론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고전 1:20-25).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은 토론의 주제가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묵상하고 경험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의 이해력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미 우리는 충분한 빛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 일에 경탄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변화됨

“구주의 다함이 없는 사랑을 바라보는 자는 사상이 향상되고, 마음이 순결하게 되고, 품성이 변화될 것이다. 그는 나아가 세상의 빛이 될 것이며 이 오묘한 사랑을 어느 정도 반사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더 우리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고 말한 사도의 말을 더욱 완전히 받아들일 것이다.”(시대의 소망, 661)

 

<부가설명> 마음의 변화는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노력이 어느 정도 효력이 있다. 그것은 높은 도덕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호흡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죽어서 썩고 있는 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 너무 어렵다. 죽은 자는 죽은 행실밖에 할 수 없다(히6:1). 그것은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것이다(엡4:22).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그리고 예수와 함께 부활해야 한다. 성품의 변화라는 것은 바로 이 부활의 생명이 생활하는 방식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생명은 소유하지 않고 성품의 변화를 말하는 것은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으면서 그것이 가능한 덜 썩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우리는 정말 부활의 생명을 얻었는지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역사는 토론의 주제이기보다 깊이 있는 묵상을 통하여 변화를 경험해야 할 체험의 문제이다.

 

목요일(5월 14일) 우리의 구원이신 그리스도(엡 2:4-10)

 

그리스도인들은 자칫하면 곁길로 벗어나기 쉽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초점을 성경에 두거나 교회, 전통, 혹은 교리에 둔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중요하긴 하지만, 만약 그것들로 인해 예수님에게서 돌아서게 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예수님만이 우리 구원의 근원이시다.

종종 재림교인들은 소위 '진리'에 믿음의 초점을 둔다. 그것은 물론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교리의 목록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는 진리에서 그 중심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계시해 주신 한 분을 믿는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지금은 하늘에서 우리의 중보자로 봉사하시며, 머지않아 우리를 본향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이 사실들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한다.

 

1. 다음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믿음의 중심이 되심을 어떻게 가르쳐주고 있습니까?(엡 2:4-10, 딛 2:11-14)

엡2:4-10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딛2:11-14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예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부활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가르친다. 결국 예수님이 아니면 아무것고 아니라는 것을 계시하고 있다.

에베소서 2:4-10은 대단히 귀중한 구절이다. 그 구절에는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은 사실이 거듭 강조되어 있다. 이 은혜는 “지극히 풍성한” 것(7절)으로 묘사되었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4절)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이 은혜는 무료 즉 공짜이다. 그것을 노력으로 획득할 수 없다. 만약 우리의 노력으로 영생을 얻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선행에 대해 자랑할 이유를 갖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매일의 삶에 가시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할 수 있게 하는 것(10절)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행도 또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2. 다음 구절들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믿음의 중심이심을 얼마나 힘 있게 묘사하였습니까?(행 17:28, 갈 2:16-20)

행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갈2:16-20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답: 우리는 다만 예수님을 힘 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살아주지 않으면 나는 죽은 존재이다. 내가 사는 것은, 내가 행동을 하는 것은 오직 예수께서 내 안에서 그가 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고백한다.

 

두 가지 그릇된 교리

“죽은 악인들이 영원히 불타고 있는 지옥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것과 사람이 짧은 일생에 범한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 내내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교리는 사랑과 자비의 감정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심지어 공의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견해에 비추어 볼 때에도 얼마나 모순되는가. … 한편 영원 지옥설을 반대하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은 그것과 반대되는 오류에 빠져 있다.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을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분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므로 그분께서 당신의 피조물들을 영원한 지옥 불에 던지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각 시대의 대쟁투, 535-537)

 

<부가설명> 기록된 말씀과 말씀이신 예수님과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은 성경말씀을 들음으로 생긴다(롬10:17). 그러나 우리가 기록된 말씀을 인간의 노력으로 지키는 것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도덕적 노력이나 도덕을 기초로 창설된 종교의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은 예수라는 교주가 가르친 교훈을 자기의 노력으로 실천하는 것일 뿐이다. 옛날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바로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했지만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영생이신 예수님께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요5:39,40). 우리가 기록된 말씀을 연구하면서 유대인의 이런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께 가야 한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서 예수 생명이 자기 생명이 되어서 예수 마음이 자기 마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내 안에서 사시는 상태이다.

 

교훈: 우리가 믿는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알 수 있도록 진리를 체계화해 놓은 것이다. 우리 신앙의 중심이 되시는 그분을 더 잘 알기 위해 힘쓰자.

금요일(5월 1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재림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관한 좋은 책을 말하라고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엘렌 G. 화잇의 시대의 소망을 추천한다. 제78장과 79장(741-768)은 특히 이번 주 교과와 관계가 있다. 다음 진술을 주목해 보라. “예수님은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그분의 십자가는 그들 가운데 세워졌다. 그처럼 그분의 십자가는 죄악 중에 놓인 이 세상의 한 복판에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참회한 강도에게 하신 용서의 말씀은 지구의 가장 먼 변경에까지 비취게 될 횃불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시대의 소망, 75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 값을 치르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의 생명을 요구하셨다는 개념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 묘사된 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러한 대속의 죽음은 죄가 얼마나 흉악한 것이며, 우리의 구속을 위해 얼마나 값비싼 대가가 치러져야 했는지에 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 구속은 인류의 사망을 처리하고 인류에게 생명을 영원하게 하는 일이다. 인류가 잃어버린 것이 생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도덕적인 성품을 잃은 것이 아니다. 생명을 잃으니까 생명이 있을 때에 나타나는 모든 인격 현상이 다 없어졌기 때문에 도덕적 아름다운 성품도 다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생명 자체이신 창조주께서 오셔서 우리가 잃어버리게 된 그 생명을 대신 십자가에서 잃으시므로 사망을 영원히 처리하시고 부활하시므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신 것이다(딤후1:10). 우리의 죄 곧 사망은 창조주를 사망이 되게 할 정도로 엄청난 흉악한 것이다.

 

2.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은혜로 충만한 삶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교회는 이 거룩한 은혜를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 은혜로 충만한 모습은 예수 생명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드러나는 것이다. 교회나 성도 개인은 이런 삶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예수님이 생활하신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을 성도의 일상생활에서 드러나게 해야 한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은혜의 실상을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은혜는 예수님 자신이다. 예수님이 은혜로 오셨고 그가 이루신 모든 것은 바로 은혜 그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없는 감동은 은혜가 아니다. 예수가 빠진 성경 강론은 그냥 성경 강론이지 은혜를 누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으로 드러난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삶을 살아야겠다.

 

요약: 신학자들은 속죄에 관한 여러 이론들을 발전시켰다. 그 이론들은 대부분 불완전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것들이다. 그것들은 히말라야 산맥의 어느 한쪽 면을 찍은 사진과 같다. 그것들은 모두 산맥의 한 부분을 보여주지만 산맥의 완전한 모습을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은혜의 기적은 우리가 지적으로 동의하는 어떤 표현방식에 한정되지 말아야 한다. 은혜는 우리 믿음의 기초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므로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잃어버린바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이신 그분과 더불어 우리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