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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과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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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10.05.20 10:30 조회수 6,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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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과 절제

5월 29일

일몰: 오후 7시 45분

 

도입)

미국 내의 교도소 수감자 16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감자가 범죄하게 된 원인의 92%가 '절제의 결핍'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은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근본적으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이다. 자신의 욕망대로 한다면 전 세계를 지배해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욕망을 절제함으로써 자신을 다스리면 그는 만족할 수 있게 된다. 절제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 가치 있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당장의 욕망과 즐거움을 참는 것을 말한다. 절제는 내면적 강화의 외적 표현이다. 많은 나쁜 습관들은 대부분 절제하지 못해서 생겨난다. 절제하지 못할 때 자신의 시간과 능력과 기회는 대부분 무익한 일에 허비되고 말게 된다. 미국인들은 하루 평균 3.5시간을 텔레비전 시청시간으로 보낸다고 한다. 이 말은 그들의 한 평생 가운데 11년 정도를 텔레비전 시청에 사용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철저히 낭비된, 무익한 시간인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서이다. 잃어버린 시간은 잃어버린 인생이다. 시간을 낭비함으로 자기 인생을 무익하게 허비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인생을 헛되이 낭비해서는 안된다. 오직 살아있는 동안에 자기 시간과 기회를 최대한 선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한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절제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이 단순히 자기 의지를 강하게 하거나 욕망을 억지로 참음으로 참된 절제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 활발한 토의를 위해 ‘토의를 위한 질문’을 적극 활용합시다.

기 억 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

 

안식일 오후

| 연구 범위 | 창 9:20~27, 잠 20:1, 23:31~35, 고전 6:19, 10:31, 벧후 1:5~9.

|중심사상|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사셨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몸을 돌볼 도덕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절제는 그런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열쇠이다.

한때 존경받는 판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알코올 중독에 빠진 극빈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지독한 술버릇은 명예뿐 아니라, 가정과 생계를 앗아갔다. 한때 엄숙한 판사복을 입었던 사람이 이제는 누더기를 입은 노숙인이 되었다. 부요하고 성 공적인 삶의 최후가 이렇게 비참할 수도 있다.

2007년에 한 젊은 여성이 물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불필요하게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물을 마시고 사망했단 말인가? 그렇다. 한 라디오 방송국이 주체한 대회 에서 물을 너무 마신 결과 그날 사망했다. 사인은 물중독이었다. 물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며, 일반적으로 무해하지만, 과도한 사용은 죽음을 부를 수 있다.

이번 주 우리는 절제에 관하여 공부할 것이다. 세상은 과도한 것을 성공으로 여기 고 있다. 위의 예가 보여 주듯이 건강에 유익하지 못한 것은 과감하게 피해야 하고, 건강에 유익한 물질이나 습관일지라도 정도껏 사용해야 한다. 적당함은 매우 중요 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간과되고 있다. 무엇이 참된 절제이며, 주께서 우 리에게 절제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일요일

5월 23일

성경에 나타난 첫 번째 음주

 

도입)

1988년 9월 27일 아침, 캐나다 CBC 뉴스 시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도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100m 세계 신기록 보유자인 우리의 국가적 영웅 벤 존슨이 약물 복용으로 선수 자격을 상실하고 그 모든 기록이 취소된 날입니다. 이것은 우리 국가의 수치입니다.” 이어서 기자가 벤 존슨과 인터뷰한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기자가 “당신은 왜 약물을 복용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나는 훈련을 등안히 여기고 꾀를 부렸습니다. 그렇지만 챔피언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약물 복용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절제하지 못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운동선수는 절제가 생명이다. 운동선수는 여러 면에 절제해야 한다. 운동선수가 절제하지 못하면 더 이상 쓰임을 받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신령한 운동선수인 우리도 절제해야 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는 말은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씀인가? 바울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절제하면 훈련을 하면서 살겠다는 것이다.

 

그대는 무엇을 남기기 원하는가? 사후에 어떤 인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부자 나, 유명인이나, 정치적으로 권력이 있는 인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그대에게는 무엇이 중요한가?

성경에는 훗날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 나온다. 어떤 이는 훌륭한 인물로 기억되고, 어떤 이는 악명 높은 인물로 또 어떤 이는 양면의 특징을 가진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노아의 경우를 보면, 그는 처음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전도자로 기억됐던 것 같 다. 120년간이나 기별을 전했지만, 극소수의 개심자만 얻었을 뿐이었고, 그마저 자 신의 직계 가족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를 아주 긍정적으로 바라보셨다. 죄 많고 사악한 홍수 이전 의 세계 가운데서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 은혜를 얻었다(창 6:8).

 

1. 노아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습니까? 창 6:9, 22, 7:1.

2. 노아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모든 것들을 행할 만큼 신실하고 순종적이었던 것은 사실 이지만, 성경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창 9:20~27을 읽어 보십시오. 이런 수 치스런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노아는 최초의 술 취한 사람으로 성경에 기록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주님을 위한 선한 일에 열심이었고, 많은 책임을 짊어지고, 크게 존경을 받았던 그가 어떻게 그 와 같이 실패했는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신은 모든 의사소통의 통로이다. 따라서 독성 물질이나 논쟁과 비난의 여지가 있는 물질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노아의 경험은 우리에게 경고와 교훈이 된다. 우리 가운데 건강하고, 신실한 자일지라도 유혹과 죄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음주가 나쁘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아는 술주정 상태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 노아 같은 사람도 그렇게 타락할 수 있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겠는 가?

 

교훈: 구원받은 의인도 절제하는데 실패하면 어느 순간 크게 타락할 수도 있다.

 

부가적용)

불행하게도 절제(Temperance)는 그 의미가 변질된 단어 중에 하나이다. 요즘에는 이 말이 주로 ‘절대금주’를 뜻한다. 그러나 이 주요 덕목이 ‘절제’라고 이름 붙여질 때에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다. 절제란 특별히 음주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고 모든 쾌락과 관련이 있었다. 현대에 와서 절제라는 단어를 음주문제에 한정시킴으로 큰 해를 입히게 되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많은 일에 있어서도 술만큼 무절제할 수 있다는 것은 잊어버리게 했다. 골프나 오토바이를 그의 생활에 중심으로 삼은 남자, 옷이나 카드놀이나 애완견에 온통 정신이 빠진 여자도 매일 저녁술에 취하는 사람, TV와 오락에 빠진 사람도 무절제한 사람이다. 물론 그런 무절제가 쉽게 밖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카드놀이나 골프를 광적으로 좋아한다고 해서 길 한복판에 쓰려지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겉모습에 속지 않으신다.

 

월요일

5월 24일

오늘날의 술

 

도입)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월간 음주율(만19세 이상)은 57.2%로 성인남자의 30.1%는 주 1회, 한 번의 술자리에서 7잔(맥주 5캔) 이상의 술을 마신다고 대답했으며 매일 이렇게 마신다는 비율도 9.1%에 달한다. 여자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6%로 추정해보면 우리나라에는 약 300만명 정도의 알코올 중독자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학신입생환영회부터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를 강요하는 문화 속에서 과음과 알코올중독의 비율이 높은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술은 뇌의 중추신경계를 마비시키고 과도한 음주는 구강암, 직장암, 간암 등의 발생빈도를 높이고 심혈관계질환과 소화기 및 간질환 등의 발병빈도를 높인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음주는 태아의 문제를 야기하고 음주로 인한 교통사고, 가족폭력 등 개인과 사회 모두에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 이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알코올 중독이다. 과거에는 알콜 중독을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때문에 알코올중독자를 치료가 필요한 병자로 인식하기보다는 술을 끊겠다는 의지가 약해서 술을 못 끊는 심약자나 사회 부적응자, 성격파탄자, 주변에 피해를 주는 폐인취급을 함으로써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알코올중독은 치료가 필요한 "정신과적 질병"이다. 오랜 기간 지속된 과도한 음주는 뇌에 이상병변을 만들어 술에 대한 자제력을 약화시키고 내성이 생기게 한다. 이 때문에 끊임없이 술을 갈구하게 되어 심리적, 신체적인 문제 외에도 알코올중독자의 가정이나 주변의 인간관계까지도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절제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갈라디아서에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리고...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7, 21)라고 하였다. 또 6장에서는 “자기 육체의 욕망을 따라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의 뜻을 따라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갈 6:8)이라고 하였다. 결국 욕망을 억제하는 일은 생명과 관계된 일이다. 이는 자기를 조절하여 타인에게 덕을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범사에 절제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에게 덕을 세우도록 애써야 한다.

2

1세기 첫 10년 동안 매해 약 백팔십만 명이 술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 세계 사망자의 3.2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더 우려할 일은 술 소비량 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십대와 젊은이들 사이에 폭음(남성은 네다섯 잔, 여성은 세네 잔을 연속으로 마실 때 해당됨)이 유행하고 있고, 이런 현상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알코올은 과음, 숙취, 중독으로 이어지며 화학적으로 우리 몸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친다.

 

1. 음주를 경고하는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삿 13:2~8, 잠 20:1, 23:31~35, 사 5:11, 엡 5:18.

하나님은 삼손의 어머니에게 임신 중 음주를 경고하셨다. 이는 알코올이 태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과학적 진술이 나오기 훨씬 이전의 언급이라는 점에 서 흥미롭다. 솔로몬도 술, 특별히 포도주와 맥주의 영향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그 는 자신의 관찰과 경험을 통하여 술이 사람의 행동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지, 그것이 어떤 후회를 가져오는지 묘사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도 술에 취한 선지자가 얼마나 부적절하게 행동하는지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다른 성경기자들의 경고를 확인시켜 주었다. 바울 역시 술에 관한 경고의 기별을 남겼다. 성경은 음주를 대체로 부적절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술은 사단이 만든 최고의 덫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위험한 약물 때문에 몸과 마음을 잃고 죽어갔는가! 그러니 우리 자 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타협하지 말고, 이 위험한 덫을 철저하게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교훈: 술은 가장 위험한 사단의 덫이며, 성경은 반복적으로 그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부가적용)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잠 23:29-30, 35) 술은 사람을 패가망신케 하는 올무 이다. 돼지가 너무 많이 먹어 배가 터져 죽는 일은 없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 먹는 것 절제하지 못해서 과체중으로 병들어 죽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개미가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과로로 쓰러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는 과로로 쓰러지거나 심지어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원숭이가 알코올 중독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갖가지 중독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 어떤 동물들도 살기 힘들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는 살기 힘들다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소욕을 이기는 절제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다.

 

화요일

5월 25일

하지만 술이 심장 건강에 좋지 않습니까?

 

도입)

"잠들기 전 한 잔의 포도주가 심장에 좋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라." 적당한 음주가 심장병 및 사망의 위험을 줄인다는 믿음은 잘못된 데이터에 근거한 것으로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보고서가 나왔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보도했다. 이 같은 사실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립대(UCSF) 간호학과의 케이 M. 필모어 교수팀이 음주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전 세계 54개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나타났다. 이들 보고서 가운데 7개는 전혀 술을 마시지 않거나 여러 해 동안 금주한 이들만을 대상으로 연구했는데, 이들 7개 보고서 모두 적당한 음주의 이점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 연구팀은 이미 15년전 나이 들고 병들면서 술을 끊는 이들을 연구한 끝에 "질병과 음주 간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말은 편견이다"고 지적한 A.G. 셰이퍼 박사의 주장에서 출발했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몇 잔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건강을 해치지 않을지는 몰라도 결코 건강을 이롭게 하지는 않으며 과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건강에 해롭다는 결론을 내렸다. 필모어 교수는 "연구 결과 가볍게 술을 마시는 것은 건강하다는 표시이지 건강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는 없음을 의미한다"면서 "가벼운 음주가 건강에 좋다는 가설이 그릇된 것임을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이번 연구가 그런 논란의 장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주립대(UCSD)의 마이클 크리키 박사는 "어느 누구도 음주를 권해서는 안된다"며 "많은 이들이 과음의 핑계로 술이 건강에 좋다는 이유를 대지만 이는 매우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 초부터 포도주와 술이 심장 건강에 주는 유익에 관한 논쟁이 뜨겁게 일어났다. 이 주제에 관하여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많은 연구 내용들이 비전문적인 과학잡지에 실렸었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 인구에 대한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이 이론 전반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주류회사 내에 이미 형성된 관심은 그 주제를 공공연하게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신도들이 규칙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아서 건강에 불이익을 당할까봐 불안해하기도 했다.

 

술이 젊은이들의 건강에 이롭다고 주장하는 어떤 문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중년 세대의 심장 혈관에 술이 효험이 있다는 주장이 최근 과학적 논문에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효능을 주장하는 연구결과를 보면, 전에 습관적으로 술을 마셨던 사람들을 비음 주 집단에 포함시켰다. 이 사람들 중에 일부는 술이 건강 문제를 일으켜서 술을 끊은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보다 건강하지 못했다. 자료를 재분석하고, 연구의 설정에 나타난 결함들을 수정하였더니, 비음주자에 비하여 가벼운 음주자들이 건강상 유리할 것이라는 가설을 증명할 만한 뚜렷한 근 거가 나타나지 않았다. 더욱이 실험대상자들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더 건강할 것이 라고 예상했던 가벼운 음주자들은 다른 대상자들과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들은 잘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사회적 경제적 지위도 높았고, 의료 시설 이용 측면에도 유리했다. 이런 조건들이 건강 증진과 장수와 관련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결국 이런 연구들은 가벼운 음주의 이로움을 증명한 것 이 아니라, 건강한 생활 습관을 증명한 것이라고 봐야 옳다.

이런 역학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미 술의 해로움을 자세하게 알려 준 건강 기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술의 광범위한 위해성을 못 본 채 하고 대신 존재하지도 않는 건강상의 효능을 추구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술이 안겨 주는 피해는 운전 장애와 위험을 감지하는 판단력 결여에서부터 시작해서 뇌손상, 폭행, 사고, 가정폭력, 간경화, 암, 중독, 심지어 치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단 한 잔의 술도 신경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고, 알코올 의존성을 촉발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술이 건전한 판단력과 성령에 반응하는 능력에 손상을 준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어리석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이다.

 

교훈: 약간의 술이 건강에 이롭다는 속설은 진실이 아니며, 오히려 한 잔의 술로 시작한 음주가 이후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다.

 

부가적용)

적당히 마시면 된다고? 적당히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하지만 적어도 술에 있어서는 ‘적당히’가 안된다. 한 잔 마시면 또 한 잔 마시고 싶은게 술이 가진 괴력이다. 적당히 마시면 오히려 몸에 좋다는 말은 결코 지킬 수 없는 거짓말이다. 술을 마시면 몸만 축나는가? 돈도 줄줄 새는 건 당연한 결과다. ‘적당히’가 되지 않으니 술꾼들은 제일 먼저 신용카드부터 잘라버려야 한다.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신용카드로 사고 한 번 치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수요일

5월 26일

모든 것에 절제함

 

도입)

아담과 하와가 지지른 최초의 죄는 절제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되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절제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범죄 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광양에서 마귀에게 받으신 세 가지 시험도 결국 절제에 대한 시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욕망과 탐욕을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 예수님께 있었다. 절제는 예수님의 성품이며 우리의 신앙인격의 기초이며 최고의 영성이다.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절제심이 없으면 곧 무너진다. 성령께서 우리를 다스리고 우리의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는 것에 대하여 도와 주셔서 자제하도록 해 주실 것이다. 자제력이 없으면 어떠한 열매도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자제력은 매우 중요하다. 성령의 열매 중에 절제가 마지막에 있어서 다른 열매 보다 덜 중요하게 여길 수 있으나 사실 절제가 가장 마지막에 있는 의미는 다른 열매들을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절제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열매라 해도 역효과가 날 수 있고 낭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열매에는 절제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

 

절제는 때로 옛날 말처럼 들린다. 우리는 이 말을 들을 때 술과 담배라는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춰 활동하는 단체나 조직을 떠올린다. 재림교회 초기에는 이런 운동 을 선전하기 위해 담배를 씹고 뱉는 역겨운 습관을 가지고 있는 젊은 여자들에게 경고하는 노래도 불렀다. 그러나 지금 같은 예민한 세대에서는 절제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다루면서도 그 단어의 언급은 가급적 피하고 있는 형편이다.

절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좀 더 쉬운 접근법으로 여 겨진다. 그러나 우리가 절제 문제를 소극적으로 다루는 동안 우리 교단의 어떤 교회 들은 한때 세상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했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 벧후 1:5~9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요? 특별히 우리의 건강습관에 어떻게 적용 될까요? 이런 성경의 훈계를 어떻게 우리 삶에 실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절제란 흡연, 불법 약물 복용, 음주, 차, 커피, 청량음료를 마시지 않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절제는 좋은 것일지라도 과도하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대의 근무 습관은 어떤가? 그대는 적절한 근무시간을 지키는가? 하나님, 가족, 휴양, 체력단련, 봉사를 위한 시간이 있는가? 수면시간은 어떤가?

2. 그대의 식습관은 어떻습니까? 그대는 돼지고기는 물론이고 어쩌면 닭고기도 안 먹을 것 입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햇빛이 좋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과도하면 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운동도 그렇다. 대부분은 부족해서 문제지만, 지나친 운동 역시 몸을 해친다. 성생활 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지만, 과도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엘렌 G. 화잇은 참절제의 핵심을 다음과 같은 짧은 문장으로 요약하였다. “참된 절제는 해로운 것은 모두 완전히 버리고 건강에 이로운 것을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친다.”(부조와 선지자, 562)

 

교훈: 절제란 나쁜 것은 금하고, 좋은 것은 적당하게 하는 것이다.

 

부가적용)

신약성경에 절제(ՅՃՊՑՁՔՅՉՁ)라는 말이 헬라어 성경에는 6번이 나온다. 이 의미는 적극적인 의미에는 자기를 관리(self-control)한다는 의미이고, 소극적인 의미에는 욕망과 식욕을 억제하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적극적인 의미로 자기를 관리한다는 말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계획된 프로그램에 의해 자신을 통제하고 계발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소극적인 의미로 욕망과 욕구가 지나치지 않도록 막아주는 건전한 조절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절제는 신자의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절제가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삶을 절제하지 않고서는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24-27에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세우기 위하여 자기를 쳐서 복종시킨다고 하면서 경기자에서 달리는 경기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설명하였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바울은 달리기하는 사람이 경기장에서 달리기할 때 상을 얻기 위하여 달리는 것과 같이 신앙생활도 달리는 경주와 같다고 하면서, 달리기 경주에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자기 자신을 절제한다고 하였다. 여기에 '절제한다'(ՅՃՊՑՁՔՅՕՏՌՁՉ)는 말은 우리가 앞에서 논의한 '절제'의 동사형인데, 자기를 관리한다는 뜻이다. 운동장에서 달리기하는 사람은 평상시 체력관리를 잘 해야 하고, 정신 관리도 잘 해야 한다. 그리고 음식관리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봉주 선수가 마라톤 경기에 나가는데, 그가 먹고 싶은 음식 다 먹고, 비디오 볼 것 다 보고 우승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세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엄격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수험생의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수능을 불과 몇 달 앞둔 학생이 잠잘 것 다 자고, 놀 것 다 놀면서 좋은 성적 기대할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이 말씀에서 '절제'를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여 설명하기를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하였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것이다.

 

목요일

5월 27일

값을 주고 삼

 

도입)

우리는 하나님이 값으로 사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우리 자신을 헌신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서 사람들은 좋아하면 결혼하고 싫어지면 이혼한다. 그들은 소유권에 대한 어떤 인식이 없기 때문에 그들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의 헌신은 그러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참된 헌신은 하나님이 값으로 사신 것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하여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는 깨달음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우리의 기분이 좋든 나쁘든, 이 사실은 언제나 동일하다.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성령의 전이다.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한 몸이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주님을 영접한 우리는 앞으로 부활할 몸이다. 하나님을 위한데 써야 할 몸으로 부절제를 하여 망가뜨리는 것은 심각한 죄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활의 생명으로 사는 자들이다. 부활의 생명이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는 자들을 말한다. 이는 옛사람이 철저하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예수의 심장 속에 들어가 말씀이 일하는 실제를 보고 누리고 만지는 자들이기에 주님으로 말미암아 마귀와 귀신들을 향하여 단호하게 명령할 수 있는 영적권세가 있는 자들이다.

 

우리 몸은 우리 것이고,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사고방식 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살더라도 자신 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1. 다른 사람의 부절제가 어떤 방식으로 그대와 그대가 아는 사람을 해롭게 할 수 있습니까? 또는 그대의 부절제한 행동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해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 몸을 중요한 거처로 취급한다. 몸은 우리의 유익과 생각, 계획, 행동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몸은 사실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래서 몸을 관리하는 것은 큰 특권이며 중요한 책임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몸보다 집을 더 많이 관리하고 있다. 이는 순서가 바뀐 것이다.

2. 우리의 몸을 돌보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다음의 성경절들은 어 떤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가정할 때만 이 본문이 의미 있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 2:19~21, 고전 6:19~20.

예수님도 자신의 몸을 성전으로 비유하셨다. 바울도 이러한 주제를 종종 강조하며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어떤 대가가 치러졌는가? 십자가를 마음속에 그리며 거기 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묵상해 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우리의 가치와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해로부터 우리의 영과 더불어 육체 도 관리해야 한다는 거룩한 책임감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의 피를 흘리도록 허락하신 것은 하늘 을 허비하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으며 우리의 모든 것이 그분의 소유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실한 청지기처럼 우리 몸을 사용해야 한다.

 

교훈: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예수께서 피로 구속하시며, 성령께서 거하시는 값진 존재이다.

 

부가적용)

고린도 전서 6장 20절은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헌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대가를 치르신 이러한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복음서원에 가서 진열해 놓은 수많은 책을 볼 수는 있어도 어느 것도 마음대로 취할 수는 없다. 이는 당신에게 그렇게 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2500 원을 지불하고 그 책 중 한 권을 구입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책을 요구할 수도 있으며 그 책을 당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당신에게 값을 치른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헌신의 근거도 똑같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그분께 헌신하라고 요구하실 수 있는가?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사셨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근거(이유)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옳지 않은 말이다. 헌신은 그 근거가 하나님의 창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값으로 사신 것에 있다. 출애굽기 13장 2절에서 유월절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시기를,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고 하셨다. 이렇게 명하신 근거는 모든 초태생이 어린 양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린 양의 피로 사신 자들이었다. 값으로 사는 것은 소유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값으로 사셨을 때 소유권을 획득하셨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양도되어, 하나님께 속하도록 요구하는 근거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헌신의 근거는 하나님이 값으로 사신 것이다.

 

금요일

5월 28일

독서 과제:치료봉사, 161~169 “시험받는 자들을 도와줌”, 171~182 “부절제한 사 람을 위한 봉사”

세계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비만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과식을 장려하고 있다. 음식과 비만, 운동부족 때문에 문제가 되 는 제2형 당뇨병은 십대에서도 발생되고 있다. 또 인터넷 중독, 포르노 중독이 상상 할 수 없는 규모의 폭력과 성적 학대를 양산하고 있다. 매해 오백만 명의 생명을 앗 아가고 있는 담배는 막을 수 있는 사망 원인들 가운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담뱃갑에는 경고문구가 인쇄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주의하지 않고 있다. 실천되지 않는다면 정보도 우리를 보호할 수 없다.

하나님은 다양한 통로로 우리가 어떻게 건강하고 거룩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 꾸준히 안내해 오셨다. 우리가 그분의 권고를 따른다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될 것 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 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

“식사의 습관이 그들의 건강과 품성과 이 세상에서의 유용성과 영원한 운명에 얼 마나 큰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마땅히 깨달아야 할 만큼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식욕 은 언제나 도덕력과 지력에 예속되어야 할 것이다. 신체가 정신의 종이 될 것이지 정 신이 신체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새 자녀 지도법, 39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그대가 사는 사회는 절제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합니까? 절제를 격려합니까? 아니면 절 제를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지배적입니까?

2. 어떻게 하면 식사, 운동, 수면에 있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3. 조금 쓸 때 유익하면, 많이 쓸 때 더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런 사고방식은 잘못되었습니까?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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