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과 선택의 능력 > 안교교과

사이트 내 전체검색

안교교과

제 2과 선택의 능력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춘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10.04.01 12:33 조회수 5,923
글씨크기

본문

제 2 과 선택의 능력

 

도입)

두 사람의 신체장애자가 있었다. 한 청년은 70년대에 축구, 레슬링, 권투 등 만능선수로 알려진 라이트(Kenneth Wright)였는데, 1979년 권투 시합을 하다가 하반신을 못 쓰는 장애자가 되었다. 의사는 몇 해 동안 훈련받고 보조기를 사용하면 혼자서도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3년 후 82년 그는 친구들에게 자기를 산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여 같이 산에 올라가서는 잠깐 혼자 있겠다고 하더니 숨겨온 권총으로 자살하고 말았다. 또 다른 청년은 짐 맥고원(Jim Megowan)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불량자에게 얻어맞고 하반신이 마비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를 비관하지 아니하고 견디어 그의 투지와 의지로 노력한 결과 포코노 호수에서 낙하산 점프의 묘기를 보였고, 취사, 세탁, 청소를 혼자하며, 특별 장비의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게 되었다. 그는 스포츠에 관한 세 권의 사진첩도 출판하였다. 같은 처지에 있었으나 한 사람은 죽음을 선택했고, 다른 한 사람은 삶과 행복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의 선택의 결과는 막중하다. 올바른 선택을 하면 그분의 복을 누리며 성공과 행복을 누린다. 하지만 잘못 선택하면 길을 잃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놓친 채 영원히 풀 수 없는 미로에 갇혀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갈 길을 인도해달라고 기도하고, 표징을 바라고, 조언을 구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성경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4월10일

일몰: 오후 7시 3분

기억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단 1:8).

안식일 오후

연구 범위: 창 2:16~17, 3:1~13, 신 30:10~19, 시 119:11, 골 3:2, 히 11:8~10.

중심 사상: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선택의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모든 선택에는 그 결과가 따른다.

재키와 캐롤(가명)은 단란한 가정에서 함께 자란 두 살 차이의 자매이다.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재키는 공부에 집중하였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여 경영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삼십대 중반이 된 그녀는 투자회사의 중요 직책을 맡고 있고, 결혼하여 행복하고 살고 있다.

한편 캐롤은 파티와 쾌락을 선택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담배와 술과 마약을 탐닉 했다. 그녀는 현재 정부 보조를 받고 있는 미혼모이며, 마약중독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캐롤은 언니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반드시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살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 선택의 옮고 그름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 주 우리는 선택의 능력에 대하여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일요일

4월 4일

 

진정한 자유

도입)

하나님은 인간이 땅에서 책임 있는 지배권을 행사하도록 인간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을 우리를 지으실 때 그분을 사랑할 수 있고 그분과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자유로운 피조물을 창조하는 위험을 감수하셨다. 하나님이 단순히 우리가 언제나 옳은 일만 하도록 우리를 만드셨다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위험이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셨던 게 분명하다. 그분은 기계처럼 움직이는 인간을 창조하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하셨다. 그분은 피조물인 인간들과 인격적인 언약을 맺기를 원하셨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사랑의 관계는 강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만 일어나는 통제된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참으로 다스리기 편한 곳일 것이다. 오히려 세상은 자유로운 대리자들이 있는 곳이며, 따라서 유연한 주권을 갖고 다스려야 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가장 작은 부분까지 통제하는 형태가 아니며 우리에게 미래의 실현을 위해 협력하라고 요구하는 유연한 주권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기도이다.

 

사람들은 자유에 대하여 말한다. 각 정치 진영은 그들만의 선언을 외친다. 미연방의 한 주는 이런 구호를 자랑한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사실 자유는 매우 복잡한 주제이다. 자유는 환경과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유의 의미를 정확히 집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인간을 도덕적 존재로 창조하셨고, 인간이 진정으로 도덕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도적적 자유가 주어져야 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인간은 원한다면 잘못된 것을 선택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들에게 그런 선택권이 없었다면, 그들에게 진정으로 자유가 있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1. 창 2:16~17을 읽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말씀 속에서 아담의 도덕적 자유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창 3:1~6에서 우리는 아담과 하와에게 도덕적 자유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선택의 능력이 있었다면 왜 하나님은 그들에게 금단의 열매에 대하여 경고하셨을까? 여기서 우리는 완전한 존재로 살기 위해서는 도덕적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 존재의 바탕에는 진정한 자유가 내재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2. 창 3:1~6을 읽으십시오. 말씀 속에서 아담과 하와가 자유의지를 사용했던 부분들을 찾아봅시다. 어떻게 하면 각 단계에서 그들이 더 좋은 선택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요? 이 말씀을 통해서 선택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인간의 도덕적 자유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가 자유를 남용한 결과 그분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보라. 이 선물은 너무도 중대한 것이어서 우리가 이 선물을 남용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 권리를 철회하거나 우리를 절망 중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대신 십자가로 달려가셨다.

 

교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덕적 자유를 주셨다는 것은 우리를 그만큼 완전한 존재로 만드셨다는 뜻이다.

 

부가적용)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가 하는 매일의 선택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우리를 위해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으로부터 비롯되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특별한 목적을 가지시는 데까지 연결된다. 인생의 막이 내리기 전 우리는 모두 그릇된 선택도 더러 내릴 것이며 그 결과를 맛보며 살 것이다. 물론 제대로 선택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선택을 잘했더라도 그 결과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인생이란 언제나 우리의 기대대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최선의 의도와 결정도 낙심과 실패와 고생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라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들쭉날쭉하면서도 놀라운 것이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선한 길들이 많이 있다. 그 모든 길이 하나님의 뜻일 수 있지만 결국 그중 하나만이 하나님의 뜻이 된다. 바로 우리가 선택하는 길이다. 하나님은 그 선택을 복 주시고 구속하신다. 하나님이 선하시며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지으셨다면 얼마든지 이 사실을 확신해도 좋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행복을 맛보든 상실을 겪든, 선택할 때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은혜 안에 살고 있으며 하나님의 주권을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우리는 오직 하나의 길, 오직 하나의 뜻, 오직 하나의 목적만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우리가 선택한 길이요 우리가 걸어온 길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성취하신 계획이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하다.

 

월요일

4월 5일

 

잘못된 선택의 결과: 죄책감과 두려움

 

도입)

영국의 북부도시 에딘버더 시립공원에 나무를 심었다. 우연히도 12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열두제자들의 이름을 따서 나무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붙였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그리고 맨 마지막엔 가롯유다 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무들은 모두 다 잘 자랐다. 몇 년이 지나 나무들은 제법 무성하게 가지를 드리우고 그늘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 나무 그늘에서 쉬거나 지나가면서 나무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베드로 나무야 많이 자랐구나 좀 더 무성해 지거라' 또는 '요한 나무야 잘 있었느냐 너는 사랑스럽구나 그래, 어서 더 자라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지' 그런데 사람들은 가롯 유다의 이름이 붙은 나무를 보기 만하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예끼 이 나쁜 놈! 가롯 유다야, 네가 예수님을 팔아먹었지? 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했지, 저주를 받아라. 에이 퉤퉤'하고 침을 뱉으면서 지나갔다. 그런지 3년이 못되어 가롯 유다 나무는 시들시들해지더니 마침내 말라죽고 말았다고 한다. 사람들로부터 너는 죄인이다, 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면, 결국 나무도 말라버리고 마는데, 사람이야 얼마나 더 하겠는가? 죄의 문제는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까지도 파멸시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길 바란다.

 

1. 창 3:7~13을 읽고 다음의 질문에 답하십시오.

1) 이 부부가 경험한 것을 만약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그들과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됩니까?

2) 그들은 전에 알지 못했던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요?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왜 그들과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까?

1970년대 초 언론에 의하여 워터게이트 사건이 폭로되었을 때, 백악관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펼쳤다. 결국 이 일 때문에 리처드 닉스 대통령이 사임했는데 이유는 그가 민주당사로 잠입을 승인했기 때문도, 그 계획에 가담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는 다른 이들의 잘못을 은폐하려고 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사임했다.

어떤 면에서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소행을 덮어버리거나 하나님께 숨기려고 했고, 적어도 자신들의 과실을 다른 이에게 돌리려고 했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그분께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머리카락도 헤아리시는 분을 우리가 어떻게 속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우리는 정말 쉽게 다른 이들에게 비난과 책임을 돌린다. ‘만약 내 상사가 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배우자가 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시험을 거두셨더라면, 나도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랬다면, 만약 저랬다면...’

물론 존재의 기본 바탕을 흔들어 놓는 강력한 유혹이 우리에게도 종종 찾아온다. 상황은 불리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혹이나 시험이 찾아오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굴복한다. 죄의 결과는 죄 자체만큼이나 참혹해서, 우리가 그 책임을 인정하기를 거부할 때,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 우리가 죄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어떻게 죄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 워터게이트 사건 : 닉슨의 재선을 노리는 비밀공작원들이 워터게이트빌딩 내 민주당사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가 발각된 사건

 

교훈: 죄의 책임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것도 타락의 결과이다. 그러나 죄의 극복은 잘못을 시인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부가적용)

주님은 2천년 전에 우리의 모든 일생의 죄와 온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시다. 주후 2천년 후에 태어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 앞으로 주님 오시기 전날까지, 태어날 모든 인류의 죄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해 주신 분이신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러므로 이것이 복음인 것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를 담대하게 해결해 나갈 수 가 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죄책감에 스스로 메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롯 유다의 불행은 죄만 알았지 용서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 불행이다. 그러나 베드로의 위대한 사도됨은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을 알았다는 것이다. 닭의 울음소리가 그의 귓전에 들릴 때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했던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므로 그의 일생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위대한 사도로서의 삶을 살았다. 옛날의 자신의 모든 죄책감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렸던 인물이 베드로였다. 그리고 바울 이었다. 바울처럼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살아갈 사람도 드물 것이다. 바울은 자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죄인중의 괴수다”라고 말할 만큼의 박해자였다. 그러나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다음에 완전히 죄에서 완전히 자유한 사람이었다. 그렇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안에서 완전한 자유자인 줄로 믿는다. 그래서 로마서8장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잇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1,2) 할렐루야.

 

화요일

4월 6일

 

선택: 선과 악

 

도입)

자유의지란 더 큰 의지 앞에서 정의된다. 인간이란 존재는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창1:27]. 창조된 인간의 의지가 창조주의 의지에 예속되어 있다면, 인간은 그 속성에서 자유의지가 부여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이것은 전혀 창조주를 닮지 않은 창조물이다. 즉 저급한 창조물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저급한 창조물이라면 인간의 자유의지란 말이 정의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나서, 꼬마들이 주머니에 장난감을 넣어 가지고 심심하면 부셨다가 다시 만들었다가 하듯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예속된 존재로 만드셨다면 그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란 용어가 정의되지 않는다. 더 큰 자유의지(하나님)가 인간이란 작은 존재의 의지를 용납할 때에야 비로소 자유의지의 중요성이 인지된다.(여기에는 자기파괴까지도 포함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더 큰 자유의지, 즉 피조물의 자유의지는 창조주의 자유의지가 전제될 때, 피조물은 창조주로부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창조주가 없으면 피조물은 존재할 수 없다) ------->이 말은 창조주의 자유의지가 있어야 피조물의 자유의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창조주의 자유의지가 가지는 특이성을 피조물도 가지고 있고, 그 특이성이 피조물이 가지는 자유의지에 반영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이 관계를 자기 닮음성(Fractal:자연현상에 내재하는 모든 것을 조직하는 원칙으로서 자체유사성을 표현하는 기하학: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마리의 정자는 한사람의 인간을 내재하고 있다; 프랙탈 기하학/만델브로트)이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우리의 본성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선택의 능력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굴복하고 순종할 수도 있고, 죄악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❶ 히 11:8~10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은 아브라함과 그의 선택들에 관하여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 선택들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반면 아브라함이 했던 잘못된 선택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런 선택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참고 창 16장, 창 21:9~14)

“일부다처는 아주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어 버렸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는 일이었으며 가족 관계의 신성성과 평화에 치명적이었다. 아브라함과 하갈과의 결혼은 그의 가정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나쁜 결과를 빚어내었다.”(부조와 선지자, 145)

단 1:8~16을 읽어라. 다니엘이 마음먹고 했던 말은 그의 선택이 확고하며 흔들림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의도적이고 신중한 결정은 다니엘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쳤으며, 주님의 특별한 축복과 돌보심의 근거가 되었다. 다니엘은 매일 경건의 시간 때마다 주님을 향한 그의 충성심을 새롭게 다졌다.

❷ 우리가 옳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그것을 행하기로 마음에 확정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좀 더 쉽게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생각을 훈련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시 119:11, 빌 4:8, 골 3:2.

우리는 옳은 것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어야 하는데 옳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들이다. 잊지 말아야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실패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편에서 죄책감과 좌절감 때문에 스스로 포기해 버릴 위험이 있다. 그런 경우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십자가 밑에 무릎 꿇고 예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교훈: 타락 이후 우리의 본성은 변했지만, 여전히 선택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마음먹어야 한다.

 

부가적용)

옛날 한 수도사가 기름(oil)이 필요하여 올리브 묘목을 심었다. 그리고 그는 "주여, 이 연약한 뿌리가 마시고 자랄 수 있는 비가 필요하니, 단비를 내려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주께서는 단비를 내려 주셨다. 그 수도사는 또 기도를 했다. "주여, 나의 나무는 태양이 필요합니다. 주께 기도드리오니 해를 주시옵소서." 그러자 검은 구름을 몰아버리고 해가 나왔다. 이번에는 "오! 주님, 이 나무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서리가 필요합니다"라고 수도사는 외쳤다. 그랬더니 그 작은 나무에는 서리가 앉아 번쩍거리고 있다. 그런데 웬걸 저녁에는 죽어 버렸다." 그 수도사는 동료 수도사의 방을 찾아가, 그의 이상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나도 역시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심어 키우고 있습니다"고 하면서 그의 동료는 말했다. "그런데 보십시오! 잘 자랍니다. 나는 나무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 나무를 만드신 하나님께요. 그는 나 같은 사람보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방법으로도 고정시키지 않습니다. 다만 '주여! 이 나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시옵소서. 강풍이든, 햇빛이든, 또한 바람이든, 비든, 서리든 주께서 때를 따라 주시옵소서. 주께서는 이것을 만드셨고, 그리고 잘 아시나이다'라고 기도할 뿐입니다"는 것이었다. 토마스 왓슨은 순종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기보다는 우리의 특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만을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신 사랑 가운데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항상 우리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에는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려는 뜻과 목적이 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9-11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신다. 앤드류 머레이는 "우리는 주를 믿는 동시에 모두 순종의 학교에 입학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영접했을 때 그것은 이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시간과 물질과 능력을 주님의 말씀대로 사용하겠다고 서약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삶을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위해서 낭비하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였다는 것의 의미이다. 이런 의미가 빠졌다면 주님을 영접하였다고 말할 수 없다.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을 통해서 진리를 분별할 줄 알게 되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고, 궁극적으로 영생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신앙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수요일

4월 7일

 

선택과 다음 세대

 

도입)

모든 중요한 선택은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 성경은 선택의 결과에 대한 약속과 경고와 죄에 대한 처벌과 순종에 대한 상급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보상이나 결과는 단기적이거나 순간적인 것도 있고(잠 3:9-10, 말 3:10-12), 장기적이거나 영원한 것도 있고(눅 12:32-33, 마 6:20), 두 가지 다 해당되는 것도 있다(막 10:29-30). 인간은 전 생애에 걸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다. 특히 부모는 자녀에게 있어 다양한 발달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타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의 테두리는 부모의 영향을 받고 그 영향을 자녀에게 준다. 좋은 영향력들은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겠지만, 나쁜 것들은 우리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커다란 요인이 된다. 아이가 행복해 지는 비결은 사실 의외로 간단하다. 부모가 행복하면 된다. 부모가 행복하면 아이도 행복하다. 특히 부모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 시기에 보여 지는 부모의 모습은 아이의 기억 속에 낙인찍히는 것처럼 강렬하게 남는다.- 최원호의 '자녀 인생 매니지먼트'에서-

부모의 행복은 자녀를 돈으로 줄 수 없는 큰 행복을 가져온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이지만 부모 스스로 행복의 가치관을 갖고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❶ 신 30:10~19을 읽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실들이 그대의 마음에 와 닿았습니까? 그들의 선택이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선택이 우리 자녀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칩니까? 

선택의 결과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며, 특별히 자녀들에게 대한 영향력은 더욱 지대하다.

한 예로 음주를 들 수 있다. 하루에 한 잔의 술이 건강에 좋다는 가정하에 제작된 과장광고가 있었다. 주조산업조합에 의해 제작된 이 광고에 많은 사람이 속았다. 그런데 실제로 술에 관한 연구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깨달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침내 오류가 수정되었고, 건강에 좋다는 말은 허구로 드러났다. 술은 인류에게 가장 큰 저주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아 왔다. 술에 대한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경계를 늦추고 있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술을 처음 마시는 사람의 7퍼센트가 알코올중독 내지 심각한 술꾼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가정에서 술을 마시게 되면 그것이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본이 되겠는가? 그대가 술을 마시면, 자녀도 마시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녀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일을 선택할 가치가 있는가? 술이 있는 집에서 자란 아이는 술을 전혀 소비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보다 심각한 술꾼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런 단순한 예를 보더라도 우리가 어떤 본을 보여야 할지 주의해야 한다.

신 30:10~19을 다시 읽어보라. 그대의 선택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대에게 자녀가 없을지라도, 왜 그토록 다양한 위해성이 드러난 일을 선택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건강 원칙들을 주셨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신뢰할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교훈: 우리의 선택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부가적용)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을 지낸 바 있고 미국 영적 대각성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쳤던 인물이다. 그의 부인 역시 신앙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었던 조나단 에드워즈와 그의 후손을 추적하여 그의 가계(家系)를 연구하였다. 그의 직계 후손은 현재까지 873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대학 총장을 지낸 사람이 12명, 교수 65명, 의사 60명, 성직자 100명, 군인 75명, 저술가 85명, 변호사 100명, 판사 30명, 공무원 80명, 하원의원 3명, 상원의원 2명, 미국 부통령 1명, 그리고 260명이 평범한 신앙인으로 지냈다고 한다. 한편 조나단 에드워즈에게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맥스 쥬크라는 친구가 있었다. 이들은 함께 교회 주일학교에 빠지지 않고 다녔다. 그러나 맥스 쥬크는 어느 날부터인가 믿음을 잃어버리고 교회를 떠나 방탕한 생활로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신앙이 없는 여자와 결혼해서 자녀들을 두었다. 조나단 에드워즈를 연구했던 사람은 그의 친구인 맥스 쥬크의 후손들도 추적해 보았다. 그의 후손은 1,292명인데 그 가운데 유아사망 309명, 거지 310명, 불구자 440명, 매춘부 50명, 도둑 60명, 살인자 70명, 별 볼일 없이 산 사람 53명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우리가 믿음에 굳게 선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목요일

4월 8일

 

선택과 기회

 

도입)

우리가 느끼는 행복의 정도는 우리가 처한 환경에 따라 늘어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행복의 정도는 환경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사람들에게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해도 저마다 그 환경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생각의 본질을 이해하면 우리는 휴식이나 중용, 행복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의 상태, 여유 있는 만족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버나드 쇼는 ˝워렌 부인의 직업˝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자신이 좋지 않은 상태가 된 이유는 나쁜 환경 때문이라고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나는 환경 따위는 믿지 않는다. 이 세상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은 모두 자기 스스로 일어서서 원하는 환경을 찾았다. 만일 그러한 환경을 발견하지 못하면 자신에게 맞도록 환경을 바꾸거나 만들어 내었다.´ 버나드 쇼의 이런 깨달음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당신도 그런 깨달음에 얼마든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중에서

나이 탓 하지 말고 환경 탓 하지 말고 건강 탓 하지 말라. 아베마리아 작곡가 베르디는 85세에 아베마리아를 작곡했다. 모세는 80세에 출애굽을 감행하였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젊은 날 동대문 시장에서 새벽시장 청소부로 일했다. 헬렌 켈러는 청력 시력의 장애를 극복하여 신앙의 위대한 인물로 그리고 사회에 영향을 끼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도 대통령의 꿈을 버리지 않고 대통령이 되었다.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셀라)”(시 87:5~6).

모두에게 선택할 힘이 있을지라도,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선택들은 미래에 대한 제한된 가능성과 기회만을 제공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과 무관한 불이익으로 고통당한다. 어떤 이들의 삶에 불이익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지 생각해 보라. 마약이 있는 가정에서, 가정폭력이 난무하는 가정에서 그리고 극도로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생각해 보라. 절망과 타락이 지배하는 현장을 생각해 보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1. 시 87:5~6을 읽어보십시오. 이 말씀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어떤 상황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까? 이 말씀은 어떤 의미에서 마 7:1~2의 말씀을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처지를 아신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이 자신이 하지 않은 일 때문에 끔찍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음을 알고 계신다.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과 선택 때문에 야기된 문제들. 거기에는 가정을 버린 부모의 선택, 간음을 행한 배우자의 선택, 자신을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을 배반한 친구의 선택 등 셀 수 없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다. 우리는 예수를 따르기로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선택하고, 죄악의 길에서 돌아서서 침례를 받기로 결심할 때, 우리는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이 선물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들어오셔서 선한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행위를 지도하시며, 우리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 우리는 참포도나무의 가지가 되는 것이다.

갈 5:22~23에 따르면 성령의 열매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집합적인 것이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의지를 지배하신 결과이며, 적어도 우리가 그분이 일하도록 허용한 만큼 나타난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던 부정적인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가 결정해야 할 선택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해 드리는 것이다.

 

교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는 결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럴지라도 우리에게 예수님을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남아 있다.

 

부가적용)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칭기스칸이 되었다. 칭기스칸 어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칭기스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룬다. 잔인한 정복자에서부터 워싱턴포스트가 선정한 과거 1,000년 간 인류사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기도 하다. 경영학을 하는 사람에게는 현대 경영의 모델로 인용되기도 한다. 그에게서 배울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환경 탓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극복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고당 조만식선생은 남의 집 머슴 출신이다. 그는 후에 학생들 앞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열심히 요강 닦아라” 남의 집 요강 닦는 천한 일을 해야 했지만 열심과 성실로서 그 상황을 극복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좋은 환경에서 실패하는 사람도 있고 나쁜 환경에서 성공을 이룩한 사람도 있음을 기억하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가진 능력 이상을 것을 행할 수 있다. 주께서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우리는 큰일을 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금요일

4월 9일

독서 과제 :  가려 뽑은 기별 1권, 96

“모든 영혼에게 싸워서 얻어야 할 천국이 있으며 멀리 피해야 할 지옥이 있다. 그리고 하늘 천사들은 시련을 당하고 시험을 받는 영혼에게 도움을 주려고 항상 준비하고 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여 시험과 시련을 견디셨다. 갈바리의 십자가는 모든 영혼들 앞에 생생하게 서 있다. 모든 인간의 문제들이 재판을 받게 될 때에 저들(잃어버린 자)이 하나님께 욕을 돌린 것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멸시한 죄로 고통을 받게 될 때에 아무도 핑계하지 못할 것이나 단 한 사람도 멸망 받을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와 사단 중 누가 저들의 임금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저들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가려 뽑은 기별 1권, 96)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저희 불신을 버리도록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들 앞에는 빛과 어둠 그리고 진리와 오류가 있다. 어느 쪽을 받아들일지는 그들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다. 인간의 마음은 선악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일시적 충동에 의하여 결정하지 않고 성경절들을 조심성 있게 대조해 보고 그 증거의 무게를 따라 결정하도록 계획하셨다.”(시대의 소망, 45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자유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자유의 한계는 무엇입니까? 자유가 바람직하지 않을 때는 언제입니까?

2. 술로 인하여 파괴된 인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술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3.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끔찍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유년기의 경험은 악몽처럼 따라다닙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것들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은 무엇이며,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