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과 리스바: 신실함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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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과 리스바: 신실함의 영향
11월 27일 일몰:오후 5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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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받은 알프레드 카뮈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는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평생 동안 가정부로 일했다. 또한 청각장애로 아들과의 대화도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뮈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어머니였다. 카뮈는 노벨상을 수상한 후 어머니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어머니의 사랑스런 눈동자가 없었으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포근한 눈동자는 내게 항상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눈물의 여인’으로 불린다. 그녀는 주색에 빠진 아들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결국 어거스틴은 그 놀라운 기도에 회심했다. 어머니는 인생의 교통순경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보살피기 위해 당신의 마음을 가장 닮은 존재인 ‘어머니’를 창조했다.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이 때에 이르러서 리스마는 그의 아름답고 고귀한 여성의 미를 나타냈던 것이다. 그 아들들을 죽음의 손에서 구해내는 것은 그녀로서는 할 수 없었다. 교수대 위에는 이미 두 아들의 시체가 매달려 있었다. 처참한 정의의 손을 누구도 피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치욕적인 죽음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람의 힘을 다혀여 외치는 그 시체에서 울려나오는 듯하여 죽은 자에 대하여 마땅한 예의를 베풀어야 할 것을 촉구하는 듯했다. 그대로 버려 둔다면 독수리가 내려와서 시체의 눈을 쪼아내고 썩은 살을 뼈에서 긁어내 버릴 것이다. 이것을 리스바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치욕을 당하는 것은 이치에 어그러진다. 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목숨을 걸고 기브온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다. 복수에 굶주린 그들이 리스바의 목숨까지 빼앗고 그 한을 풀려하는 욕망에 차 있지 않다고 누가 단언하랴만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아들들을 최후의 치욕에서 구하려는 일념으로 불타 있었다. 그녀는 교수대를 받치고 있는 반석에 보자기를 덮었다. 그리고 그 베 보자기 위에 올라서서 시체를 지켰다. 때로는 섰다가 않았다가 하면서 수심의 나날을 보내며 밤이면 밤마다 졸음과 싸웠다. 며칠이 지나고 또 몇주일이 지나 세월은 흘렀다. 마침내 그녀는 온몸의 소름이 끼치는 이 감시를 곡식을 베기 시작할 때부터 우기에 이르기까지 계속한 것이다.
기억절: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시 91:4).
안식일 오후
| 연구 범위 | 신 30:19, 삼하 3:6~11, 21:1~9, 막 13:13.
리스바 이야기는 중심 역할을 하는 주변 인물의 이야기이다. 밧세바와의 불륜 이전, 다윗 통치 초기와 관련된 두 개의 성경 본문이 그녀에 대하여 뚜렷이 언급하고 있다(삼하 11장). 대부분의 성경 주석가들은 사무엘하 21~24장의 사건들이 연대기적으로 사무엘하 20장 이후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뿐 아니라 그 장들은 다윗의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리스바는 다윗 왕 이야기의 주변에 머물러 있다. 한 여인이자 죽은 왕의 후궁으로서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사실 그녀의 미래는 암담하였다. 그녀의 두 아들은 죽었고, 사별한 남편의 가문은 멸족의 위기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석에 앉아 신세나 한탄하기보다 그녀는 당당하게 행동했다. 다윗에게 있었던 두 번의 중요한 시점에 그녀는 왕을 세우고 국가를 건설하는데 일조하였다. 우리는 리스바로부터 매우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된다. 신실함이란 상황이 좋든 나쁘든 조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신실함이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옳은 일을 행하는 데에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일요일 11월 21일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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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왕의 첩이었다가 사울 왕이 죽은 후 사울 왕의 죄로 인해 아들을 잃고 슬퍼한 리스바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비록 후궁이었지만 두 아들의 어머니였던 리스바의 사랑은 그 어떤 어머니 못지않게 감동을 준다. 리스바라는 이름의 뜻은 ‘타는 숯’ 혹은 '뜨거운 돌'이라는 의미이다. 리스바는 아야의 딸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첩이 되어 알모니와 므비보셋을 낳았다. 그녀는 사울 왕을 잘 섬겨오다가 사울 왕이 죽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방자하기만 했던 아브넬의 위력에 견디다 못해 그만 그에게 정조를 잃어버렸다.(삼하3:7- 16). 이런 일이 그녀의 생애에 큰 오점을 남겼지만, 이 오점을 능히 덮고도 남을 만한 고귀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보여준 여인이다. 사울 왕의 대죄로 인해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그녀의 두 아들과 사울의 딸 메랍의 소생인 다섯 아들의 시체를 자기생명을 내걸고 밤낮으로 지켰던 끈질긴 모정은 만대의 귀감으로 후대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다.(삼하21:1-11)
1. 구약에는 첩을 언급하고 있는 성경절이 많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그들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주고 있습니까? 창 25:5~6, 삿 8:30~31, 삼하 5:13~16, 왕상 11:2~3.
대부분의 첩은 노예나 하인 계급의 출신이었다. 그들의 존재 목적은 상속자를 생산하는 것이었으며, 아들을 낳기만 하면 그 지위가 정실 처들과 동등해졌다. 남편은 그녀의 남편으로 일컬어졌으며(삿 20:4), 그녀의 자녀가 족보에 올랐고(창 22:24), 유산의 일부를 받았다(창 25:5~6).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첩들이 부조 시대에 나타났으며, 왕조 시대에 이르러서는 주로 왕가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2. 삼하 3:6~11을 읽으십시오. 리스바는 어떤 인물이었으며 그 당시 어떤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까?
“타는 숯”(사 6:6에서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이라는 의미의 리스바는 이스보셋(수치스런 남자) 왕실에 속해 있었다. 이스보셋은 사울의 아들로서 아브넬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요단강을 건너 마하나임에 거하고 있었다(삼하 2:8~ 10). 성경의 기자가 리스바를 “아야의 딸”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녀는 노예가 아닌 중요한 가문 출신이었을 것이다. 반면 이스보셋의 이름이 사울의 족보에 다른 형태로 등장하는데 “바알의 사람”이라는 뜻의 에스바알이다(대상 8:33). 삼하 2:8~ 10에서 성경 기자는 사울의 집에 황당하게도 “바알의 사람”이 있으니 “수치스러운 남자”라고 살짝 비꼬았던 것으로 보인다.
리스바의 개인적인 상황은 이상과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사울의 왕실에 속해 있었고, 아브넬 장군이 사울의 가장 유약한 아들인 이스보셋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사울의 후궁으로서 리스바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다. 그녀의 운명은 자신의 권위와 지배력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힘과 상황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보였다.
교훈: 성경의 위인들은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사회적, 문화적 제약 속에 살았지만,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부가적용)
다윗 왕은 사울의 아내 리스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과, 사울의 딸 메랍이 결혼해서 얻은 아들 다섯을 잡아다가 기브온 사람들의 손에 넘겼다. 기브온 사람들은 산 위에 올라 그들 일곱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그들이 처형된 때는 보리를 거두기 시작한 추수철이었기 때문에 곧이어 이른 겨울의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고 밤이면 한기가 산을 뒤덮었다. 리스바는 일곱 시체를 어쩌지는 못하고 대신 밤낮을 쉬지 않고 공포와 추위와 슬픔과 허기, 그리고 졸음과 싸우면서 새들과 들짐승으로부터 시체를 지켰다. 그러면서도 리스바는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기브온 사람들이 사울 왕의 가문을 용서하여 다윗이 그들의 시체를 거두어 땅에 정중히 장례케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이러한 리스바의 지성스러운 헌신과 기도와 사랑의 사연을 들은 다윗 왕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청하여 일곱 시체의 뼈를 거두어서 정중히 합장하여 주었다. 이 모두가 사울 왕의 후궁 리스바의 인내와 헌신 그리고 남편과 자손에게 충성되이 의무를 다하려는 리스바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리스바가 한 남자의 아내로서, 자녀들의 어머니로서 자신의 의무와 사랑을 다한 것도 훌륭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우리를 감동케 하는 것은,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에 호소하며 끊임없이 기도하는 모습이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탁하는 믿음과 봉헌의 모습이야말로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으며 실천해야 할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까?
월요일 11월 22일 그녀의 이름이 언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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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1:10에서 리스바의 아름다운 행동은 그 참모습을 아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저명한 여성 중 한 사람으로 전에부터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왔다. 그녀는 사울왕 후궁의 시녀였다. 그러나 사울이 죽은 후 아브넬의 욕망에 굴해 버렸다는 도리에 어긋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었다. 이 점에서 그녀는 아무런 동정도 살 수 없고 도리어 여성의 연약함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리스바의 가장 아름다운 행위는 자기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 그리고 미갈의 형 다섯 아들들의 시체에 대한 그녀의 따뜻한 마음씨였던 것이다.
사울의 집안과 다윗의 집안 사이의 전쟁에서 상황은 이스보셋에게 불리해져갔다(삼하 3:1). 이 시점에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이스보셋 편과 대조적으로 성경은 헤브론에서 태어난 다윗의 아들들을 언급하였다(삼하 3:2~5). 이는 다윗이 점점 강성해지고 있음을 뜻했는데, 왜냐하면 아들은 곧 미래와 안정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삼하 3:7 ~10에서 살펴본 것처럼 “수치스런 남자” 이스보셋은 선왕 사울의 후궁과 동침했다며 아브넬 장군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아브넬의 강력한 반발로 미루어봤을 때, 이는 매우 치명적인 인신공격이었다.
1.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고 구약시대에 권력자의 아내나 첩과 동침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삼하 16:21~22, 20:3, 왕상 2:21~22.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이야기 속에서 리스바는 그다지 능동적이지 않다. 그녀는 단지 후궁에 불과했다. 그녀는 두 사람의 권력 다툼 사이에 있는 장기판의 졸에 지나지 않았다. 성경은 아브넬이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실제로 리스바와 동침했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신속히 이스보셋을 떠나 다윗에게 마음을 돌렸다는 사실은 마하나임의 임시 궁궐에 떠도는 이야기가 헛소문이었음을 암시한다. 그가 정말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원했다면, 왜 여호와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의 군대와 통합하려고 했겠는가?
아브넬은 다윗에게로 가겠다는 협박을 실천에 옮겼다(삼하 3:9~10, 12). 이스보셋의 비난에 대하여 아브넬의 반응이 없었다면 남과 북의 전쟁은 훨씬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보셋은 사울 집안의 든든한 방패막을 다윗에게 내줌으로써 곧 불어 닥칠 멸망을 스스로 재촉하였다(삼하 4장 참조). 자, 이런 변화가 일어났던 이유를 생각해보라. 바로 리스바 때문이었다. 어떤 활약도 없었지만, 존재만으로 그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다음 리스바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단지 삼하 21:1 ~14에 기록된 다윗의 회고록에서 그녀는 절묘한 상황 가운데 부족과 파벌을 하나로 묶는 중차대한 역할을 감당하는 여인으로 다시 등장한다.
교훈: 경거망동하거나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고자 애쓰는 것보다 묵묵히 원칙을 고수하며 중심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름은 더욱 값지다.
부가적용)
리스바는 죽은 자식들의 시체를 위하여 산꼭대기 바위 위에 올라가 굵은 베를 깔고 밤낮으로 있었다. 사울의 첩이었던 리스바는 남편의 죄악으로 인해 그의 두 아들이 죽음을 당하는 고통을 맛보았다. 그러나 리스바는 자식이 살아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어 시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세상에 훌륭한 사람은 많이 있지만 부모님과 같이 변함없이 자기를 사랑해 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은 없다. 자식은 어머니를 잊을지 몰라도 어머니는 그 자식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러한 변함없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은 우리 인간이 당신을 떠나 죄악 가운데 빠져 있을 때조차도 사랑하시고 찾으시며 구원해 주신다. 바로 리스바의 강한 모성애는 하나님의 사랑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화요일 11월 23일 눈에는 눈? 아니면 다른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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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바의 두 아들이 죽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의 다윗 왕 시대에 3년 동안 기근이 들어 온 백성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 즉, 그들이 기근을 당하는 이유는 사울이 기근을 당하는 이유는 사울이 기브온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이 요구하는 사울 가문의 자손 일곱 명을 골라 기브온 사람들에게 내어주어 죽이도록 하였다. 이로 인해 리스바는 두 아들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죽은 아들에 대한 리스바의 사랑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 나타난 리스바의 사랑을 살펴보면 우리의 어머니가 보여주는 위대한 모성애와 사랑,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헌신적인 사랑을 살펴보며 크게 감동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런 극진한 모친의 사랑보다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극심한 가뭄이 있었다. 원어 성경을 보면 3년 연속 비가 내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일반적인 자연현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비를 내리거나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었다. 다윗은 “여호와 앞에 간구”하였다. 어떻게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는지 확실치 않지만 다윗은 이것이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삼하 21:1).
1. 삼하 21:1~6을 읽으십시오. 왜 사울의 후손들이 조상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이는 신 24:16, 렘 31:29~30, 겔 18:1~4의 말씀과 상충되지 않습니까?
이는 학자들 사이에 매우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하나님의 정의는 무엇인가? 정의는 집합적인 것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것인가? 어떤 주석가들은 다윗이 가뭄을 빌미로 삼아 미래의 정적을 제거하려고 하나님의 기별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교묘하게 조작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다윗의 동기였다는 어떤 암시도 성경에 남아 있지 않다. 오히려 성경이 밝히고 있는 사실은 사울이 기브온 족속들을 멸절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기 이전에 거주했던 가나안 원주민 아모리족 가운데 하나였다.
성경은 그 다음 매우 중요한 성서적 원칙을 강조했다. 즉 비록 구원에 있어서 각자의 결정은 중요한 것이지만, 우리의 행동과 선택은 결코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신실한 왕이 예루살렘을 다스릴 때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고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지만, 경건치 않은 왕들은 수많은 백성들을 멸망에 빠뜨리기도 했다.
구약 역사에는 사울이 기브온 백성을 멸절시키려고 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사울이 제사장들의 거주지 놉을 진멸했던 예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삼상 21장). 겉으로 선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던 사울은 이방 백성인 기브온 족속을 이스라엘 중에서 제거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오히려 그분께서 신실함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보여주고 있다(수 9:15~21). 하나님은 우리가 약속을 잘 지키기를 기대하신다. 다음에 보겠지만, 우리에게 그리고 특히 다윗에게 있어서 리스바는 신실함의 실물 교훈이다.
교훈: 하나님은 공의를 구하는 어떤 목소리도 하찮게 여기지 않으시며, 마찬가지로 우리가
누구와 약속하든 그것을 신실하게 지키기를 기대하신다.
부가적용)
사울은 교만한 죄를 자주 범해 왔는데 전에 기브온 사람과의 서약을 무효화시킨 일이 있었다. 즉 아모리인에 속한 민족으로 그 옛날 헌 누더기 옷을 입고 곰팡이 난 방에서 여호수아에게 와서 먼 나라에서 오랜 여행을 하면서 찾아온 것 같은 인상을 주려고 시도한 사람이다. 그때에 여호수아는 경솔하게 그들과 계약을 해 버렸다. 그들의 기만적 행위는 곧 알게 되었지만 서약은 이미 굳게 서 있었다. 더구나 여호수아는 주의 이름으로 그 서약을 봉한 것이어서 기브온 사람을 칼로 쳐서 멸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살면서 장작 패고 물 긷는 일을 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이렇게 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맹세는 비록 그들이 충실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여전히 구속력을 갖는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불상사는 인간에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하다는 것, 비록 우리들이 기브온 사람처럼 죄가 많을 지라도 반드시 성취되고야 만다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 성경에 기록되었다. 이스라엘 사람은 기브온 사람과의 계약을 몇 해 동안이나 충실히 계속 지켜왔다. 마침내 사울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계획과 자기의 생각을 한데 묶어 버렸다. 대체로 좋은 의도였지만 그 자신의 의도가 하나님의 의도가 하나님의 계획과 자기의 생각을 한데 묶어 버렸다. 대체로 좋은 의도였지만 그 자신의 의도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변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순한 인간적인 동정에서 아각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또 어느 때는 자기야말로 왕으로서 제사장 사무엘을 대신해서 번제를 드릴 수도 있는 몸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거룩한 영역 안에서 이방인의 존재라는 문제의 장본인인 기브온은 사람을 전멸까지는 하지 않았으나 대단히 포악하게 행하였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체결한 계약은 파기 당하고 하나님의 이름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기브온에게 준 약속은 짓밟아 버리게 되었다. 이 불신앙적 행위는 벌하지 않고 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길보아에게 사울이 전사하자마자 기브온 사람은 자기들이 당한 박해의 댓가로 사울 집의 일곱 아들의 목숨을 구했다. 공정한 왕 다윗은 이 일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리스바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미갈의 형 다섯 아들을 희생의 대상으로 선정했다. 그들은 기브온 사람에게 인도되어 마침내 교수대에서 죽고 말았다. 하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약속에 매여 일하신다. 그래서 성경도 신약과 구약, 하나님의 언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스라엘이 기브온의 요청을 받아 즉각적인 참전에 응한 것은 종주권 조약에 따른 것이다. 조약을 맺으면 주권국가는 반드시 종속국을 보호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고 또 종속국은 주권국의 보호를 받는 대신에 매년 공물을 바치며 순종해야 할 의미를 지게 되는 것이다. 비록 이스라엘을 속인 과거를 생각하면 기브온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도 없을 것이고 그들이 망하는 것을 기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과거 속은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약속을 제시하신다. 그 약속을 제시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을 붙들고 나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한 번 하신 언약은 해로우실지라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며 하나님 편에 선자들은 언제나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신다. 비록 기브온과 속아 맺은 언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편을 존중하신다.
수요일 11월 24일 신실함은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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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근이 이스라엘 전역을 휩쓸자 다윗 왕은 죄악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믿고 하나님의 마음을 푸시게 하려고 기브온 사람들에게 사울의 후손들을 넘겼다. 이것은 사울 왕이 이스라엘과 기브온 사람들과의 맹약을 깨고 그들을 학살하고 그들을 이스라엘 밖으로 쫓아내기 위해 모해했다. 이 사실은 기브온 사람들의 원한을 샀고 하나님의 진노를 면치 못했다. 마침내 기브온 사람들은 자기들의 피흘린 대가로 사울 가의 후손 일곱을 요구했다. 그 중에 리스바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이 들어갔다.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잡고 저희를 기브온 사람의 손에 붙이니 기브온 사람이 저희를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매 저희 일곱 사람이 함께 죽으니..."(삼하21:8-9) 그녀는 사울의 총애를 받던 첩으로서 남부러울 것이 없는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나 이제는 사울 왕도 비명횡사하고 두 아들이야 말로 그녀의 유일한 위로요 그녀의 생명을 부지할 단 하나의 명맥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늙고 힘없고 의지할데 없는 그녀를 홀로 두고 기브온 사람들의 손에 의해 처참하게 죽었다. 어디에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는 처참한 정의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다윗은 기브온 족속의 요구를 수용하고 사울의 자손 일곱을 내주었다. 여기서 리스바가 다시 등장한다. 그녀에게서 난 사울의 두 아들이 “속죄”를 위해 처형될 자 가운데 포함되었다. 삼하 21:3은 히브리어 카파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레위기 16장에서 “속죄”로 번역된 전문적인 용어이다.
1. 삼하 21:1~9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해가 가능합니까? 우리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까? 우리의 지혜가 부족하여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신뢰할 필요가 있는 그런 예가 성경 가운데 어디에 또 있습니까?
다윗은 요나단과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요나단의 남은 아들 므비보셋을 기브온 족속에게 넘겨주지 않았다(삼상 20:12~17, 42). 성경은 이점을 매우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사울은 기브온에게 했던 이스라엘의 약조를 깼지만, 다윗은 요나단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했던 맹세를 지켰다.
2. 두 아들이 죽자 리스바는 어떻게 했습니까? 삼하 21:9~10. 이로써 그녀가 어떤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성경 기자는 그녀의 부친을 재차 거명하면서까지 리스바의 행동을 높이 평가한 반면 다윗을 왕으로 부르거나 그의 혈통을 언급하지도 않았다(삼하 3:7). 우리는 단지 처형당한 일곱 구의 시신을 바라보는 리스바의 고통과 슬픔을 상상할 뿐이다. 그녀는 베옷으로 움막을 치고 이슬을 가려줄 지붕도 없이 부패하는 시신들 곁을 지키며 새와 동물들로부터 시신이 훼손되는 것을 막았다. 이 일은 하루 이틀 만에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가을비가 시작될 때까지 수 주일동안 시신을 지켰던 것으로 보인다. 리스바는 경건한 어머니였을 뿐 아니라, 약속을 헌신짝처럼 여기는 남자들이 지배하는 이야기 속에서 신실함의 모본으로서 우뚝 서 있었다.
교훈: 우리는 리스바의 행동을 통해서 죽은 자녀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마음과 부활의 약속을 주신 그분의 신실함을 생각하게 된다.
부가적용)
패망한 왕조의 후궁으로서 어디에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는 리스바의 두 아들은 처참한 정의의 희생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소중한 두 아들이 산위에서 나무에 목매달아(교수형) 처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탄과 까무라침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분연히 일어났다. 내 아들들을 최후의 치욕에서 구해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칫하면 복수심에 굶주린 기브온 사람들의 밥이 될지도 모를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의 영내로 들어갔다. 그녀는 교수대를 받치고 있는 반석에 베 보자기를 덮었다. 그리고 그 베 보자기 위에 올라가서 그 시체들을 지켰다. 그녀는 두 아들과 사울의 다섯 손자들에게 온당한 장례의식이 부여될 때까지 들짐승과 독수리가 틈타지 않도록 지키는 것만이 오직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이었다. 때로는 앉았다가 또 섰다가 하면서 수십 일을 보냈다. 더욱이 매일 밤마다 찬바람을 막기 위해 불을 피우고 들짐승이 어슬렁거리며 접근할 경우에 쓸 횃불을 준비해 놓고 쏟아져 오는 졸음과 싸우면서 보냈다. 이렇게 하기를 곡식을 베기 시작할 때부터 우기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였다. 리스바는 낮에는 공중의 새가, 밤에는 들짐승이 시체를 범하지 못하도록 지켰다. 사실 공중의 새 중에는 시체만 먹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까지도 쪼아서 잡아먹는 사나운 새들이 있다. 들짐승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리스바는 이러한 위험도 개의치 않고 자식의 시체를 지킨 것이다. 이것은 자녀를 위해서는 죽음도 각오하겠다는 자세이다. 이 얼마나 큰 어머니의 사랑인가? 사실 자녀를 키워 보신 분이라고 하면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녀가 죽음에 직면해 있을 때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것이라면 대다수의 어머니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말하기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롬8:32)라고 하였다. 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 15) 하였다.
목요일 11월 25일 나라를 추스림
도입)
리스바는 그녀의 소중한 두 아들이 산위에서 나무에 목매달아(교수형) 처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탄과 까무라침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분연히 일어났다. 내 아들들을 최후의 치욕에서 구해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칫하면 복수심에 굶주린 기브온 사람들의 밥이 될지도 모를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의 영내로 들어갔다. 그녀는 교수대를 받치고 있는 반석에 베 보자기를 덮었다. 그리고 그 베 보자기 위에 올라가서 그 시체들을 지켰다. 그녀는 두 아들과 사울의 다섯 손자들에게 온당한 장례의식이 부여될 때까지 들짐승과 독수리가 틈타지 않도록 지키는 것만이 오직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이었다. 때로는 앉았다가 또 섰다가 하면서 수십 일을 보냈다. 더욱이 매일 밤마다 찬바람을 막기 위해 불을 피우고 들짐승이 어슬렁거리며 접근할 경우에 쓸 횃불을 준비해 놓고 쏟아져 오는 졸음과 싸우면서 보냈다. 이렇게 하기를 곡식을 베기 시작할 때부터 우기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였다. 마침내 리스바의 생명을 내건 간절한 행위는 다윗 왕을 감동시켰다. 그는 그녀의 감동적인 행동을 전해 듣고 입곱 구의 시체를 내리고 그들의 뼈를 사울과 요나단이 묻힌 그곳에 함께 장사하라고 명했다. 그녀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리스바의 모범적인 신실함은 다윗에게까지 들렸다. 성경 기자는 다윗이 그녀의 행동에 관하여 언급한 사실을 전하면서 그녀가 단순히 한 어머니가 아니라, 아야의 딸이며 사울의 첩이었음을 다시 한 번 소개하였다. 산 속에서 일곱 개의 주검을 지키기 위해 여호와 앞에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다윗으로 하여금 한 중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사울과 요나단과 사울의 아들들을 온전히 매장하도록 지시했다.
1. 삼하 21:11~14을 읽으십시오. 리스바의 행동에 다윗은 어떤 영향을 받았습니까?
이스라엘의 주변 민족들은 적합한 장례를 치러야 죽은 자가 신들이 지정해 준 곳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형 무덤인 피라미드는 애굽의 문화에서 장례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말해 준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장례식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죽음을 무의식 상태로 이해했기 때문이다(전 9:5~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례식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파 간 투쟁을 종결시키고, 통일 이스라엘의 초석을 놓았기 때문이다.
2. 삼하 21:1~14을 다시 읽으십시오. 무엇이 가뭄을 그치게 했습니까?
가뭄은 사울의 일곱 후손들의 처형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다윗이 사울과 그 후손들의 뼈를 묻을 매장지를 제공한 이후에야 그 땅의 탄원에 응답하셨다. 이는 인간 상호 관계에 공의가 중요하긴 하나, 화목도 필요함을 의미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신실함을 보여준 리스바의 모본은 더 큰 신실함과 화해를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지파 간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하였다. 다윗 통치 기간 중 매우 민감한 시점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리스바는 수세기를 거쳐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상황이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장기판의 말이 될지, 또는 우리의 신실함으로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게 될지는 선악 간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교훈: 외진 곳에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실천하는 사람의 삶은 온 세상에 선한 감화를
끼칠 수 있다.
부가적용)
리스바는 죽은 자식들의 시체를 위하여 산꼭대기 바위 위에 올라가 굵은 베를 깔고 밤낮으로 있었다고 하였다. 사울의 첩이었던 리스바는 남편의 죄악으로 인해 그의 두 아들이 죽음을 당하는 고통을 맛보았다. 그러나 리스바는 자식이 살아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어 시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 준다. 한 여인의 배짱과 기지로 남자들도 하지 못하는 것을 가냘픈 여인 혼자서 그 무서움과 공포와 외롬과 슬픔을 견디며 많은 날들을 견디어 냈다. 시신이 일곱이나 되어 시체의 부패와 그 형상이 참으로 끔찍했을 텐데 밤낮으로 지켜낸 그녀의 사울 왕에 대한 사랑과 의리와 헌신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결국 다윗 왕도 감명을 받아 수십 년이 지난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수습하여 그 조상의 묘에 합장하게 하였다. 사울이 생존 시에는 그렇게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임금이라며 끔찍하게 받들던 다윗도 사울이 죽자 전혀 돌보지 못했는데 리스바가 해낸 것이다. 이 세상에 훌륭한 사람은 많이 있지만 어머님과 같이 변함없이 자기를 사랑해 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은 없다. 자식은 어머니를 잊을지 몰라도 어머니는 그 자식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러한 변함없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이시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당신을 떠나 죄악 가운데 빠져 있을 때조차도 잊지 않고 사랑하시고 찾으시며 구원해 주신다.
금요일 11월 26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복음은 평화의 소식이다. 그리스도교는, 세상이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순종하기만 하면 세상에 평안과 조화와 행복을 전해주게 된다. 그리스도의 종교는 그 교훈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친한 형제의 관계를 이루어 준다.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주고 상호간에 화목을 이루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다.”(각 시대의 대쟁투, 47)
“성경을 읽고 가르치는 것과, 생명을 주고 성화시키는 말씀의 원칙들을 실천을 통해 영혼에 새기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신과 화목케 하신다. 그분의 제자라고 주장하면서 서로에게 애정과 동정어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자들은 성화되지 않은 자들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그분의 사랑이 없다.”(엘렛 G. 화잇 언급, 리뷰 앤드 헤럴드, 1910. 3. 1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지역 사회의 주민들에게 하나님의 신실함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교과반에서 토의해 보십시오.
2. 신실함이란 무엇입니가? 성경 인물을 예로 들어 신실함을 정의해 보십시오.
3. 우리는 종종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행했던 리스바에게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4. 하나님의 사람이 첩을 둘 수 있습니까? 부모의 죄 때문에 후손이 고통 받는 것이 옳습니까? 이런 이야기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를 남겨줍니다. 물론 살다 보면 풀리지 않는 질문도 있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풀리지 않는 질문을 가지고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질문에 다 해답이 주어진다면 믿음의 여지는 없을 것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풀리지 않는 질문을 가지고 살아왔습니까? 답을 얻지 못하는 것이 그 질문을 가지고 씨름하는 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어떤 교훈을 배우게 됩니까?
5. 모본의 힘에 대하여 묵상하십시오. 그대의 사회와 문화에는 어떤 사람들이 강력한 모본을 제시합니까? 그들의 모본은 선한 것입니까? 아니면 악한 것입니까? 그대의 모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의 행동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그대는 어떤 종류의 감화를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대는 집에서, 그리고 교회나 밖에서 얼마나 다르게 행동합니까? 공적으로 나타난 그대의 모본에 감동한 자들이 집에서 하는 행동을 보고 충격을 받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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