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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과 요압 I(선악간의 대쟁투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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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왕상 2:5, 6

 

다윗의 짧은 유언 중에 요압에 관련된 부분이다.

정말 엄청난 저주이다.

죽을 땐 웬만한 응어리는 다 풀어지던데 도대체 요압은 다윗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이토록 뼈에 사무친 유언을 남기도록 했을까?

더군다나 요압은 다윗의 이복누이(스루야; 이새의 8남 2녀 중 장녀)의 아들이 아니던가? 그러면 삼촌과 조카사인데...

이러면 굉장히 가까운 사인 건데...

그럼 우리 작은 누나의 아들 혁진이를 내가 죽이라고 한단 말인가?

 

그 누나는 종종,

“종오야, 우리 혁진이 좀 어떻게 해줘봐.”

“어이고~ 지금 내 코가 석잔데...”

 

요압은 사촌을 둘이나 죽였다.

삼촌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심장에 직접 칼을 꼽았고, 하나 밖에 없는 이모 아비가일의 독자인 아마사를 죽였다.

이것이 권력에 눈먼 정치인들의 전형적인 속성임은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사람들도 다 알거다. 세조, 광해군, 연산군,....

 

이 정도면 교과토의 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주제가 될 수 있을 거다.

아마도 사극을 많이 본 교사들이면 나름대로 반생들을 흥미진진한 세계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가 여기에서 그친다면 세상에 속한 허무만이 우리 마음에 잔재하게 될 것이다.

 

성경에는 세상의 역사와는 판이하게 다른 특별한 뭔가가 있다.

광부가 금맥을 찾듯이 성경의 세계에 빠져들면 그것이 보인다.

하나님의 소중한 영혼들이 성령의 빛을 머금은 교사들 앞에 모여앉아 하늘이야기로 살찌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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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의 명확한 이해를 위해 우선 거시적인 안목으로 성경을 봐보자.

그러면 다윗과 요압, 또 주변 인물들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가려진 비밀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순결한 시절의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행복한 삶을 향유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범하였고 그 결과 동산 밖으로 쫓겨났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속의 경륜의 결국은 인간으로 하여금 잃었던 낙원을 다시 찾도록 하는 것이다..

 

멀리서나마 바라보며 향수를 달랬던 에덴동산은 노아홍수 이후 지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덴동산과 또 그것의 회복을 위한 길을 인간의 기억 속에 지속적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소와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제도이다.

 

“에덴동산은 사람이 그 즐거운 길들에서 추방된 후에도 오랫동안 지상에 남아 있었다(창 4:16 참조). 타락한 인류는 오랫동안 그 무죄한 시대의 집을 바라보도록 허락되었다. 그 들어가는 입구는 파수보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차단당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룹 천사들이 경비하는 낙원의 문에 나타났다(하나님의 영광이 그룹 사이에 나타났으며 후에는 이것을 쉐키나라고 불렀으며 이스라엘 예배의 중심인 지성소 안에 거하였다. 출 25:22; 시 80:1; 사 37:16 참조).” 부조와 선지자, 영문 62쪽.

 

사람들은 집을 가지려 한다. 양옥집, 기와집, 초가집,....

동물들도 나름대로 집을 가지려 한다. 새집, 뱀집(?), 사자굴, 두꺼비 집,...

하나님께서도 집을 가지고 싶어 하신다.

그런데 이상스러우시게도 당신이 지시면 되실 것을 꼭 우리가 짓기를 바라신다.

부모님들이 어버이날에 자식들이 색종이로 만든 엉성한 카네이션 꽃을 달고 하루 종일 헤~~~ 하고 계시는 것처럼...

 

“네(다윗)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삼하 7:12-14

 

이 구절이 사무엘서의, 아니 더 나아가서 성경 66권 전체의 주제이다.

이 내용을 염두에 두고 다윗, 우리아, 밧세바, 나단, 요압, 아비아달, 등등을 보라.

그들의 성격에 따라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무리, 또 그 일을 방해하는 무리로 나눠진다.

 

그들의 배후에는 하나님과 사단이 있다.

하나님은 선악간의 대쟁투의 방대한 개념과 유구한 세월을 작은 모형으로 만들고 계시다.

레고처럼....

사람은 하나님이나 사단처럼 머리가 좋지 않으니 한 눈에 구속에 관련된 일을 깨달을 수 있도록...

 

실제도 아닌 모형을 만드는 일에도 하나님은 사단과 참으로 치열한 전쟁을 벌이셨다.

모형만 망가뜨릴 수 있다면 대쟁투에서의 유리한 고지는 사단에게 돌아갈 것이다.

사단은 자신의 특성을 빼닮았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명분과 힘을 갖춘 자를 할 수 있는 대로 여럿 택한다.

 

다윗, 솔로몬, 그들은 잃어버린 에덴의 기억을 되살려줄 하나님의 집을 세울 사람들이다.

솔로몬의 성전을 짓는 행위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사망의 몸을 허물고 영생을 소유한 몸으로 부활시키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표상한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행 7:46-48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행 13:22,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2:19-2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고후 5:1-4

 

다윗과 솔로몬이 인류구속사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사명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리 모형이라도 그 일을 온전히 이루도록 사단이 내버려두겠는가?

만약 이런 배경을 모르고 성경을 읽는다면, 다윗의 이야기는 그냥 왕건, 궁예, 견훤의 삼국전쟁사와 진배없는 이야기로 전락하고 만다.

 

왜 사단은 사울, 압살롬, 아도니야를 택했을까?

또 요압과 아비아달을 그들의 추종자로 세웠을까?

그들은 하나님의 전과 또 그분에 대한 신앙보다는 자신의 영화에 더 치중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사단은 그들의 악한 마음과, 또 그들이 미처 감지하지 못한 악까지 이용해 대쟁투 역사의 자신의 부분을 채웠다.

하나님이 거할 집을 건축하려는 소수의 사람들을 없애기 위해 그의 정예부대를 구름 때와 같이 동원했지만, 그는 매번 패배의 쓴 잔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그 오랜 세월, 그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속사에 실금 하나 낼 수 없었던 사단의 초췌한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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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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