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과 요압: 강하나 부족한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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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과 요압: 강하나 부족한 용사
11월 20일 일몰:오후 5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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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독재자가 자신의 명성을 더욱 높일 생각으로 자기 얼굴이 들어간 우표를 발행하게 한 후에 판매상황이 어떤지 보기 위해 시찰에 나섰다. 우체국장에게 “우표 판매상황이 어떻소?”라고 물으니까, “판매는 잘 되는데 우표가 잘 안 붙는다고 사람들이 불만을 말합니다.” 라고 했다. 독재자는 “그럴리가...” 하면서 직접 우표 뒷면에 침을 묻혀 봉투에 붙여보았다. “이렇게 잘 붙는데, 왜?”라고 하자 우체국장은 “하지만 사람들은 침을 우표 앞면에다 뱉어서 붙이려고 하거든요”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시도록 하시고 우리는 자신을 겸허히 낮추어야 한다. 그 스스로를 높이려 하는 자는 결국 망하게 되어있다.
기억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 21:2).
안식일 오후
| 연구 범위 | 삼하 2:17~23, 3:23~27, 11:15~25, 20:7~11, 왕상 1장.
요압의 이야기는 정치와 권모술수와 왜곡된 충성과 질투와 완고함의 이야기이다. 당시는 강력한 중앙 정부나 잘 정비된 퇴직 제도에 의해 생존이 보장되는 시대가 아니었다. 강자는 살아남고, 약자는 신속하게 사라졌다. 이스라엘을 하나의 국가로 다져간 다윗의 용사이자 관리자였던 요압의 때가 그랬다. 부족 사이의 경쟁과 불화로 특징 지워졌던 사사기 이후에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은 것은 왕의 등장이었다. 왕권은 사울로 시작해서 다윗과 솔로몬에 이르면서 더 강력해졌다. 그러나 성경은 수백 년간 지속되어온 부족적 사고가 삼사십 년 안에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요압의 생애는 전쟁과 불화와 심지어 종족학살로 얼룩져 있다. 우리에게 요압이 연루되었던 그런 종류의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우리는 그의 이야기로부터 우리 안에 있는 일그러진 품성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주 우리는 다윗의 부족한 용사 요압이라는 부정적인 인물을 통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품성의 단점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유일한 해답인 예수님을 찾게 될 것이다.
일요일 11월 14일 가족의 문제
도입)
아브넬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앞에서 패하였다. 그런데 이 때 요압의 동생인 아사헬은 발이 들노루처럼 빠른 장수였다. 그런 아사헬이 이스라엘의 군장인 아브넬을 잡아 전과를 올리려는 개인적인 야망에 불탔다. 그리하여 그가 아브넬을 쫓아갔다. 아브넬은 자신을 쫓아오는 아사헬에게 여러 번 경고하여 자신을 쫓지 말도록 했으나 개인적인 영웅심리에 이끌린 아사헬은 끝까지 아브넬을 쫓다가 그의 칼에 찔려 죽었다. 다윗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요압의 친동생이자 다윗의 조카가 되는 아사헬이라는 유능한 장수를 다윗은 이 이 전쟁으로 잃게 되었다. 아사헬은 다윗의 이름난 용장 30명중의 한 사람이었다. 아사헬은 경솔하여 백전 노장인 아브넬의 두 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브넬에게 다가섰던 것이다. 그는 또한 자신의 빠른 발을 믿고 교만하였다. 그리하여 상대방의 실력을 무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급했다. 공을 세워보겠다는 일념만을 가지고 성급하게 달려들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우리는 다윗이 큰 승리를 거둔 이면에도 전쟁에서는 어떤 태도로 임하여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재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신중함과 겸손함과 침착함 그리고 참된 지혜가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음을 보게 된다. 자신의 힘만 믿고 날뛰는 아사헬의 죽음은 아무리 무예가 출중한 사람도 하나님의 뜻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서는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요압이 다윗의 친척이었고(대상 2:13~17 참고), 다윗 군대를 책임지고 있었다는 사실 외에 그의 품성을 처음으로 엿볼 수 있는 곳은 사무엘하 2장이다.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터에서 전사하였다. 유다는 급히 다윗을 왕으로 세웠다. 사울 왕의 군대를 책임지고 있던 아브넬은 살아있었다.
아브넬과 다윗 사이에는 과거사가 있었다. 사울의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수없이 수색했던 자가 바로 아브넬이었다. 아브넬은 자신이 쫓던 자를 왕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울의 넷째 아들 이스보셋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유다와 다윗을 향해 전쟁을 일으켰다. 수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유리했지만, 다윗의 나라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1. 삼하 2:17~23을 읽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요약해 보십시오.
국지전이 벌어지는 동안 요압의 동생이 현명치 못하게 아브넬을 추격하였다. 아브넬은 그에게 추격을 멈추라고 여러 번 경고했지만, 성격이 급한 젊은 장수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아브넬은 자기방어 차원에서 그를 죽였다. 요압은 이 일을 잊지 않았다.
얼마 후 아브넬은 연약한 왕 이스보셋 통치 아래 상황이 좋지 않게 전개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다윗에게로 가서 이스라엘 부족들을 다윗에게 돌리겠다고 제안하였다(삼하 3:1~22). 그때 먼 곳으로부터 복귀하는 길에 있던 요압은 자신의 위치를 불안하게 만드는 새로운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 요압은 자신이 주도하지 않은 이런 변화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였습니까? 삼하 3:23~27. 요압이 다윗에게 했던 말과 그가 궁극적으로 아브넬을 죽인 이유를 대조해 보십시오. 삼하 3:30. 요압은 아브넬의 동기를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이런 사실을 통해 그에 대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교훈: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는 일은 무엇이든 결코 작은 일이 아니며, 그럴수록 우리는 공(公)과 사(私)를 구별해야 한다.
부가적용)
요압이 어떤 전쟁을 마치고 헤브론으로 돌아와서 자기 없는 동안에 다윗과 아브넬과의 회담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돌아가던 중에 있는 아브넬을 다시 헤브론으로 불러다 성문에서 암살하였다. 그가 이렇게 행한 것은 자기 동생 아사헬의 원수를 갚은 것이었다. 요압이 이 일을 감행하기 전에 다윗 왕에게 아뢰기를, 아브넬의 헤브론 방문은 정탐 행위라고 거짓되이 단정했던 것이다. 요압은 장군이요 용사였지만 이때에는 시기(猜忌)와 사사로운 복수심으로 행동한 소인이었다. 요압의 이 행동은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해롭게 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을 거족적(擧族的)으로 다윗 왕의 통치 아래 돌아오도록 하려는 아브넬의 운동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압이 그를 죽였으니, 그것은 회개 운동을 방해한 악한 행동이었다. 언제나 믿음 없이 사욕(私慾)으로 덤비는 자는 하나님의 일에 거치는 자가 된다. 복수 행위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금하신다.
월요일 11월 15일 죄의 대가
도입)
요압이 다윗의 신하로서 왕에게 상의하지도 않고 아브넬에게 행한 일은 반역적 처사였다.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은 공의로운 일이 아니고 사적(私的)인 복수 행위였으니 만큼 그에게 하나님의 벌이 임할 것을 예언하였다.(29-30). 그러므로 그 죄 값은 다윗과 관계없고, 요압과 그의 가문이 당해야 될 것이었다. "백탁병"은 유출병을 말함이고(레 15:2),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라는 말은 절뚝발이를 가리킨다. 요압과 모든 백성(그의 군대)에게 명하여 아브넬의 죽음에 대하여 애도(哀悼)하라고 하였다. 다윗이 아브넬을 죽인 장본인 요압과 그 군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한 것은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사람 앞에서 담대히 의를 주장한 신앙 행위이다. 다윗은 친히 상여를 따라갔으며, 또 아브넬의 무덤에서 통곡하고 애가(哀歌)를 지었다. 다윗의 울음은 인정에 속하였다고 하기보다는 의리(義理)가 손상된 것을 원통히 여김이었다. 다윗은 이렇게 의를 사모한 임금이었다.
비록 아브넬를 애도하며, 요압의 행동을 꾸짖었을지라도, 그 당시 다윗의 지위가 아브넬의 죽음에 대하여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었던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삼하 3:28~35 참조). 보복을 피하기 위해 요압은 가능한 다윗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스스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기 시작했다. 그는 다윗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옳은 일은 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양심에 꺼리는 일까지 하게 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양심의 소리에 점차 둔감해져서 마침내 정말 중요한 일에 바로 설 수 없다.
죄는 또한 신뢰를 잃게 만든다. 우리는 다윗의 생애를 통해서 여러 차례 이를 확인하게 된다. 우리아를 죽인 죄 때문에 다윗은 자녀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없었다. 장자가 누이를 강간하고(삼하 13장), 둘째 아들이 살인자가 되었을 때에도(삼하 13:23~ 39), 자신이 비슷한 죄인이었기에 다윗은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다.
1. 삼하 11:15~25을 읽으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요압에 대하여 무엇을 알게 됩니까?
요압도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스스로 아브넬의 피를 흘리게 한 죄 때문에 그는 의인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우리아를 암살하는 일에 동조하는 죄를 더했다. 삼하 11:7을 보면 우리아만 희생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들이 우연히 발생한 것처럼 보이도록 몇 명의 군사를 이 무모한 작전에 함께 내보냈다. 우리는 다윗의 생애로부터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자비로 우셔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과 함께, 실추된 신뢰성과 신실함의 부족이 가져온 결과는 여전히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2. 요압은 위에서 다윗의 명령에 복종했습니다. 그러나 삼하 18:5~15을 읽어보십시오. 여
기서 요압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그는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합리화시켰을까요?
요압은 다윗의 명령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따랐으나, 자신의 개인적 유익을 위해서는 왕의 엄명도 가볍게 여겼다. 왜냐하면 압살롬의 성공은 곧, 자신의 죽음이었기 때문이다(삼하 19:5~6). 요압은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도 그런 유혹에 빠지기 얼마나 쉬운가!
교훈: 하나의 죄가 발전하면 죄에 대한 우리의 억제력이 약화되어 또 다른 죄에 노출되고, 결국 요압과 같이 양심이 둔화된다.
부가적용)
다윗은 자기의 왕권으로써도 범죄자를 제어(징계)하기 어렵다고 하며 하나님께 그들의 "악한대로" 그들에게 갚아주시기를 구한다. 다윗은 비록 왕이었지만 그의 왕권을 가지고도 자신의 신하인 요압을 죽일 수가 없는 상황이 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요압을 하나님께서 그를 처단해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다윗은 사람을 아끼고 귀히 여기는 자였다. 그런 다윗을 모르고 요압은 개인적인 원수를 빌미로 아브넬을 죽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해와 연합이지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배격하는 것이 아니다. 요압은 다윗의 저주아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아래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연합과 모든 사람의 용서에 있음을 아시기 바란다. 우리 모두 사랑하고 연합하고 용서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란다.
화요일 11월 16일 정치가 요압
도입)
압살롬이 그의 사환을 시켜 암논을 살해하는 사건이 나온다. 압살롬이 왜 암논을 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살해의 동기를 놓고 우리는 압살롬의 죄만을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유가 암논에게 있기는 했지만 더 깊이 살펴보면 이 일이 일어나게 된 그 근본적인 동기가 다윗에게 있음을 안다. 우리는 사람의 죄를 판단할 때 단지 나타난 표면적인 모습으로만 판단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기까지 다 보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한 심판이 될 것이다.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한 동기를 우리는 압살롬에게만 그 죄가 다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다윗의 죄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암논이 압살롬의 동생인 다말을 강간하였다는 사실을 다윗이 알았지만 암논의 죄를 물어 다윗이 혼을 내든지 형벌을 주든지 마땅히 죄에 대한 처벌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다윗은 암논의 범죄를 처벌하기를 게을리 했다. 이렇게 그 처벌을 게을리 하는 동안 자신의 동생이 강간당한 사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압살롬의 마음에 암논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다윗이 암논을 불러다 그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가르치지 않은 결과가 결국 암논을 죽게 하고 압살롬을 살인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압살롬의 죄보다 다윗의 죄가 더 큰 것이다. 왕이요 아버지인 다윗의 불충실과 그 아들 암논이 회개치 않은 까닭에 여호와께서는 이 사건들이 그 당연한 진로를 따르도록 허락하시고 압살롬을 제지하지 않으셨다고 하셨다.(부조 하 728p) 부모나 통치자가 죄악을 처벌할 의무를 게을리 할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을 처리하실 것이“라고 부조 하 728p에 말씀하셨다.
사무엘하 13장은 압살롬이 그의 이복형제 암논을 계획적으로 살해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압살롬은 그 일로 나라를 떠나서 자신의 때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다윗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암논이 자신의 이복 누이이자, 압살롬의 친누이인 다말을 강간한 것은 분명한 죄였다. 하지만 형제를 죽인 압살롬의 죄는 또 어떠한가? 자신의 죄에 대한 기억 때문에 다윗은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장애가 있었던 것 같다. 압살롬은 누이가 당한 일을 보복하고 집안의 명예를 회복하였다. (명예와 수치는 다윗 시대의 가치체계를 이루는 중요한 두 가지 요소였다.) 다윗의 장자 암논이 죽었기 때문에 왕위를 이을 권리는 압살롬에게 있었다. 다윗의 마음은 죽은 아들에 대한 애도와 압살롬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 모든 불행이 어쩌면 자신의 죄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요압은 이 문제에 개입하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윗 왕에게 직접 고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드고아의 한 지혜로운 여인을 이용하여 속임수를 쓰기로 했다.
1. 삼하 14장을 읽으십시오. 드고아 여인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어떻게 전달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요압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알게 됩니까?
요압이 그 여인에게 그런 이야기를 일러주었다는 말은 그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의 신학은 옳았다. 그러나 그것은 지식에 불과했다. 그는 용서 없는 보복의 삶을 이어왔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심지어 신앙마저도 정치와 성공의 수단에 불과했다. 요압은 압살롬의 가능성을 보고, 미래의 왕에게 환심을 살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 못지않은 적수를 만났다. 압살롬을 복귀시키는 일에 주역이었던 요압은 그로부터 어떤 감사의 답례도 받지 못했다. 압살롬은 단지 그를 이용한 다음, 자신이 요압만큼 교활하고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재빨리 보여주었다. 그는 다윗과의 만남을 주선하도록 요압을 압박하기 위해 그의 밭에 불을 질렀다(삼하 14:28~33). 압살롬에게는 요압의 개입이 고마울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하여 내전 상황으로 발전하게 될 무시무시한 반역의 무대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교훈: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를 구하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큰 재앙의 불씨를 키우기 마련이다.
부가적용)
오늘의 말씀은 범죄로 말미암은 다윗의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그러나 더 중요한 구속사적인 중요점은 이것이다. 이 여인이 압살롬을 용서하라고 하는 기별이다. 실상 다윗도 여자 때문에 우리야를 때려 죽였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았으면서도 그는 압살롬을 완전히 용서하지 않고 그에게 참기 힘든 모욕만 가증시켜 결국 압살롬이 다윗에게 반기를 들게 한 것이다. 구속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용서이다.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않고서는 결코 자신도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다윗의 모습은 그 자신도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가? 다윗은 압살롬을 용서하지 않고 3년 동안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그의 행동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반역하게 한 원인이 된 것이다. 꼬인 일을 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용서이다. 아무런 조건도 없고 아무런 댓가를 치르지 않는 용서가 진정한 용서이다.
수요일 11월 17일 칼에 의지하여 살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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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아마사를 군장으로 삼아 삼일 동안 유다지파에서 병력을 모집하도록 시켰다. 이것은 다윗이 자신의 말을 거역하는 요압을 배제하려 하였던 의도로서 이루어졌다. 또한 자신이 아마사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아마사에게 앞으로 더욱 중요한 임무를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병력을 모으는 그 일이 지체가 되었다. 왜 지체가 되었을까? 실상 아마사는 압살롬의 군장으로서 대군을 가지고도 요압의 군대에게 패하였다. 또한 그가 3일 내에 병력을 모으지 못한 것은 유다지파의 신임을 얻지를 못하였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요압은 이 일로 말미암아 다윗에게 불만을 품었을 것이다. 군대 소집하는 일을 아마사에게 맡기다니, 그리고 그 일이 지체되니까, 다윗은 요압의 동생 아비새에게 이번 반란을 평정하는 일을 맡겼다. 요압은 백의종군하게 된 것이고 또한 공을 세울 기회가 없어짐을 의미한다. 그러면 요압의 군대 장관의 지위도 위태로울 수 있었다. 다윗은 왜 요압에게 이런 조치를 내렸을까? 첫째는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압살롬을 죽인 것이고, 둘째론 왕인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이었다. 전에 같으면 이런 일은 분명히 요압의 일인데 아마사가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니 아비새에게 일을 맡겼다. 아무래도 다윗은 요압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요압은 어떤 사람인가? 결국 속임수로 사촌인 아마사를 죽여버리고 말았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의 마음에 생각 하나가 들어와서 우리를 멸망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가르쳐 주고 싶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하 20장 이야기를 통해서 그러한 당신의 마음을 보여 주고 계신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거스르는 마음, 즉 우리의 욕망을 따라 우리의 마음에 원하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될 때, 우리의 운명은 사단과 함께 죽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 삼하 20장을 읽으십시오. 여기서 요압은 어떤 인물입니까? 요압의 거역은 어떻게 정당화 되었습니까?
아마사와 요압은 사촌지간이었다(삼하 17:25). 아마사는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다. 요압이 다윗의 명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인 뒤에(삼하 18:5, 14) 다윗은 요압을 제거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아마사에게 군 최고 지휘관을 약속하였다(삼하 19:13). 여기에는 반란의 빌미를 제공한 요압에 대한 문책의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의 의도는 단지 요압에 대한 분노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마사를 임명한 것은 압살롬 편에 가담했던 세력들에 대한 정치적 화해의 표시였다.
2. 삼하 20:1~2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 상황은 어땠습니까?
다윗은 요압을 무시하고 아마사에게 군대장관직을 약속했다. 그리고 군대를 소집하여 새로운 반역을 처리하도록 그를 보냈다. 아마사가 정한 시간까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자, 다윗은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명을 내렸다. 이 위기의 때에 다윗은 요압보다 그를 더 신뢰하였다. 마침내 요압과 아마사가 만났다. 요압은 아브넬을 암살했던 방식으로 아마사를 죽였다. 성경 기자는 그 공격이 순식간에 일어났음을 강조하고 있다(삼하 20:8~10). 요압은 자신이 배제되고 더 이상 첫째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매정하게 사촌을 살해했다.
요압의 부하 중 하나가 요압과 다윗 왕에 대한 충성을 부르짖으며 그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백성들은 요압에 대한 충성이 곧 다윗 왕에 대한 충성이라고 믿고, 아마사 사건에서와 같이 재판관과 배심원과 집행자로서의 요압의 권한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강요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왕의 마음은 이미 요압에게서 멀어져 있었다.
교훈: 자신의 입지와 성공을 위해 친족마저 살해했던 요압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죄의 연쇄반응이 멈추도록 주님께 회개하며 악행을 근절해야 한다.
부가적용)
요압은 출세욕과 질투로 말미암아 아브넬을 속임수로, 압살롬은 혼수상태에서, 그리고 아마사 역시 속임수로 죽임으로 세 번째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다윗을 둘러싼 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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