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과 스트레스(교훈과 예화로 푸는 과정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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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과 스트레스
1월 15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37분
도입)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학습 및 기억 신경생물학센터” 연구진은 쥐를 물이 채워진 미로에서 헤엄쳐 빠져나오는 훈련을 시킨 후, 실험 30분 전 물에 약한 전기 충격을 가했다. 그러자 쥐는 미로에서 빠져나오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실험 2분전과 4시간 전 똑같은 충격을 줬을 때 쥐는 아무 어려움 없이 길을 찾아냈다. 흥미롭게도 글루코코르티코이드 호르몬은 스트레스를 받은지 30분 후 최고로 많이 분비되는 물질이다. 또 이 호르몬을 정상 쥐에 주입할 경우 스트레스를 받은 쥐와 유사하게 길을 헤매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로써 스트레스가 기억을 되살리는데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 실험 결과로 평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시험에서 스트레스 때문에 몽땅 잊어버리는 현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스트레스가 발생했을 때 뇌에서 급격히 양이 늘어나는 호르몬(글루코코르티코이드)이 기억의 회복을 방해한다는 사실이 쥐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원래 이 호르몬은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저장되는 과정을 방해하는 물질로만 알려져 왔다. 스트레스 가운데 살아가는 현대인들.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과 사람을 떠나 살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 스트레스가 힘든 이유 중에 하나는 나는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가 하는 환경에 대한 무력감과 피해의식이다. 그렇다면 정말 내가 그 스트레스를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그 스트레스가 환경에서만 온 것일까? 물론 많은 부분이 환경에서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스트레스가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것은 나의 잠재된 상함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환경이 자신 속의 상처를 건드림으로 인해 어떤 심리적인 압박감을 갖기에 스트레스로 느끼는 것이지 단지 그 환경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숨겨진 문제를 인정하기 싫어 모두 환경 탓으로 원망하고 있지만 많은 경우 잠재된 상함이 치유되고 나면 환경이 스트레스로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그 환경을 통해 나의 잠재된 상함을 드러내셔서 더욱 깊이 치유되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이 환경으로부터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될 때 그 환경도 결국 변하고 만다. 스트레스는 환경이 아닌 내 속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어떤 스트레스도 해결될 수 있다.
기억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적용질문에 꼭 자신의 생각이나 결심을 적고 실천하십시오.
연구 범위: 왕상 17:2~4, 15~16, 19:1~2, 막 6:31~34, 갈 6:2, 요 15:13.
모든 사람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업무부담, 가정의 위기, 죄책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과거에 대한 불만족 등 벅찬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상적인 일들과 함께 발생하는 이런 문제들 때문에 받는 중압감은 우리의 정신과 신체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토머스 H. 홈즈(Thomas H. Holmes)와 리처드 H. 라이(Richard H. Rahe)는 일생의 사건들에 상응하는 사회 재조정 측정치를 스트레스의 정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배우자의 죽음 100, 본인의 부상이나 질병 53, 거처의 변화 20 등. 누적 값이 200 이상인 사람은 질병에 걸릴 확률이 50%에 달하며, 300 이상인 사람은 곧 위기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능률을 높이는 데 필요하지만, 그 이상일 경우에는 건강에 해를 끼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은밀한 곳에서 조용히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교훈과 모본을 통해 이를 보여 주셨다(막 6:31). 우리가 그분께 삶을 맡긴다면, 주님은 우리가 중압감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다.
안교 활동반과 교과 토의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유익한 스트레스와 해로운 스트레스를 구분하고, 균형잡힌 삶을 위하여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을 배운다.
➋느끼기 :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을 다루는 데 있어서 하나님 중심의 접근방법을 장려한다.
➌행하기 :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봉사활동과 건강한 삶의 방식을 실천한다.
part 1 안교반장 또는 소그룹리더
Ⓐ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해 줍니다.
Ⓑ 특별활동에서 즐거웠던 일들을 나눕니다.
Ⓒ 2월에 어떤 특별 활동을 할 것인지 제안을 받습니다.
(2월 특별활동은 2월 12일 또는 13일이 좋습니다.)
part 2 안교교사 또는 소그룹리더(A나 B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A. ① 최근에 어떤 일 때문에 지치게 되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② 지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대의 행동과 생각은 어떻게 달라집니까?
③ 엘리야가 중압감에 시달려 도망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치유하셨습니까?
④ 엘리야를 치유한 방법 가운데 우리에게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B. ①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에너지가 심하게 고갈되었던 경험이 있으면 이야기해 봅시다.
② 예수님은 힘들고 지칠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③ 남을 위한 봉사가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고 생각하십니까?
④ 예수님께서 스트레스를 해소했던 방법 가운데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결론 그리스도는 섬김의 삶을 사셨지만, 생활의 균형과 건강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시간과 휴식이 필요함을 인정하셨습니다.
part 3 안교반장 또는 소그룹(예비)리더
Ⓐ 출석과 공부 여부를 확인하고 안교헌금을 걷습니다.
Ⓑ 교과책 앞부분에 있는 ‘나의 구도자 명단’에 초청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적습니다.
Ⓒ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일요일 1월 9일
흥미로운 일생의 사건들
도입)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보내어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셨다. 왜?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사용하셨을까? 까마귀는 부정한 짐승이며(레1:15, 신14:14) 노아 방주 돌아오지 않은 새이며(창8:7) 식욕이 왕성하여 모든 것을 먹는 짐승인데도 까마귀를 사용하신 것은 엘리야에게 이 일을 하신 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임을 믿게 하기 위함이다. 도저히 가까이 할 수도 없는 것을 사용하여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구나 하고 분명히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훈련이었다. 까마귀가 그 가뭄 속에서도 그 자신이 먹을 것을 자기가 먹어 치우지 않고 엘리야에게 가져다주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사명의 길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세상도, 사람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까마귀 사건은 보여준다. 또한 까마귀는 본래 게걸스런 조류로서 시체와 썩은 것들을 즐겨 먹는다. 처음에 엘리야의 눈에는 움직임도 호흡도 생명도 없는 우상을 숭배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마치 부패한 시체를 탐하는 까마귀와 같이 가망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런 까마귀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음식을 날라다 주었는데, 비록 아무리 불경과 불순종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라 한다면 기필코 변할 수 있지 않을까란 소망의 씨앗을 결국에는 붙들었을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도울 또 다른 인간 까마귀를 통해 일하신다. 사명의 길은 외롭고 힘든 혼자의 길이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이 먹이시고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다. 세상 끝 날까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마28:20)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왕상 17:3~4).
긴 가뭄 동안 엘리야는 자신을 특별하게 돌보시는 주님에게서 깊은 친밀감을 느꼈을 것이다. 첫째, 그는 하루에 두 번씩 음식을 가져다준 까마귀들을 볼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한 기적이 아닌가? 그다음 그는 작은 기름병과 밀가루 통에서 2년 동안 세 사람이 먹기에 충분한 양식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이 정도면 하나님께서 돌보고 있다는 증거를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엘렌 G. 화잇은 이 이야기의 교훈을 마지막 시대에 사는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에게 적용하였다. “그때에는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충분히 있어서 우리가 부족함을 느끼거나 굶주림으로 고통당하지 않을 것을 보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도 우리를 위하여 식탁을 배설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셨던 것처럼 필요에 따라 까마귀를 보내셔서 우리를 먹이실 수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셨던 것처럼 하늘로부터 만나의 비를 우리에게 내리실 수도 있다”(초기문집, 56).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용하셔서 한 과부의 아들을 죽음에서 일으키셨다. 그것은 믿음의 시험이었고, 삶과 죽음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증거였다.
갈멜산에서의 시험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을 명백히 증거하였다. 3년의 가뭄 끝에 내린 비는 하나님께서 인간사에 어떻게 개입하시는지 보여 주는 또 다른 증거였다. 엘리야의 생애는 직접적인 하나님의 간섭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만 엘리야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다. 우리 삶에 기적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장애에 부딪히게 된다. 아무도, 심지어 엘리야 같은 선지자도 인생의 근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교훈: 신앙적으로 아무리 많은 경험이 있다고 해도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부가적용)
통계에 따르면 1년에 320만 명이 우울증을 겪는다고 한다. 인기 있던 연예인들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인해 지난해는 많이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우울증에 걸렸었다. 엘리야는 정말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과 담판을 벌여서 승리하기도 했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도록 하여 거짓 선지자들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그 후 3년 동안 오지 않던 비가 다시 오게 하는 일도 했다. 그런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가 왕후 이세벨이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겁먹고 도망쳤다. 엘리야는 죽고 싶다면서 자기는 조상들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에 시달렸다. 이런 모습이 전형적인 우울증의 증상인 것 같다. 이렇게 나약해진 그에게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보내심으로 그가 결코 혼자가 아니며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음을 나타내셨다. 외로운 그에게 까마귀가 친구가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 까마귀라는 조류도 사용될 수 있음을 본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 보내신 음식이 떡과 고기였을까? 한 번은 어떤 분이 "우울증 환자가 자살 미수로 응급실에 불려올 때 그들을 위해 하는 일이 무엇이냐" 의사에게 물은 적이 있었단다. 그 의사는 말하기기를 다음과 같은 놀랄만한 말을 했다. "때에 따라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은 그들에게 스테이크 고기음식을 먹게 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대개 단백질 결핍증에 걸려 있거든요. 그들은 2일 내지 3일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종종 발견했지요. 그들의 단백질 필수치가 매우 낮기 때문에 에너지 수치는 낮아진 반면에 우울증 수치는 매우 높거든요."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항상 자신의 육체적 생활면을 소홀히 하면서 자기 자신이 우울증에 빠지는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확신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까?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잊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없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적적인 방법으로 인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아주 극적인 사건들 이외에도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분의 개입과 간섭이 얼마나 많았는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종종 넘어지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 때문일 겁니다.
| 적용 |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위해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잠시 잊고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던 기억들을 아래에 적어 봅시다.
• 영감의 교훈 •
▶ 감정의 함정
“그처럼 대담한 용기를 나타내고 왕과 사제들과 백성들에 대해 그처럼 완전하게 승리를 거둔 후에 엘리야는 결코 낙담하거나 겁에 질려 두려워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처럼 많은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돌보심의 증거로 축복을 받았던 그도 연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이 같은 암담한 때에 신앙과 용기를 잃고 말았다”(선지자와 왕, 159).
• 기도 •
예수님, 생각해 보니 주께서 저를 위해 베푼 기적과 행하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도 연약하여 낙망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1월 10일 월요일
쓰라린 일생의 사건들
도입) 루터의 우울증 극복기
마틴루터가 우울증에 관해 많은 글을 썼다는 것을 안다면 아마 당신은 놀라게 될 것이다. 그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경험했고 매우 엄격한 종교적인 환경 가운데서 자라났기 때문에 마틴 루터는 자신의 낮은 자존감과 우울증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책에 대한 여러지 훌륭한 묘안들을 그때 그때마다 새롭게 제시했다. 루터가 제한했던 것들을 소개해보자.
1. 홀로 있지 말라.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에 당신은 주위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꺼려하게 된다. 당신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을 피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격리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우울증이 있을 때 경험하는 격리감으로 인해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자신을 강제로 채찍질하라. 이러한 결정을 의지적으로 내리는 것이 당신이 우울증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해야 할 가장 큰 부분 중에 하나이다.
2.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라.
우울증이 찾아올 때 당신의 감지력은 변하게 된다. 조그마한 언덕이 큰 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때에 진실한 친구들이 당신을 도와줌으로써 올바른 각도에서 실제의 높이를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우울증으로부터 스스로 빠져 나오려는 것은 마치 몸이 마구 빠져 들어가는 늪에서 자신의 머리자락을 스스로 잡아당기려는 처사와 마찬가지이다. 당신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환경과 친구들을 찾으라. 이 점에서도 당신은 스스로 선택해야 할 절대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다.
3. 노래하라!
음악을 즐기라. 사울 왕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 이 방법으로만 고침을 얻었다. 다윗이 연주했던 음악의 하모니와 아름다움이 우울증으로 억눌렸던 사울왕의 마음을 유쾌하게 해 주었다.(삼상16:14-23)
4.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라.
수세기에 걸쳐 많은 성도들이 이 점에 동의했다. 브랜글도 이 방법을 사용하여 그의 어려움을 극복했다. 그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없고 진정으로 기도할 수 없었을 때 그는 나뭇가지 위에 달려있는 잎사귀를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하거나 또는 새의 아름다운 날개를 만드신 분께 감사하곤 했다.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단순한 것들에 대해 감사한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요점적으로 부탁한 것도 "기억하라, 그리고 감사하라"(딤후1)이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말한 것도 모두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 느낌을 가지라"고 하지 않고 "모든 일에 실제로 감사하라"(살전 5:18)였다.
5.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깊이 의존하라.
우리가 우울증으로 고민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어떤 부분의 말씀이든지 사용하시어 우리에게 역사해 주신다. 수 세기를 걸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편 말 씀이 가장 유익하게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이유는 시편 기자야말로 우울증으로부터 오는 감정의 하나 하나 모두를 가장 잘 알고 이해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시편 모두 150편 중에서 48편이나 되는 부분들이 우리의 어려운 상태를 말해주고 있다. 가장 유익한 방법은 그것들을 크게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그것은 시편 기자가 표현한 포기와 절망과 고독의 감정들을 자신이 현재 겸험 하는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그것을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믿음과 소망으로서 표현하는 것이다. 6. 성령님의 임재하심 가운데서 확신 있는 태도로 휴식을 취하라.
시편 기자는 거듭 반복해서 우울증으로 부터 해방되는 비결을 선언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이렇게 격려하고 있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나를 도우시는 그의 얼굴을 인하여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5). 여기에 하나님의 "얼굴"에 대한 확신이란 하나님의 임재를 누린다는 증거를 표시하는 말이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깊은 우울증 가운데 빠진 제자들을 위로할 때도 앞에서 말한 것과 기본적으로 꼭 같은 개념을 사용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너희 옆에 있어 줄 다른 이를 보내 달라고 하겠다. 그가 너희와 항상 같이 있게 되리라....내가 너희를 이 세상에 홀로 내버려 두지 않겠다 - 내가 다시 너희에게 오리라...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진정 살아있기 때문이다."(요14:16,18-19, 필립스역).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왕상 18:40).
엘리야가 수백 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직접 죽였는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 어쨌든 그들은 엘리야의 책임하에 사형을 당했고, 이는 분명 그에게 정서적인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엘리야의 조치는 우상숭배를 척결하고,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행습(렘 19:5)을 근절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용하셨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럼에도 선지자는 그것으로 인하여 정서적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한지라”(왕상 19:2).
아합 통치 초기부터 악한 왕비 이세벨은 “바알을 섬겨 예배”(왕상 16:31)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 결과 온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가 데리고 온 모든 선지자들이 죽었기 때문에 이제 분노와 인내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왕상 19:3~4).
여러 차례 놀라운 기적을 목격한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이와 같은 절망에 빠질 수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이 사탄은 인간의 연약성을 이용해 왔다. 그리고 장래에도 이와 같은 수법으로 활동할 것이다. 사탄은 사람이 근심에 둘러싸여 있을 때와 어려운 사정에 어찌할 바를 모를 때와 빈곤과 애통함으로 괴로움을 당할 때마다 시험하여 괴롭게 하려고 대기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품성의 약점을 공격한다. 그는 이러한 일들이 존재하도록 용납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확신을 흔들어 놓으려고 애쓴다”(시대의 소망, 120).
교훈: 사탄은 가장 큰 승리를 경험한 선지자라 할지라도 그의 품성의 약점을 공격하여 절망에 빠지게 만든다.
부가적용)
엘리야의 우울증의 원인은 무엇일까?
1. 승리가 우울증의 원인이다.
엘리야의 우울증은 갈멜산 대승리 후에 왔다. 바알 선지자들을 한 명도 남지 않고 모조리 죽이고 났을 때 이세벨이 죽이려고 하니까 견딜 수 없는 우울증에 광야 로뎀나무밑으로 도망하였다. 인기 연예인들이 가장 고독한 순간은 무대에서 화려하게 박수갈채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 있을 때라고 한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실패하였을 때보다도 성공하였을 때가 더 위험한 때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래서 로버트 슐러는 목사는 <정상에서 머무르지 말라>라는 책을 썼다. 성공 관리가 실패관리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것이다.
2. 공포심이 우울증의 원인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은 믿으며 당당하게 싸울 때에는 창공을 나르는 비행사처럼 통쾌하였다. 그러나 이세벨이 죽이려 하자 그는 공포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래서 우울증에 빠졌다. 공포심이 들어오면 우울증이 따라 방문하게 된다. 병에 대한 공포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병은 치유될 수 있다. 모든 병에는 기적이 있다. 우리 몸속에서는 건강한 사람도 하루에 5-6개의 암세포가 생긴다. 그러나 건강한 마음으로 가지고 살면 경찰 세포가 나와서 그것을 잡아먹는 데 불안하게 살면 경찰세포가 생기지 못 하여 암세포가 뭉치기 시작하면 그것이 암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 건강한 정신과 믿음으로 살면 2cm 정도 되는 암세포도 죽여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공포심을 믿음으로 몰아내어야 한다.
3.피곤이 우울증의 원인이다.
엘리야는 혼자서 450명과 연일 싸우느라고 쉴 틈이 없었다. 승리 후 모든 것이 끝나고 났을 때 그에게 엄습한 극단적인 피곤은 그를 우울증 환자로 만들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피곤이 누적되면 짜증이 나고 우울증이 찾아오게 된다. 어느 동물학자가 두 무리의 말을 대상으로 실험하였다. 한 무리에게는 휴식 없이 일만 시켰다. 얼마 후 그 말들은 신경질 적이 되고 찌증을 부렸다. 일도 능률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일찍 죽었다. 그런데 다른 한 무리의 말들에게는 일주일에 하루를 쉬게 하였더니 일도 잘 하고 말도 잘 들어서 부리기가 편하였으며 오래 살더라는 것이었다. 어느 제분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수년간 주인은 일꾼들에게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시켰다. 그들은 극심한 피곤과 스트레스에 쌓여 짜증만 부렸다. 회사는 점점 어려워 갔다. 드디어 그 회사는 쓰러지고 주인이 바뀌게 되었다. 새 주인은 성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철저히 일주일에 하루는 쉬게 하였다. 작업의 질이 좋아지고 작업량이 늘어나게 되었다. 사람은 철저히 하나님의 창조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
4. 오해가 우울증의 원인이다.
오해는 우울증의 원인이 됩니다. 엘리야는 3년 6개월 동안 가뭄을 끝나게 하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축복을 준 공로자 선지자였다. 그런데 이세벨은 상을 주지는 못 할 지언정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고 바알 종교를 망치게 하였으니 바알신이 노하여 이스라엘에게 벌을 줄 것이라고 오해하여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엘리야는 이런 오해가 너무나 억울하고 분하여 광야로 가서 로뎀나무 밑에 누워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쓰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하려고 하는 마음을 몰라주고 오해하고 엉뚱한 말을 할 때에 얼마나 허탈하여 지며 따라서 세상을 비관하며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일을 할 수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진퇴양란으 어려움에 빠질 때 우울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큰 사람은 <그래도 하자..마지막 웃음이 참 웃음이다>라고 외치며 끝까지 일을 한다. 그러나 속이 좁은 사람은 오해받을 때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다. 일 안 하면 될 것 아니냐?>라고 말하며 주저앉게 된다. 하나님도 손해도 본인도 손실이요 교회도 피해를 보게 된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엘리야가 갑작스럽게 절망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일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위대한 승리를 경험했지만, 작은 위협과 협박에 무너질 정도로 그는 지쳐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연약함을 알기 때문에 사탄은 우리를 시험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굳건해 보여도 그는 우리의 정신과 육체 가운데 나약한 틈을 찾아 공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는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 적용 |
그대는 지친 상태에서 종종 어떤 나약한 생각을 하게 됩니까? 메모하지 마시고, 소리도 내지 마십시오. 은밀하게 그대의 마음을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 영감의 교훈 •
▶ 하나님은 아시고 이해하신다
“투쟁의 최선봉에 서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특별한 사업을 하도록 재촉을 받고 있는 자들도 압력이 제거될 때 흔히 반작용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낙담은 가장 영웅적인 믿음도 흔들 수 있고 가장 확고한 의지도 약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여전히 동정하시고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동기와 마음의 의도를 훤히 아신다”(선지자와 왕, 174).
• 기도 •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도 불구하고 저는 종종 나약한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제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옵소서.
1월 11일 화요일
하나님의 치유책
도입)
하나님은 우울증에 빠진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로뎀나무 밑에서 자고 있는 엘리야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날라다 먹여 주셨다. 엘리야는 이 양식을 먹고 40주 40야를 걸을 수가 있었다. 요즈음에는 우주 양식이 개발되어서 우주선속에서 콩알만큼 작은 음식을 한 개만 먹어도 오래 동안 견딜 수가 있다고 한다. 엘리야는 천사의 양식을 먹고 40일을 걸을 수가 있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랑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성도들을 사랑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계심을 믿기만 하면 우울증에서 벗어 날 수가 있다.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왕상 19:5~8).
자고 먹고, 다시 자고 먹고. 사십 주 사십 야. 갈멜산에서 호렙산까지 격렬한 운동. 정말 놀라운 것은 오늘날에도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적당한 수면과 운동과 건강에 좋은 식사가 처방된다는 것이다.
정서적 혼란을 치료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활동 목록이 처방된다. 이는 의기소침해진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행사를 계획하고, 참여하며, 성취하는 가운데 즐거움과 보람을 찾게 만든다. 이와 같은 요법을 통하여 환자들은 긍정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고, 자기연민을 피하게 된다. 이런 활동에는 흔히 운동이 포함되는데, 그 이유는 운동이 기분을 전환시키고, 일시적으로 우울증을 호전시키는 엔도르핀을 생성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정신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그로 하여금 일정한 과정을 밟게 하셨다. 엘리야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 앉자마자 기도하였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거둬 달라는 잘못된 기도를 드렸으나 어쨌든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자 하는 마음을 드렸다.
엘리야는 다시 한 번 절망을 딛고 일어섰으며, 하나님은 그를 계속 사용하셨다(왕상 19:15~16, 왕하 2:7~11 참고). 하늘로 오르기 전에 엘리야는 그의 후계자를 세우고, 요단강이 갈라지는 이적을 행한 뒤 엘리사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는 특권을 누렸다.
마침내 엘리야는 죽지 않고 승천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거둬 달라고 기도했던 사람에게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교훈: 하나님은 심한 우울증에 빠진 엘리야를 휴식과 음식 그리고 운동으로 치유하셨다.
부가적용)
어떤 여인이 병든 남편을 두고 도망하다가 피곤하여 길가에 앉았다. 도마뱀이 먹이를 물고 가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도마뱀을 심심하여 잡았다. 꼬리를 떼어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쫓아갔다. 그런데 그 도마뱀이 바위틈에 몸이 아파 벌렁 누워있는 자기 숫컷에게 먹이를 먹이는 것이었다. <아! 나는 병든 남편을 버리고 도망가는 중인데 이 미물은 자기 짝을 이렇게 사랑하는 구나!> 이렇게 깨닫고 다시 집으로 돌아 왔단다. 깨닫게 하는 나무 밑에서 깨닫지 못 하는 엘리야의 모습을 우리는 불쌍하게 그려보게 된다. 우울증이 우리를 괴롭힐 때 교훈을 받을 로뎀나무가 얼마든지 우리 곁에 있음을 깨달으라. 역사상 위대한 일을 하였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극심한 우울증에서 자기를 극복한 사람들이다. 모세는 40세에 민족혁명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실패로 인하여 극심한 우울증속에 40년간을 미디안광야에서 지냈다. 그러나 가시떨기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시는 것을 확인하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우리는 미국의 카터 대통령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낙인이 찍힌 채 임기를 마쳤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인정받지 못 하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이제는 망치를 들고 흑인 마을에 들어가서 집을 고쳐주고 여기저기 분쟁이 있는 곳을 다니며 평화의 사도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 퇴임 후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베드로도 우울증에 빠진 적이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자 그는 예수님을 3년간 헛되이 따라다녔다는 허탈감에 우울증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하나님은 엘리야를 어떻게 치유하셨습니까?
엘리야는 도망하였습니다. 그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도피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길은 외롭고 처절하였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더 이상 돌보지 않는다고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는 죽기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패배자의 발걸음에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셔서 다시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지쳐 있던 엘리야는 어느덧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호렙산에 이르러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적용 |
그대가 정서적으로 엘리야와 유사하다면, 어떤 치유의 과정이 필요합니까? 그대도 잠시 삶의 현장에서 떠날 필요가 있을까요? 기도, 휴식, 영양 그리고 운동은 어느 정도 필요합니까?
• 영감의 교훈 •
▶ 신체의 건강이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줌
“대개 정신의 힘은 육체의 힘에 달려 있다. 충분히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며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은 육체와 정신의 건강에 매우 요긴하다”(복음교역자, 422).
• 기도 •
하나님, 제가 가장 힘들 때 저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믿음과 용기를 회복시켜주시고, 시험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1월 12일 수요일
예수님의 스트레스 관리법
도입)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왜 창조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는가? 안식일은 그래서 사람을 위한 날이다.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을 안식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 땅의 어떤 종교가 이런 종교가 있는가? 하루를 쉬라고 하는 종교가 어디 있는가? 일주일에 하루를 휴식하라고 하는 종교가 어디에 있는가? 오직 그리스도의 종교에만 있다. 피터슨 박사는 멜빌의 <백경>이라는 소설을 인용하면서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고래잡이배가 ‘모비딕’이라는 흰 고래를 쫓고 있습니다. 바다는 쉴 새 없이 출렁이고, 선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를 젓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림처럼 앉아있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누구냐 하면 작살을 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작가는 말하기를 "작살이 최고의 정확성을 갖기 위해서는.. 작살 던지는 사람이 수고 가운데서가 아니라, 한가로움 가운데서 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작살 던지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꼭 필요한 때가 되고, 준비가 되면, 그는 작살을 정확하게 쏘아야 한다. 모든 선원들의 수고와 노동은, 바로 이것을 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생을 보다 깊이 있게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분주함’이라는 적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은 필요하지만, 휴식이 있는 노동이어야 하고, 휴식을 위한 노동이어야 한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막 6:31).
휴대폰 시대가 막 꽃피기 시작했던 1990년대 중반, 재림교회의 한 노 목사가 말했다. “나는 절대 휴대폰을 사지 않을 겁니다. 여러 교회를 방문하면서 사람들의 하소연을 듣고 나면 나도 지치고 힘을 잃습니다. 그러다 내 차에 오르면 겨우 피난처를 찾은 기분입니다. 그런데 만약 휴대폰이 있으면 차 안에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신자들에게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고요하고 은밀한 장소가 필요하다.
“그분의 가장 행복한 시간은 홀로 천연계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분은 일하던 곳에서 떠나 들과 푸른 골짜기 가운데서 명상하거나 산비탈이나 삼림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셨다. 이른 아침에 그분은 흔히 외딴 곳에서 성경을 상고하거나 기도하셨다. 그분은 이렇게 조용한 시간을 가진 후에 집에 돌아가서 다시 집안일을 돌보며 참을성 있는 수고의 모본을 보이셨다”(시대의소망, 90).
백성들은 예수님께 고민거리를 안겼다. 그러나 위로와 사랑을 가져다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주님은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서 평화를 찾으셨다(마 21:17, 막 11:11). “그리스도께서는 베다니에 사는 한 가족과 두터운 정분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 가족 중 한 사람을 위하여 가장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가끔 피로하고 인간의 우정을 갈급하게 될 때에는 분노한 바리새인들의 의심과 질투에서 벗어나 이 평화스러운 가족에게로 피하기를 즐기셨다. …우리 구주께서는 조용한 가정과 흥미를 가지고 듣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셨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상냥한 마음, 예의와 애정을 사모하셨다”(시대의 소망, 524).
교훈: 예수님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조용한 기도처와 천연계를 찾아가셨고, 경우에 따라 따뜻한 위로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아가셨다.
부가적용)
영국의 왕실 아카데미에서는, 사람이 일을 하다가, 며칠 만에 한 번 쉬는 것이 좋은가를 여러 각도에서 조사하고 연구해서 데이터를 냈다. 그런데 연구의 결론은 "7일 중에 한 번 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라고 했다. 그러면 사람만이 아니라, 짐승은 어떨까 하여 연구했다. 1주일에 하루를 쉬게 하는 나귀는, 짐을 지고서 하루에 30마일 이상을 갈 수 있었다. 반면에 1주일 중에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나귀는 하루에 겨우 15마일밖에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매일 일하는 나귀는,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 나귀보다 그만큼 손해가 많고 쉽게 병든다는 것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쉬어야 한다. 프랑스의 어떤 의사가, 병원진료를 마치고, 오후에는 자기 집에서 화초도 키우고, 목공일도 하면서,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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