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과 게하시(왕하 4장, 8장, 5장 본문 설명-내용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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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설명을 꼭 먼저 읽으세요.)
나아만 장군의 연대 측정은 5장을 설명할 때 하겠다.
<4장 이전의 요약>
아합(22년간 통치) :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왕상 16:31
아하시야(2년간 통치) :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아비의 길과 그 어미의 길과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왕상 22:52
요람(12녀간 통치) :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저가 그 아비의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하였음이라 그러나 저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왕하 3:2, 3
요람왕 통치 초기에 엘리야는 승천하고 엘리사가 그를 대신하여 선지자의 일을 한다.
요람왕은 아합과 아하시야보다는 선한 왕이다.
위의 두 왕은 여로보암의 죄(금송아지를 만들고, 때와 법을 변개하고, 보통사람으로 제사장을 삼은 것)에 이세벨의 죄(시돈왕의 딸로서 바알신을 섬김)까지 더하여 그 타락함이 극심하였다.
하지만 요람왕은 아합의 아들이자 아하시야의 동생으로서 왕위에 올랐으나 그 어미 이세벨의 우상 즉 시돈의 신 바알을 섬기진 않았다.
그래도 그는 북방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들의 시조 여로보암이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낸 변질된 방법으로 여호와를 섬기고 있었다.
남방 유다처럼 정통 예배를 드리면 북방 이스라엘은 존속하기가 어렵기 때문이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러 가야하고, 레위인이 아닌 수많은 제사장들을 폐해야 하고, 또 여로보암이 정한 예배방식이 이미 80년 동안이나 행해져 왔으니...
그러나 요람은 유다와 여호사밧과 친하게 지냈다.
여호사밧은 35세에 왕이 되어 25년간 남방 유다를 통치했다.
아합왕과는 18년 요람왕과는 7년의 세월을 같이 보내게 된다.
그러니 둘의 나이 차이는 아버지와 아들 정도쯤 나는 거다.
여호사밧과 요람왕을 친하게 지냈다.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으로 더불어 평화하니라” 왕상 22:44
그러다보니 서로 사돈도 될 수 있었나보다.
여호사밧은 그의 아들 여호람과 요람의 누이이자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와 결혼을 시킨다.
유다왕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 사이에서 아하시야가 태어난다.
아달랴도 자기 어미 이세벨을 닮아서 남방유다의 두 왕 즉 남편과 아들의 인생을 망쳐놓는다.
“여호람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을 치리하니라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왕하 8:17, 18
매제인 여호람 왕이 죽은 해에 요람은 그의 조카인 유다왕 아하시아와 같이 예후에게 살해당한다.
그리고 아달랴는 자기 손자들을 다 죽이고 자신이 유다를 6년간 통치했다.
그 6년 동안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아합의 가문이 유다를 통치한 것이 되는 셈이다.
북방 이스라엘을 예후가 통치하게 된 것이고...
아달랴는 북방 이스라엘에 자신의 친척의 씨가 다 마른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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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4장>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여호사밧과 요람은 친하게 지냈다.
비록 둘은 예배방식을 달랐지만 적어도 이방신을 숭배하지 않는 것에는 일치했다.
그래서 둘은 바알신을 숭배하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나, 엘리사를 좋게 생각한 것이 당연하다.
아마 이세벨은 그 아들 요람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저것이 감히 지 에미가 애지중지하는 바알 신상을... 에이그 아들만 아니었어도...” 하면서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에 익히 알려져 있는 왕이다.
아합왕이 22년안 악을 행하는 동안 그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남방유다를 통치했다.
그것을 엘리사는 익히 알고 있었기에 이스라엘 왕보다 유다왕인 그를 좋아했다.
“여호사밧이 그 부친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왕상 22:43
여호사밧의 나이 오십 중반에 엘리사를 처음 만나게 된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이스라엘 왕의 신복 중에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왕하 3:11
엘리사는 아합과 이세벨의 아들 요람에 대하여는 아주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유다왕 여호사밧은 선대했다.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왕하 3:13, 14
이때로부터 젊은 엘리사는 세상 말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을 거다.
두 나라의 왕이 그를 주목하고 나라들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그랬으니...
그리고 엘리사는 엘리야의 승천 후 그의 능력을 이어받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런 엘리야를 게하시는 보았을 것이다.
엘리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엘리야를 추종하였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엘리야는 왕과 사이가 너무 나빴다.
그를 따른다는 것은 아합과 이세벨의 분노를 일으켜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랐다.
제자들이 그물을 버린 것처럼 그는 자신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선지자의 종이 된 것이다.
하지만 엘리사는 달랐다.
그의 명성은 이미 두 나라의 왕에게까지 알려져 있었고, 선지자 학교의 선생이며, 각 지방을 두루 살피며 악한 왕들의 죄로 인해 고생하는 백성들을 돌보는 선지자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성격이 온유하고 차분하며 사려가 깊어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엄청난 이적까지 행하니 그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다.
엘리사를 따라다니면 고관대작은 물론 왕궁에서 왕들과도 지낼 수 있음을 게하시는 계산하였을 것이다.
엘리사의 명성을 등에 업고 그의 이름을 팔아가면서...
게하시는 참 불쌍하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했던 것처럼 사심 없이 엘리사를 따랐다면, 그도 엘리사의 뒤를 이어 선지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가 꿈꾸던 세속적 부와 명예에 대한 욕심 때문에 그는 차라리 엘리사를 몰랐으면 더 좋았을 상태가 되어버렸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막 14:21
그는 엘리사가 가는 곳마다 그의 품성과 사역을 경험했다.
그리고 수넴의 좋은 가문의 부귀한 집에도 가는 기회를 얻었다.
그곳의 귀한 여인과 엘리사와 그에 관련한 일을 많이 논했을 것이다.
우리도 왜 높은 사람들 오면 그분은 어렵고 하니까 그 수행원들하고 뒤에서 쑥덕거리지 않는가?
“아니, 엘리사 선지자님은 뭘 좋아하신데요?”
“글쎄요,... 저 양반은 고리타분해서 기도랑 공부밖에 모르니깐 아무래도 공부방이 좋겠죠. 에유, 저도 두고 온 처자식 생각이... 돈도 없는데 잘 살고 있는지... 그건 그렇고 이 비빔밥이 너무 짜요. 밥 좀 더 넣어주세요.”
“에이그, 벌써 세 그릇째야...”
그리고 게하시가 이 집에 아들이 필요하다고 한 말을 놓고 그가 엄청 똑똑한 것처럼 말 안했으면 좋겠다.
아니, 이 세상에 자식도 없이 늙은 부부에게 애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안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바보가 아닌이상...
아무튼 수넴여인은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늙은 나이에 아이를 갖게 된다.
그리고는 그 아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면서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한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분명히 그 부부의 생각을 했으리라.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히 11:35
게하시가 죽은 아이에게 지팡이를 놓았을 때 그 아이가 살아나지 않은 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치료되었더라면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의 상당부분을 그가 차지하였을 테니...
예수님의 재림 때 수넴여인을 만날 거다.
그때 물어볼 거다. 기분이 어땠냐고...
“아이고, 어떻기는요. 말도 못하게 좋았죠. 방금 예수님의 어머니였던 마리아를 만나고 왔거든요. 나무에 매달린 예수님을 바라볼 때의 심정을 말해주는데요, 내가 우리 죽은 애 안고 있을 때랑 똑같더라고요. 그 얘기 들을 때 얼마나 마음이 저미던지... 그런데 알고 봤더니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죽음의 세상에 내보낼 때 그러셨다고 그러시더라고요. 하나님이 그러셨어요. ‘그래서 너희가 내 고난에 동참했다고 하는 거야’ 라고요. 아니 근데 왜 내가 이 사람한테 존댓말을 하고 있지? 나보다 3800년이나 어린 사람한테... 빨리 물어내!”
“지금 물어보고 있는데 뭘 또 물으라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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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8장>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이스라엘에 기근이 임한 지 7년이 지났다.
엘리사의 따뜻한 배려로 블레셋에서 어려운 시기를 지난 후 수넴 여인은 아들과 함
께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수 년 전에 이스라엘에는 예후가 군사 쿠데타 비슷한 걸 일으켜서 난리가 났었다.
그때 유다(아하시야)와 이스라엘 왕(요람)이 다 죽임을 당했다.
동시에 남방유다는 아하시야의 어미이자 요람의 누이 아달랴가 왕궁의 씨를 말리는 피바람을 일으켜 난리가 아니었다.
예후는 이스라엘에서 아합족속을 다 척살했으니 이세벨도 이때 죽고... 권력이란 참 무상하다... 인생도...
그런 후에 7년 기근이 든 것이다.
그 당시 왕이었던 예후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니, 어떻게 내가 왕이 되자마자 기근이 오는 거야, 정말. 그것도 7년이나.”
그 당시 게하시는 왕궁출입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때까지도 그는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으로서 왕과 대화를 하였다.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씀하며 가로되 너는 엘리사의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고하라 하니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미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가로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왕하 8:4
여기서 한 번 말을 만들어보라.
엘리사 : “게하시야 너는 문둥병이 걸렸지만 내가 다음 사환 구할 때까지는 내 밑에서 일해라. 왕궁도 내 대신 왔다갔다 하고...
”
예후 : “네가 누구냐? 그런데 몸이 왜 이렇게 하얗냐?”
게하시 : “저는 문둥병잔데요. 그래도 아직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일을 보고 있어요. 그래도 병이 그렇게 심하지 않으니까 안심하세요. 그건 그렇고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수넴의 여인에 관한....”
이야기가 앞뒤가 안 맞아서 마음이 참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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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만 써야 된다.
이번 주 안으로 이야기를 끝마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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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8장 계속>
전승에 의하면 수넴여인은 오래 살았다고 한다. 한 100살 쯤...
다윗의 마지막 어린 후궁 수넴여자 아비삭과 어떻게 된다는 얘기도 있고...
남편도 없이 홀로 살고 있는 과부인 수넴 여인, 7년 외국 생활 끝에 고국에 돌아와 보니 자신이 소유했던 집과 땅은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
늙고 힘도 없었을 불쌍한 여인을 위하여 게하시가 왕께 도움을 청한다.
이번 교과제목이 ‘게하시 - 과녁에서 빗나감’이니까 자꾸 나쁘게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왕은 엘리사가 행한 이적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게하시는 그 이적에 대하여 왕께 열변을 토하였을 것이다.
그 이야기에 크게 감동을 받았을 왕에게 수넴여인은 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집과 땅을 돌려줄 것을 호소한다.
그 결과 그녀는 자신의 예전 소유를 회복하게 된다.
게하시가 어떤 사람이었던 수넴여인은 게하시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두 번이나 평생을 갚아도 모자랄 빚을 지었다.
없던 아이를 가져 대를 이을 수 있었고, 또 잃었던 많은 재산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여기서 유다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제자들조차도 끝까지 눈치 못 챘을 정도로 완벽하게 위장하였다.
어쩌면 자신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내니이까?”하면서...
예수님 재림하는 날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저기, 혹시 유다 선생님 보신 분 계세요? 제가 그분에게 성경공부하고 침례 받고 구주를 영접했거든요. 그러다 갑자기 사고로 죽었었는데... AD 30년인가?...”
예언의 신에는 거듭나지 못한 목사로부터 거듭난 신자에 대한 언급이 있다.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모르니까 그냥 설교만 듣고는 예수님을 믿은 거다. 사람은 보지 않고...
나도 내가 전도한 사람들 만나서 영원히 사랑하고 살아야 하니까 꼭 살아남아야 되는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전 9:27
아무튼 게하시는 수넴 여자한테는 참 잘했다.
나도 그거는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그냥 수넴 여인이 잘된 게 좋아서.
그리고 세상에서 방황하던 나를 전도해서 침례를 받게 해준 분에게 감사한다.
진심으로 했던, 침례 실적 때문에 그랬던.
어쨌든 내가 잃어버린 하늘 집과 땅을 다시 찾는다면 다 그분 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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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5장>
차라리 아예 모르는 영역이면 모르는데 어슴푸레 아는 영역이라 이론도 많고 논란도 많다.
어쨌든 진리 탐구에 들인 그분들의 노력과 정성을 보면 찬탄을 금할 길이 없으며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문제는 하루 이틀에 글을 올려야 되는 사람은 수박 겉핥기로 그 글을 읽고 합당하게 느껴지는 이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대로 왕상 5장의 나아만 이야기가 왕상 8장 이후의 사건으로 놓고 시작한다.
“기근을 중심으로 한 연대기”를 참고해 이 설정을 반박하는 이론도 있지만, 그래도 위의 이론을 택한 것은 성경의 문맥상 이 이야기가 가장 타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애잔한 마음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신학적, 역사적, 언어적 기반이 없는 보통의 신자들에게 성경이란 성령의 조명아래 성실하게만 읽어 내려간다면 누구라도 깨달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을 필자는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 말이 학자들의 엄청난 업적을 무시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사려 깊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요세푸스 역사서, 정경, 위경, 탈무드, 각종 전승, 각 나라 세부 역사, 천문학, 생물학, 고고학.... 수명이 200년만 된다면 한 100년간은 서재에 틀어박혀서 연구하고 싶은 책들이다.
엘리사는 엘리야 승천 후 4왕의 시대에 걸쳐 활동한다.
요람(12년) 초기, 예후(28년), 여호아하스(17년), 요아스(16년) 초기까지...
한 오십 몇 년 되는 거다.
이때 아람 왕은 벤하닷 2세, 하사엘, 벤하닷 3세, 이렇다.
이 중에 엘리사와 활동시기가 겹치는 왕은 벤하닷 2세와 하사엘 뿐이다.
하사엘은 연대계산하기 좋게 아주 오래 살았다.
그 면에서는 참 감사한 일이다.
그도 엘리사처럼 이스라엘의 4왕 때까지 아람의 왕위를 지키고 있었다.
47년 정도 되니...
엘리사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죽고, 시작한 연대는 엘리사는 요람 12년의 초기, 하사엘은 말기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러니 엘리사와 거의 평생을 보낸 사람은 하사엘이 된다.
벤하닷 2세는 요람의 초기 10년 기간만 엘리사와 겹칠 뿐이다.
어떤 사람은 라아만이 벤하닷 1세의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건 왕상 5장의 시대와 맞추기는 무리가 있다.
벤하닷 2세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게 그는 아합왕과 전쟁을 하며 같은 시기를 보냈기 때문이다(이 이론이 우세함).
전승에 의하면 아합이 벤하닷 2세와의 전쟁에서 죽을 때 나아만이 쏜 화살에 죽었다 한다.
이때가 BC 753년이다.
그럼, 요람왕은 자신의 지역으로 온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치료해서 보냈다는 얘긴가?
그 정도면 그는 예수님과 맞먹는 숭고한 품성의 소유자인 셈이 된다.
그의 평소의 성격대로 하면 이때다 싶어서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았을 텐데.
요람은 오히려 하사엘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부친 아합을 죽인 원수 벤하닷 2세를 죽여 버렸으니까. 10년 만에...
아마 이세벨하고 잔치를 벌였을 거다.
엘리사가 활동을 시작한지 10년도 채 안 되어 벤하닷 2세는 죽는다.
그 안에 최소한 15년에서 20년이 걸린 수넴여인과 게하시의 사건이 일어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왕상 5장이 8장 이후의 사건으로 봤을 때는 왕상 5장에 나오는 왕은 하사엘이 될 수 밖에 없다(이 이론을 뒤집으려면 왕상 5장의 사건을 또 왕상 8장 전으로 돌려야 한다. 그럼 또 게하시는 문둥병 걸린 채로 왕을 만나야 되고...)
그럼 나아만은 벤하닷의 신하로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왕상 5장에서만큼은 하사엘의 신하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또 문제가 되는게 나아만이 벤하닷 2세의 신하였다면 하사엘도 그의 신하였는데, 그럼 나아만은 같은 동료나 선후배 장수의 수하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니, 최영 장군도 이성계 장군을 왕으로 모시기 싫어서 죽었는데, 주인 앞에서 크게 존귀히 여김을 받는다는 장군이 그렇게 쿠데타를 일으킨 동료 장수를 왕으로 섬길 수 있었을까?
“하사엘 장군 아니, 하사엘 왕님 이번 역성혁명은 충분히 명분이 있었네,,, 이다. 어이 갑자기 존댓말이 안 나오네”하면서?
그런 인격을 가진 자를 예수님이 눅 4장에서 유대인보다도 훨씬 뛰어난 믿음의 노독으로 추켜세우셨을까?
“아니, 그가 벤하닷 왕이 죽기 전에 죽었을 수도 있죠.”라고 말하지 말자.
가뜩이나 그가 엘리사, 게하시, 수넴 여인과 아들, 이 사람들하고 겹치는 기간도 10년도 안 되는데 몇 년 더 깎아내지 말고...
게하시가 문둥병 걸리기 전으로 왕상 8장을 옮긴다면 그때의 아람왕은 하사엘이 된다.
그러면 선지자 엘리사, 사환 게하시, 아람왕 하사엘, 이렇게 5장의 인물들이 정렬이 된다.
그럼, 이때의 이스라엘 왕은 누구일까?
예후와 여호아하스로 압축이 된다. 요람은 죽었고, 요아스 시대에는 엘리사가 죽었으니...
그럼 이 둘 중에 누가 5장의 이스라엘 왕이었을까?
5장에서 단서를 한 번 찾아보자.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왕하 5:7
아람왕 하사엘은 예후도 공격했고 여호아하스도 공격했다. 특히 아합은 말년에...
앞에서도 언급한대로 예후는 상당히 용맹스러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용맹한 자의 아들들은 대체로 선왕만 못하다.
여호아하스의 형편을 보라.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진멸하여 타작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과 병거 십 승과 보병 일만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두지 아니하였더라” 왕하 13:7
아비의 후광으로 왕이 되어 아비만 못한 용력을 가졌을 텐데 거기다 군사력도 저렇게 한 줌 밖에 안 남았으니 걸핏하면 징징거릴 수 밖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더니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저희의 학대 받음을 보셨음이라” 왕하 13: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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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졸려서 더 이상 못 쓰겠다.
어떻게든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이번 주 교과는 아주 사람을 잡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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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이 또 고하여 가로되 저도 저희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의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왕하 9:20
예후처럼 말을 미치게 모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예후이다.
그는 이스라엘 왕족과 유다의 왕의 형제 42인 및 바알의 선지자를 전부 살해한다.
이스라엘과 유다, 심지어는 주변 바알 숭배 국으로부터의 적대감이 두려워서라도 보통 왕들은 하지 않는 행동이다.
예후를 보고 사람들이 벌벌 떠는 모습을 보라.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 아비의 위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 왕이 저를 당치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왕하 10:3, 4
확실히 쿠데타를 일으키려면 이 정도 사람은 되어야 될 것 같다.
모자에는 별을 달고 탱크도 몰고 오고 하면서... 그런데 “친구야 너만 믿는다”라며 동조한 사람이라든지, 아니면 그의 아들들은 대부분 변변치가 않다.
반면에 하사엘을 보자.
“하나님의 사람이 저가 부끄러워하기까지 쏘아보다가 우니 하사엘이 가로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대답하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저희 성에 불을 놓으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어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 왕하 8:11, 12
이때로부터 엘리사와 하사엘의 운명적 인연이 50년 가까이 지속된다.
이때가 바로 요람왕이 통치한지 10년 정도 되는 때이며 예후가 왕이 되기 2년 전이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오래전 하사엘에게 기름 부었음을 알고 있었다(왕하 19:15)
그 후 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또 하나는 아람의 왕으로서 일생을 보낸다.
예후왕과는 26년간, 여호아하스 왕과는 17년간의 세월을 같은 세월을 보내고...
전쟁을 하면서.
하사엘은 특별히 여호아하스 왕때 이스라엘 군대를 거의 전멸을 시킨다.
그러니 하사엘만 생각해면 마음이 얼마나 벌벌 떨렸겠는가?
“어휴, 또 저 인간이 언제 트집을 잡아서 우리나라를 괴롭히려나. 이젠 그 용맹스럽던 아빠도 안 계시니... 나 혼자 어떻게 살으라고.”
“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왕하 13:22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진멸하여 타작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과 병거 십 승과 보병 일만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두지 아니하였더라” 왕하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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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왕이 이스라엘을 자주 침공하던 어느 날 이스라엘의 어린 여자아이가 잡혀간다.
그래도 그 아이는 메어침을 당하지 않고 잡혀간 걸 보니 하나님이 누군가를 만나게 하려고 그랬나 보다.
왠지 다니엘이 생각이 난다.
느브갓네살을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이 다니엘을 특별히 선택해서 보내셨댔지.
그런데 하나님은 그냥 보내시면 될 거를 꼭 포로로 보내서 고생을 시키시는지 모르겠다.
요셉도 그렇고...
더군다나 어린 여자아이라 무서움을 얼마나 많이 느꼈겠는가? 엄마도 보고 싶었을 테고...
아무튼 이 아이 때문에 두 나라의 최고의 거장들의 만남이 성사되고, 또 이번 기 교과의 주인공 게하시가 문둥병에 걸리는 사건이 발생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을 침공한 원수 나라의 장군, 나아만 그를 하나님은 치료하셨다.
엘리사를 사용하셔서...
이미 하나님은 나아만을 알고 계셨다.
그가 택한 백성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믿음의 거장이 될 줄을...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눅 4:27
아이고, 내게는 아무도 안 오는 거 보니 하나님에 내게는 아무도 안 맡기고 싶으신가보다.
하긴 키신저 장관이 내게 온다고 생각해보면 눈이 빙빙 돌 거다.
“이 기회에 나도 돈도 안 벌리는 이짓 때려치우고 한 번 정계로 진출해봐, 아주.”하면서...
키신저 장관까지는 그렇고 뭐 면장까지라도 어떻게 안 될까?
이스라엘왕은 아람왕의 편지를 받고 또 옷을 찢고 난리를 떤다.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왕하 5:7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왕하 5:8
엘리사는 나아만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참 신통한 사람이다.
아람 땅에서 일어난 여자 아이와 나아만의 일을 벌써 알고 있다니...
게하시는 나아만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스라엘 왕궁도 출입하는 게하시...
“이번에는 저 강력한 아람왕국에도 진출을 해볼까?”라고 생각을 했을까?
아람 시민권도 좀 받고...
아람의 귀족을 박대하는 엘리사의 태도에 대해 게하시는 불만이 많았을 거다.
“이런 거는 꼭 나를 시켜. 사실은요, 저는 선지자님 말만 전달하는 거예요. 어유~~ 그런데 저 마차에 번쩍번쩍하는 것들은 뭐래요?”하면서...
나아만은 문둥병에서 나음을 입었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이적을 많이 보았지만 문둥병을 고치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의 마음은 엄청난 대가를 생각하며 설렜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사는 그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게하시 : “아니 저걸 왜 안 받아요. 저 사람들이 우리나라 보물들을 얼마나 많이 가져갔는데요.”
엘리사 : “게사시야, 내가 돈 욕심이 있었으면 선지자도 안 되었을 꺼다. 내가 얼마나 부잣집 아들이었는 줄 아냐? 소를 스물 네 마리로 밭을 갈 정도였다구. 그런 내가 지금 무슨 재물에 미련이 있겠냐? 그리고 이번 기회에 아람 사람들의 절대 신임을 받고 있는 저 사람을 전도하면 얼마나 하나님의 사업이 발전되겠냐? 두 나라의 오랜 전쟁도 사라질 거고...”
게하시 : “아니, 그까짓 나라가 잘 되거나 말거나 나만 잘 살면 그만이지, 에구... 아니, 그런데 선지자님은 왜 자꾸 이번 주 내내 내 이름을 게사시라고 바꿔 불러요? 도대체.”
엘리사 : “그게 자판기가 ‘ㅎ’하고 ‘ㅅ’하고 붙어있어서 그래. 나도 그것 때문에 신경 많이 쓰고 있어, 지금. 그리고 너는 어차피 주변인물인데 이름 한 자쯤 틀린다고 뭐가 어쨌다고 그래.”
하나님을 믿기로 한 나아만은 다음과 같은 부탁을 한다.
“오직 한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왕하 5:18
물론 하나님의 법칙은 꼭 지켜야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걸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강조하여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고 싶다.
법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를 보자.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아무 사람이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케 못하였을지라도 사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 대하 30:19, 20
“그랬어도 하나님의 법을...” 하지말자.
출교를 무릅쓰고 우리 교회의 진리를 접하려 하는 사람들의 고난을 한 번쯤 생각해보자.
입장을 바꿔서 내 자신 보고 그들처럼 용기 있게 해보라고 하면 할 수 있겠는가?
미처 적응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 낯선 교리, 음식, 문화의 괴리 문제로 고생하는 개심자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성소의 결례대로 못했어도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
그들이 회개한 것도 아니고 그냥 히스기야 왕이 중보기도를 해준 것뿐이데...
하나님은 참 용서를 즐기시는 분인가 보다.
요나도 하나님이 너무 그러셔서 화를 버럭버럭 냈었지(욘 4장).
“아이그~~ 내가 또 용서하신다 그랬죠?” 하면서...
로마의 백부장, 십자가의 강도가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내 자신도 성소의 결례대로 했으면 벌써 죽었을 사람이네.
나는 무조건 예수님한테 달겨붙어서 살아남을 거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고전 15:22, 23
이스라엘을 핍박하던 나라의 장군이 문둥병 치료를 받았다.
그 병은 하나님의 나라의 게하시라는 사람이 물려받았다.
그것도 대대로...
이스라엘 최고의 선지자 곁에서 수많은 세월을 보냈는데도...
유다는 이스라엘 사람 중에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특권을 누렸다.
그가 변절하지 않았더라면 수석 사도는 그의 것이었다.
가장 큰 특권이 가장 큰 저주로 뒤바뀐 사람이 유다다.
그 특권은 예수님을 몇 번 만나보지도 못한 이방인, 로마의 백부장, 문둥병자, 강도, 창녀, 세리들이 가져가 버렸다.
나아만은 돌아갔다.
처음에 감화가 아직은 있었겠지만 고개를 갸웃하면서 갔을 거다.
금에서 은정도로...
나아만 : “그래, 돈을 받아야지 정상이지.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우리도 림몬신전의 제사장들이 얼마나 돈을 밝히는지, 그냥. 꼭 채용할라 그러면 베네핏(benefit)부터 따지고 든다니까... 그래도 뭐 다는 아니지만 그정도 드렸으면 은혜는 어느 정도 갚은 셈 아닌가? 어이그~~ 그나저나 이 달구지는 왜 가져와서 이렇게 가는 길이 더디게 하는 거야. 올 때보다 갈 때가 더 힘드네.”
수행원 : “그래도 게사시 때문에 올 때보다는 무게가 좀 가벼워졌어요.”
(이윽고 나아만은 아람 땅에 도착하고 왕을 알현한다.)
나아만 : “잘 다녀왔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께서 안부 좀 전해주시라고 하시던데요.”
아람왕 : “그래, 아이구 아주 몰라보게 건강해졌네. 감사한 일이군. 그래 왕상 5장에는 엘리사와 내가 잘 모르는 것 같이 기록되었지만 사실 그 사람과 나는 젊은 시절 요람왕 때 처음 만났었지. 지금 50년 세월이 흘렀으니 그 사람도 많이 늙었을 걸, 세월이란게 빈부귀천을 몰라보고 덤벼드니, 원. 그 양반, 참! 그때 나를 째려보던 그 눈빛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 눈물로 얼룩져 있었지. 자네에게 베푼 은공을 봐서라도 이제 그들과의 전쟁을 자제해야 하는데... 근데 참 그 정치라는 게 참 쉽지가 않아. 교회에서도 그 문제로 원성이 자자한데 하물며 이방나라인 우리에게 뭘 바라겠어. 그건 그렇고 이젠 건강해졌으니 신전에 가서 림몬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지?”
나아만 : “예? 아,.... 네, 그래야죠.”
아람왕 : "그런데 엘리사 양반에게 사례는 충분히 했나? 그 사람 하도 청렴해서 주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나아만 : "그러게요, 저도 처음에는 그분이 안 받으시려고 해서 당황했는데, 나중에 게하시를 보내서 좀 달라고 하더라고요."
아람왕 : "그래, 그래야 정상이지. 하나님의 사람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인데 어째 그분이라고 돈이 꼭 돌덩어리로만 보이겠냐. 그래도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우리 제사장들보다는 나으니 이해하게나. 아무리 그래도 엘리사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나보네."
(먼 산을 바라보는 아람왕의 주름가엔 씁쓸함이 머문다.)
하지만 나아만 장군의 마음은 온전히 하나님께 가 있었다.
그는 이번 주의 주인공 게하시와는 정 반대의 인생길을 선택함으로, 유대인과 늘 변론을 하는 예수님에게 큰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후일에 나아만도 게하시와 그 후손들이 문둥병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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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성경외의 많은(?) 기록들이 나아만을 벤하닷과 연결 짓고 있다.
그렇게 되면 왕상 5장을 엘리사, 요람, 벤하닷, 게하시, 나아만 이렇게 놓고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이 다섯 사람이 공유하게 되는 기간이 겨우 10년도 채 안된다.
그 안에 게하시를 만나야 하고 또 수넴여인을 만나서 애를 주고 그 애가 자랐을 기간, 또 7년 기근, 그 사이의 공백 기간, 거기다가 나아만과 관련된 일에 필요한 시간... 이런 것들을 그 10년 안에 구겨 넣어보려고 애써 보았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왕상의 기근 기간 7년만 줄여보면 어떻게든 비슷하게 해볼 수 있겠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7장의 문둥병자들 중 하나는 게하시였는데 좋은 일을 하여 병이 나았다고 하고 또 병이 낫지는 않았지만 기 기간 동안에는 호전되었었다는 이론을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추측해본다.
앞서 말했듯이 전자는 눅 4장의 예수님이 후자는 모세의 글과 이스라엘의 역사가 거부를 한다.
그래서 그냥 성경 본문 속에서 내적인 증거들을 찾아 먼 옛날의 일을 추적하여 보았다.
엘리사, 예후와 여호야하스, 하사엘, 이들이 50년의 세월을 공유하고 있구나 하면서.
우리가 다 알듯이 성경은 부조들의 역사를 여과없이 기록했다고 믿고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역사성을 더욱 신뢰한다.
하지만 세상 역사는 100 % 의지하기에는 좀 그렇다. 이웃나라의 역사왜곡처럼...
지금도 기득권을 위한 역사책을 만들고 있는 역사가도 있을 지도 모른다.
"위대한 아무개께서는..." 하면서...
필자가 성경 비평론자나 회의론자가 아닌 이상, 불완전한 세상역사를 지지하기 위해 성경 전체의 흐름을 역행하는 글이나 말을 남길 수는 없다.
다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만한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많이 없었던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제 벌어진 사건도 많은 시간을 들여서 조사를 하는데...
아무튼 의혹이 가는 여러 부분은 숙제로 남겨놓고 게하시 이야기는 여기서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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