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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과 게하시(배경설명-1차 보충 및 재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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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과 게하시(배경설명)

 

자, 또 연대를 계산하여 게하시에 관련된 일에 최대한 접근해보자.

우선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한 시기의 북방 이스라엘 왕들에 대해 살펴보자.

 

1. 아합(BC 874-853)-22년(왕상 16장 -22장)

엘리야 활동 시작

벤하닷 2세에게 죽임을 당함.

 

2. 아하시야(853-852)-2년(왕상 22-왕하 1장)

엘리야가 아하시아의 병사를 예언함

 

3. 요람(852-841)-12년

엘리야가 아합왕 때부터 활동하다 요람 때 승천(왕하 2장)

요람왕 때부터 엘리사가 엘리야의 자리를 대신함.

841년에 요람이 어미 이세벨과 함께 예후에게 살해됨.

이세벨은 아합보다 약 14년 더 살고 죽었다.

 

이때 하사엘이 벤하닷 2세를 살해하고(약 843년) 하사엘이 왕이 됨

하사엘은 요아스 왕의 통치 3년에 죽는다.

그러니까 대략 843년부터 796년까지 47년 정도 아람을 다스린 셈이 된다.

그러니까 엘리야로부터 엘리사의 초기 봉사까지의 아람왕은 벤하닷 2세, 엘리사의 초기봉사부터 죽을 때까지의 아람왕은 하사엘이 된다.

즉, 하사엘은 요람, 예후, 여호야하스, 요아스까지 이스라엘의 4왕과 전쟁을 벌이며 산 것이다.

이를 통해 유추해보면 엘리사의 50여년의 선지자 생활동안 이름도 없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아람왕은 하사엘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벤하닷 2세는 엘리사의 초기봉사 때 잠깐  등장한다.

 

4. 예후(841-814)-28

5. 여호야하스(814-798)- 17년

 

6. 요아스(798-782)16년

하사엘이 죽고 벤하닷 3세(796-770)가 아람의 왕이 되어 26년을 통치함

요아스 때 엘리사가 죽음.

요아스는 엘리사의 죽기 전 예언대로 막 왕이 된 벤하닷의 성읍을 세 번 공격하여 이스라엘 성읍을 회복함(왕하  13:22-25).

 

요아스와 벤하닷 3세 때와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아모스의 글을 보자.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내가 하사엘의 집에 불을 보내리니 벤하닷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암 1:1-4

 

이때로부터 우리가 잘 아는 선지서들이 막 쏟아져 나오는데 요나서, 미가, 이사야, 호세야, 이런 책들이...

그러고 보면 남북이 분열된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끊이지 않고 당신의 백성들에게 보냈다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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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다소 부실한 감이 없진 않지만 위의 이야기를 기초로 해서 이번 주 교과를 연구해보자.

 

엘리야는 아합(874-853), 아하시야(853-852)왕 때에 활동을 하고 요람(852-841)이 왕으로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로 승천한다.

그 후 880년 쯤 후에 변화산에서 모세와 함께 예수님을 만나서 뭔가를 의논했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 살아계셔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

예수님은 침례요한을 선지 엘리야라고 하셨다(말 4장, 마 11장)

그는 침례요한이 예수님께 침례를 베푼 것처럼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었다.

 

게하시가 따르던 엘리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엘리사는 아합왕의 시대에 엘리야의 부름을 받아 그를 추종하였다.

그는 요람(852-841), 예후(841-814), 여호야하스(814-798), 요아스(798-782)왕의 통치 초기까지 약 50여 년간 활동을 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요나, 아모스, 미가, 호세아, 이사야 등이 등장한다.

그의 시대에 늘 등장하는 아람왕은 하사엘이다(요람왕 10년부터 - 엘리사의 죽음 직후까지)

 

그는 부요한 가정의 자녀였지만 스스로 가난한 선지자의 길을 택했다.

예수님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8:9

 

 

엘리사는 불같은 성격의 엘리야와는 달리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도 “살려주세요, 죽여주세요, 왜 과부의 자녀는 죽여서 날 난처하게 합니까?...”라면서 어린아이처럼 행동을 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그런가 하늘의 존재는 그를 어루만지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다니엘이나 이사야 같은 의인도 하나님을 뵈면 푹푹 쓰러지던데...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왕상 19:5

그래서 아예 하늘로 데려가 버리셨다.

구약의 하나님은 참 사랑이 많으신 것 같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엘리사의 모습은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는 적이 없이 침착했다.

신약에 변덕스러운 제자들 사이에서 늘 평온함을 유지하시던 예수님을 닮았다.

그는 항상 이스라엘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결같이 악한 북방 이스라엘의 왕들 때문에 고생하는 불쌍한 백성들을 돌봤다.

 

그런 엘리사를 계산에 민첩한 게하시가 추종하였다.

마치 예수님의 능력과 유망한 장래를 미리 내다보고 스스로 제자가 되었던 유다처럼...

그런 유다에게 예수님은 “너는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세우려는 나라는 권력과 재물과는 거리가 멀어. 너는 어쩜 그렇게 게하시하고 닮았냐? 왕궁에 있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고...”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다.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마 8:19, 20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요 12: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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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관계상 뒷부분은 차후에 써야겠다.

오늘따라 삽하고 붓 들고 다니시면서 성경역사와 연대를 밝혀내시는 고고학자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안 깍은 수염도 멋있어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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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보충>

 

“수넴여자 아들을 되살렸던 이적이 있은 지 수년이 흘렀다. 게하시의 문둥병은 그렇게 흉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왕궁에서 일하고 있었다.”

 

윗글은 교과 목요일 분의 1번 문제에서 왕하 8장에 대한 설명 첫 번째와 두 번째 줄을 인용한 것이다.

대충 수용하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석연치가 않다.

논란도 좀 있는 문제고...

 

또 많은 사람들이 게하시가 문둥병에 들렸었다가 다 나아서 다시 왕궁에서 봉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내용은 많이 은혜롭다.

근거로 그분들은 왕하 6장의 4명의 문둥병자의 이야기를 든다.

그 네 명의 문둥병자 중 하나가 게하시라는 거다.

그래서 문둥병자인 게하시가 선한 일을 행함으로 용서를 받아 문둥병에서 해방되었다는 거다.

그분들은 왕하 5, 6, 7, 8장이 순차적으로 기록되었음을 전제로 그렇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은혜롭다고 해도 성경지식 조금만 있어도 틀렸는지 금방 알 수 있는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뭐, 결정적인 증거가 몇 가지 있지만 다 말할 필요가 없다.

누가 그런 주장을 하면 이 성경절을 보여주라.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눅 4:27

 

 

만약에 게하시가 치료를 받았다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엘리사 때 이방인 중에는 나아만 장군, 이스라엘에서는 게하시가 문둥병에서 깨끗함을 입었다”

 

물론 그들의 이론을 지지하는 성경구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구절을 지지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예수님의 전지전능성을 믿는다는 기독교인들이라면 말이다.

"아, 그때는 예수님도 서른 남짓한 청년이라 잘 모르셨을 지도 모르죠."라고 말하는 사람은 설마 안 계실 거다. 

 

그런데 그렇다고 교과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니 그건  왠지 마음이 더 무겁다..

게사시의 문둥병이 그리 심하지 않아 왕궁에서 일할 수 있었다는 말 때문이다.

이 말이 맞는다고 하기에는 너무 분명한 성경절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고, 또 교과 자체의 내용으로도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아무리 파고들어도 알아낼 수 없는 내용이 많이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낼 수 있는 문제는 비록 그것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성심을 다해 해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 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 같이 되었더라” 왕하 5:27

   

게하시의 문둥병 증세는 눈 같이 희어졌을 만큼 심각했다.

그리고 그의 저주는 자손에게까지 미치는 영원한 것이었다.

위의 성경절에 그의 병이 어느 시점에 호전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 있는가? 

 

 

금요일(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분에 인용된 선지자와 왕 252 페이지의 4, 5 줄을 보라.

“그(게하시)는 죽는 날까지 문둥병자가 되어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동료들로부터 격리되었다.”

왕궁에 거하는 건 정상인에게도 엄청난 복인데... 문둥병 호전, 왕궁에 거함, 하나님의 저주, 불쌍한 사람을 위해 애쓰는 게하시... 왕4장에 저주받기 전에도 수넴여자를 물리치려던 자가, 왕 근처에 있으면 사람들이 줄 좀 대달라고 줄을 설 텐데,.. 동료들로 격리되었다는 말...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나마 먼저 번 이론은 말은 안 되도 은혜라도 있었는데...

 

모세의 글에 문둥병 걸린 자를 백성들에게서 격리를 시키라고 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모든 문둥병 환자와 유출병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를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되 무론 남녀하고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어 그들로 진을 더럽히게 말라 내가 그 진 가운데 거하느니” 민 5:2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라도 예외가 없었다.

다행히 그 누이는 모세의 기도로 회복될 수 있었다.

그랬어도 진밖에 칠 일을 갇혀있었다(민 12장).

 

 

설령 문둥병 걸린 사람이 선한 왕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선지자도 아니고 게하시는 그의 사환일 뿐인데.

유다의 웃시야 왕의 경우를 보자.

이 사람은 심지어 죽어서도 조상들과 분리되었다.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대하 26:4, 5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음을 보고 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이 외에 웃시야의 시종 행적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더라 웃시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저는 문둥이라 하여 열왕의 묘실 접한 땅 곧 그 열조의 곁에 장사하니라 그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대하 26:19-23

 

 

그럼 여기서 또 경우의 수를 따져볼 수밖에 없다.

문둥병자는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그 당시에 문둥병이 완치가 된 사람은 나아만 밖에 없다.

이 두 경우를 만족시키려면 왕하 5장의 나아만 장군에 관련된 일은 적어도 왕상 8장 이후에 일어나야만 한다.

  

자, 그럼 이제 조금 더 심층적으로 분석해보자.

게하시는 왕하 4장에서 수넴여인, 5장에서 나아만 장군, 또 8장에서 수넴여인과 관련된 일로 등장한다.

불행히도 이 일들이 일어난 시기의 기산점이 없다.

그렇지만 엘리사의 사역기간(50년)과 또 같은 시기의 이스라엘 왕들과 아람 왕들의 연대와 사건들을 연구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비슷한 기산점을 잡을 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시간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어렸을 때부터 배워온 육하원칙(?) 때문인가? 누가, 언제, 어디서,...

 

게하시는 왕하 5장에서 문둥병에 걸린다.

4장과 8장에서는 게하시의 문둥병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만 두 장 다 수넴여인과 관련한 일로 등장한다.

 

4장과 8장의 사건은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다.

그 시간을 한 번 찾아내보자.

그럼 또 몇 가지 모르던 일이 풀린다.

 

언젠지는 모르지만 엘리사는 갈멜로 가는 길에 수넴을 들려갔다.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시기 위해서 수가를 지나신 것처럼.

수넴에서 엘리사는 부유하고 신분이 높은 부인을 만난다.

하지만 예수님은 수가에서 비천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다(요 4장)

 

어느 날인가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자기 집에 들여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다(왕하 4:8).

그 이후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음식을 먹었다.

음식이 맛있었나 보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메디터래니언(지중해) 음식을 사줘서 먹어봤는데 맛이 하나도 없어서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는데...

그저 우리는 청국장이나 묵밥에 깍두기가 최곤데...

(또 쓰기가 피곤한가보다 이런 말들이 나오는 거보니...)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보자.

엘리야가 유명하던 시절에 엘리사가 후계자로 등장해서 유명해질 수 있는 기간.

그리고 수넴여자가 그 엘리사라는 선지자를 알아보고 “저 분을 한 번 모셔야 할텐데~~”하고 생각할 기간...

결정적으로 “지날 때마다”(도대체 몇 번이었을까?)라는 기간...

엘리사 시대는 차가 없어서 걸어서 산 넘고 물 건너 다녔을 텐데...

한 번 지날 때마다 시간차가 몇 달은 되지 않았을까?

(엘리사 활동기간이 50년이 넘으니까 마음 놓고 시간을 늘려도 된다.)

 

그리고 그 여인이 “항상(4:9)” 자기 집을 지나는 엘리사를 위해 숙소를 마련하려고 결심한 때는 얼마나 시간이 경과한 후일까?

집을 지은 기간, 또 그 여인을 위해 뭔가를 해줘야겠다고 엘리사가 결심한 기간, 또 아기를 가지려고 하는 기간 2개월, 임신한 기간 10개월 도합 1년(돐, 4:17.)...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기간이 흘렀을 것이다.

 

 

그리고는 어느 날엔가 애가 태어났다.

애가 “저으기(?, 4:18) 자랐다.

아빠를 찾아 밭에 혼자 나가는 나이, 그리고 죽기 전에 “내 머리야, 내 머리야”라고 히브리어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나이 하지만 병이 나았을 때 엄마가 안고 나갈 수 있는 나이(4:37, 17세만 되었어도 엄마가 안고 나갈 수 없다. 애가 엄마를 업고 나가야지.)

그럼, 아이가 한 6, 7세 정도 되지 않았을까?

그러면 앞에 뭐 엘리사가 먹고, 다니고, 임신하고 다 합쳐서 한 3년...

도합 한 10여년으로 잡으면 그렇게 많이 차이날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뭐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이를 가지기 전, 수넴여인의 남편은 늙었었다(4:14) 아이도 못낳을 정도로...

거기다가 이제 아이도 못 낳는 나이보다 10년을 더 살았으니 이제 수명이 얼마 안 남았음을 금방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도 무심한 세월이 얼마간 더 흘렀으니 수넴여인의 남편은 더 이 세상에 남아있지 못했음이 자명하다.

그나마 부자라 온갖 치료를 하여 오래 사신 것 같다.

“아이고, 그래도 저 죽었다 살아난 금쪽같은 늦동이가 대학 졸업하고 손자까정 낳는 것는 보고 죽어야 하는데,... 콜록콜록” 하면서...

 

그래서 8장에는 남편 이야기가 없다.

그리고는 7년이 또 지났다.

그녀는 7년 기간 동안 블레셋에서 살다가 돌아왔다.

나오미처럼... 둘 다 남편 없는 거는 똑같고, 나오미는 룻하고, 아마도 수넴여인은 아들하고 왔을 거다. 죽었다는 이야기가 없으니.

아이도 이젠 성년이 되어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아들의 부활 사건부터 기근 전, 또 7년 기근 해서 한 10년...

먼저 번 10년과 이번 거 10년 합하면 20년.

이 기간이 아마도 왕하 4장과 8장의 기간으로 잡으면 오차 몇 년 안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잡힐 거다.

그럼, 여기서 우리 교회 주석을 보자.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권속과 함께 거할만한 곳으로 가서 거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명하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왕하 8:1

 

 

This famine took place sometime during the reign of Joram of Israel, BUT EXACTLY WHEN, IT IS IMPOSSIBLE TO SAY.(2 SDA BC, 894)

 

 

요람왕은 12년을 통치했다(852-841).

엘리야는 요람왕이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승천했다.

따라서 엘리사의 사역 역시, 요람와의 치세 초기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기근은 요람왕의 말년, 혹은 요람을 죽인 예후의 초기통치 시대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리고 여기서 아람왕 벤하닷 2세는 요람왕 죽기 2년 전에 하사엘에게 죽었음을 기억하자. 그래야 왕하 8:7 이후의 내용이  또 과거로 역행한 이야기임을 알 수 테니.. 예후 왕때 있었던 아람왕은 하사엘이고...)

 

분명한 것은 수넴여인과 관련한 게하시 이야기는 요람왕(852-841)과 예후(841-814)에 걸쳐서 일어났다는 사실과 적어도 엘리사가 활동을  시작한지 20년 가까이 흐른 후에 일어난 왕하 8장의 이스라엘 왕은 당연히 예후가 된다.

예후도 악한 왕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이스라엘 왕들 중에는 선한 축에 들었다.

그의 치적 중에 어떤 면은 하나님을 순종한 면이 있었고, 그는 사내답고 용맹한 면도 느껴지는 사람이다.

적어도 전토를 잃은 불쌍한 여인을 놓고 치졸한 짓을 할 사람은 아니다.

 

필자는 그래서 불쌍한 과부, 수넴여자의 원을 들어준 왕으로, 살인자 아합의 아들 요압보다는 아니, 그 후의 왕들을 더 비교 해봐도 예후가 가장 적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왕하 8장의 게하시에 관련한 이야기가 예후 다음 왕일 거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요람이 죽은 후 28년을 왕위에 있었으니...

그는 하나님에게 공적을 인정받아 4대까지의 왕권을 보장받는다.

 

 

왕하 10:30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 대를 지나리라 하시니라

왕하 10:31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 일 까지 20년이 걸렸어도 아직도 엘리사의 사역기간은 30년이나 남았다.

그럼, 그 30년의 기간 안으로 나아만의 이야기를 넣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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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4, 5, 8장에 은혜로운 이야기가 많은데 시간 계산하다가 시간이 다 가버렸다.

이 많은 양을 하루에 다 끝내려고 하다니... 어리석었다.

그럼 다음 기회에 또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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