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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과의 핵심토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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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과의 핵심토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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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상황에 따라 하나의 질문을 택하라):

1.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혹은, 무인도에서 혼자 산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2. (가족, 친구, 동료, 교우 등)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을 얘기해 보라.

(질문 1이든 2이든 결론은 같다.) 사회적이란 단지 모여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삶이란 관계의 연속이다. 인간에서 관계를 빼버리면 그는 걸어다니는 시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인간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로 인해서 울고 웃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의 주범은 바로 ‘나쁜 관계’였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교과 50)

 

@본론

핵심토의 1. 관계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오해, 대화의 부족, 기대의 빗나감, 낮은 자존감, 자존심, 이기심, 교만 등

관계를 힘들게 하는 근본 원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데 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비롯된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을 때 서로를 불신하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화평이시다. 우리가 화평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불편한 관계를 만드는 온갖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핵심토의 2. 좋은 관계를 위한(혹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요소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1)겸손과 온유(교과 52)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높임받을 때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2)용서(교과 54, 56)

‘이 것만은 용서할 수 없어’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 ‘이 것만’ 때문에 우리의 삶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이 것만’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이드브레이크를 채운 상태에서 자동차를 주행하는 것처럼 답답한 일이다.

용서할 때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할 수만 있다면 모든 관계는 행복해질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용서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희망의 소식은 우리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용서의 원리를 알면 용서가 가능해진다.

①먼저 자신도 용서받아야할 죄인임을 인정하라. 사람들은 대개 관계가 잘못된 원인이 늘 상대방의 탓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 보면, 자기도 무의식 중에 남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는 실수하는 인간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②용서를 경험하라. 그리고 잊지 마라.

자신도 남에게 용서받았던 사실을 기억하라. 마음 속에 악한 죄는 하나님 앞에 내놓고 용서받는 경험을 제대로 하라. 자신이 용서받지 못했는데 남을 용서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아무리 크고 무서운 죄라도 깨끗이 용서해주시는 분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가 용서못할 사람은 없다.

③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라.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행동이 이해가 안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행동도 상대방이 이해 못하는 것이 많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면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된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위치에 내려오셨단 사실을 기억하라.

3)죄의 고백(교과 58)

용서만큼 어려운 것이 용서받는 것이다. 용서받으려면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누군가에게 크게 잘못한 것도 용서받을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혹 스스로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상대방에게 그것을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매우 자존심상하고 불편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관계를 그대로 두면 두고두고 힘들다. 대신 순간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잘못을 고백한다면 그와의 관계는 몰라보게 좋아질 것이다.

*죄를 고백하는 데는 주의해야 할 원칙이 있다.

①사람에게 잘못한 것은 사람에게, 하나님께만 잘못한 것은 하나님께 고백하라.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하나님께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그런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다. 먼저 형제와 화해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마 5:23, 24)

②단체에 잘못한 것은 단체에게, 개인적으로 잘못한 것은 개인적으로 해결하라.

나와 그 사람만 알고 있는 잘못을 단체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한다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런 경우가 교회 기도회 같은 때에 일어나는데 이는 큰 실수이다.

③드러난 죄는 공개적으로, 은밀한 죄는 하나님과만 해결하라.

상대방에게 은밀한 죄를 품었으나 상대방은 전혀 모를 수가 있다. 그런 경우 괜히 공개를 해서 더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 수 있다.

④중보자는 오직 그리스도 뿐임을 기억하라.(딤전 2:5)

신부가 고해성사를 받는 것은 그 자신을 중보자로 내세우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훼방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용서받을 죄를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은 그 사람을 우상화하는 것이다. 물론 상담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어떤 죄든 하나님께서만이 온전히 해결해주실 수 있다.

⑤고백을 남용하지 말라.(기독교인들이 욕먹는 이유가 대개 여기서 기인한다.)

하나님께 고백하고 나면 모든 죄가 없어졌으니 자신이 정말로 의인인 줄로 생각하고 기고만장하는 것은 오산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가 없어서 의인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어도 그분을 의지하는 그 관계 때문에 의인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을수록 더 겸손해져야 한다.

또한 어떤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다 용서해주시니, 또 용서받기를 기대하며 거듭 범죄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롱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그것도 용서해 주신다. 그러나 그것이 습관화되면 자신도 모르게 죄에 무뎌져서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많은 죄를 용서받지 못한 채 생을 마칠 수도 있다.

4)서로 덕을 세움(교과 60)

 

이 모든 정신은 인간 스스로는 만들어낼 수 없다. 오직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 가능해진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관계회복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화목제물로 희생되셨다.(엡 2:14, 15) 그분의 희생을 받아들일 때 죄인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회복될 때 또한 인간관계도 회복될 수 있다.

 

@결론 및 적용: 다른 사람과 더 좋은 관계를 위해 내가 노력해야 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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