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하늘의 베틀 (4월 2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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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하늘의 베틀 (4월 2일 안식일)
기억절 :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롬 4:7).
옷은 날개다
요즘 세대는
옷을 입은 사람들은 그 옷의 가리움보다
그 옷의 상표에 관심이 많다
요즘 등산객이 많은데
산을 오르다 보면 옷 자랑일 수밖에 없다
웃옷 한 벌에 100여만원하는 것 예사다
낚시를 가보면
낚시 도구 한 벌 장만에 수백만원하는 고가들도 많다
그래서 요즘 세상은 나를 알리는 수단으로 옷을 입고
필요한 것을 장만한다
어떤 내 친구는 보통 사람의 집 한 채 값으로 대문을 만들었다
상징은 성경적이지만
그 상징을 상징하는 교인들은 현실적이다
거기다가 상징이 주는 의미보다 그 상징물에 빠진다
이스라엘이 상징을 너무 좋아하다가
광야의 구리뱀을 다시 만들어서 섬기는 우를 범했고
유월절 어린 양을 생각하다가 금으로 만들어 우리를 인도한 하나님이라 했다
이번 기의 내용은 옷에 대한 상징이다
제목 자체가 은혜의 옷이다
우린 어떤 의복에 관심이 있는지 연구해 보자
첫째날(일) 3월 27일 거울을 바라봄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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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부정한 것을 싫어했다
왜냐하면 저들이 하는 제사가 모두 정결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지 말라는 동물은 모두 부정하다고 여겼고
그것 먹거나 주검조차 만지면 부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주검을 만지는 행위에서
하루라는 날을 지정하셨고
제사장이 필요에 따를 경우에는 씻는 조건으로
그 하루도 감해 주셨다
씻는 것
그것이 기독교의 중심이다
무얼 씻을 것인가?
얼마나 더럽길래 그토록 씻어야 한다고 이러는가?
히 9: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한시적인 씻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유전되는 것은 없는가?
옛 시대는 율법의 유전, 장로의 유전이었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신앙의 유전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가?
둘째날(월)3월 28일 입혀 주시는 의
성경이 무얼 말하는가?
바로 믿음을 말한다
그 믿음이란 죄로 얼룩진 모든 것을 씻는 것을 말한다
그 씻는 것을 믿음이라 표한다
우린 흔히 내가 더럽다 죄인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은 더럽지 않다고 여긴다
그래서 우린 항상 죄인 일 수밖에 없다
죄인은 죄인인데 죄인인양 하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의 굴레를 못 벗어난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때 우리에게 옷을 입혀 주신다
의인되라 하시면서 입혀 주신다
그렇게 입혀 주신 옷을 우린 수시로 벗는다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계3:18)라시는데
우리는 항상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셋째날(화)3월 29일 율법 외에
법아래 사는 자는 항상 불편하다
법아래 사는 자는 무언가에 쫓기는듯하게 살아간다
경찰이 육감적으로 범인을 검거하는 것은
범인은 행동거지가 어딘가에 이상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다 해도 내 마음에 어딘가에 숨긴 것이 있을 때는
나 역시 하나님 앞에서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람들 보기에는 볼품없는 짓 같이 보일지라도
그분은 자신이라는 생명을 통해서 이상한 행동까지 덮어 주셨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의다
넷째날(수)3월 30일 옷이 사람을 만든다
요즘 아이들 내의에는 상표가 밖으로 나와 있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 상표가 피부가 여린 아이들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 옷에는 상표가 앞에 표시되어 있다
같은 공장에서 나온 옷일지라도 상표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요즘 자동차 홍수시대이다
티코를 몰고 고급호텔에 가면
수위조차 무시한단다
그래서 자동차는 그 사람의 직분을 대표한다고들
좋은 차를 선호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자동차는 굴러다니는 수단일 뿐이라고
아무리 좋은 차 한 대 사라 하도 안 산다
옷이건 자동차건 심지어 집안에서 사용하는 집기 하나에도
상표가 있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요즘 시대는 외모 지상주의 시대이다
사람이 옷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옷이 사람을 만든다
양심의 옷을 입지 않고 베틀로 짠 옷을 입는다
지금은 그 옷이 자기를 가릴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들통 날 것이다
다섯째날(목)3월 31일 값싼 은혜와 율법주의
은혜가 값싼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싸구려 시장에다 내 놨기 때문인가?
그저 주는 것, 즉 공짜는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난 잘 퍼 주는 마누라와 함께 살고 있다
중요하다고 여긴 것도 퍼 준다
나 역시도 잘 퍼 주는 성미이다
미국 어느 목사님이 주신 산삼 다섯 뿌리도
한 자락도 안 먹고 남 다 줘 버렸다
공짜로 얻었기에 공짜로 나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받아간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냐 하는 것이다
예수의 공짜 은혜를 값싼 제품으로 여기지 말라
그러다가 율법에 얽매이게 된다
율법에 얽매이면 신앙의 삶 자체가 부담스럽게 된다
자유가 없어지고 기쁨도 없어지고
삶의 바이오리듬도 사라진다
순종이 제시보다 낫다고 순종만 찾아다니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그 순종이란 단어로 말미암아 율법에 속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내가 예수께 잡힌바 되었는데
왜 그것을 잡으려 다시 달려가야 하는가?
이해가 잘 안 되시는가?
다시 연구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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