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 영과 진리로(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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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과 영과 진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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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니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첫째 날(일) 마리아의 노래
누가복음 1:46-55에 기록된 마리아의 노래는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엘리사벳의 복(腹)중에 있던 침례요한이 기쁨으로 뛰놀았었을 때 마리아가 노래로서 화답하는 내용입니다.
이 노래에는 경배와 찬양 가운데 있어야 할 요소들이 무엇임을 가르쳐 줍니다.
“이 경배와 찬양은 그 당시 존재하는 유일한 성경 즉 구약성경으로부터 유래된 암시와 개념으로 가득 차 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신의 삶과 민족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감사하고 있다. 아브라함을 암시하는 듯한 문구는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맺으신 언약을 상기시킨다. 마리아는 언약을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으며, 그러한 언약을 자신과 백성의 소망으로 보고 있다. 그녀가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의 일을 식별할 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감사할 수 있었고 경배할 수 있었다.”(교과 150쪽)
“그대가 누리고 있는 축복에 감사하고 그대가 받고 있는 보호에 대하여 감사를 표시하라. 마음을 귀중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히 채우고 그 보고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 말들을 꺼낼 수 있게 하라. 그렇게 되면 그대의 주위에는 유익하고 고무적인 분위기가 감돌 것이다.”(가정과 건강. 179)
둘째 날(월) 예배와 섬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으며 겸손과 사랑과 경외심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동시에 어떤 형태이든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교과. 152)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상숭배로 부터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품성을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시33:18)
하나님의 품성을 볼 때에 “그 전체가 사랑스”(아5:16)러운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감격하게 되고 감격은 경외심이 갖게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품성을 알게 될 때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출4:31)
하나님의 섬기시는 사랑(마20:28)을 알게 될 때 사람들도 섬기고자 합니다.(빌2:5-11)
하나님의 품성을 알 때에만 생명력 충만한 예배가 되고 품성이 다른 신들에 대하여 예배하지 않게 만듭니다.
셋째 날(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함
하나님께서 제사(예배)를 만드셨습니다.(창3:21, 24)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고 떠남으로 죄(죽음)가 되어버린 아담과 모든 인류를 위해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의 선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심으로 대신 양처럼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여주는 것이 예배입니다.
창조주로서 피조물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창조주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해결하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이 예배의 핵심입니다.
예배 속에 보여 지는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구속주이십니다.
예배 속에서 사랑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남으로 끊어진 생명이 다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예배의 목적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님은 예배의 핵심이 무엇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배의 핵심은 장소가 아닙니다.(요4:21)
예배의 핵심은 종교의 형식과 전통이 아닙니다.
예배의 핵심은 희생제사도 아니고 예배 그 자체도 아닙니다.
예배의 핵심은 희생 제사가 가리키는 의미가 무엇이고 예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그 답이 있습니다.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망의 선택에 대해서 자신의 생명으로 책임지시는 행위를 보여주고 있고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바칠 만큼 우리에 대한 사랑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와 구속주로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품성을 볼 때에 그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의 핵심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안식일의 핵심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마12:8)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것은 생명적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아는 것을 예배할 때 생명적 의미가 있습니다.
넷째 날(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방법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요4:23)
이 문제에 대하여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왜 하나님께 예배할 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이고
둘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첫째 질문인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영이시기 때문입니다.(요4:24)
성경에서 영은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는 살과 뼈가 있는 육체와 구별되는 의미로 살과 뼈가 없이 형체만의 상태를 의미 할 때 영이라고 합니다.(눅23:37-39)
둘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의 육과 대비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어진 상태로 하나님의 생명이 연결된 상태를 영이라고 합니다.(롬8:9-“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성령)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 있지 아니하고 영(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어진 생명의 상태)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본문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의 의미는 위의 두 가지 영의 의미가 다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살과 뼈가 있는 육체에 거하시지 아니하시고 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생명이신 빛)이신 반면 사람들은 육(생명 없는 어두움)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생명의 빛으로 인해 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신령과 진정으로만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문제인 신령과 진정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신령이란 성령이란 의미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생명과 끊어져서 태어났고 죄의 본성대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우리의 본성 속에서는 생명이신 하나님의 품성을 깨닫고 예배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은 하나님만이 알 수 있으므로 삼위일체이신 성령 하나님께서만 하나님의 품성을 온전히 밝혀주실 수 있습니다. (고전2:10-16)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품성을 깨닫게 해주십니다.(요16:14)
성령 하나님의 감화로 인해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될 때 드디어 예배하게 됩니다.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진정이란 말을 오해하면 예배하는 자의 정성처럼 생각되어 집니다. 그러나 진정의 의미는 진리입니다.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생명 없는 교리에 의한 예배가 아닌 생명이 바탕이 된 예배를 말합니다.
생명은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볼 때에 감격함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게 됩니다.
예배하는 사람이 주가 되는 예배가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사랑으로 행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주가 되는 예배가 되어서 그 예배에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하여 생명력 충만한 예배가 진리로 예배하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는 것도 중요하고, 또 우리가 어떤 봉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고, 우리가 서로에게 어떠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한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예배 속에서 생명으로 인정하게 되는 예배를 하게 됨으로 생명력 충만한,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날(목) 그분의 발 아래서 예배함
예수님께서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란 이름으로 알려지기 전에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입니다.(출3:14)
여호와 즉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의미의 이름은 온 우주에 어떤 존재들과 구별되는 이름이며 기념 칭호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온 우주에 구별되고 독특한 이름인 이유는 여호와의 이름을 쓰시는 분들 외의 모든 존재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6장22절-26절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쓰시는 분들이 세분임을 보여줍니다.
각각의 개체로 존재하시는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들의 품성과 뜻과 사상과 행동 등이 하나처럼 동일하심으로 일체라고 정의합니다.
여호와라 이름 하신 분들 중에 말씀으로 알려진 분께서 창조를 주관하셨습니다.(요1:1-3)
창세기에 창조하시는 여호와를 나오시는 분은 예수라는 이름과 더불어 아들이란 칭호를 덧붙이셨습니다.(요1:14)
아담을 창조하신 여호와로서 그분은 아버지셨습니다.(사9:6; 눅3:38)
그런데 아들인 아담이 사단의 말에 미혹되어 사단에게 갔을 때 아담의 아버지셨던 여호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아들을 잃어버린 것이었고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아버지께서 아들이 되셨습니다.
그 때 첫째 아들인 아담을 대신하는 둘째 아들의 위치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에 예수란 이름이 추가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는 사건이고 아버지가 아들이 되신 사건입니다.
우리로서는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적 품성을 예수님의 모습 속에 보게 될 때 모든 인류와 온 우주의 거민들은 그 사랑에 즐겨 무릎을 꿇고 그 사랑을 찬양하게 됩니다. (빌2:5-11)
예배 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거룩한 산이나 성전을 찾음으로 사람들이 하늘과 교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외형적인 형식과 의식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종교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종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 위하여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이것은 마음을 정결하게 할 것이며 정신을 새롭게 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새로운 능력을 줄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즐거이 순종하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곧 참된 경배이다. 그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신 열매이다.”(시대의 소망.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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