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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영과 진리로(도입과부가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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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영과 진리로

9월 10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49분

도입)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개역개정은 신령과 진정이라는 단어를 ‘영과 진리’라고 번역했다. 영어성경에서도 spirit and truth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육이나 물리적인 어떤 것으로 그분께 도달할 수 없다. 우리의 육과 혼으로 하나님께 경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신 우리의 영(소문자로 표현되었음을 유의)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 수 있는 것이다.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육적인 것과 혼적인 것을 초월하여 예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신이 즐겁고 혼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예배함을 말한다. 그것은 영으로 예배드릴 때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진리 안에서 예배한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예수께서는 자신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말씀하셨다.(요 14:6) 즉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요, 진리 안에서 예배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피조물의 마땅한 자세로 예배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분께 드려지는 예배도 하나님의 형상인 영으로(in spirit) 드려지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영혼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중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겸손하고도 거짓 없는 경외함으로 예배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있다.

기억절 :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첫째 날(일) 9월 4일
마리아의 노래

도입)
성경에 언급된 현숙한 여인은 모두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권위를 알고 권위에 순복하는 것이다. 우주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이 권위이시다. 사람의 타락은 권위에 순복하지 않은 데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순복하기를 요구하실 뿐 아니라 그분의 대표 권위에도 순복하기를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일은 능력으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권위로 수행된다. 오직 권위에 순복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교회생활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누구에게 순복해야 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 속에는 부르는 사람의 혼이 담겨져 있다. 마리아의 노래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몸에 잉태하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이 찬양의 노래 속에는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잘 나타나 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는 과정에 있어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이루어진 일에 대하여 전적인 하늘로부터의 권위에 대한 순종과 더불어 그 권위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 1:48).

교훈: 마리아는 비록 모든 사실을 다 알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개입되어 있는 이 일이 하나님의 일이며 구원의 사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부가적용)
마리아는 자기 자신이 비천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돌보시는 은혜에 대하여 찬양하고 있다. 즉 자기같이 비천한 사람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잉태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요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찬양 속에는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크고 넓으신 은혜와 자비를 노래하면서, 만세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가리켜 “복 있는 자” 라고 말할 것이라고 찬양하였던 것이다.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일은 천지창조요, 그리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이다. 그런데 이러한 놀랍고 엄청난 역사적 일을 마리아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며, 그 긍휼하심이 믿는 자 모두에게 대대에 이를 것임을 마리아는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영감의 교훈 •
▶ 작심하고 찬양하라
“그대가 누리고 있는 축복에 감사하고, 그대가 받고 있는 보호에 대하여 감사를 표시하라. 마음을 귀중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히 채우고, 그 보고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 말들을 꺼낼 수 있게 하라. 그렇게 되면 그대의 주위에서는 유익하고 고무적인 분위기가 감돌 것이다”(가정과 건강, 179).

둘째 날(월) 9월 5일
예배와 섬김

도입)
하나님을 섬긴다(예배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 것을 말하는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알 필요가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본래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어떤 종교적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녀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을 생각해 보라.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는 것에 대해 아들이 아버지 앞에 향불을 피우고 주문을 외우며 절을 여러 번 하는 식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아버지든 누구든 어떤 사람을 섬긴다는 것은 서로 '합당한 인간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섬긴다는 것은 상대를 사랑하고 그의 말을 듣고 그와 같이 있음으로써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그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종교적 방식으로 예(禮)를 갖추어 제사를 드리는 것이 될 수 없고 오직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그 관계 안에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귀신에게는 제사와 같은 종교적 방식을 사용하여 섬기는 것이 맞을지 모르지만 인격이신 아버지 하나님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어색하고 이상한 일이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눅 4:5~8).

교훈: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것을 섬기게 된다. 하나님만 예배하는 사람들은 우상숭배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부가적용)
사람이 처음 지음 받았을 때 하나님이 사람을 향해 의도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상징하는) 생명과를 먹고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며 그와 함께 영원히 복된 삶을 사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어떤 행위(제사)가 아니라 인격이고 삶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예배가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며 그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삶이 예배인 것이다. 하나님이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와 성령을 보내심으로 의도하신 것이 바로 이러한 삶의 회복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즐거워할 아버지로 알고 그 생명을 따라 아들로 산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참 예배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는 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고 돌로 지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게 했을까? 왜 그런 종교적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셨을까?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그렇게 영으로 진리로 섬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을 알지도 사랑하지도 그 뜻대로 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타락 후 하나님에게서 떠나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지도 않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행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이 부르신 백성일지라도 하나님이 그들과 교통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중보자 또는 매개체가 필요하였다. 하나님과 사람 간의 유일한 참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사람은 하나님과 생명 안에서 (하나로 연합하여) 참으로 교통할 수 있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구약에서 행한 예배 즉 성전 예배는 하나님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돌로 지은 성전에서 정한 시간에 정한 예식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도록 해 놓으신 것은 결코 참된 예배(섬김, 관계) 방식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가 오셔서 사람을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넣으심으로써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이 될 때까지 임시로 사용하신 방법에 불과한 것이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히8:5) 구약의 돌로 지은 성전은 처음부터 그리스도라는 참된 성전을 지향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는 사람이 그리스도(성령)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과 생명을 가진) 아들로 살게 되는 것이다.

•영감의 교훈 •
▶ 뒤바뀐 경배대상
“많은 사람이 천연계의 하나님은 부인하면서 천연계를 신과 같이 숭배한다. 비록 그 형식은 다를지라도 옛날 엘리야 당시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있던 것과 똑같은 우상 숭배가 오늘날의 그리스도교계에도 존재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583).
셋째 날(화) 9월 6일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함

도입)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은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사람이 구약적 예배 곧 성전 예배(종교적 섬김)를 폐하고 영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참으로 섬겨야 할 때가 바로 주님이 오신 그 순간부터임을 분명히 하셨다. 이제 사람이 영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한다(섬긴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종교적 방법이나 그 밖의 육신적 방법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그 속에 하나님의 생명(마음)이 생기게 될 때만 가능하다. 사람은 본래 누구든지 이런 식으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도록 지음 받았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사람 안에 당신의 생명을 불어넣으셨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 거하지 못하게 되고 그로 인해 사람이 단지 육체(동물)가 되면서 이것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요 4:22).

교훈: 진실한 예배는 형식이나 전통이나 공간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문제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이다.

부가적용)
사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영으로 밖에는 섬겨지지 않는 분이시다. 바울은 고전2:10-12에서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었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처음부터 즉 구약 시대에도 마땅히 영으로 하나님을 예배했어야(섬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셔서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생명을 회복시키기 전까지는 구약적 표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사람이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오직 사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을 새롭게 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 즉 참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으려면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 교회의 변화 추구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라면 그 결과는 성공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대로 둔 채 외형만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라면 그 결과는 좋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변화를 받아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그리스도처럼 말하고 그리스도처럼 행동하고 그리스도처럼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아들로 바쳐질 때만 비로소 영으로 예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영감의 교훈 •
▶ 인격의 체험
“모든 신실한 기도는 성령에 의해 작성되며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 가납될 수 있다. 어디서나 영혼이 하나님을 구하는 곳에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 영혼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경배자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받아들여 당신의 아들과 딸로 삼으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신다”(시대의 소망, 189).

넷째 날(수) 9월 7일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

도입)
영으로 예배한다는 말이나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은 궁극적으로 다 같은 말이다. 영과 진리는 다 같이 구약의 모형에 대해 실제요 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영(靈)은 육(肉)에 대응하는 말이고 진리(眞理)는 그림자(모형)에 대응하는 말이다. 여기서 육이란 육신(자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 표현 즉 하늘에 있는 것을 땅의 모양으로 바꾸어놓은 것을 말한다. 즉 하늘에 있는 참 성전인 새예루살렘(그리스도를 말함)은 땅에서 성막 또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표현되었다. 이때 하늘에 있는 영적 실제로서의 그리스도는 영 또는 진리라고 말하고 땅에 있는 성전은 육 또는 그림자와 모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진리란 그림자에 비해 실제 또는 참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예배한다는 것은 구약 시대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지 못하고 단지 그리스도의 모형과 그림자인 율법 제도에 의해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긴 것과 비교할 때 참으로 실제로 예배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진리 안에서 예배한다는 것은 영 안에서의 예배하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참 성전을 믿고 따르는 것이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교훈: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추구한다.

부가적용)
사람이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자기 앞에 있는 그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를 섬기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하고 간단한 것이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참 실제이시고 하나님의 참 성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 지도자들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돌로 지은 성전을 귀히 여기며 거기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한다면 그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니며 그의 영은 죽은 것이요 그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자요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스르는 자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주님은 여자가 어디서 예배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분명하게 "여자여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성경에는 내 말을 믿으라고 되어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또 주님은 장차 예루살렘 성전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묻는 제자들에게 그것들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아니하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13:2) 왜 하나님은 당신이 친히 세우신 성전이 그렇게 철저히 파괴되도록 허락하셨는가? 그것은 참 성전인 그리스도가 오셨으므로 이제 모형과 그림자는 없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주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대적했다. 그들은 다 율법과 성전을 귀히 여겼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하는 듯이 보인 주님을 대적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는 율법도 성전도 귀히 여기지 않았고 오직 자기들의 전통과 종교 및 그 안에 묻혀 있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귀히 여길 따름이었다. 그들은 참 율법이고 성전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자들임을 드러내었다. 그림자는 귀히 여기면서 실제는 거부함으로써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가 아니고 사탄에게 속은 가짜라는 것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영감의 교훈 •
▶ 균형 잡힌 예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어떤 예배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각 시대의 대쟁투, 436).

다섯째 날(목) 9월 8일
그분의 발아래서 예배함

도입)
주님이 육체로 이 땅에 계시지 않는 오늘날의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영과 진리 안에서 섬길 수 있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를 따름으로써 가능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성령의 인도를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場)으로 교회를 주셨다.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요 그리스도의 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형제들을 섬김으로서 주님을 섬길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이며 몸을 섬기는 것은 곧 머리를 섬기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몸과 머리, 몸과 지체는 하나이다. 그리스도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개인적으로 즉 자기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고 교회 생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은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내 교회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하시지 않고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22:7)고 말씀하심으로써 교회와 주님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분명히 하셨다.  

교훈: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킨 성육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부가적용)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바울의 이 말처럼 하나님은 지금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들(그리스도인들)을 성전으로 삼아 그 안에 거하신다. 전에 땅에 계실 때 주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는 산 성전이셨다. 그러나 이제 주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전이 되셨다. 이것은 전보다 훨씬 완전한 성전이 된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 그와 교제하고 그를 섬기려면 하나님이 현재 거하시는 곳으로 가야한다. 하나님이 돌로 지은 성전에 계시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리로 가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라는 사람으로 땅에 계시면 반드시 돌로 지은 성전을 버리고 그리 가서 그를 섬겨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은 성전 건물 안에 계시지도 않고 사람으로 땅에 계시지도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형제들(교회) 안에 계신다. 하나님은 오늘날 성령으로 말씀하시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그리스도인들)로 당신을 나타내신다. 누구든지 어떤 건물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거나 어떤 재림주라는 사람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집회소 건물이 보통의 건물보다 귀하고 거룩하다고 생각하거나 기도는 아무래도 교회당 건물로 가야만 잘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유한 형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귀히 여기지 않으며 그들을 만나서 교통하는 일에 대해서는 소홀한 사람들은 주님 당시의 유대인들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각 개인이 그리스도(하나님)를 온전하게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런 한 지체 한 지체들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고 그 교회가 바로 이 땅에서 유일하게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들 각 사람을 그리스도로 알아 귀히 여기며 그들에게 피차 복종할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성도는 비록 개인적으로는 완전치 못하더라도 그 생명이 나타내는 바로서는 즉 교회로서는 하나님을 완전하게 드러내는 유일한 몸이요 성전이다.  

•영감의 교훈 •
▶ 죽임 당하신 어린양께 경배
“온 우주의 창조자시며 모든 운명의 결정자께서 인류를 위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영광을 버리시고 스스로를 낮추셨다는 것은 영원히 우주의 경이와 존경을 자아낼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51).

예비일(금) 9월 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시대의 소망, 19~26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거룩한 산이나 성전을 찾음으로 사람들이 하늘과 교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외형적인 형식과 의식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종교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종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 위하여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이것은 마음을 정결하게 할 것이며 정신을 새롭게 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새로운 능력을 줄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즐거이 순종하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곧 참된 경배이다. 그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신 열매이다”(시대의 소망, 189).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셔서 하나님과 동등이신 그분이 몸소 그의 제자들에게 종으로 행하신 것이다. 제자들은 가장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서로 다투고 있는 반면에 모든 사람이 그를 향하여 무릎을 꿇으며 영광의 천사들도 섬기기를 영광으로 생각하는 그분이 허리를 굽혀 자기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자들의 발을 씻기셨다”(시대의 소망, 64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메시야 탄생이라는 가장 위대한 역사적인 기적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반면 동방박사들은 정확한 때에 정확한 장소로 그분을 찾아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중요한 교훈을 말하고 있습니까? 마지막 시대의 예언적 성취를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백성들이 저지른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➋그리스도의 신성은 우리의 믿음과 예배에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완전히 믿지 않고 어떤 다른 존재로 생각할 때에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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