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과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7월 30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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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7월 30일 안식일
기억절 :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것을 삼으며 단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사 5:20~21).
신 33:4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신명기 33장은 모세가 12지파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축복하는 장이다
이스라엘이 복을 받는 이유는 바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은 거라 한다
12지파가 복을 받은 이유는 율법은 자기들만 가졌다는 자부심이다
그래서 율법은 야곱의 총회 즉 12지파의 총회가 가진 기업이다
이 기업은 모세로 말미암았다
그래서 저들은 특별한 백성이었다
화 있는 백성이란
하나님의 축복을 반대로 행하는 자이다
복 있는 백성이란 하나님의 축복을 인정하는 자이다
롬 3:1,2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유대인이 이방과 다름이 무엇인가
유대인이 난지 8일만에 남자아이들에게 행하는 할례의 유익은 무엇인가?
그보다 더 많이 있을 것이나 그 첬재가 하나님의 말씀 즉 율법을 맡았기 때문이다
생활의 예배화
신앙의 생활화
이런 것들이 바로 뼈에 박혀 있는 것이 믿음이다
첫째 날(일) 7월 24일 봉헌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레 9:23).
제사제도 역사에서는 제사만이 오직 구원의 길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형식화 되었는데
사실은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제사의 깊은 뜻을 잘 몰랐다
그래서 형식화되고 의식화만 되었다
제사가 행해지는 그리스도의 속죄, 메시야의 현현, 하나님과 함께함이란
대 전제가 사라지고 있었다
의식은 의식이다
양을 잡고 그 양이 죽음으로 내 대신 죽었다는 강한 신념이 있을 때
그 양은 죽임이 의로웠고 정당했다
약 1,400년 동안 진행된 제사제도는 그리스도 있는 제사만이어야 했지만
그 형식은 형식으로만 그쳤다
그 형식이 의식화 되어 제도로 정착할 동안 양은 헛되이 죽어 갔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레 9:24).
불이 사르지 않은 제사는 문제가 있었다
형식은 절대로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오지 않았다
그 결과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을 기억해야 했다
오늘 우리의 예배행위는 옳은가
둘째 날(월) 7월 25일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옴
우리는 마술가가 입에서 불을 내는 것을 자주 본다
귀에서 불이 나오고 손아귀가 움직일 때마다 불이 나오는 것을 본다
그렇다고 그게 여호와의 불은 아니다
눅 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눅 9:51
“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가던 길을 사마리아인의 한 촌으로 가셨다
이 사마리아인의 촌은 야곱의 우물가 이후 처음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올라가는 길을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했다
그것을 못 본 요한이 말한다
하늘 불을 내려서 살아 버립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촌으로 돌아가셨다
지금 어디로 가는지나 아느냐 하시듯이 개의치 않으시고 가셨다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기적을 말한다
선생님 기적 한 번봅시다 하는 요한에게 거절을 분명히 하셨다
너의 화를 위해서 기적을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싫어하는 사촌의 논 사는 일에도 은근히 기적을 바란다
자기 미움을 성취하기 위해서이다
하늘에서 불이 내렸다
제물을 사르고 그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광야 40년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 줬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강한 신념을 가졌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율법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겁을 내지 말고 사랑하는 법 그것이 바로 신앙이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레 10:1).
다른 불
무엇이 다른 불일까?
성전에서 불타고 있는 불을 버리고 사가에서 가져 온 불로 성전의 불을 대신했는데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이후 그 자리는 3째에게로 넘어 갔다
장자를 선호하던 세대에 장자의 죽음은 복음의 세계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불은 성령이다
기름도 성령이다
다른 불은 거역이요 일부러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다
셋째 날(화) 7월 26일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신 33:29).
이스라엘이 행복한 자가 된 것은
바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라 애굽에서의 구원이었고
광야에서의 구원이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원을 쟁취했는지를 가르친다
우리는 여호와 앞에서 얼마나 행복한가?
진정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확신하는가?
그 구원에 대하여 항상 감사하는가?
오늘 우리 앞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확신만이 남았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교단적인 구원이 아니라 교리적인 구원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의지하려는 의식에 사로잡힌다
성화가 평생의 과업이라 하니 성화로서 구원을 얻으려 한다
그 성화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표적을 구하기도 하고
내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한다
모세는 40년간 그 백성 때문에 광야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그 백성들 때문에 다시 40년을 광야를 헤맸다
그 120년 역사에서 2/3가 광야였고 그곳은 그 백성을 위한 준비기간 그리고
인도기간이었다
그 긴 8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그는 축복기도를 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이 부르짖음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효력을 지닌다
시 94:14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 물음은 그 기업으로 받은 축복에서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보증이다
넷째 날(수) 7월27일 굴복의 자세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삼상 1:10).
두 아내를 거느린 엘가나와 야곱은 공통점이 있는데
한 아내는 수태치 못한다는 것이다
야곱의 아내는 무자식일 때 그 여종을 남편에게 들여보냈고
거기서 얻은 아들로 기쁨을 누렸다
엘가나는 아이를 못 낳는 부인을 이렇게 위로한다
삼상 1:8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이 말은 내가 너를 더 사랑한다 하는 말인데
그 부인이 수태치 못하므로 아마 다른 제2의 여자를 얻은 것 같다
그리고서는 무자식인 한나를 매우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다
그 때마다 한나가 울면서 하소연하면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라면서 위로한다
한나는 그런 위로가 마음에 닿지 않아서 실로에 올라갈 때마다
그는 울면서 기도한다
그 당시 제사장이던 엘리에게 그가 술에 취해서 중언부언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독백을 한 모양이다
삼상 1: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성경에는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신다고 한다
출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마찬가지로 한나의 소리를 하나님께서는 들으셨다
삼상 1:17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항상 기도한다
부끄러울지라도 자신을 낮추는 법을 기도로 배운다
죄를 짓고서 자신을 알게 된다
또 우리는 어려울 때 기도한다
응석을 부린다
평안이 가기 위해서 기도한다
구한 것을 받기 위해서 기도한다
한나의 기도는 이런 모든 것을 망라한다
기도는 자신을 낮추는 최상의 무기이다
다섯째 날(목) 7월 28일 예배와 순종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삼상 15:22~23).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제나 제사에 속한 것을 제일로 여겼다
그래서 그것이 주는 의미를 잊었다
형식이 판을 치고 규정이 난무했다
흡사 오늘 교단의 규정집 같은 탈무드가 그 위세를 떨쳤다
제사 제일주의가 지나쳐서 저들은 산당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울의 생각역시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제사용으로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형식에 젖었다
제사제일 주의가 빚은 불상사였다
그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얻은 좋은 것을 제사라는 이름을 남겼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주를 믿었는지는 몰라도
물질 앞에서 무너졌다
사실로 말하자면 사울의 승리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모든 군인들이 창칼을 가진 것이 아닌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증언한다
“사울과 백성이”
이 말은 전투부대보다 백성들이 힘을 합쳐서 여호와를 지켰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사울과 백성이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겼다
삼상 15:11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사울의 승리는 사사의 기쁨이 아니라 온 밤을 지세면서 기도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로 하나님은 사울을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한다
그만한 지도자가 없다고 보셨는데 그가 불순종한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을 여호와께 드림은 원칙이다
그러나 하지 말라신 일을 하면서 드림은 안 드림만 못하다
그래서 기독교는 결과를 보지 않으신다 원인 즉 동기를 보신다
그분에게 맡기신 신앙의 근본을 보신다
원칙을 지킬 때 그 결과는 하나님이 판단하신다
르노삼성자동차의 위르띠제 사장의 이임사가 생각난다
“한국에서의 기업활동과 관련해 위르띠제 사장은
"마치 포뮬러1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F1자동차는 굉장히 빠른데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면 위험성이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만큼 열정과 역동성이 뛰어난 국가라고 덧붙였다.“
결과를 중시히 하는 경제와 달리 종교는 과정을 중시한다
뭘 타고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이 아니란 말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조용히 무릎 꿇고 하늘을 생각하자
어떤 것이 순종인지 어떤 것이 행위인지
시 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➋우리는 어떻게 위선적으로 예배하게 됩니까?
예배할 때는 경배와 찬양으로 충만하나 밖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연결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행히도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는 예배하지만,
집에서는 배우자와 자녀를 학대하고 악한 행위를 일삼습니다.
그러한 삶은 어떻게 우리의 예배를 조롱거리로 만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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