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예배와 출애굽기: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함(7월 9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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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예배와 출애굽기: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함(7월 9일 안식일)
기억절 :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2~3).
창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가인과 아벨의 사건 이후
아담은 셋을 통해 에노스란 아들을 낳는다
가인의 자손 그리고 수많은 아담의 자손이
자신들의 종갓집 대가 이어지는 것을 본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이렇게 설명해도 될까?
아담이 대를 이을 자식을 낳았고 그 자식이 손자를 본 이후에야
왜? 겨우 그 시간이 되어서야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을까?
그 당시 분명히 아담과 하와가 살아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말인데
그게 가능할까?
가인이나 가인의 자식들이 셋의 자손이 생기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었을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은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다는 말인데 그러면
그 전에는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는 말인가?
예물도 가져가지 않았고 양도 잡지 않았고
그리고 가인의 자손들은 계속해서 농사꾼이며 곡식을 예물로 바쳤을까?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저들끼리 시내산 아래처럼
새로운 신을 만들어서 애써 여호와를 거절했을까?
수많은 의문 속에 그 때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은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원인을 제공한다
“셋은 가인과 아벨보다 더욱 고상함
―도덕적 성품에 있어서 셋은 가인이나 아벨보다 더욱 고상하였고
다른 어떤 아들들보다 더욱 아담을 닮았었다.
(3영적 60).”(화잇주석, 창 4:25)
“다른 어떤 아들들보다 더욱 아담을 닮았었다.”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까 셋을 후계자로 만들었을 것이고
약속의 자손을 잉태하는 선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담을 빼다 박았다는 말투는 별로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러면 다른 아들들은 아비를 닮지 않았을까?
그럼 누구를 닮았을까?
닮을 사람이 없었는데 말이다
도덕적으로 볼 때
인간은 날이 갈수록 더 복잡한 세상을 닮아간다
그런데 유일하게도 셋은 아벨보다 더욱 고상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한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창 4:26)다.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전에 하나님을 경배하였었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두 부류 사이의 구별이 더욱 현저하게 되었다.
한 부류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주저없이 고백하였고
다른 부류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순종하였다. ”(부조, 80)
딱 분질러서
가인의 후손은 두고두고 정직한 자식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고
셋의 자손은 두고두고 정직하고 하나님의 아들 딸이란 칭호를 받는
그런 자손만 나왔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사람의 딸을 취한 하나님의 아들들은 무늬만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이다
왜냐하면 저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두 자손 모두가 썩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 딸도 없고 사람의 아들, 딸들만 존재했다는 말이다
족장 시대에 예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바로 눈앞에 하나님이 보이시는데
그 이름 부르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나는 왜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후에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는지
알만한 사건으로 바로 이 일을 꼽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당신을 사랑하는 무리를 선택하신다고 믿는다
첫째 날(일) 7월 3일 날(일)
거룩한 땅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그 선택된 백성 중의 하나인 레위의 자손 모세이다
그가 우여곡절 끝에 애급에서 자라게 되어 목숨을 부지하자
그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보장되었다
왕이 된 공주의 양자가 된 것이다
그를 하나님은 광야로 내 몰았다
40년을 양치기로 허송하고 있을 때-어떤 이는 특별교육이라 부른다-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다
그냥 부르신 것이 아니라 기적을 보여 주시면서 부르셨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는 건 아니었다
그는 미디안 제사장의 사위였고 여호와를 아는 40년 시절을 보냈다
거기서 그 세월 동안에 그는 욥기와 창세기를 기록했다
그래서 그가 부름을 받았고 그랬을 때에
그는 겸손하게 신을 벗어야 했다
우리도 신을 벗는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패배한 자들이 하는 수치를 말한다
수건을 쓰는 것도 수치를 가리는 것이다
신을 벗고 수건을 쓰고 그리고 칼을 내리는 것은
항복을 의미한다
우리는 항상 예수 앞에서 신을 벗어야 한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쉼의 철학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진다
그게 나귀를 타셨던 예수를 닮는 겸손의 종교이다
둘째 날(월) 7월 4일 장자의 죽음(유월절 예배)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출 12:27).
유월절은 흠 없고 점 없는 그리스도를 요구했다
그 흠 없고 점 없는 양의 피를 요구했다
그 피가 인방과 설주 등에 발라졌을 때 그들은 죽임을 면했다
그 피를 바르는 행위가 바로 예배이다
이스라엘의 첫 절기인 유월절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을 의미한다
약속의 자손을 보존하는 이스라엘의 형식의 시작이다
장자를 축복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의미했다
그들이 그 작은 문지방을 통과하면서
그 지방과 설주에 묻은 피를 바라 봤을 것이다
피는 무서운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지국을 사 먹어도 되는가 하고 어떤 교인이 물었다
물론 제사제도 시절이 아니니 먹어도 된다고 말은 했지만
피는 생명이니 먹지 말라는 말씀이 내 눈에 아련 거린다.
초대교회가 왜 피를 멀리하게 했을가?
그것이 지금까지 유효한 법일까?
그 피를 볼 때마다 저들은 유월절을 생각할 것이고
그것이 저들의 신앙의 질을 좌우 할 것이다
그래서 종교는 형식이어서는 안 된다
즐거움의 대상 그리고 무서움의 대상이어야 한다
항상 그분은 기쁨의 대상이며 천대까지 복을 이어주시는 분이면서도
삼사대까지 보응하심을 알아야 한다
그 시작이 바로 유월절이다
장자를 건지는 것보다 더한 것
즉 나를 위해서 돌아가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날(화) 7월 5일 다른 신이 없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
왜 다른 신이 없는가?
있다 분명히 있다
그 다른 신이 저들끼리는 응답도 하고 벌도 내린다
그런 일이 안 생긴다면 왜 믿는 사람이 생기겠는가?
말세가 되면 사단이 그리스도처럼 나타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따른다고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신을 찾는다
그러나 영매를 위시한 일부 사람들 이외는 그들이 믿는 신을 본 적 없다
만약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시내 산의 강림처럼 했다면 지구는 어땠을까?
산 아래 금송아지 만들던 짓을 했을까?
지금처럼 하나님이 있니 없니 하는 소리 누가 할까?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그래서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권고하신다
하도 다른 신을 쫓아다니는 짓을 많이 하니까 그러신다
이스라엘에는 산당이 즐비했었다
그 말은 그들의 타락한 신앙을 말한다
신들의 신(만주의 주)
왕 중의 왕
왜 이런 표현이 나왔을까?
그만큼 이 세상은 어둠의 주관자들과의 전투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신은 있다
단지 그 신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뿐이다
넷째 날(수) 7월 6일 너희 신이로다
“아론이…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출 32:4).
사람들은 평생을 기다린다
돈을 기다리고 행복을 기다리고
자식들의 출세를 기다리고 오래 살기를 기다린다
그러면서도 죄 많은 세상 빨리 마칠 것도 기다린다
기다림이 지나치면 조급증이 온다
그런 조급증이 만든 것이 애급에서 구원한 신이라 만든 금송아지이다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려 하는가?
내 인격? 아니면 내 재산? 또는 내가 쌓아 놓은 지식과 인맥인가?
왜 좋은 대학을 다니려고 하는가?
그 학교가 배출한 인맥 때문이다
한국은 몇 개 대학의 인맥으로 좌지우지된다
심심하게 들리는 소식 삼육과 비삼육 출신의 대립
그것도 일종의 인맥이다
사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그런데도 시내산 아래에서는 금송아지를 의지했다
저들이 부어 만든 금쪼가리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그런 금 쪼가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학벌에 의지하고 신앙한다
그래서 경배의 대상이 바뀐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른다는데 문제가 있다
다섯째 날(목) 7월 7일 주의 영광을 보이소서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
교과서 내용이다
“금송아지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 전에 언약을 파기했다
언약을 한 것은 애급에서였는데
그래서 장자의 죽임을 면했는데
저들은 창일하는 홍해에서 벌써 언약을 어겼다
단지 그것을 명시한 것이 시내산이라는 것뿐이다
신 9:13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저들은 목에 기브스한 백성들이었다
모든 영광은 저들 몫이어야 했다
그런 백성들을 40년간 지도하던 모세도 이런다
신 31:27
“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날 내가 생존하여 너희와 함께 하여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이런 백성들을 데리고 40년을 여호와 앞에서 살았다
배고프면 원망하고 목마르면 원망하고 전쟁터 바로 앞에서 원망하고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좋은 일이 생기면 저들 몫이라 생각했다
모세는 말한다
내가 살았을 때도 이랬는데 내가 죽고 나면 어쩔거냐?
그런 백성들이 어떻게 진정한 예배를 드릴 것인지 가늠이 안 됐다
저들 세월 얼마 안가서 토라 만들었다
토라 탈무드 교리 다른 것 뭔가?
잣대질 하는 것이요 그 잣대는 남에게는 가혹하고 자신에게는
무한히 관대한 것이었다
이런 백성은 목이 곧은 백성들의 전형이다
남 나무랄 일이 아니다
모세는 묻는다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답하신다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그래서 모세는 자기를 인도하신 그분을 뵙기를 원한다
“주의 영광을 보이소서“
이 말 안에는 많은 뜻을 가지고 있다
주의 영광을 보면 어쩐다는 걸까?
바로 예배를 드리겠다는 표이다
당신의 영광을 보는 순간 우리들의 곧은 목은 부러질 겁니다 라는 말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러신다
출 33: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내가 내 형상을 반포하는 것은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함이다
라고 하신다
즉 복을 주시기 위해서 예배를 원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복 받은 자이다
그것을 종종 우리는 금전으로 환산하려 한다
기독교는 금전으로 신앙을 환산하는 종교가 아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을 일류 대학에 붙여주는 종교가 아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사람에게 돈을 그저 주시는 종교가 아니다
은혜를 베풀고 긍휼을 베풀고 그래서 자기의 부족함을 언제나 알게 하는 종교이다
참 종교는 참 예배는
참 하나님을 알고 그분에게 무한의 존경을 드리는 것이다
고기를 먹을 수 없는 곳에서 고기를 원하는 종교가 아니다
40일을 못 참아서 마음속에 금송아지를 만드는 종교가 아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아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얼마나 증가시키는가?
오래 믿을수록 편파적이 되고
많이 알수록 시장에서 문안 받기를 즐기는 것이 아닌가?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참된 예배 행위는 힘써 여호와를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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