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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구약의 믿음(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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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과 구약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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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첫째 날(일) 어리석은 갈라디아인들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이 구원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이루신 생명(구원)을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볼 때 그 사랑을 선택하게 되고 선택할 때 생명이 됩니다.

 

사람의 선택에 대한 모든 결과를 사람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대속함을 통해 시작된 생명을 여전히 선택할 때만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 속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룬 구원(생명)을 사람의 행위로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어리석게도 갈라디아 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룬 구원으로 시작하였으나 자신들의 행위로 구원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신이 있으므로 자신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본질과 사람의 존재를 유지하는 방법이 하나님께 있음을 망각함으로 인한 치명적 약점입니다.

 

사람의 본질을 지속적으로 알지 못하면 언제나 스스로의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40:6-9)

 

 

둘째 날(월) 성경에 근거를 둠

 

 

구약 성경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수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흔히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품성이 다른 분처럼 생각되어 질 수 있지만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히13:8)십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시고 품성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품성은 사랑입니다.

 

구약에서도 이미 하나님께서 가지신 품성대로 사람의 선택을 책임지시고 그 사랑의 품성을 보여주심으로 그 사랑에 감동하여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촉구하고 계십니다.(창3:21)

 

이런 구약성경을 기초로 바울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설명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셋째 날(화) 의롭게 여김을 받음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아브라함의 경험을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게 됨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이삭에 대한 약속에 대해 믿지 못하는 아브라함을 위해 하나님은 하늘의 별들을 보여주셨습니다.(창15:4-5)

 

그래도 믿지 못하여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자 하나님은 믿음없는 아브라함을 위해 할례를 하도록 하셔서 하나님께서 약속의 아들을 주실것을 믿도록 하였습니다.(창17장)

 

그리고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사라로 바꾸셨습니다.

아브라함이란 이름의 뜻은 “열국의 아비”였고 사라는 “열국의 어미”였습니다.

 

아브라함 나이 99세 사라의 나이 89세여서 인간적 모든 소망이 다 끊어진 상태에 있는 그들에게 열국의 아비와 어미라는 의미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 이름이 참으로 두 사람에게는 어색하여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창17:17; 18:12)

서로가 부를 때마다 민망하게 느낄 수 있는 이름이었지만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어서 서로를 부르고, 이웃 사람들이 부를 때마다 처음의 쑥쓰러움과 민망함이 사라지고 자기의 이름처럼 느끼게 되어 들을수록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이 내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열국의 아비요 어미로서의 소망을 갖게 되었고 드디어 이삭을 잉태하여 낳게 되었습니다.

 

이삭의 출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믿음 없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시고 믿음 주심으로 이루신 결과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을 믿게 된 이후의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자신의 행위를 담보로 의롭다고 믿어주고 시작하십니다.(고전13:7)

 

하나님의 품성대로 자신의 믿음대로 이루어질 것을 “바라시고” 지속적으로 사랑을 쏟아주십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품성을 보고 신뢰하게 되면 순종을 선택하게 됩니다.

 

 

 

넷째 날(목) 저주로부터 구원받음

 

 

율법을 지켜 구원받겠다는 생각은 저주아래 놓여져 있는 상태입니다.

이때의 저주도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로서의 저주 즉 창조전의 상태인 무로 가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 구원받을 수 없음은 인간의 본질을 깨달을 때 확실해 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게 되면 사람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스스로 생명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생명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받아야만 생명 속에 있는 존재인데 생명이신 하나님을 거절하게 된다면 당연히 창조전의 상태인 무로 돌아가 버리게 됩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거절했을 때 아담 뿐 만아니라 아담 안에서 태어날 모든 사람들이 함께 같은 운명으로 죽은 것입니다.(고전15:22)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그때 이미 모든 인류는 죽었고 그것을 성경은 죄라고 합니다.(롬3:10)

 

죽은 자는 없는 자인데 없는 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있는 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의 행위를 통해 우리의 선택에 대한 모든 결과를 대신 하실 수밖에 없으시고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행위를 창조주로서의 기쁨 속에서 당연한 책임감으로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수밖에 없는 구원의 행위를 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안 되는 것을 시도하는 일이고 그 결과는 없는 상태의 지속인 영원한 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저주를 선언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행위를 선택함에 대한 결과로 인한 스스로 저주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시34:21)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우리의 창조주시요, 사랑 그 자체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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