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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복음의 통일성(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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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복음의 통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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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절: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빌2:2)

 

 

첫째 날(일) 연합의 중요성

 

사도바울이 갈라디아교회의 거짓 교사들에 의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베드로와 다른 사도의 가르침과 조화롭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을 때 이 문제는 교회의 연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였으므로 바울은 강력히 대처하였습니다.

 

바울이 초기에 겪었던 문제가 다시 돌출 되자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 후 14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방문하여 자신의 복음을 사도들 앞에서 입증했던 지난날을 다시금 회상합니다.

 

안디옥에서 예루살렘까지의 480㎞ 육로 여행은 적어도 3주간이 걸리는 여행이었습니다. 길고도 험한 이 여행을 감행한 이유는 성령의 권고 때문이었습니다. 긴 여행 끝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자신의 복음을 사도들 앞에서 설명하였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도들의 허가나 승인을 받을 필요성이 있어서는 아니었지만 사도들의 지지와 격려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겼고 사도들의 지지가 여러 가지 논란을 불식시키는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갈라디아교회의 거짓 교사들의 행위는 사도들의 연합과 교회의 연합을 깨뜨릴 수 있는 심각한 행위였습니다.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과거에 이미 사도들에 의해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 지지와 격려를 받았음을 언급함으로 자신의 기별이 사도들이 전하는 기별과 일치함을 증거 하여 교회의 연합을 저해하고자 하는 시도를 차단하였습니다.

 

교회의 연합을 깨뜨리는 것은 사단이 기뻐할 행위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달하고 구원하기 위해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가 분열될 때 가장 효과적으로 교회를 무력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사단은 교회의 연합을 해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입니다.

 

교회에서 분열의 말들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성령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자신들에게 익숙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분열의 위기를 가져옵니다.

 

교회의 연합을 해치는 어떤 시도라도 단호히 그러나 사랑으로 잘 대처해야 합니다.

 

 

둘째 날(월) 할례와 거짓 형제들

 

할례의 시작은 아브라함과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의 표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아들이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여 스스로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얻은 이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아들을 얻게 됨을 할례를 통해 언약을 체결 하셨습니다.

 

할례는 인간이 세운 최선의 계획도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수는 없다는 교훈을 상기 시켰습니다. 외적 할례는 내적 할례의 상징으로 이해되어야 했습니다.

 

할례는 우리 자아에 대한 확신은 벗겨내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겠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시대의 하례는 원래의 의미와 달리 유대인들이 민족적, 종교적 우월성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할례를 구원을 받기 위한 일종의 통행증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갈라디아의 교사들도 할례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되어 버렸으므로 바울은 단호히 대처한 것입니다.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온 것입니다.

할례를 행함으로 구원이 온다는 것은 인간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인간의 본질을 성경은 없는 것으로 밝히고 있습니다.(욥38:37-38)

여호와 하나님께서 티끌을 뭉쳐 흙덩이가 되게 하였고 흙덩이로 사람을 빚으셨습니다.

 

흙덩이인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사랑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생기를 불어넣어주시는 사랑의 행위로 인해 현재 숨 쉬고 살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사람의 행위로 구원받거나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즉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의 생명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나에게 공급됨으로 살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달을 때 나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게 됩니다.

 

할례로 인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됩니다.

 

생명의 문제에 있어서는 할례 뿐만아니라 안식일, 예배, 건강기별 등등 모든 것이 무의미 하며 이런 것들은 하나님과의 생명관계 속에 들어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지 생명을 위한 사람들의 행위로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생명이신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은 구원을 우리가 행위로 얻을 수 없음을 아심으로 사랑의 선물로 주십니다.

 

 

셋째 날(화) 다양성 속에 있는 통일성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자유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입니다. 그것은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께 헌신하며 살 수 있는 기회를 말합니다. 죗된 욕망과 성향의 얽매임으로부터, 율법의 정죄로 부터 그리고 죽음의 권세로부터의 자유를 포괄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는 방종으로 흐르지 않고 그리스도라는 통일성을 갖게 됩니다.

 

복음을 동일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대상에 따라 다양할 수 있습니다.

 

다양함이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통일성과 단순성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넷째 날(수) 안디옥에서의 대면

 

베드로가 안디옥에 방문하였을 때 자연스럽게 이방인 신자들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0장의 경험을 통해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었고 이방인들과 담을 쌓고 지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방인 신자들과 식사하고 있을 때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 신자들이 도착했을 때 베드로는 유대인 신자들의 눈을 의식해 자리를 피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바울은 책망하였습니다.

 

사람의 눈을 무서워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을 허무는 행위에 대해 바울은 그 일이 대단히 잘못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복음이 되었으므로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지적하였습니다.

 

복음을 저해하는 잘못된 전통과 문화를 과감하게 버리는 일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적이고 문화적인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여 복음을 막는 일이 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다섯 째날(목) 바울의 염려

 

베드로가 이방인 신자들과 식사한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방인들과는 식사하지 못한다는 유대인의 전통에 대해 벗어나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문이 열려졌음이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대인의 선민적 사상에서 나온 전통에 얽매어서 외식으로 인해 복음과 현실이 다른 것처럼 보여 지고, 총회의 권위가 무시당하여 교회의 질서가 깨어진 것이 문제였습니다.

 

베드로의 태도가 용인된다면 자칫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분리되어 복음이 힘있게 증거되는데 장애물이 되는 심각한 행위가 되기 때문에 바울은 이 부분을 공개적으로 해결함으로 복음전파의 장애물을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다수의 불의와 저항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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