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바울의 사도적 권위와 복음(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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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과 바울의 사도적 권위와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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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절:“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이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첫째 날(일) 서신의 저자 바울
바울의 글은 교회 역사 초기부터 영감의 글을 기록한 저자로서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바울의 글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익숙한 형식에 따라 서신을 기록하였습니다.
축자영감이 아니라 사상영감이고 글에 영감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기자에게 영감이 주어졌습니다.
바울의 글이 동시대 사람들이 서신을 보낼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형식이었음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바울에게 영감이 주어진 것이지 글 자체에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글을 읽을 때 그 글 속에 담긴 하나님의 품성을 예민하게 생각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기자를 통해 말씀하신 글 속에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요5:39-40; 눅10:26)
둘째 날(월) 바울의 소명
당시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로 인해 바울의 권위가 도전받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기별은 그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단호하게 맞섰습니다.
사도적 권위의 근거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서신의 인사말 보다 다소 길 뿐만 아니라 형식을 달리 했습니다.
당시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사람” 또는 “사자”라는 뜻으로 신약에서 이 단어는 예수님의 12제자와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부터 증인의 사명을 위임받은 자들에게만 엄격하게 적용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도 이 특별한 무리에 속한다고 선언하여 바울의 권위에 대해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맞섰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기별의 중요성과 복음을 수호하기 위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진리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일과 관련된 일에 지도적 책임을 지도록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돕고 결려하며, 힘을 주시기 위하여 제정하신 방법을 거절하는 것이다.”(교회에 보내는 권면, 246)
셋째 날(화) 바울의 복음
바울은 인사말에서 자신의 복음의 핵심 단어 두 가지를 사용합니다.
그것은 “은혜”와 “평강”입니다.
복음의 핵심 진리는 바울의 반대자들이 외치는 율법에 대한 우리의 순종에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 곧 십자가 죽음과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생명적인 일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아담이 하나님을 거절하여 떠날 때 아담 안에서 태어날 모든 사람들도 그때 함께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그 순간 생명의 단절이 온 것이고 하나님과의 생명의 단절은 죽음입니다.(고전15:22)
하나님 보실 때는 이미 죽은 것이고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속을 담보로 생명이 유예 되었을 뿐 그때부터 이미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없는 것이고 죽은 것입니다.
죽고 없는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도 없는 것입니다.(롬14:23)
우리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눈에 보여 지는 허상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는 우리를 생명 속에 있게 할 수가 없습니다.
생명의 문제는 없는 자의 몫이 아니라 있는 자의 목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있는 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만 우리의 생명을 위한 일을 하실 수 있고 우리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만이 우리의 선택에 대한 해결책이 됩니다.
넷째 날(수) 다른 복음은 없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 받는다는 복음외의 다른 복음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사9:6; 요1:1-3)
우리를 무에서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 자유의지를 주셔서 사랑의 참된 교제를 이루고자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당연한 책임감을 창조 전에 가지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창조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창세함으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셨습니다.(계13:8)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절대적 관계가 형성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행17:36)이시어야 하고 우리는 주시는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받아야만 사는 존재들 됩니다.
창조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들은 절대적 관계로 이어지게 되었고 우리의 문제는 곧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문제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지시는 절대적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시는 사랑의 아버지께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모습이 아버지와 아들간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지 못하면 뻔뻔스런 모습이 되지만 아버지와 아들간의 절대적 관계 속에서 이해하면 담대함의 모습이 됩니다.
“다른 복음”은 생명 없는 것에 연결되게 함으로 죽음으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이것을 바울은 “저주를 받을지어다”(8절)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사실 이런 표현은 하나님의 품성적 표현입니다.
사실은 다른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생명과 먼 선택을 하여 결과적으로 죽음 속에 놓여진 것이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품성이라면 사람들의 선택으로 인한 죽음조차도 하나님께서 저주하셔서 죽음 속에 놓여진 것처럼 표현하고 싶어하시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시34:21; 요12:39-41)
다섯째 날(목)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근원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근원이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므로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쁨을 위해 생명 있는 복음을 전하고 있음을 강한 어조로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생명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됨으로 생명력을 느끼고 하나님 품성에 감동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절대적으로 회복되어 생명 속에 있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신임을 위해서 혹은 사람들의 기쁨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명을 소개하고 생명과 연결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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