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과 바울의 사도적 권위와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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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과 바울의 사도적 권위와 복음
10월 8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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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27권 중 13권이 ‘바울'이란 같은 말로 시작된다. 만일 히브리서의 바울 저작권을 인정한다면 신약성경 27권중 14권이 바울에 의해 쓰여진 셈이다. 마태는 단 한 권을 썼고, 누가는 두 권, 요한은 다섯 권, 베드로는 두 권, 유다와 야고보는 각각 한 권씩 썼다. 나머지 사도들은 어떤 종류의 문헌도 우리에게 남기지 않았다. 마가와 누가는 사도들 가운데 들지 않았고 대부분의 정보를 사도바울로부터 받았다. 사도행전은 누가에 의해 기록되었는데, 그 절반 이상이 바울의 체험과 전도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도행전을 바울의 책으로 일컬을 수도 있다. 사도행전은 총 28장 중 17장이 바울의 생애를 다룬 것이며 15장 이후에는 다른 사도들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다른 사도들의 사역은 이제, 이방인들에 대한 바울의 사역의 그늘 아래 사라져버렸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신약성경을 바울적인 책으로 일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은 이방인에 대한 바울의 사역을 두드러지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늘로부터 특별한 계시로 받은 그의 독특하고 색다른 메시지로 인해 다른 사도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율법주의적 교사들의 격렬한 반대를 받았는데, 그들은 바울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그의 사도적 권위를 불신케 하고 그의 은혜의 메시지를 부인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를 고소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그 자신을 변호하고 자신의 권위가 하나님께로서 온 것임을 증명해보이라는 요청에 거듭거듭 직면했다. 그의 여러 서신이 그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선언으로 시작된다. 로마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로 시작된다. 고린도전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로 시작되고, 고린도후서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로 시작된다. 에베소서도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사도로 임명받았다는 동일한 단언으로 시작되며, 골로새서 1:1에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도적 권위를 갖게 되었다고 동일하게 주장하고 있다. 디모데전서는 “하나님과 …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로 시작된다. 디모데후서에서 또 다시 그의 사도적 권위를 주장하며, 디도서에서도 자신이 사도임을 확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갈라디아서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주목해 보라.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갈 1:1)
기억절 :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결론: 바울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사도적 권위로 거짓 교리를 단호히 정죄함으로써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시작하였습니다.
첫째 날(일) 10월 2일
서신의 저자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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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에 등장하는 적대자들에 의해 야기된 혼란의 초래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들은 ‘유대주의자들’로 불리워질 수도 있으나 예루살렘에서 온 보수적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예루살렘 보수주의자들과 같이 그들은 할례와 율법을 요구했지만 혼합주의적 견해를 갖고 있어서 바울이 정말 그렇게 예루살렘과 독립되어 있지 않다고 믿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갈 1장, 2장 참고) 하지만 그들, 적대자가 누구였든지 간에 사도 바울 몹시 자극했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가장 치열한 변호를 시작하게 된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갈라디아서의 편지 구조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감사의 부분이 생략되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갈라디아서는 바울 자신의 복음과 거기에 따르는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론에 집중된다. 이 복음의 핵심은 ‘자유’의 메시지, 사람을 가두는 모든 것, 즉 종교, 인종, 국가, 사회, 성적인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이 자유는 영적인 현상이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1:4 참고) 바울은 이러한 자유를 역설적으로 인간의 경험, 성서의 증거, 제의적 전통, 과거의 친교, 토라 자체까지 끌여 들여 일종의 수사학적 논리의 치밀성으로 변호하려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벧후 3:15).
교훈: 바울은 교회 역사 초기부터 영감의 글을 기록한 저자로서 권위를 인정받았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익숙한 형식에 따라서 서신을 기록하였다.
부가적용)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이 인간적인 기원이나 수단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밝힌다. 이처럼 자신의 사도권을 편지의 서두에서 강조하는 것은 당시 바울이 예수의 열두 제자들 중에 하나가 아니었다는 이유를 들어 바울의 사도성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대주의를 고수하는 거짓 교사들로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을 심하게 미혹(迷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바울은 실제로 예수의 열 한 사도들처럼 예수의 지상 사역을 목격하거나 맛디아처럼 공식적으로 선출되지 않았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였고 이방인의 사도로서 소명을 받았으므로 조금도 사도의 자격에 부족한 것이 없었다(행 9:1-17;26:14-18).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 본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본문은 '알라'(*, '그러나')로 시작되고 있어 바울의 사도권이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되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바울은 자신이 가진 사도권의 기원을 언급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함께 언급하였다. 이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신 분이심을 전제하였음을 보여준다.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의 기원(起源)이 부활하신 주님에 있음을 밝힘으로써 더욱 그의 논지를 분명히 한다. 주의 부활은 당시 초대 교회성도들의 신앙의 근거요 '다메섹의 경험'(행 9:1-18)을 통해서 회심한 바울 자신의 신앙의 근거였기 때문이다.
•영감의 교훈•
▶ 단순한 방법
“오늘날의 교사들은 주님의 가르치신 방법을 본받아야 한다. 신령한 진리는 언제나 단순한 언어로 증거해야만 하며 그렇게 증거할 때에만 진리들이 밝히 이해되고 심령 가운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주위에 몰려드는 군중들에게 설교하셨으며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다 같이 당신의 교훈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261).
둘째 날(월) 10월 3일
바울의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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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강조하고, 그가 가는 곳마다 그의 사도적 권위를 변호해야만 했었는가?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 의해서 선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직접 하늘로부터 사도로 임명을 받았다. 둘째로, 바울의 메시지는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 선포된 사도들의 왕국메시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바울의 사역은 배타적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이방인들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 여러 가지 이유에서 바울은 유대주의 율법주의자들에게 반대를 받았으며 심지어는 예루살렘의 사도들마저 그의 사도권을 의심했다. 그들은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기를 거절했는데 그것은 가룟유다가 자살함으로써 공백이 생긴 자리를 이미 채워 넣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 1:1).
교훈: 바울이 전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기별을 못마땅하게 여긴 신자들이 그의 사도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바울은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을 방어하였다.
부가적용)
바울은 공식적인 사도로 인정받지 못했다. 예루살렘의 회중은 맛디아의 임명을 고수하면서 사도됨을 밝히는 바울의 주장을 일축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율법주의자들의 이런 도전을 받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어디를 가든지 직면하는 문제였으며, 바로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의 권위와 메시지와 사역방법을 끊임없이 변호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제 당신은 왜 바울이 그토록 많은 서신을 자신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선언으로 시작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의 이 서언적인 구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울은'라고 말한 다음 그는 다음의 괄호 속에서 자신의 사도권을 부인하려는 비난자들에게 더 이상 항변할 수 없는 강경한 답변을 덧붙이고 있다. “나는 사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갈 1:1)
•영감의 교훈•
▶ 독단의 위험
“진리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일과 관련된 일에 지도적 책임을 지도록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돕고 격려하며, 힘을 주시기 위하여 제정하신 방법을 거절하는 것이다”(교회에 보내는 권면, 246).
셋째 날(화) 10월 4일
바울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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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와 '평강' 이는 보통의 인사말이 아니라 풍부한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말이다. 구원의 시작은 '은혜'에서 비롯된다. 사람의 공로나 노력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총이시다. 받을 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결과가 '평강'(평화)이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과 평화해야하며, 사람들과의 관계도 평화해야하며,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평화해야한다. 그리고 이 은혜와 평강은 성부와 성자 두 분에게서 나온다. 바울은 바로 뒷 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평강이 임한 위대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말한다.(갈 1:4)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이다. 바울은 갈 1:1절에서 부활을 말했고 4절에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말한다.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갈 1:3).
교훈: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 그의 인사말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기초해 있음을 내비쳤다.
부가적용)
바울은 그의 첫 번째 전도여행 시에 안디옥, 이고니온, 더베, 루스드라 성읍들에서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했었다. 이로부터 각 지역마다 지역교회가 세워지고 장로들이 임명되었으며, 그 교회들마다 새로 발견한 은혜의 자유 속에서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의심하는 거짓 스승들이 들어와서 그의 은혜의 메시지를 배척하고 이 지역의 회심자들에게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경위이다. 즉 이것은, 은혜로 구원받은 다음에는 행위로 보존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율법주의자들의 거짓된 교훈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다. 하늘로부터 계시 받았으나 예루살렘의 율법적인 유대주의자들에게 배척당한 바울의 새로운 메시지는 이러했으니, 이방인들은 전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은혜로 구원받고 은혜로 보존된다는 것이었다. 바울의 메시지에 있어서 핵심적인 단어는 순전한 ‘은혜'였다. 갈라디아서의 핵심적인 대목은 3:10-12이고, 핵심 구절은 2:21이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은혜의 메시지란 예수 그리스도의 어떠하심과 그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믿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가 아니며 선행도 아니며 개혁이나 교육이나 계몽이나 제도가 아니다. 또한 그것은 규례나 의식, 기도나 자선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버림받은 가련한 죄인으로서, 파산하고 아무 도울 자 없는 죄인으로서 나아와, 그분의 은혜로 당신을 구원하시도록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다. 인간은 구원받는데 있어서 어떤 조그만 몫이라도 담당하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당신은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결코 자랑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전적으로 주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 죄인이여, 잠잠히 있으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하라.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명백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교회들의 문제가 여전히 우리들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인가 해야 된다고 믿게금 되어 있다. 인간은 은혜로 구원받는 것 위에 종교나 선행, 교인이라는 신분, 종교의식, 율법의 행위 등을 덧붙인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영감의 교훈•
▶ 오직 은혜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서 성결하여지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동작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나니 곧 위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 능력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오직 그의 은혜만이 죽은 심령의 기능에 생기를 주어서 그것을 하나님께로 즉 거룩한 데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정로의 계단, 18).
넷째 날(수) 10월 5일 다른 복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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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8절에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므로 우리든지, 하늘에서 온 천사든지, 우리가 전한 복음이 아닌 다른 것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현대어성경)’고 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이 본문을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기쁜 소식 외에 다른 것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요컨대, 바울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즉 예수님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전할 경우,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이처럼 심하게 말한 것은, 그만큼 갈라디아교회에 퍼지고 있는 가짜 복음의 영향력이 아주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단(異端)이라는 말은 ‘끝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다른 것은 거의 대부분 다 같더라도, 그 끝이 다르면 ‘이단’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단(異端)의 세력은 기독교를 가장(假裝)해서 기독교를 왜곡(歪曲)시키는 무리라 할 수 있다. 즉, 기독교의 모양을 했으되, 실상은 기독교를 배척하는 세력인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교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기 때문에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저주를 선언하였다.
부가적용)
바울이 이미 전한 복음 외에 다른 것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까지 말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하여 분명하고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 ‘십자가의 구원’을 부정해도 안 되거니와, 이 진리의 말씀에 다른 것을 첨가해도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 ‘십자가의 희생정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온전하게 되어 주님을 닮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영감의 교훈•
▶ 사탄의 대용물
“사탄은 사랑 가운데서 받아들여진 바 되면 진리가 그것을 받아들인 자의 심령을 성결하게 하여 준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는 거짓 교리, 지어낸 말, 다른 복음 등으로 대치하려고 끊임없이 노력 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52).
다섯째 날(목) 10월 6일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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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목사님 딸이 대학에 들어갔다. 얼마 후 대학 선배와 사귀게 되었다. 어느 날, 둘만의 깊은 데이트 시간을 가졌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자 선배는 그녀가 가정에서 배운 것과는 다른 생각을 하도록 말했다. “미선아! 그런 생각은 구시대적인 생각이야! 대학생이라면 11시 넘게 귀가할 수도 있잖아!” 선배가 아무리 그런 말을 해도 그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선배가 실망해서 말했다. “도대체 뭐가 잘못인데. 아무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해! 또한 아무도 그 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도 없어.” 미선이가 말했다. “오빠! 난 아빠 때문에 그렇게 못해.” 그러자 선배가 다시 말했다. “네 아빠가 네게 줄 상처가 그렇게 두렵니?” 그때 그녀가 말했다. “아니. 내가 아빠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려워.”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경박한 두려움’이지만 상처 주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경건한 두려움’이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상처와 고난을 줄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상처를 드릴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성도가 성도답게 살지 않으면 하나님이 상처를 받으신다. 반면에 성도답게 누구나 인정할만한 삶을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고 천국에서 파송된 대사답게 살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교훈: 바울이 정말 사람의 신임을 얻기 위해 그들을 기쁘게 하는 복음을 전했다면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그렇게 강한 어조로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가적용)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은혜의 중요성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은 의인뿐만이 아니라 죄인도 사랑하시며, 우리의 가장 부족하고 취약한 부분을 놀라운 방법으로 사용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야말로 기독교 복음을 설명하는 핵심 원리”다. 모세, 다윗, 베드로, 바울 등 성경 속 인물을 보라. 이들이 살인과 외도, 핍박, 저주 등 큰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유는 우리 중 누구라도 ‘나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못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에 그는 “우리가 아무리 추락해도 하나님의 은혜보다 추락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혁명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흔히 교회를 도덕적으로 바른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교회가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고 필립얀시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 교회의 역할과 관련 오늘날 교회가 점차 사적 집단화되어가고 있고 신자들끼리 서로 ‘우리는 저들보다 낫다’고 여기는 태도가 있는데 이는 반드시 버려야 할 죄인의 태도이다.
•영감의 교훈•
▶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모든 목사에게 엄숙한 책임을 제시해 주었다. 사도는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말씀을 전파해야할 책임을 열거해 주었다. 목사들은 단순히 예언 문제나 성경의 논쟁적인 부분만을 편벽되이 가르쳐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하고 가장 중대한 교훈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신 것
들이다”(복음전도, 199).
예비일(금) 10월 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거의 모든 교회에 유대인 태생의 신자들이 있었다. 유다에서 온 교사들은 이런 신자들에게 쉽게 접근하여 그들을 통해 교회 내에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 성서적 논쟁으로 바울이 가르친 교리들을 폐기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에 바울의 감화력에 대응하고 그의 권위를 약화시키고자 그들은 무원칙적인 수단에 의지하였다. 그들은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그분에게 사명을 위임받지도 않았는데 주제넘게 베드로와 야고보 등 다른 제자들의 교회와 정반대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공표하였다.
…바울의 마음은 교회들을 신속히 파괴하고자 위협하는 악을 보고 분개하였다. 그는 즉시 갈라디아 교회에 서신을 보내, 그들의 거짓 교훈을 폭로하고 믿음에서 떠나간 자들을 엄하게 꾸짖었다”(엘렌 G. 화잇, Sketches From the Life of Paul, 188~18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그대는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각자의 생각을 나눠 봅시다. 서로의 생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➋ 바울은 복음에 대하여 자신과 다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왜 그토록 관용하지 못했습니까? 다른 시각으로 복음을 바라보는 자들에 대하여 그가 어떻게 기록했는지 다시 읽어 보십시오. 오늘날의 교회에서 바울과 같이 강하고 비타협적인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은 어떻게 비춰질까요?
요약: 갈라디아의 거짓 교사들은 바울의 사도직과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그의 사역을 폄하하려고 노력하였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서두에서 이런 비방에 대응하였다. 그는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라고 담대히 선포하였으며, 그의 회심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들이 그의 부르심과 복음의 신적 기원을 증명한다고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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