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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과 이방인의 사도(도입과 부가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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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과 이방인의 사도

10월 1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16분

도입)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선택받은 위대한 사도이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이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에 따라 살지는 않았다. 도리어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교회에 해를 끼친 암적인 존재였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전까지는 유대인들의 기준으로 볼 때 잘 나가던 청년이었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 3:5-6)라고 자랑할 만 하였다. 그러다가 주님을 만나고 보니 그동안 살아온 삶은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것뿐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빌 3:7-8) 여긴다고 하였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비로소 그는 인생의 목적을 깨달았다.

기억절 :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결론: 아직 미약한 초대교회는 애국자 다소 사람 사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의 변화로 말미암아 이방인을 위한 선교에 큰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날(일) 9월 25일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자

도입)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에 있는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한다(행9:1~2). 그리고 그것을 지참하고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가기 위해 다메섹으로 간다. 그렇다면, 그 공문이라는 것은 체포영장에 해당하는 사법적인 권한이 있는 문서라는 인상이 짙다. 이런 권세 있는 문서를 지참하고 다메섹으로 가던 그는 다메섹에 가까운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나타난 부활하신 주와의 대면 이후 급변하여 핍박자에서 전도자로, 잔해자에서 증거자로 변했다(행9:3이하및 20). 이렇게 돌변한 바울의 모습을 두고 후세대의 독자들은 핍박자요 잔해자였던 사울이 부활하신 주를 만난 후 돌이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죄사함받아 변하여 그 후로는 주를 박해하던 일에서 주를 증거하는 일을 하게 된 사람으로서 그 이름을 사울에서 바울로 개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행 6:13).

교훈: 스데반은 율법과 성전을 무시한다는 죄목으로 순교를 당했지만, 박해자 사울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부가적용)
스데반이 말한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로 시작되는 세 구절(행 7:51-53)은 그들의 마음이 톱으로 절단되는 것과 같이 그들을 찔렀고, 그들은 이를 갈았다(행 7:54). 스데반의 세 마디는 종교인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쳤다. 스데반을 성밖으로 내치고 돌로 내리 찍으며 옷을 벗어 청년 사울의 발 앞에 두었다. 돌을 맞으면서도 스데반을 크게 외쳤다. “주 예수여, 내 영을 맏으시옵소서” 그리고 이어서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잠이 들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사울은 이때 스데반 안에 조성된 말씀과 말씀을 선포하는데 있어 담대함과 타협하지 않음 그리고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 등 몇 가지에서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비록 이 때는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지만(행 9:1), 그 이후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사흘동안 눈멀어 아무 것도 보지 모샇게 되었을 때, 스데반이 순교할 때 그 장면을 다시 연상하며 깊이 묵상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후 사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것은, 스데반 순교 이후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후 바울이 된 사울의 삶은 스데반에게서 본 짧고 강한 인상이 남은 생애 동안 그에게 연장된 일생이 되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잡으러 다니던 사람이 오히려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구원 받을 것을 말했으며(롬 10:13), 무엇보다도 진리에 대한 타협없는 올곧음이 그 일생의 일관된 논조가 되었다. 그가 주님을 만났던 거리의 이름이 직가(Straight)이었다. 우리가 한 말들과 행동들이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많은 우리들로서 타협되는 생활로 진리가 왜곡되어 표현될 때, 그리스도인들을 지켜보는 이방인들은 겉으로야 웃을지라도 오히려 속으로 비웃고 가볍게 여길 것이다. 스데반은 순교하면서 시대를 전환할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스데반처럼 순교는 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의 삶에 있어서 순교와 같이 항상 소금이 쳐진 생활은 단 한순간도 보류할 수 없을만큼 긴급한 필요이다.

•영감의 교훈•
▶ 박해의 동기
“스데반의 심문과 죽음의 광경에서 사울은 광적인 열성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 후에 사울은 스데반이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분노를 느꼈다. 사울은 계속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여 교인들을 박해하고, 그들을 그들의 집에서 잡아다가 투옥하고 죽이도록 제사장들과 관원들에게 넘겨주었다”(사도행적, 101).

둘째 날(월) 9월 26일
사울의 회심

도입)
사울은 유대인이었으나 유대지방이 아닌 다소 출신으로 로마시민권을 가진 상류계급의 엘리트 청년이었다. 율법을 신봉하는 바리새퍄에 속한 사울은 감히 하나님의 아들을 사칭하는 예수를 용서할 수 없었다. 또한 예수가 죽은 후에도 그를 추종하는 세력을 가만히 둘 수 없다. 그리하여 남녀를 막론하고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사울은 예수와 관련된 모든 자들을 예루살렘 감옥에 잡아들였다. 그러던 사울이 다메섹에서 그가 핍박하던 예수를 만나 극적인 회심을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사울의 개종을 오순절 이후 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믿고 있다. 누가는 이 사실을 사도행전에서 세 번이나 기록하고 있어, 이 일의 중요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하나님의 택한 그릇,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그릇으로서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엄청난 체험을 하게 되며 그 후로 인생이 바뀌어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9:5).

바울이란, 작은 자란 뜻은 실제로 그가 이방인의 대사도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큰 그릇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체는 매우 작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울이 회심하고 다메섹에서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 아들이심을 전파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많은 유대인들을 굴복시키자, 그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공모를 피해 광주리에 그를 담아(in a basket) 성에서 달아 내렸다는(행9:25) 기사를 보면, 그가 광주리에 들어갈 만큼 체구도 작고 몸무게도 적게 나가는 왜소한 사람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교훈: 성령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노력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극적으로 회심하게 되었다.

(부가적용)
다메섹 도상에서의 바울의 회심 사건은 사도행전에서 총 세 군데에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각각 9:3-19, 22:6-16, 26:9-23 이다. 처음 부분은 누가가 약술한 것이고, 나머지 두 부분은 바울이 직접 진술한 것이다. 세 군데가 상세한 부분은 일치하지 않지만 모두 중요한 대목은 일치한다.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잡아들이기 위하여 그곳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러서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더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 듣게 된다. 그와 같은 극적인 만남으로 인해 바울은 180도 바뀌어 다른 사람이 된다. 회심 전에는 하나님을 섬기던 율법적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회심 후에는 복음 안에서의 신앙관을 갖게 된다. 즉 그도 그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의 회심은 바울 자신의 주관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를 쓰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유대를 넘어서 헬라와 전 세계로 이어질 복음의 확산을 위해 그런 그의 소명을 위해 하나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친히 그를 찾으시기 전부터 이미 그를 택정하셨다는 것을 뜻한다.(갈 1:15,16. 그의 생애를 보면 이는 더욱 확실해진다.“사도 바울이 회심하고 사도가 된 경위를 잘 생각해 보면, 그 사실만으로도 기독교가 하나님의 계시의 산물임을 입증해 주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로드리텔톤, 1747).

•영감의 교훈•
▶ 진실에 눈을 뜨다
“이제 사울은 예수의 제자들을 박해함으로 실은 사탄의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의와 의무에 대해 가졌던 그의 확신은 모두 제사장들과 관원들에 대한 맹신에 크게 기초되었음을 알았다. 그들이 부활의 이야기는 제자들이 교묘히 날조한 것이라고 그에게 말했을 때에 사울은 그들의 말을 믿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지금 친히 나타나 서 계셨으므로 사울은 제자들의 주장이 진실함을 확신하게 되었다”(사도행적, 115).

셋째 날(화) 9월 27일
다메섹으로 간 사울

도입)
예수님께서 부르신 사울은 부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죽이는 극악한 죄를 저지른 자이다. 그에게는 살인의 냄새가 풍겼다. 그는 성경을 배웠기에 누구보다 자기가 잘났다는 생각을 하고 산 사람이다. 열심도 특출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를 잡으려 온 지역을 휩쓸며 다녔다. 그의 오만함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겼다. 그러니 살기가 등등해 예수 믿는 자들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것이다. 아마도 우린 다른 사람은 다 믿어도 그 사람은 예수를 안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울이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쓰시기 원하신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교훈: 박해자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 제자 바울이 되었을 뿐 아니라, 복음을 이방 세계에 전하도록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부가적용)
사람은 각자마다 할 일이 있다. 또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다 다르다.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의 뜻을 따라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이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다 부르시고 계시고 주님께 오는 사람을 귀하게 쓰시기를 원하신다. 사울은 예수님께 적대하는 사람이었지만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빛으로 거꾸러뜨리시고 주님의 일군으로 삼으셨다. 주님을 적대하는 사람들을 거꾸러뜨리는 방법은 빛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한 빛, 말씀의 빛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쓰신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표상이다. 주님의 사업에 원수가 된 사람들도 구원을 받게 하고 자기 의에 미쳐 날뛰는 바울 같은 사람을 보시고도 나의 택한 그릇이라 하셨다. 모든 사람이 주님의 택한 그릇이 될 수 있다.

•영감의 교훈•
▶ 철저한 회심
“그는 그의 과거의 경험을 조용히 회고하였고 완전히 회개하였다. 그는 그의 회개가 가납되어 그의 죄가 용서받았음을 알 때까지 마음을 다하여 쉬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찾았다. 그는 예수께서 장차 그의 봉사에 그와 함께하신다는 보증 얻기를 갈망하였다”(사도행적, 125).

넷째 날(수) 9월 28일
이방인에게 전파된 복음

도입)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전통과 율례와 법도 때문에 바울을 통해 전해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배척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았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의 빛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사도 바울이 생명을 아끼지 않고 복음 전파의 삶을 살았던 것은 이 일이 주님께서 주신 명령이기 때문이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 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걸음을 내 딛기는 했지만, 여전히 저들은 선민 이스라엘의 담장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저들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고 그리고 그 회당에 모이는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사는 소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복음은 이방인들에게 전해졌다. 이것은 주님의 섭리하심이었다. 기독교 역사상 고난과 박해는 성도와 교회를 정결케 하고 더 성숙케 했다.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 13:2).

교훈: 박해를 피해 이방인 땅에 최초로 세워진 안디옥 교회는 복음을 이방 백성에게 널리 전파할 수 있는 전초기지로서 훌륭한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부가적용)
로마시대 3대 도시 중 하나이며 복음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한 좋은 도시인 안디옥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처음으로 믿기 시작했던 현장이기도 하다. 안디옥은 예루살렘의 북쪽 방향으로 5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안디옥은 교통의 중심지로서 지중해 쪽과 소아시아 지역으로 뻗어 나가 있었다. 이 길은 동방으로 향하는 실크로드와도 연결이 되었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안디옥은 선교 중심지로써 적합한 곳이었다.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온 3년 뒤에 예루살렘을 첫 방문한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 다소가 포함되어 있는 길리기아와 시리아 지역에 가서 전도활동을 했다. 이 때 안디옥에서는 많은 크리스쳔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는 안디옥에 바나바를 파송한다. 바나바와 바울은 1차 예루살렘 방문 때 서로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바나바는 다소에 있었던 바울을 불러 아마도 함께 동역을 하자고 요청을 한 것 같고, 바울은 그 요청에 응해서 안디옥으로 왔다.

•영감의 교훈•
▶ 외국인에게 전도함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라서 먼 나라에서 충실히 일해야 하지만 역시 가까이 있는 도시와 마을과 촌락에 거주하는 여러 민족의 외국인들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그리스도인 선교봉사, 199).

다섯째 날(목) 9월 29일
교회 내의 갈등

도입)
유대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지닌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 교회를 찾아왔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율법을 준수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물의를 일으켰다. 이에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에 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바울 일행을 예루살렘 교회로 보낸다. 예루살렘 교회는 모교회이다. 그 모교회에서 온 판결문을 읽고 안디옥 교회는 상당히 기뻐한다. 자신들이 지고 있던 율법의 멍에를 벗어 던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강한 역사와 임재를 느끼게 해주는 영적인 지침서인 반면...한편으로는 아주 지극히 현실적 감각을 조명해 주는 삶의 안내서이기도 하다. 죽은 자를 살리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이 일어나는 현장에 율법의 기준에 대한 명확한 해석에 대한 이견이 일어나서..이 일로 인해 상처 받는 이가 있고 상처 주는 이가 있고, 또 그것을 경영과 토론을 통해서 정리해 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베드로가 일어나 고넬료 가정의 예를 근거로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아무 조건이나 차별 없이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 성령을 선물로 주셨음을 강조하며 베드로의 입술을 통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론의 위대한 핵심교리가 고백되고 있다.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행 15:2).

유대로부터 온 신자들은 안디옥의 이방인 신자들을 위한 바울의 사역에 어떻게 대응하려고 시도하였는가?(행 15:1~5)
예루살렘 총회가 할례의 문제에 관하여 바울의 손을 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사역에 대한 반대는 계속되었다(행 15장). 7년 뒤 바울이 예루살렘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에도 많은 이가 그의 복음에 대하여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행 21:28)라고 비방하는 바람에 바울이 거의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행 21:20~21 참고).

교훈: 믿음만으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 바울의 복음은 일부 유대인 신자들에게 반대를 당하였다.

부가적용)
바울이 이방에 사는 많은 유대인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그 가르침이 문제가 되었다. 바울이 모세를 배반하여 할례를 하지 말고, 율법을 지키지 말라 했다고 오해한 것이다. 바울이 율법으로나 할례로 의롭게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가르친 것은 사실이지만, 모세가 율법을 배반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바울이 전하는 참뜻은 율법을 파기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것을 완성시키려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는 유대인들조차 바울이 모세의 적이라는 관념을 지니고 있었고 바울에 대해 격분하였다. 그곳에 배석해 있던 장로들은 바울을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그를 형제라고 불렀지만, 그들이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바울에게 호감을 가지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몇 몇 유대인들이 바울을 비판하기 때문이었다.

•영감의 교훈•
▶ 걸림돌
“제사장과 랍비들은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이 만든 여러 규정을 많이 만들어 냈다. 이 규정들이 더욱 엄격하여질수록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더욱 적게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결함을 의식의 다과(多寡)로 측정하였으나, 마음은 자만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시대의 소망, 29).

예비일(금) 9월 3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교회 증언 3권, 430~434 “개인의 독립심”, 재림교회 성경주석 11권,
228~240.

“바울은 전에 열렬한 유대교의 옹호자요 예수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데 지칠 줄을 모르는 사람으로 알려졌었다. 용기, 자립적인 정신, 끈기, 재능과 훈련 등 그는 거의 어떠한 일에도 종사할 수 있었다. 그의 논리에는 비범한 명석함이 있었고 그의 풍자는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제 유대인들은 특출하게 전도유망한 이 젊은이가 전에 박해하던 사람들과 연합할 뿐 아니라 담대히 예수의 이름으로 전도하는 것을 보았다.
…주께서는 다소 사람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쉽게 죽이실 수가 있었다. 그리 하였더라면 박해의 세력은 크게 그 힘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 사울의 생명을 아끼셨을 뿐 아니라 회개시키심으로 그 용사를 적진으로부터 그리스도의 편으로 옮기셨다. 단호한 목적과 불요불굴의 용기를 가진 웅변가요 통렬한 비평가인 바울은 초대 교회가 필요로 한 모든 자격을 구비하고 있었다”(사도행적, 12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예수님을 믿는 동료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취했던 과격한 반대로부터 우리가 배워야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➋ 우리가 종교적인 원칙에 굳게 섬과 동시에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약: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과의 조우는 바울의 생애와 초기 교회 역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하나님은 과거의 박해자를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변화시키셨다. 바울의 복음에 난색을 표한 교회 내 무리들은 선입견과 편견이 선교에 어떤 장애가 되는지 보여 주는 좋은 실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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