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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과 태초에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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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과 태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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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1:16)

 

 

 

첫째 날(일) 창조주간

 

창세기 1장 1절은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한 문장으로 서술한 것입니다.

 

욥기가 창세기보다 먼저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창세기를 성경의 첫 번째 책으로 편집한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혹은 성경이 어떤 책인가를 알기 원해서 성경을 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문제를 바로 알려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로 인한 것 같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문제를 단순하면서도 확실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밝히면서 성경을 시작하신 이유는 하나님과의 분리(죄)가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는 선택을 함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루스벨은 하나님께서 창조주 되심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지위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천사의 위치였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함으로 자기의 피조 됨을 망각한 채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유6)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이 되었고 하나님을 떠난 마귀가 되었습니다.

 

루스벨의 선택은 처음부터 예상 할 수도 있는 창조의 부작용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만이 생명임을 아심으로 사랑의 특성상 강제할 수 없는 속성대로 피조 된 존재들에게 강요가 아닌 선택의 자유의지를 주심으로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선택함으로 사랑의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으로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유의지는 사랑을 선택하고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의지로 사랑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절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이기 때문에 오용함으로 인한 부작용도 있을 수 있는 어찌 보면 매우 위험하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피조 된 존재들이 존재의 방법을 거절하는 선택을 함으로 창조 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릴 수 있는 부작용을 처음부터 안고 시작한 창조였습니다.

 

그러나 창조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음을 알았고 그 부작용이 있게 된다면 그 모든 선택의 결과를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시기로 작정하시고 시작한 창조였습니다.

 

그런데 우려하던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없었던 존재를 창조함으로 존재하게 된 천사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루스벨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서 찾지 않고 스스로에게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없었던 상태에서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창조의 과정을 알 수도 없는 존재가 존재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해석을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로 하나님께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잘 알지 못하지만 스스로 존재하였다고 선택하였습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해석이 가능한 두 가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음을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지만 받아들이고 선택하는 방법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음을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했으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잘 모르지만 원래부터 스스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믿는 것입니다.

 

루스벨은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스스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선택하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자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과 절대적 관계 속에 엮여 있을 존재가 아니라 상대적 관계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님이 가지신 지식만 가진다면 굳이 하나님과 함께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순간 여호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는 절대적 관계에서 상대적 관계로 바뀌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분리의 이유가 되었고 그 분리로 인해 창조를 받아들이지 않게 함으로 창조 전의 상태(무)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여자가 하나님을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 이유도 사단의 거짓말에 의한 것이므로 동일 할 수밖에 없습니다.(창3:4-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이므로 하나님을 떠나서도 결코 죽을 수 없다는 말)

 

이것이 사망, 죽음, 무로 돌아가는 원인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을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밝히고 시작하고 있으며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 외의 모든 존재들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창조주께서 주시는 사랑과 생명과 호흡으로만 살 수 있는 절대적 관계 속에 놓여 진 존재임을 깨닫게 하여 영원한 생명의 관계가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록의 순서를 바꾸면서까지 창세기 1장 1절이 성경의 제일 첫 번째 위치에 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고 매 순간 우리의 생명 에너지를 주시는 분임을 가리키는 날이므로 하나님께서 매우 큰 의미가 있는 날이고 그래서 사단은 철저히 안식일을 파괴하고 잊여 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한 문장으로 천명하신 하나님께서는 1장의 창조주간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가 우연이나 즉흥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의 계획대로 이루어진 창조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 날(월) 창조주의 마음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라는 진리가 밝혀졌다면 왜 하나님은 창조하셨을까를 생각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품성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속성은 사랑을 주고 싶어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간의 주시는 사랑으로 인한 생명력 충만한 행복이 또 다른 생명력 넘치는 행복을 나누고 싶은 갈망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사랑할 대상을 창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사야 43장 7절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바로 사랑하기 위함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를 오게 하라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의 영광(품성)을 위하여 창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인 절대적 사랑을 쏟을 대상을 만들고 사랑의 주고받음을 통해 생명력 넘치는 행복을 나누기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개인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셋째 날(화) 하늘의 선포

 

 

하늘이 하나님의 품성을 선포합니다.

 

모든 창조물들이 하나님의 품성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외치고 보여줍니다.

 

하나님과의 분리로 인해 많은 부분 훼손이 되었지만 여전히 천연계는 하나님의 품성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선포하는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보여주는 천연계를 찾고 감상하고 느끼는 것은 우리들에게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인한 말할 수없는 행복과 생명력 충만을 느끼게 합니다.

 

 

 

넷째 날(수) 십자가와 창조

 

 

성경이 창조주와 구속주를 결부시키는 이유는 창조주는 구속주가 되심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속성상 자유의지가 전제되어야 함으로 자유의지로 인한 부작용을 여호와 하나님은 해결하셔야만 했습니다.

 

창조의 부작용인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스스로의 생명이 없는 존재들이 창조 전의 상태로 갈 수도 있는 선택에 대해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창조하시기 전에 창조의 부작용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신 지시는 구속자가 되길 평화의 의논(슥6:13)에서 합의하셨고 창조하시는 여호와(예수님)께서 모든 책임을 지시기로 확정하시고 창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창세함으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계13:8)이 되셨고 우려 했던 창조의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이미 준비된 구속의 계획(창3:15)을 발표하셨고 구속의 계획에 대한 실행에 대한 보증을 하나님께서 직접 어린 양을 잡아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는 행위(창3:21)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피조 된 자의 선택에 대한 사랑의 책임지심의 모습입니다.

 

사망을 선택한 사람대신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대신 사망을 당하는 십자가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다운 공의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다섯째 날(목) 창조와 재창조

 

창조로 인해 창조주가 되신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를 거절하는 아담의 선택으로 인해 창조전의 계획대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으로 구속자가 되셨고 하늘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중보하시다가 선과 악의 대 논쟁이 마쳐지게 되면 다시금 재 창조의 역사를 통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시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재 창조를 생각할 때 진화론은 전혀 믿을 수 있는 이론이 아님이 분명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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