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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과 전도와 증거의 생활

 

 

기억절:“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9:36)

 

 

* “문제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가?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전하고 있는가?’에 있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있는가?’에 있다.”(교과, 50)

 

 

 

첫째 날(일) 말 없는 설교

 

작심하고 빤짝할 수는 있지만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속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이론이나 지식 아니라 생명이신 하나님입니다.

 

생명없는 이론이나 지식은 교만하게 할뿐(고전8:1)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체면이나 사람들의 눈초리를 의식함으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포장하여 보여줄 수는 있지만 마음으로부터의 변화가 아닌 것들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그 내면이 무엇임을 드러내게 됩니다.

 

사람의 본질은 하나님 보시기에 이미 죽은 존재입니다.(고전15:22)

 

죽은 자의 행위는 아무리 포장한다 할지라도, 이론이나 지식으로 드러내고자 할지라도 여전히 죽은 행실일 뿐입니다.(히6:1)

 

이것을 예수님은 나무와 열매의 관계를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마7:16-18)

 

어떤 나무냐에 따라서 그 나무의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 없는 죽은 사람은 아무리 포장하여도 죽은 사람일 뿐입니다.

 

하나님 없는 죽은 사람의 행위는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망입니다.

 

하나님과의 절대적 관계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주인이 되실 때 하나님의 모습이 나를 통해 드러납니다.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을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하게 하십니다.(요일4:7-8)

 

사람들이 변화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을 나를 통해 볼 때 나를 변화시키고 계시는 하나님을 주목하게 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마5:16)

 

 

“복음의 위력은 우리가 말로 전할 때보다 우리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삶으로 전할 때 훨씬 강력하다”(교과, 52)

 

“인간의 궁핍과 고난과 권리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종교는 거짓 종교이다. 가난한 자들과 고난 당하는 자들과 죄 많은 자들의 요구를 무시할 때, 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자들임을 입증하게 된다. 그리스도교가 세상에서 이처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실제의 생활에서는 그분의 품성을 부인하기 때문이다.”(산상보훈, 137)

 

 

둘째 날(월) 긍휼의 마음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 하나님을 개인의 구주로 선택함으로 하나님의 생명속에 있길 원하십니다.(겔33:11)

 

내가 하나님의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사랑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처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사랑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알게 될 때 하나님과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창조주와 구속주로 절대적 관계에 있음을 확신하게 될 때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창조주시며 구속주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창조주요 구속주이시지만 알지 못하고 듣지도 못한 채,

죄의 본성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안타까움을 우리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알게 된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싹틀 때 하나님의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업에 동참하는 일꾼이 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우리를 통해 드러날 때 사람들은 선한 감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셋째 날(화) 그들의 입장에 섬

 

 

 

복음에도 섬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복음을 들어야 하는 대상의 입장에 서야만 그들을 이해할 수 있고 공감이 될 때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도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상을 꿈에 보여주심으로 그와 만나셨습니다.

 

우상을 통해 느브갓네살을 만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때에 하나님의 크심을 보게 됩니다.

 

우상의 본질이 생명 없음이므로 우상을 철저히 경계하셨던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을 만날 때의 첫 접촉점이 우상이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우상의 영향력에 깊이 빠져 있는 느브갓네살에게 가장 인상적인 감화가 지속되게 하기 위해 세상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을 우상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철저히 느브갓네살의 입장과 수준에 맞추어 생명 없는 우상으로 처음 만남을 시작하셨지만 시간이 더해 가면서 생명이신 창조주 하나님 자신에게로 이끄셔서 생명이 연결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단4:34-35. 37)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염려와 필요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교과, 56)

 

 

넷째 날(수) 친절한 삶의 방식

 

 

“친절이란 용납, 환대, 개방성, 돌봄, 관대함, 다정함, 우정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속성들이 그리스도인들 상호 간에 관계와 그들이 주께로 인도해야 할 자들과의 관계를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나길 바라신다.”(교과, 58)

 

교회에 입교하게 되는 사람들을 분석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입교하게 되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성 안에서 점점 새로워지고 점점 더 신사 숙녀가 되어 질 때 더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될 것이고 좋은 친구의 관계가 더 좋은 친구인 예수님과 사귀게 합니다.

 

재림교회의 특별한 진리들이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에 벽을 만들고 우리를 고립되게 하는 것으로 전락한다면 복음은 잘 전달되지 못할 것입니다.

 

재림교회의 특별한 진리들이 세상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고 하나님께 대하여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 가교 역할이 되게 할 때 복음이 잘 전달됩니다.

 

재림교회의 특별함을 사람들에게 “유별남”으로 생각하게 하거나 “까다로움”으로 인식하게 했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 못입니다.

 

재림교회의 특별함은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특별히 소중한 진리로서 느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함을 전하는 우리들이 사람들에게 특별히 소중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특별히 소중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람들을 특별히 소중하다고 느끼고 있음을 사람들이 알게 될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매일의 생애에 예시된 그리스도의 종교는 가장 훌륭한 웅변으로 된 설교보다 십배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교회증언 4권, 547)

 

 

다섯째 날(목) 우정의 범위를 넓힘

 

 

“수 많은 재림신자들이 외부와 의미 있는 교제를 거의, 아니 전혀 나누지 않는다. 세속의 감화를 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같은 고립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별을 전하는 우리의 능력을 약화시킨다.”(교과, 60)

 

“우리 각자의 과제는 계획적으로 우리의 선교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비교인들과 어울리기 위해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이는 원칙과 신념과 가치관을 양보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진리의 통로가 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찾으라는 뜻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오라고 초청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가라고 우리를 보내신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음으로 전도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교과, 60)

 

요즘의 세상이 너무나 어두워져서 작은 빛으로도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빛이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얻어진 빛으로 지혜롭게 그 빛이 지속되게 해야 합니다.

 

반사하는 빛이 사람들에게 끄고 싶게 만드는 불편함의 빛이 아니라 더 큰 갈증을 느끼게 하고 그 반사된 빛을 통해 빛이신 하나님께로 가고 싶은 욕구가 들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사된 빛이 지속적으로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야만 하고 주시는 지혜로 사람들이 반사되는 빛을 오해하거나 불편해 하지 않도록 좋은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별됨으로 벽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구별됨으로 더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눔과 섬김이 더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되게 합니다.

 

친구라는 확신이 들게 될 때 친구가 가진 빛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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