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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과 사랑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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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과 사랑의 반응

 

 

기억절:“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우리는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하지만, 우리가 어떤 동기로 그 일을 하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교과, 134)

 

“우리의 전도와 증거 활동의 주된 동기는 죄책감이나 단순한 의무감 또는 빚진 마음이 아니라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이어야 한다.”(교과, 134)

 

 

 

첫째 날(일) 사랑의 동기

 

 

하나님의 품성을 알 때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원자로 선택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생명의 관계가 됩니다.(요일5:11-12)

 

 

사랑의 동의어는 생명입니다.(요일4:18, 요14:6)

사랑이신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의 반응이 생명력을 가져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서만 일깨워집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할 때 두려워집니다.(요일4:18)

두려워지면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을까 고민하게 됩니다.(눅10:25)

 

순종이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순종을 선택하게 합니다.

사랑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을 통해서만 제대로 사랑의 관계가 형성됨으로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주셨고, 자유의지의 속성상 강제가 아닌 마음의 자발적인 선택을 위해 하나님은 사랑을 보여주셔서 선택하도록 도우십니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랑은 사람으로 반응하게 하고 행동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함이 아닌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보고 깨닫고 받아들일 때 그곳에는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참여와 헌신과 봉사와 전도가 일어납니다.

 

사랑을 나약한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랑은 예수님 자신의 생명도 바칠 수 있는 강력한 힘입니다.

사랑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사람은 애초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날(월) 죄책감으로 하지 않음

 

 

오랫동안 죄책감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로 사용되었지만 그것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전도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에 대한 책임감으로 해야 할 것처럼 들어왔지만 이런 방법은 하나님께 빚진 마음과 죄책감에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빚진 마음과 죄책감으로 전도한다면 그것은 바른 모습이 아닙니다.(마7:22-23)

 

빚진 마음과 죄책감으로 아무리 많은 행위를 주의 이름으로 한다할지라도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하나님께 한 것이 되고 맙니다.(고후11:4)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상대적 사랑을 기대하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롬5:8)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이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죽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에 대한 확신이 두려움으로 인한 봉사에서 벗어나게 합니다.(요일4:18)

 

 

셋째 날(화) 섬김의 동기

 

사랑은 주고 싶고 섬기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크고 절대적이므로 하나님은 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마20:28)

 

우리가 받는데 익숙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져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 안에서 배우게 되면 우리들도 섬기고 싶어집니다.

 

주고 싶고 섬기고 싶어지는 것이 나의 삶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것이 되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랑이 내 속에서 내 삶을 주관하도록 하나님 중심의 삶을 늘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주인이 되시면 하나님의 섬김을 할 수 있게 됩니다.(요14:10)

 

 

넷째 날(수) 율법주의의 함정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에 합당해지려고 노력하는 많은 이들의 생각의 저변에는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교과, 142)

“율법주의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 인간을 어느 정도 의롭게 한다고 믿는자들의 태도를 말한다.”(교과, 142)

 

글로서의 율법을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시도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나면서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자로서 모든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므로 죽은 자가 율법을 순종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죽은 자의 행위이므로 그것도 역시 죽은 행실일 수밖에 없습니다.(히6:1)

 

 

죽은 자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은 하나님 것이고 그 생명과 동의어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생명 없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곧 생명이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셔서 그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선택함으로 결국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므로 율법을 글자로서가 아닌 하나님의 품성인 사랑을 율법의 글을 통해 깨닫고 받아들이게 될 때 율법주의자가 아닌 율법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만나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선택하는 생명의 도구가 됩니다.

 

생명 없는 율법주의자로부터 생명이신 하나님을 율법을 통해 만남으로 율법의 테두리 안에 살기를 선택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가 형성된 사람만이 생명이신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와 순종이 어느 정도 우리의 구원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은 복음에 대한 큰 오해이며, 증거와 전도 활동에서 배제해야 하는 생각이다.”(교과, 142 교훈)

 

 

 

다섯째 날(목) 종이 될 자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종이 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받아들일 때 우리도 즐겨 하나님의 사랑의 생명을 전달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고 싶어 합니다.

바울과 디모데, 베드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즐겨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강제하거나 무서워서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섬기고자 하시는 사랑을 깨닫고 체험할 때에 우리도 나의 자유의지로 즐겨 섬기는 자리에 서고자 합니다.

진정한 사랑, 절대적 사랑은 섬기고 주고 싶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위해 즐겨 하나님의 사랑의 종이 되기로 선택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받아들여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선택할 때, 나의 죄의 본성 속에 나의 삶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쳤던 상대적 개념의 사랑을 행하는 사람으로부터 해방되어 절대적 사랑의 원칙(고전 13장)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력 충만한 진정한 자유인이 됩니다.(요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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