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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과 거룩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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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과 거룩한 삶

 

 

기억절:“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살전4:7)

 

 

 

첫째 날(일) 더욱 많이 넘치게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아 교우들과의 그동안의 신뢰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권면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에게서 배운 진리 안에서 계속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생명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됨으로 인해 데살로니가 교우들이 하나님 안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바울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우들이 성장하기 원했던 내용은 살전 3:11-13의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 그것은 피차간에 “사랑”과 “거룩함”이 더욱 많아지는 것이었습니다.

 

피차간의 사랑과 거룩은 사랑이시며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절대적 교제와 관계를 통해서만 나오게 됩니다.(요일4:7-8)

 

 

둘째 날(월) 하나님의 뜻: 거룩함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우들에게 권고한 거룩이란 음란을 버리고 자신의 몸을 잘 간수하는 것입니다.

성화에 대한 대표적 정의는 “거룩한 쓰임을 위해 따로 둠”입니다.

 

바울은 이 말을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데살로니가인들이 머물러 있어야 하는 상태여야 함을 이야기 했습니다.

 

거룩하다는 결과가 보다는 거룩하게 되는 과정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거룩함에는 음란을 버리는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셋째 날(화) 이방인들과 같지 않게

 

당시 이방인들의 성적인 규범은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마음에 끌리는 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성적인 방종에 대하여 강력히 권고하였습니다.

바울이 제시하는 성적 타락에 대한 해결책은 “자기의 그릇을 소유”하는 것이었습니다.(살전4:4)

 

이 말의 의미는 “자기 몸을 간수하다”라는 의미로서 어떤 경우든지 그 당시의 도덕적 태만함에 맞서서 보통 사람들의 문화적 사회적 모습에 흡수되지 말고 거슬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도덕관에서 살아야 됨을 말합니다.

 

세상에 처해 살 수밖에 없지만 세상에 속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다수가 “예”라고 말할 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아니오” 라고 말 할수 있어야 하고 다수가 “아니오”라고 말할 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예” 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인한 믿음으로 인해 나타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될 때 하나님 편을 선택하게 됩니다.

 

 

넷째 날(수) 하나님의 계획대로

 

성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이 배제된 성은 파괴적이고 억압적이고 이기적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멀어지게 하고 허무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중심이 된 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기희생적 사랑의 상징이 됩니다.

성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된다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나누고자 하는 사랑과 친밀감이 어떤 것인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냅니다.

 

 

다섯째 날(목) 자기 일을 하라

 

사랑에 대한 헬라어는 세 가지의 용어가 있습니다.

첫째는 에로스입니다.

에로스는 사랑의 성적 측면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자기희생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과 관련이 있습니다.

 

셋째는 필로스입니다.

필로스는 형제 사랑, 우정을 의미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된 사람들 간의 형제 사랑, 우정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우들이 서로 하나님 안에서 형제 자매된 사실을 강조하면서 서로 간에 형제 사랑에 충만하길 기원했습니다.

형제 사랑에 관한 한 가지 모습은 자신의 일을 행함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행위입니다.

 

신앙과 현실이 부조화가 될 때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눅2:52)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더불어 사람 간의 관계도 친밀하고 매우 좋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흔히 믿음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과 달리 현실의 사회에서 사람 간의 관계에서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무능하고 골칫거리 취급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가족에게도 덕이 되지 못하고 교회에서의 모습과 가정 혹은 사회에서의 모습이 너무나 다른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사람 간의 관계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 간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마5:16)

 

특히 경제적인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을 돌보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된다면 결코 믿음의 본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고 그 선한 영향력을 통해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신앙과 사업은 별 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성경을 기초로 한 신앙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에 섞여져야 한다. 영적인 일과 세속적인 일에 있어서 한결같이 하나님의 힘과 인간의 힘이 결합되어야 한다. 이 두 힘은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사업, 곧 공업이나 농업이나 상업이나 그 외에 어떤 종류의 기업이든지 간에 그 사업에서 연합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 활동에 있어서 이 두 힘은 협력해야 한다.”(실물교훈,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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