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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과 대 쟁투: 기초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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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과 대 쟁투(대 논쟁): 기초

 

 

기억절:“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대 쟁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를 통합시키는 지배적인 개념이다”(교과 8쪽)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대 쟁투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할 때 재림교회의 기본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 쟁투라는 용어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쟁투란 영어의 Great Controversy를 번역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영어 사전적 정의는 “큰 논쟁”입니다.

서로의 의견이 달라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며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대 쟁투는 큰 싸움입니다.

폭력적인 느낌이 강하고 싸움으로 인해 파괴적 결말이 나고야 말 것 같은 용어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은 “성내지 아니하”(고전13:5)는 사랑의 품성이며 의지의 자유를 주시는 분이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의지의 자유로 인해 다른 선택을 한다할지라도 성내거나 화를 내서 혼내주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무엇이 다르고, 어떤 것이 바른 것인지를 서로의 입장을 밝히면서 살피는 변론과 대화(사1:18)의 시간을 갖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대 쟁투라는 전투적인 용어는 하나님께는 어울리지 않고 대화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으로 생각해 볼 때 대 쟁투 보다는 대 논쟁이 어울립니다.

 

 

뿐만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전투하듯 싸울 수 있는 관계가 아닙니다.

피조물의 존재가 창조주의 생명적 창조행위와 생명을 주시는 행위에 절대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는 것 자체가 곧 창조를 거부하는 것이고 그것은 창조전의 상태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흙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선택에 대해 하나님을 구태어 전투하실 필요가 없으시고, 그 선택의 결과로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런 선택을 하지 말도록 대화하고 호소하시는 모습이 하나님의 품성의 모습입니다.

 

 

대 쟁투보다는 대 논쟁을 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임을 생각할 때 성경의 모든 내용이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보여주게 됩니다.

 

 

첫째 날(일) 대 쟁투(논쟁)과 그 당사자들

 

성경의 초점은 “예수님”입니다.(요5:39)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단의 이론에 맞서서 하나님의 존재와 품성이 어떠함을 보여주는 것이 성경의 초점입니다.

 

예수님과 사단의 다른 변론에 대해서 온 우주 거민들이 지켜보고 있으면 지구는 예수님과 사단의 변론의 무대입니다.

 

 

둘째 날(월) 루스벨의 타락

 

루스벨이 자율과 독립을 요구했던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루스벨을 창조하셨음이 분명한데도 루스벨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루스벨을 창조하셨을 때 루스벨의 존재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없었던 존재를 있게 하는 것이 창조이므로 없었던 존재는 있게 하는 과정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없었기에 누구에 의해 있게 되었는지를 모를 수밖에 없던 루스벨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를 자신을 있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음을 받아들이면 문제가 없을 뻔했지만 루스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다 보니까 자신도 모르지만 스스로 존재하였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루스벨의 생각은 여자를 속일 때 사용했던 동일한 생각이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너 스스로의 생명으로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떠나서도(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않아도) 너는 죽을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단의 주장은 자신이 하늘에서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명으로 스스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는 생명의 창조주요, 시여자로서의 절대적 관계가 아닌 각각의 생명으로 각각 존재하는 상대적 개념의 관계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자율과 독립이 필요하며 하나님과의 상대적 개념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품성과 그 품성의 사본인 율법을 생각해보니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단의 상대적 생각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의 품성은 매우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상대적 개념의 생각이 하나님의 절대적 품성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함으로 교만이 되었습니다.

 

 

셋째 날(화) 하나님의 무기

 

사단과의 대논쟁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창3:15입니다.

사단이 생각하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주가 아니고 하나님의 품성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책은 십자가였습니다.

 

의지의 자유를 잘 못 사용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선택의 결과로 인해 창조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린 것에 대해 그들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신 돌아가심으로 그 값을 치르시는 것이 창조주의 모습이며 창조주의 품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단의 논리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창조주로서의 절대적 사랑으로 하나님 자신의 논리를 보여주셨습니다.

 

 

넷째 날(수) 사탄의 분투

 

하나님은 사단의 논리에 맞서 자신이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의 품성은 절대적 사랑임을 성소봉사와 십자가 그리고 하늘 성소에서 자신의 피로 중보하심을 통해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방법에 맞서 사단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그분의 품성이 절대적 사랑임이 보여 지지 않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거짓 제단과 각종 우상들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가렸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고자 시도하였습니다.

교회에 이설들을 만들어 참 진리를 알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늘 성소의 중보사역을 미사와 고해성사로 바꾸었습니다.

행위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들을 만들었습니다.

핍박도 있었습니다.

 

 

다섯째 날(목) 운명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대 논쟁에서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우주 거민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의지의 자유를 반드시 사용해야만 합니다.

온 우주 거민들의 선택에 결정적 역할은 한 것은 십자가였습니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선택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 역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보여 진 예수님의 모습은 그분이 창조주이시며 그분의 사랑은 절대적 사랑이었습니다.

 

재림 전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가진 의지의 자유를 바르게 선택하게 하기 위해 세 천사의 기별이 울려 퍼져야 합니다.

세 천사의 기별의 핵심은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의 품성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창조주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절대적 사랑이 높이 넓게 울려 퍼질 때 그동안 사단에게 속아 다른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보게 되고 마침내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

이 귀한 사명이 재림교회에게 위탁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먼저 마지막 기별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먼저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시며 그분의 품성이 절대적 사랑임을 깨닫고 경험하고 확신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고 싶은 열망 속에서 그 일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참 종교의 기초이다. 오로지 보상에 대한 희망에서나 형벌에 대한 공포심에 의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위선과 형식적인 예배는 차라리 공공연한 배도보다 더 하나님께 불쾌히 여기심을 받는다”(부조와 선지자,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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