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과 율법과 복음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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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과 율법과 복음
기억절:“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3~4)
첫째 날(일) 율법과 규례
*도입질문: 율법과 규례라는 말을 들을 때의 느낌은 무엇입니까?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율법과 규례라는 말이 주는 느낌은 강제와 억압과 제한 등 입니다.
이런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입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이유는 율법을 말씀하시고 율법을 기록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기록하신 것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품성 안에서 나온 말씀이며 기록이기 때문입니다.(마12:34-35)
그래서 하나님은 글이나 말로 기록된 율법이나 규례로 사람들과 언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율법이나 규례를 말씀하신 하나님 자신 즉 하나님의 품성으로 언약을 맺었습니다.(출34:27)
그렇다면 율법이나 규례를 생각할 때 느끼는 강제와 억압과 제한 등은 하나님의 품성을 배제한 채 글이나 말로서만 생각할 때 느끼는 느낌이므로 율법이나 규례를 통해 그것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품성을 보고 하나님께로 오길 원하셨던 하나님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상태가 됩니다.(요5:39-40)
그러므로 율법을 논할 때 “명령”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들도 다르게 생각해보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품성인 절대적 사랑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은 “의지의 자유”(자유 의지)입니다.
의지의 자유를 보장해야만 사랑의 관계가 형성됨으로 하나님은 의지의 자유를 주셨고 의지의 자유를 주셨으므로 “명령”이란 표현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고전13:4) “성내지 아니하며”(고전13:5)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고전13:8)는 이유는 사람에게 의지의 자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의지의 자유를 주시므로 명령하시지 않으시고 사람에게 주신 의지의 자유로 생명을 선택하도록 설명하시고 부탁하셔야 합니다.(레8:35)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게 되면 하나님의 부탁도 명령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명령처럼 보여 지는 율법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이루실 하나님의 약속 혹은 허락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날(월) 이 시대를 위한 도덕법
*도입질문: 도덕법이 무엇입니까?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도덕법 하면 도덕 교과서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잘 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도덕적이고 바른 사람이 되게 하지만 도덕적이고 행위가 바른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생명과 존재입니다.
생명과 존재는 스스로의 생명으로 스스로 존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뿐이며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모든 존재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절대적 관계의 회복이 사람의 최고의 행복임을 가르쳐 주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도덕법에 대한 국어사전적 정의는 “도덕적(道德的) 행위(行爲)의 규준(規準)이 되는 법칙(法則). 자연(自然) 법칙(法則)과 달라 명령(命令)의 형식(形式)을 취(取)하는 법칙(法則)인 데. 이것을 행복(幸福)과 같이 이상적(理想的)인 목적(目的)의 실현(實現)에 필요(必要)한 수단(手段)을 규정(規定)하는 규칙(規則)으로 생각하는 경우(境遇)와 법칙(法則)을 절대적(絶對的)인 규범(規範)으로 생각하고, 법칙(法則)의 명령(命令)에 복종(服從)하는 일을 선(善)이라고 하는 경우(境遇)의 두 가지가 있음”입니다.
도덕법에 대한 두 가지 정의 중 “행복(幸福)과 같이 이상적(理想的)인 목적(目的)의 실현(實現)에 필요(必要)한 수단(手段)을 규정(規定)하는 규칙(規則)으로 생각하는 경우(境遇)”가 하나님의 품성에서는 더 합당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행복(생명)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품성이 담긴 하나님의 호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신10:13)
사람들의 생명을 위한 법이라면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하며, 폐하여 질 수가 없습니다.
셋째 날(화) 율법과 복음
*도입질문: 율법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율법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게 합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행복(생명) 주시 원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의지의 자유로 하나님을 개인의 창조주와 구원자로 선택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생명입니다.(요일5:11-12)
율법의 명령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로, 강제가 아닌 우리에게 주신 의지의 자유로 하나님의 생명을 선택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율법을 통해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겔33:11)
넷째 날(수) 안식일과 율법
*도입질문: 안식일은 무엇의 기념일입니까?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안식일은 흔히 창조의 기념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이 맞습니다.
그런데 창조의 기념일로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6천년 전에 창조하셨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는 과거적 의미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안식일은 창조력의 기념일입니다.
창조하시는 능력이 여호와 하나님께만 있음을 매 주 맞이하는 안식일을 통해 확인하는 날입니다.
내 존재와 내가 살아 있는 이유가 스스로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력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성경적으로 어느 날이 맞느냐의 문제를 넘어서야 합니다.
안식일이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가 맞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는 이유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며, 존재를 지속하고 있는 이유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생명 에너지를 공급하시기 때문임을 매 안식일 마다 깨닫게 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절대적 관계 속에 있게 하기 위한 날로서의 안식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안식일에 어떤 일을 해야 옳은지에 초점을 맞추었던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이나 모든 성경대로 사는 사람들(요5:10)과 구별되게, 예수님은 안식일을 생명력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요5:6)
안식일을 기억할 이유는 나의 존재가 여호와 하나님임을 안식일이 밝혀주고 나의 생명이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에너지의 공급으로 인함임을 알게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자체가 아닌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안식일을 통해 만나야만 안식일을 생명의 연결되는 구별되는 날이 됩니다.
다섯째 날(목) 안식일과 복음
*도입질문: 안식일을 통해 보여 지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안식일은 창조하시는 하나님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창조와 구원을 같은 의미이므로 구원을 재창조라고도 표현합니다.
창조와 구원이 마쳐질 때 동일한 음성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다 이루었다”
창조와 구원을 다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가 안식일에 담겨져 있습니다.
창조에도 하나님의 생명 나눔의 사랑의 행위가 있었고, 구원에서도 하나님의 생명 나눔의 사랑의 행위가 있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임을 보여주고(행17:25) 사람들은 창조주에 의해 창조되었고 창조주의 주시는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날입니다.
창조주와 만들어진 자로서의 절대적 관계를 안식일을 통해 깨닫게 될 때 아담의 선택에 대해서 아담에게 그 죄 값을 치르라고 하지 않으시고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영원한 죽음을 당하신 깊고 높고 넓은 사랑을 확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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