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과 교회: 의식과 의례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토의를 위한 질문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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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과 교회: 의식과 의례
기억절:“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첫째 날(일) 신성한 의식의 명칭
*도입질문: 교회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지 의식을 통칭할 수 있는 올바른 명칭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기독교 초기에 그리스어를 통용하는 교회의 동쪽 지역의 신자들은 기독교의 성스런 의식을 “뮈스테리온” 즉 “신비”라는 말을 사용한 반면,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쪽에서는 “사크라멘툼” 즉 “성례”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 후 중세의 교회는 성례전이라고 부르는 7가지 의식을 제정했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인간의 영혼 속에 은혜를 주입하는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시기에 성례는 검토와 비평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단어조차도 성례 보다는 예식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식이란 단어는 “제정하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수립하신 특별한 행위는 하나의 예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성한 의식의 명칭으로는 “예식”이 가장 적합합니다.
둘째 날(월) 침례
*도입질문: 귀하는 침례를 언제 누구에서 받았고 그 때의 느낌은 어땠습니까?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침례의 의미는 죽음과 장사지냄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침례는 구약에서 할례가 상징했던 의미를 계승하며 이제는 사단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음을 고백하는 예식입니다.
침례는 후보자의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옛 생애로 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며 그것을 의지의 자유로 고백하는 것이 포함됨으로 유아에게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셋째 날(화) 겸손 예식
*도입질문: 겸손 예식을 할 때 가장 번거로운 것을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예식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겸손예식은 하나님이 내게 누구시며 하나님의 품성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 앞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제자들이 모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베드로가 나서서 얘기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요13:6, 8)
베드로의 생각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발을 씻기는 사람은 작은 자여야 한다고 베드로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큰 자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발을 절대로 씻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베드로의 말에 대하여 예수님은 베드로의 겸손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못된 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
도덕적 기준이나 사람의 품성 속에서는 베드로의 말이 맞는 말이지만 성경적 기준이나 하나님의 품성 속에서는 베드로의 말이 틀린 말입니다.
베드로가 알고 있던 하나님의 품성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하나님은 사람의 봉사를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 외의 모든 이방 잡신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반면에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신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또한 하나님의 품성을 잘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도 같은 취지의 말을 하였습니다.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 이심이라”(행17:25)
하나님께서 사람의 섬김을 받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친히 사람을 섬기시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의 창조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설명을 통해 왜 여호와 하나님이 섬기시는지 행17:24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시 내용이 이미 살펴본 행17:25입니다.
창조주는 창조하신 존재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고 섬겨야만 그 존재들이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고백은 도덕적 혹은 사람들의 품성 속에서는 매우 겸손한 사람의 말이 되지만 하나님의 입장 속에서는 베드로는 다른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되어버림으로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겸손 예식을 통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창조주의 품성을 깨닫고 체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겸손 예식을 통해 섬기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품성을 깨닫게 될 때 이후 십자가에서의 모순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십자가는 모순의 상징입니다.
사람들의 품성으로 십자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입니다.
사람들의 품성으로는 잘 못한 사람이 잘 못한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공의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잘 못한 내가 달려야 공의로운 행위가 됩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달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사람을 대신하여 돌아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품성에서는 공의로운 행위라고 하십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사람의 선택을 대신하여 돌아가시는 것이 맞다는 것이 하나님의 품성에서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배제한 채 사람의 품성 속에서 십자가를 볼 때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고전1:23)이 됩니다.
모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성에서는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대신하여 두 번째 아담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이 공의로운 행위였습니다.
겸손 예식의 모순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의 품성을 깨닫게 될 때 그 이후의 사건인 십자가에서 보여 진 모순처럼 보이는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를 깨닫게 됩니다.
넷째 날(수) 주의 만찬
*도입질문: 성찬식은 구약의 어떤 예식을 대체한 예식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성찬식은 구약 시대의 유월절을 대체합니다.
유월절의 핵심은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시는 분은 사람들의 창조주이십니다.
사람들의 품성 속에서 볼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속의 모순 속에서 창조주의 변치 않는 절대적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창조주는 구원자가 되셔야 하고 구원자는 창조주이셔야 합니다.(사43:1, 사44:24, 사46:4)
다섯째 날(목) 재림의 소망
*도입질문: 성찬식이 재림의 소망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재림은 십자가에서 시작된 구원의 절정입니다.
성찬식은 갈보리와 재림의 중간 사이에 있습니다.
성찬식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보여 진 창조주의 절대적 사랑과 재림으로 인해 완성될 구원을 바라보게 합니다.
십자가에서 보여 진 하나님의 사랑은 재림에 대한 확신을 주고 재림과 더불어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고 싶으신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확신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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