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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과 희미한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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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과 희미한 관점

2월 16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12분

기억절: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고전 3:19).

연구 범위: 욥 41:11, 고전 6:19~20, 창 3:17, 요 12:31, 고전 1:18~21.

도입)
“천연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업적은 본질상 하나님 자신이 아니다. 천연계의 사물들은 하나님의 품성과 능력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연계를 하나님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예술적 기량은 매우 아름다운 작품, 곧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의 사상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 작품은 작품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 영광을 받아야 하는 것은 작품이 아니고 그 작품을 만든 예술가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천연계가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고 있을지라도, 높임을 받아야 하는 것은 천연계의 하나님이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시편 95편 6, 4, 5절)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대저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그 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니 그 이름은 여호와니라.” 아모스 5장 8절, 4장 13절, 9장 6절”(치료, 413-414)

결론: 하나님은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기도 하지만, 천연계를 통하여 일반적이고 제한적인 방식으로도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첫째날(일) 2월 10일
지구는 하나님의 것이다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도입)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신성을 만물을 통하여 보여주셨다고 하셨다.(롬1:20) 밝혀진 것들을 조금 살펴보면서 생각해 보자. 어떤 과학자들이 상상으로 또는 추측으로 말하는 것들은 확실한 것이 아니므로 제외하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지금의 지구의 구조나 지구상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많은 조건들 중에 몇 가지만 살펴보자. 히브리서3:4절에는 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셨다. 태양계 안의 질서를 알아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정확하게 생명이 존재 할 수 있도록 거리와 속도와 무게를 가지고 있다. 지구는 자전(시속 약1,670km)과 공전(시속 약108,000km)을 계속하는데 만약 라이프존(생명선)을 벗어나게 된다면 지구상에 생명체는 순식간에 다 멸종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진다면 극지방에 있는 얼음이 없어지고 다 타죽게 될 것이며 조금만 멀어진다면 추워서 다 얼어 죽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생각하면 이 거리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태양계 안에 이 질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태양도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태양을 따라서 움직이는 지구는 그 거리를 유지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만약 지구가 생명선을 벗어나 이쪽과 저쪽으로 오고 간다면 어떻게 될까? 지구가 한번은 새까맣게 탔다가 다시 한 번은 꽁꽁 얼었다가 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무사고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과연 저절로 일까? 지금부터 약 3,000년 전에 다윗 왕을 통하여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시119:91)라고 하셨고, 약 3,500년 전에 욥을 통하여 누가 그 도량(무게, 거리, 부피, 크기 등)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회전 방향 속도 기울기 등)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라고 물으셨다.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온 우주가 질서 있게 움직이게 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 바탕 기별은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은 다 창조주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의 청지기 직분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부가설명>
지구의 보호막(대기권)을 아는가? 태양과 지구의 거리와 움직임과 무게로만 가지고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생명체에게는 태양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태양이 폭발을 할 때에 태양풍이 불면서 여러 가지 고 에너지를 지닌 방사선들이 지구를 향해 달려온다. 특히 자외선이 들어오는 경우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이것들을 막아주지 못하면 지구상의 생명체는 다 죽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구의 옷을 만드셨다. 성경은 지금부터 약3,000년 전에 다윗 왕을 통하여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집)을 베푸셨고,(시19:4) 휘장 같이 하늘을 치셨다고(시104:2) 하셨으며 약2,6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하여 하늘을 차일(遮日)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다(사40:22)고 하셨다. 그러나 이것들이 마지막 때가되면 옷처럼 낡아져서 의복 같이 갈아입을 것이다라고 하셨다.(시102:25∼26, 사34:4)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예언의 말씀들이 오늘날에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이 대기권 가운데 성층권에 오존층이 있어서 자외선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지는 1902년이고 오존층이 파괴되기 시작한 것을 발견한 것은 1979년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사람들이 알기도 전에 오존층이 파괴되기도 전에 기록되었으니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공기의 중요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욥28:25∼26절에는 바람의 경중(輕重)을 정하시며 물을 되어 그 분량을 정하시며 비를 위하여 명령하시고 우뢰의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셨음이라 하셨다. 바람의 경중을 정하셨다는 말씀은 공기의 무게를 다르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만일 공기의 무게가 똑 같다면 우리가 살아 갈 수 있을까? 저기압과 고기압이 없어서 공기의 순환이 없을 것이고 산소의 움직임도 없을 것이므로 계속하여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여 죽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기 중에 질소가 78%이고 산소가 21%이며 나머지가 1%(이산화탄소 0.03%)에 해당한다. 질소는 불활성으로 불에 타지 않은 것이므로 불이 나면 끌 수 있다. 만약 산소가 78%가 된다면 도저히 불을 끌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산소의 량이 적어도 많아도 살수가 없다. 공기 중에 21%의 산소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적당한 량이라 한다. 아무 부족함도 없이 너무나 적당한 량이라 고마움도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호흡이 있는 자는 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 드려야 마땅하다고 한다.(시150:6) 그러므로 이 지구를 만드신 분 그분은 우리의 주인이시다. 우리는 그분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지구와 나의 주인이시므로 우리는 그분께 그분의 청지기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교훈: 하나님은 온 세상의 유일한 소유주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뿐 아니라 그분의 구속으로 인하여 그분의 소유가 된다.

둘째날(월) 2월 11일
타락한 세상

도입)
죄의 기원에 대해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을 때 유의해야 할 사항은 우선,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결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절대로 불의를 행치 아니하신다(욥 34:10).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그에게는 어떤 불의도 없으시다(신 32:4, 시 92:15). 하나님은 악에게 미혹을 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약 1:13).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길을 제시하셨다. 그러므로 죄악이 외부로부터 세상에 들어온 것은 명백하나, 그 기원이나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그 어떠한 주장도 적절치 않다. 성경은 오히려 죄가 천사의 세계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일군의 천사를 창조하셨는데, 그 중 한 무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하여 타락하였다. 마귀는 타락한 천사로서, 그 타락의 과정은 비유적으로 에스겔과 이사야가 언급한 적이 있다(겔 28:13-19, 사 14:12-15). 예수께서도 마귀를 태초(아르케)부터 살인한 자로 규정하셨다(요 8:44).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의 감독을 세울 때 새로 입교한 자는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유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딤전 3:6). 타락한 천사의 속성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교만이다(유 6).

<부가설명>
인류에게 죄의 기원은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아담의 범죄다. 영의 세계에서 온 유혹자 마귀는 뱀을 이용하여 하와에게 접근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도 죽지 않는다고 유혹했다. 아담은 하와의 간청에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였고, 그것이 최초의 범죄가 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 죄로 말미암아 죄의 노예가 되었다는 점과, 죄가 가져온 영원한 부패와 더불어 인류의 연대성 때문에 그 죄의 결과가 모든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 점에 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고 가르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를 범했으므로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죄는 단순한 부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처벌이 뒤따르는 죄책으로서의 죄를 말한다.

교훈: 죄로 인한 저주와 홍수의 결과는 온 세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셋째날(화) 2월 12일
이 세상의 지배자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욥 1:7).

도입)
하나님은 영적 존재인 아담을 영적 환경인 에덴동산에 이끄시고 영을 살게 하시려고 계명을 주셨는데, 그것이 선악과 계명이다. 예수께서도 육체는 식물(食物)로 살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영적 존재의 삶의 방식을 규정하셨다(마 4:4). 선악과 계명은 아담에게 하나님을 기억하게 했고, 하나님과 사귐의 도구였다. 그 계명을 지키는 한 영혼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지으시고 그들을 에덴에 함께 있게 하셨다. 마귀는 ‘디아볼로스’라 하여 이간자로 불린다. 하나님과 사귀며 계명을 순종하는 아담을 하나님과 이간하기 위해 마귀는 뱀을 이용하여 하와를 유혹하였다.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려고 아담보다 먼저 선악과를 먹었는데 이는 타락한 천사가 하늘에서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던 사단적인 죄의 재판(再版)이었다. 아담이 범한 죄는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먹지 말라 하신 계명을 어긴 불순종이었다. 죄를 범한 순서는 하와가 먼저지만, 아담의 죄가 죄의 시작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영의 특성이 유전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 유여하시나 오직 하나의 영만 지으셨다(말 2:15). 그 영은 아담을 통해 넝쿨처럼 유전된다. 하와에게 있는 영도 아담에게서 온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하와의 죄는 개별적인 죄로 유전되지 않고 아담의 죄만 전해지게 되었다. 즉, 아담이 범한 불순종으로 하나님과의 사귐은 중지되고 마귀에게 속은 아담은 죄인이 되고, 마귀의 종이 되고 말았다.

* 마귀는 공중의 권세를 잡고 어두움의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예수께서 인정하신 세상 임금이다.

<부가설명>
죄의 기원은 마귀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한 자로, 아담과 하와를 범죄케 함으로써 온 인류 위에 죄로 왕 노릇한 자다. 인간은 마귀의 꾀임에 속아 마귀와 함께 영원한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고, 죄로 인해 마음과 생각이 타락함으로써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심으로 우리는 더 이상 마귀의 종 노릇할 필요가 없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그의 공로를 힘입는 자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고 죄 사함을 얻기 때문이다. 비록 육체에 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죄에 대한 유혹과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지만,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믿음을 잃지 않는 한 우리의 죄 때문에 멸망 받지는 않는다. 이는 이미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담당하셨기 때문이며, 우리의 구원 자체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서도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해 죄를 범한다 할지라도, 죄책감으로 두려워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구약에서 도피성을 향해 달려갔던 자들처럼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속히 회개하면 된다. 그러나 습관적이고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이다(갈 6:7-8). 또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이후에도 마귀는 여전히 죄로 인해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하기 때문이다. 곧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 하신 말씀(요일 3:8)대로, 상습적인 죄는 자기 영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마귀의 종이 되게 하고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리게 한다(롬 6:12-19). 한 순간이라도 자신 속에 있는 죄로 인해 마귀의 영향력 아래 머물지 않도록 깨어 근신하며, 우리 속사람이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되기를 사모하고 온전한 성결을 향해 날마다 나아가야 한다.

교훈: 사탄은 세상 임금으로서 비록 십자가에서 패했지만 천연계와 인류에 대하여 지금도 여전히 파괴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

넷째날(수) 2월 13일
세상의 ‘지혜’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고전 1:21).

도입)
사람은 학문을 통해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을 의지하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에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시를 볼 수 없다. 훌륭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천국의 황금길을 걷지 못한다. 그 사람이 어떠하든지 혹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든지 그것은 그 사람의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람이 얼마나 선한가 하는 기준에 의해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자신의 성품을 의지하는 사람 자신의 도덕적 선함을 의지하는 사람은 진리에 눈이 감긴 이시대의 새로운 바리새인이다. 일명 좋은 사람이라 하는 사람들이 밖에 던지워 울며 이를 가는 동안에 술집의 주인이든 술주정뱅이든 매춘하는 여자든 그가 예수님을 믿고 신뢰한다면 하나님의 도시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8:12)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 (엡2:8,9)

*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똑 같다. 우리는 오직 계시의 진리로서만 성경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부가설명>
아래로부터 난 자들은 그들의 지혜와 선함, 악함에 관계없이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그럴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는 혈통이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1:13, 3:3) 이것은 초자연적이며 영적인 중생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하늘의 도성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함께 찬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모두 위로부터 오는 것이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 찬미를 부르는 것, 기도문을 읽거나 기도하는 것, 교회에서 혹은 교회를 위해 사역하는 것,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 다른 사람을 위해 내 한 몸을 불 속에 던진다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은 새로운 탄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중생은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요일4;4) 은혜로 구원받고 그 은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회개의 삶, 의인의 일을 한다. 이를 통해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그들의 마음 가운데 그러한 소원을 두셨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 (베전1:4) 가 되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롬8:9) 거듭난 주님의 모든 자녀들의 마음에는 성령님이 계신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갈2;20)

교훈: 우리가 아무리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설명을 한다면 인간은 어리석음을 피할 수 없다.

다섯째날(목) 2월 14일
믿음의 눈으로(시편 8편)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 8:3~4).

도입)
이 시는 자연 만물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자연만물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솜씨이다. 온 땅이 주의 솜씨를 드러낸다. 하늘과 하늘에 있는 달과 별들도 하나님의 솜씨이다. 하나님은 마치 예술가처럼 우주라는 작품을 만드셨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3) 우주에는 지구보다 엄청나게 더 크고, 빛의 속도로 달려도 수백억 년을 달려야 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도 많다. 그런데 이런 별들을 하나님은 모빌 조각을 만들 듯 가볍게 하늘에 달아놓으셨다. 우리 눈에도 자연만물이 그렇게 보이는가? 이것이 영성이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우리는 어디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이다. 위대한 그림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단지 그 그림만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작품을 만든 작가의 정신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연이라는 작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이처럼 영성은 골방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을 보며 기뻐하는 것 그것은 곧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것이다.

1. 시편 8편은 가장 사랑받는 시편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였던 다윗에게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위엄과 사랑에 대하여 말했다.

2. 시 19:1~4을 읽어 보라. 다윗은 하늘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 다윗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부가설명>
유대인들은 타민족에 비해서 아주 미약한 민족이었다. 그들에게 전해진 말씀이 다른 나라까지 넘어가리라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했던 시대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어떻게 되었는가? 이 지구상에 성경이 전해지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는가? 세계 역사의 흐름 속에 하나님의 진리가 인간이 사는 모든 나라에 다 전파될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 이런 저런 시집이나 책들에 나오는 여러 좋은 문구들을 많이 읽어 보아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렇듯 멋있고 간결하게 농축시켜 놓은 글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교훈: 천연계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거한다. 특별히 성경의 계시를 알고 믿음의 눈으로 천연계를 본다면 우리는 더 많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날(금) 2월 1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나는 우리가 지금부터 끊임없는 투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받았다. 소위 과학이라고 하는 것과 신앙은 서로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될 것인데, 그 이유는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성경말씀이 내게 제시되었다.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행 20:30)”(전도법,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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