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과 말씀 : 부흥의 기초(교사들을위한강해식과정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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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과 말씀 : 부흥의 기초
7월 20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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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범위
시 119:50, 74, 시 119:116, 히 4:12, 11:3, 요 5:39, 히 4:1~2,
행 20:27~32.
기억절 :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시 119:154).
도입)
어느 목사님이 어느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다. 집이 참 좋아 보였다. “집사님, 집이 참 좋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 집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예, 저희 남편이 아주 성실한 사람이라서 열심히 일한 덕분입니다.” 아들이 쓰는 방을 보았더니 벽에 상장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렇게 물어 보았다. “아들이 공부를 참 잘하는 모양이지요?” 그러자 집사님은 기분이 좋아서 대답했다. “이 집안의 사람들이 머리가 좋다는 말은 늘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내친 김에 목사님은 한 마디 더 칭찬을 해주었다. “집사님은 인물도 예쁘시니 참 복도 많으십니다.” 그런데도 그 집사님은 눈치를 채지 못하고 또 이렇게 말했다. “인물이야 부모님을 잘 만난 덕분이지요.” 잠시 뒤에 집사님은 다과를 준비해 나왔다. 그러나 목사님은 일체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니 함께 간 사람들도 덩달아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집사님을 보면서 목사님은 넌지시 이렇게 말했다. “목사는 다과를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사는 존재랍니다. 제가 다시 물어볼 테니까 이번에는 잘 생각해서 대답해 보세요.” 그러면서 차례차례 다시 물어보았다. 집사님도 목사님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바르게 대답했다. “이 집이 참 좋군요.”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아들이 공부를 잘 하는군요.”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지요.” “집사님은 남편도 잘 만나셨고, 아들도 잘 두셨고, 인물도 예쁘시니 참 복이 많으십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간의 부흥의 첫 시작은 하나님의 은혜를 느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경험이다. 오늘날 가장 많이 기도되어지는 것이 부흥에 대한 기도이다. 교회의 주보마다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적혀 있다. 교회마다 기도회마다 부흥을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부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부흥의 의미를 오해한 채로 부흥을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부흥을 이렇게 오해하고 있다. → 교회가 커지는 것, 교인수가 늘어나는 것, 헌금이 많이 걷히는 것, 예배당을 크고 화려하게 짓는 것, 예배를 열광적으로 드리는 것, 찬양을 뜨겁게 하는 것 → 물론 이런 것들이 부흥의 결과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일수는 있지만 그것이 부흥의 본질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 열심히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알고 기도해야 한다. “부흥”이란 단어는 성경전체 중에서 유일하게 합 3:2절에서만 사용되었다. 히브리어로는 “하야”라고 하는데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나고 능력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영생의 말씀이다. 우리의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참되게 깨달을 때 인간에게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흥이란 무엇인가? 에덴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죄로 죽었던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 의의 옷을 입고 새 생명으로 창조된 새로운 생명을 경험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그 상태로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어 발생하는 영적인 경험인 것이다.
과거를 살펴보면 영적 부흥 운동의 시발점은 진지한 성경 연구였다. 마지막 때에 이 일은 재현될 것이다. 성령님은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것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일에 열성적인 한 세대의 헌신적인 재림 신자들에게 역사하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은혜와 능력과 소망을 발견할 것이며, 그분의 말씀 속에서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그리스도의 매력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풍성하게 부어 주심으로 그들의 충성을 인정해 주실 것이고, 온 세상은 세 천사의 기별에서 나타나는 영광으로 말미암아 환하게 될 것이다. 성령이 한 없이 부어지고, 복음은 땅끝까지 전파될 것이며,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이다(마 24:14).
이번 주에 우리는 부흥의 역사 속에서 성경의 역할은 무엇이며, 우리가 그 교훈과 진리에 믿음과 순종으로 굴복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지 공부하려고 한다.
첫째날(일) 말씀으로 다시 살아남
7월 14일
아래 말씀을 읽고, 다윗의 요청과 그런 요청을 드린 상황을 기록하라.
시 119:2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요청 : 상황 :
시 119: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요청 : 상황 :
시 119:153~154 “나의 고난을 보시고…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요청 : 상황 :
교사강해 1)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영생과 관련된 말씀이다. 인간의 각 경험에서 인간은 언제나 죽음과 맞닿아 있다. 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인간이 다시 살아나는 경험은 성경에서 다시 회복시키시는 구원을 예표하고 있다. 실제로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라고 말한 사실은 인간의 구체적인 죽음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시인의 간구 속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여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것은 죽음가운데 놓여있는 영혼의 탄식이다. 시 119:17절의 말씀도 그의 고난이 막심함을 통해 인간이 처한 모든 환경이 죽음에 놓여 있는 환경을 말하고 있다. 죄가운데 놓여진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게 된 이 귀한 역사를 경험하게 될 때 심령의 부흥은 오게 되는 것이다.
시편에서 다윗은 말씀이 자신의 영적 생애에 어떤 복을 가져다주었는지 말한다. 시편 119편 가운데 다음의 절들을 읽고 각 절에서 시편 기자가 말씀에서 발견한 축복을 가장 잘 요약한 한 단어를 골라 보라. 시 119:50, 74, 116, 130, 160, 169, 170.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힘과 용기를 얻었고, 거룩한 인도와 소망을 발견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어두운 마음을 밝혀 주었다(시 119:130). 하나님의 말씀은 주린 심령을 채우고 갈한 마음을 적셔 주었다(시 119:81).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위협했을 때,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약속을 붙잡았다(시 34:4). 밧세바와 간음을 저지른 후 죄책감에 시달렸을 때 그는 용서의 약속에 매달렸다(시 32:1~2). 미래가 불확실해 보였을 때 그는 갈 길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였다(시 32:8). 다윗은 감격하여 이렇게 고백하였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 119:50). 하나님의 말씀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것이야말로 부흥의 발판이라고 할 수 있다.
부가적용)
캐나다 선교사 스데반 고포스가 쓴 ‘1907년 한국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라는 글을 보면 당시 말씀을 듣던 1500명 가운데 교회의 지도자인 길OO 장로가 자신의 죄를 회개한 내용이 나온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없었습니다. 약 1년 전 임종을 앞둔 한 나의 친구가 나를 자신의 집에 불러 부탁했습니다. “길 장로, 나는 곧 세상을 떠날 것 같소. 내 아내는 그만한 능력이 없으니 자네가 내 재산을 정리해주면 좋겠소.” 나는 “걱정마오, 내 그렇게 해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의 재산을 관리하다가 100달러를 사취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했습니다. 100달러를 내일 아침 부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길OO 장로의 회개로 교인들 사이에 회개가 일어났다. 저녁 7시에 시작된 부흥회는 다음날 새벽 2시가 되도록 계속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 그 말씀은 살아 있기 때문에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다.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은 교회를 부흥시키고,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근원이다.
교훈 :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삶의 고난을 이길 힘과 약속을 찾았으며 말씀을 통하여 영적 삶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였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말씀을 통해 어떤 경험을 기대합니까?
최근 말씀 암송이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영성 회복의 필요성을 느끼고 말씀을 암송하는 분들은 저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 속에 살아 있고, 생각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리스도인 삶에 필수적인 성경절들을 암송합니다. 어떤 분들은 유명한 성경장을 통째로 암송합니다. 그러면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 적용 |
말씀을 통해 영성을 회복하기 원한다면 어떤 결심을 하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이길 힘을 가져다주는 신앙 - “오늘날 세상에서도 이와 같은 신앙, 곧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께서 들으실 때까지 그 약속을 놓지 않는 신앙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신앙은 우리를 하늘과 밀접하게 연결시켜 주고 또 어두움의 권세와 싸워 이길 힘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선지자와 왕, 157).
기도
말씀이신 주님, 제가 말씀을 읽고, 암송할 때 제 속에 살아 계셔서 저의 생각을 바르게 고치시고, 제가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지도하시며, 어려울 때에라도 말씀에서 일어날 힘을 얻게 해 주시옵소서.
둘째날(월) 창조의 힘이 있는 말씀
7월 15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교사강해 2)
오대원 목사님이라는 분의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이란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미국에 한 18세 소녀가 있었다. 오랜 약물 중독과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을 방문한 전도대원 중 한 집사님이 이 소녀에게 매일 1시간씩 2개월 정도 성경만 읽어주었다.
처음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그 집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성경을 읽어 주었다.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말없이 허공만 쳐다보던 그 소녀가 말씀을 귀담아 듣기도 하고 질문도 했다. 6개월이 지나자 그 소녀는 완전히 치료되어 건강해졌고 병원을 퇴원했다. 그 소녀는 그때까지 교회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듣는 가운데 그녀의 내면에 부흥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다. 그래서 운동력이 있고 사람의 혼과 영과 관절을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에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 혼, 육, 사람의 전 인격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병이 치료되는 사람도 있다.
히 4:1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양날의 검보다 날카롭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살아있는가?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면에서 다른 지혜자나 목사나 조언자의 지적 가르침과 다른가? 다음의 성경절은 말씀의 능력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시 33:6, 9, 히 11:3, 딤후 3:16~17.
사람의 조언도 가치가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충고에서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사람의 조언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그런 종류의 변화를 일으킬 힘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역동적이며, 변화를 일으키는 강력한 동인이다.
창조 때에 하나님이 반포하셨던 말씀에 있던 동일한 능력이 기록된 말씀 속에도 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수용하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들을 수행하기 위한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된다.
불규칙적으로 말씀을 보면 영적 부흥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또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밝히기 위한 성경 연구는 영적 삶에 아무 유익이 없다. 우리가 기도하는 심정으로 말씀을 읽고, 성령께 예수님처럼 살 수 있는 능력을 구할 때 변화가 오는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우리가 창조의 하나님께 그분의 형상으로 우리를 재창조해 주시도록 요청드릴 때 일어난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이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마 4:4) 때에 변화가 이르러 오는 것이다.
부가적용)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 목사들은 오직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만을 설교해야 할 것이다. 말씀이신 예수님만을 전하는 것이 말씀 설교이다. 이 말씀 설교를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생명 구원의 역사가 나타난다. 인간의 말과 인간의 생각을 첨가하는 설교에는 생명이 없다. 인공적인 가공품 설교는 얼핏 보기에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것 같으나, 결국에는 교회를 더럽히고 성도들의 신상의 생명력을 소멸시키는 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지탱한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이들을 영원히 살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이 선포될 때 성도들 가운데 개인별로 차이는 있지만 기도의 능력과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 하나님의 생기로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설교를 들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면 너무나 분명히 알 수가 있다.
교훈 : 성경 말씀은 사람의 말과 달라서 그것을 읽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의 삶은 말씀의 능력으로 변화되고 있습니까?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듣기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절들을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이 되거나, 그 당시 현장에 있는 청중이 되어서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를 호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이 약속하시는 은혜와 사랑과 구원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날마다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의 삶은 그 능력으로 변화됩니다.
| 적용 |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 그대는 어떻게 말씀을 묵상하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능력의 말씀 - “모든 세계를 존재하도록 불러내신 창조력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고 생명을 낳게 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명령은 하나의 약속이다. 의지로써 이에 동의하고 심령이 이를 받아들이면, 이로 인해 무한하신 그분의 생명이 우리에게 이르러오게 된다. 이와 같은 일들로 사람의 품성이 변화되고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창조되는 것이다”(교육, 126).
기도
바쁘다는 핑계로 말씀 식사를 거르고, 의미의 표면만 훑고 지나갔던 저의 불성실함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가만히 무릎을 꿇고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릴 때, 제게 필요한 교훈을 주시고 제 삶을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셋째날(화) 예수와 말씀
7월 16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교사강해 3)
요 5:39절의 말씀을 하신 배경에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임에도 영적문제에 민감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씀이 그들 속에 거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영생의 복을 얻지 못하고 인생의 문제를 다른 종교적인 방법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양의 문 곁 베데스다 연못에 누운 38년된 병자를 일으키신 이 사건은 유대인들의 사회에 매우 커다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는데 이는 생명의 주인이 누구이신가 하는 것이었다. 오늘날도 주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생명의 말씀 속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인생의 문제만 생기면 성경과 그리스도를 대신한 다른 종교적 능력에 기대려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 말씀하셨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의 영혼의 주관자는 예수이며 그는 살아계신 영생의 말씀이시다. 영원한 생명의 길을 찾는 자가 성경을 읽지 않고는 비유컨대 총 없는 병사와 그물을 가지지 않은 어부와 같을 것이다.
말씀과 성령의 역할은 얼마나 비슷한가? 요 5:39, 16:14~15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의 증거를 전달한다. 성령 역시 예수의 증거를 전한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더 깊이 경험하도록 인도한다. 부흥을 일으키는 성령의 목적은 초자연적인 표적과 기사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예수를 높이는 데에 있다. 성령의 침례는 큰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부흥과 개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정한 부흥의 토대이다. 우리의 경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우리의 경배와 찬양도 말씀에 흠뻑 젖은 심령에서 흘러나와야 한다. 변화된 삶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참부흥의 증거이다.
부흥에는 찬양의 긍정적인 감정이 동반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흥의 기초가 아니다. 단지 외적 감정과 경험에 기초한 부흥은 피상적일 뿐 아니라 기만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가상적인 영성이지 진정한 경건이 아니다. 말씀에 뿌리를 둔 부흥은 우리와 우리 주변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종의 지속적인 경험이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만난 예수님의 이야기는 참부흥을 일으키는 성경의 역할을 보여 준다. 두 제자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천천히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다(눅 24:27). 그분은 메시아에 관한 구약 예언들을 언급하셨다. 그분은 자신의 정체를 증명하기 위해 기적을 행하든지 손에 있는 상처를 보여 주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분은 대신 성경을 함께 연구하였다. 그날의 경험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주목하라.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부가적용)
성경은 영생의 생명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이다. 유대인은 영생을 얻기 위해 성경을 상고했으나 정작 생명의 실체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불신했다. 왜일까? 그들은 마음에서 신에 대한 이미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으며 자신들과 같은 육체의 사람인 예수를 어떻게 신으로 믿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본질인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없는 존재들이니 예수의 내면 의식의 세계를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죄사함의 경험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요일5:1)라 하였다. 우리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태어난 자가 아니다. 침례는 내가 죽는 사건이다. 그리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기 위하여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야 이 죄사함이 이루어지고 죄의 영향력이 더 이상 나에게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죽지 않으면 죄가 끝나지 않는다. 침례란 우리의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는 것이며 우리의 육적인 몸을 벗는 예식이다(골 2:11-15). 육적 몸을 벗은 우리는 신령한 몸, 거룩한 존재가 다시 되었다. 이럴 때에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에 임하시는 것이다.
교훈 :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경험처럼 진정한 부흥은 어떤 감정이기보다는 말씀을 토대로 마음과 생활이 변화하는 경험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어떤 경우에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집니까?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때로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고대나 현대나 동일하게 반복되는 인간사에 대하여 일반적인 이해를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에, 그분의 뜻을 엿보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때에 우리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진정한 부흥의 바탕입니다.
| 적용 |
그대가 오늘 읽은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다시 묵상해 보십시오.
영감의 교훈
뜨거워지는 심령 - “우리가 겸손한 심령으로 성경을 연구할 때, 성경에 펼쳐진 단순함 안에서 진리를 바로 붙잡을 때, 그것을 사실과 진리로 믿을 때 심령은 뜨거워질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점화되어, 마음으로부터 우리는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냐?’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계속해서 알 것이다”(설교와 강연 1권, 173).
기도
아버지를 더 알기 원합니다. 제 마음에 아버지의 마음을 담고, 제 생각에 아버지의 생각을 품기 원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마다 제게 나타나셔서 아버지께서 어떤 분인지 보여 주시옵소서.
넷째날(수) 부흥, 믿음 그리고 말씀
7월 17일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
4:2).
교사강해 4)
히 4:2절에 말씀에 효력이 없는 것이 무엇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들은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히브리서 기자의 믿음과 결부 시키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첫째로, 말씀을 들을 때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다. 말씀을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감동적으로 듣는다. 오늘 메시지는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에게는 100% 동일하게 해당된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 과거에 여러 번 응답되지 못한 경험 등으로 나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막11:24)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런 말씀들을 들을 때 참 대단한 말씀이다 라고 생각되지만 나하고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인다. 훌륭한 믿음의 종이나 다른 훌륭한 목사님에게는 해당될지 모르지만 나는 안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아니면 여러 번 시도해보았지만 해도 안된다는 운명적인 생각이 있을 수 있다. 둘째로, 냉소적인 반응, 자조적인 반응이다. 영적 투쟁을 여러 번 하고 도전도 여러 번 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마음 깊은 곳에 섭섭함이 배어있을 수 있다.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에 하나님이 관심이 있으시면 어떻게 해주시겠지 하는 38년된 병자와 같이 막연한 기대정도로 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들은바 그 말씀이 유익이 되지 못한다. 그러면 말씀을 들을 때에 어떻게 해야하는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켜야 한다. 말씀에는 문제가 없고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민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한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지키신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선하시다는 믿음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또한 그 말씀이 내게 해당하는 말씀이라고 여겨야 한다. 오늘날도 여러 사람들의 간증을 듣고 우리는 그들을 보며 저 사람은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바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야 한다. 설교말씀에서 들은 말씀에 대해 아멘 바로 제게 해당하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재림할 시대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고 하였다. 분명 마지막 때에는 믿음이 부족할 것이다.
믿음의 성경적 정의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리라 믿는 것이 믿음인가? 우리의 소원이 믿음의 중심인가? 우리가 믿기만 하면 받게 될 것을 믿고 하나님께 우리의 바람을 말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알 필요가 있다.
진정한 믿음은 우리의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항상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약속을 의지하여 그분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때에 자란다(롬 10:17, 약 2:17~18).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마음을 열어야 믿음이 생긴다. 우리의 개인적인 바람과 정반대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행함으로써 우리는 성령의 권능을 충만히 받을 준비를 갖춘다.
왜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거의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하는가?(히 4:1~2)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장하면 우리의 영적 경험이 살아난다. 성경을 의무감으로 대충 읽어서는 거의 유익이 없다. 우리는 읽은 말씀을 내면화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사고와 삶이 형성되도록 우리를 맡길 때에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로마 백부장의 믿음과 벳세다의 병자의 믿음 그리고 갈릴리 호수에 폭풍이 불었던 날에 드러난 제자들의 믿음을 비교해 보라(마 8:8~10, 요 5:6~9, 마 14:29~33). 각 일화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부가적용)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성경을 읽을 때나 안식일메시지를 들을 때나 1:1성경공부를 할 때나 사람이 하는 말로 듣지 말고 하나님께서 내게 직접 하시는 말이라고 기대하고 듣게 되면 자세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러할 때 이 말씀이 우리 믿는 자 가운데 역사한다고 하였다. 이 말씀은 내 것이다. 나에게 100% 해당한다 라는 믿음과 순종이 있어야 한다.
교훈 : 진정한 믿음이란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리라 믿는 마음이라기보다는 그분의 약속을 믿고 그분의 말씀과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믿음이 자라날까요?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단지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는다고 믿음이 자라는 것은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 것으로 주장하고 그분의 말씀이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적용된다고 믿을 때에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일정 분량의 믿음을 주셨다. 그것은 하늘의 은사 가운데 하나이다(롬 12:3).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미리 넣어 주신 믿음을 우리가 활용할 때, 믿음은 반드시 자라게 된다.
| 적용 |
그대가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 믿음으로 실천해야 해 교훈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생각입니까?
영감의 교훈
마음속에 작용하는 말씀 -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연구하고 지키면 마음속에 작용하여 모든 거룩하지 못한 성벽을 복종시킨다. 성령께서 오셔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마음속에 생긴 믿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역사하게 되어서 우리의 몸과 영과 혼이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하게 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뜻을 행하시는 데 사용하실 수 있다”(실물교훈, 100).
기도
아버지, 오늘 주신 말씀 속에 제가 실천해야 할 일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즉시 순종할 수 있도록 제게 믿음과 의지를 주시옵소서. 그래서 아버지를 신뢰하는 제 믿음이 날마다 더욱 강해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다섯째날(목) 말씀 : 부흥의 안내자이자 보호자
7월 18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교사강해 5)
성경에서 가르치는 복음 내용의 본질은 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복음이다. 성경 복음 내용의 핵심은 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다. 성경의 내용을 바로 이 주의 은혜의 복음으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 복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주시는 구원의 경험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노아에게 주신 복음도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라고 말한다. 인간의 부흥의 시발점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에서 시작되며 바라 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된다.
바울이 에베소에 교회를 세웠을 때, 성령은 사도의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 강력히 역사하셨다. 에베소는 약 25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였다. 그곳은 아시아의 시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시아 전역에서 상선들이 물건들을 운반해 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고급 비단과 귀한 보석, 향료, 수제 카페트, 정교한 예술품 그리고 이국적인 식료품을 사기 위해 에베소에 몰려들었다. 또한 에베소는 아르테미스(로마 신화의 디아나) 여신 숭배의 중심지이자 훗날 12,000 장서를 보유한 켈수스 도서관이 세워질 곳이었다. 만오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원형 극장에서는 대규모 음악회나 연극 공연이 열렸다. 성적 문란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에베소는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며 융성하기 가장 어려울 것 같은 곳이었다.
행 20:27~32을 읽어 보라. 에베소 신자들에 대한 바울의 관심사는 무엇이었는가?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어떤 권면을 주었는가?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역할을 부여하였는가?
벧전 1:22~23, 약 1:21~22, 요일 2:14을 읽어 보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성경이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에 대하여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가르침을 요약하라. 특히 우리의 영적 삶에 미치는 성경의 영향에 대한 사도들의 가르침에 주목하라.
말씀의 역할에 대하여 위 성경절들은 어떤 비슷한 점을 언급하는가? 왜 하나님의 말씀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영적 부흥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가?
부가적용)
우리 주님의 은혜는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역사하면서 각 영혼들을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회개하고 성화에 이르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책임지고 영생에 이르게 하신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도 은혜가 왕 노릇하며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오만한 다소 출신 바리새인이 어떻게 가장 큰 전도자가 되었는가? ‘은혜의 왕 노릇’ 때문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오직 주 하나님과 은혜가 왕 노릇하는 말씀께 부탁한 것이다. 그 은혜의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울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서 기업이 있게 하실 것이라고 한다. 우리를 능히 든든히 세우는 것도 그 은혜의 말씀이요, 성도들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는 것도 그 은혜의 말씀이다. 은혜가 왕 노릇하며 우리를 든든하게 세우고 기업이 있게 하신다. 우리도 우리 자신과 교회를 부탁할 곳은 오직 주 하나님과 그 은혜의 말씀뿐이다. 은혜가 왕 노릇하지 않으면 그 하나님과 말씀은 바리새인의 하나님과 율법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들은 말로는 하나님과 말씀을 믿었지만, 행위로는 믿지 않았다.
교훈 : 문화적으로 복음이 융성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부흥이 일어난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지금도 그대 자신과 교회가 말씀으로 부흥할 수 있을까요?
1세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서로 사랑하며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의 삶은 놀랍게 변하였고, 교회는 새로운 제자로 가득했습니다. 그 당시의 신자들과 오늘날의 신자들이 추구하는 경건한 삶과 성장하는 교회의 모습은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말씀에 대한 반응과 순종이 다를 뿐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였을지라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행한다면 초대교회의 부흥은 다시 재현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적용 |
그대가 속한 안교반 또는 소그룹이 말씀으로 부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감의 교훈
근본적인 경건의 부흥 -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세상에 내리기 전에 주님의 백성 중에는 사도 시대 이래 일찍이 목격하지 못한 근본적인 경건의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과 권능이 그분의 자녀들 위에 부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많은 사람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는 대신에 이 세상을 사랑하는 그러한 교회들에서 분리되어 나올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464).
기도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부흥을 일으키는 말씀의 능력이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말씀으로 돌아갈 때에 사도 교회에서 일어났던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7월 19일
“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사 8:20)리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경을 거짓 교사의 영향과 암흑의 영들의 기만적 능력을 대항하는 그들의 방어책으로 삼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사탄은 온갖 계책을 부려 사람들이 성경 지식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왜냐하면 성경의 분명한 말씀이 사탄의 속임수를 폭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업이 부흥될 때마다 악의 왕은 일어나서 더욱 맹렬하게 활동한다. 그는 지금 그리스도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을 대적하는 마지막 싸움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그 큰 기만이 장차 우리 앞에 공개될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는 우리의 눈앞에서 놀라운 이적을 행할 것이다. 거짓 것이 참것과 너무도 유사할 것이므로 성경이 아니면 그것들을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의 증언에 의하여 모든 말과 모든 이적이 시험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 앞에 있는 시련을 견디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그분의 뜻을 이해해야 한다. …성경의 진리로 마음을 견고히 방어한 자들 외에는 아무도 최후의 대쟁투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593~59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위의 인용문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엘렌 화잇은 특별히 최후의 기만이 있을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역할이 있다고 말합니까? 다음의 문장을 묵상해 보십시오. “거짓 것이 참것과 너무도 유사할 것이므로 성경이 아니면 그것들을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개인의 경험이나 감정으로 진리를 판단하는 일에 얼마나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까?
➋ 약 1:22은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이 문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진정한 영적 부흥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이것이 그토록 필수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믿음에 대하여 읽고 가르치고 말하는 것보다 믿음대로 사는 것이 어려울까요? 지난주 그대는 얼마나 “말씀을 행하는 자”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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