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과 연합 : 부흥의 뼈대(강해식성경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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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과 연합 : 부흥의 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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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22분
연구 범위
요 17:9~11, 요 17:20~24, 고전 12:12~18, 행 4:32~33, 행 1:8, 행 15:1~31, 마 18:16~20.
기억절 :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도입)
인도의 간디라는 유명한 지도자가 있다. 비록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사복음서를 통해서 배운 비폭력 저항주의를 가지고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가능케 했 던 지도자였다. 그런 간디에게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했다. '인도의 기독교가 성장하는 것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어떤 세력들입니까?' 간디는 '그리스도인 자신들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이것은 매우 정곡을 찌른 이야기로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되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 세상을 향해서 그리스도의 증인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게 됨을 보여주게 된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 됨에 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예수의 피로 사신 것이 우리 교회인데, 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본질은 교회가 하나 됨에 있다. 에베소서의 2장을 보면 바울이 "예수께서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둘로 하나 되게 만드사"라고 기록하였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하심"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실 때 하나로, 한 몸으로 부르셨다. 우리를 나뉘게 했던 모든 것을 다 허무시고 하나로 만드셨다. 인종이나, 계급이나, 빈부의 차이나 남녀의 차이가 없이 우리를 하나로 한 교회로 만드셨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신다.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은 성령께서 이미 하나 되게 하신 선물이다. 그와 동시에 하나 되게 하신 이 선물을 힘써 지켜야 하는 사명과 의무가 여러분과 저에게 있다.
*안교·선교부 홈페이지에 다양한 교과 토의 자료가 있습니다.
연합은 부흥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대립, 분리, 갈등은 부흥이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한다. 오순절에 온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선교로 하나가 된 교회 위에 성령이 임하였다. 그들의 사소한 차이점은 그리스도의 사명이라는 더 큰 부르심에 종속되었다. 최고가 되려는 노력은 복음을 들고 잃은 자를 찾아 나서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중단되었다. 만약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권력 다툼에 분주했다면 사업은 시작부터 삐거덕댔을 것이다. 다행히 자아가 죽어야 한다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함으로써 그들은 목적과 사명으로 연합하였다.
다시 말해 연합이 없는 곳에는 부흥도 없다. 시기, 질투, 힘겨루기가 지배하는 곳에는 성령의 능력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를 분리시키는 장애를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바라시는 연합을 이룰 수 있다.
결론 : 예수님은 교회의 연합을 우선순위에 두십니다. 신약 성경도 신자들 사이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취급합니다. 공통의 기별과 사명을 가지고 기도하는 회중은 성령의 능력을 받고 지역 사회에 중요한 감화를 끼칠 것입니다. 사랑으로 연합한 초기 제자들처럼 우리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첫째날(일) 연합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
8월 11일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교사강해 1)
연합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는 우리 모두가 다 하나가 되는 것인데, 우리의 "하나 됨" 즉 연합은 막연히 "모이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하는 식이 구호가 아니다. 이 하나 됨, 연합에는 어떤 관계에서나 공통분모가 있다. 예수님은 요 17:16절에서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여삽나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하나 됨은 그 공통분모가 세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어떤 이해관계나 상황의 변화를 뛰어 넘어 변함없이 하나 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삶, 세상 방식으로 살지 않는 삶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또 요 17:17절에서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진리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씻겨 지기를 구하고 계신다.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해진 사람들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21절에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먼저 알 것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완벽히 하나 되어 계신다. 세 분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으로 완전히 연합과 일치를 이루고 계신다. 그렇게 완벽하게 하나로 일치가 되신 하나님 안에 우리 각자가 있어서 하나님과 일치를 이룬다. 이것이 두 번째 공통분모이다. 우리 각자가 완벽하게 하나로 일치가 되는 공통분모는 첫째, 세상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해질 것, 둘째, 각자가 하나님과 연합하여 일치를 이룰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가 다 하나가 된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긴 중보 기도를 담고 있다. 그것은 지구 역사의 중대한 시점에 그분이 무엇을 생각하고 계셨는지 보여 준다.
요 17:9~11, 20~24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간절한 염원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제자들 사이의 관계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신앙을 어떻게 보여 주었는가?(행 4:32~33 참고)
제자들이 하나가 되고자 연합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은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기 위해 준비되었다.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가 성취되었다. 그들은 각자의 차이점을 내려놓았다. 사랑의 정신이 그들을 지배했고 다툼이 사라졌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행 4:32~33).
위의 말씀은 “한마음과 한뜻이 된” 제자들과 “큰 권능으로” 전도하는 그들의 모습을 연결시키고 있다. 기독교 인구가 거의 없던 1세기 예루살렘의 어려운 여건에서 이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재원을 공유하였다. 그들은 서로를 돌보았다. 그들은 개인적인 야망을 제쳐 두었다. 이타적인 태도와 관용의 정신으로 그들은 말씀을 증언하기 위한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을 준비를 갖추었다.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은 바로 제자들이 높은 자리를 얻으려고 다투는 일을 그만두고 온전히 연합한 후에 있었던 일임을 주목하라. 그들은 하나로 일치되었다. 모든 의견의 차이는 사라졌다”(교회에 보내는 권면, 98).
부가적용)
우리의 하나 됨은 서로 마음 맞는 사람끼리 뭉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저마다가 하나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룰 때, 곧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안에 우리가 있을 때에, 우리 모두가 온전한 일치를 이루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교회를 옮겨 다니며 마음 맞는 사람을 찾는 분들이 간혹 있다. 교회는 그렇게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 마음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지, 그 말씀으로 인하여 우리가 거룩해지고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을 이룰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결코 자기만족이 기준이 될 수 없다.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별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는 마음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고, 상대가 내 마음에 맞기를 바라서는 안된다. 내가 세상에서 구별되어서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겨져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에 관심을 두고, 나와 마음이 맞지 않는 이웃이 하나님과 마음이 맞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서로의 뜻은 맞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일치를 이루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며,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이다.
교훈 : 십자가 직전에 예수님이 드린 기도 제목은 제자들의 연합이었다. 마침내 그들이 차이점을 내려놓고 연합했을 때 성령 충만을 입을 준비가 되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예수님의 바람대로 연합한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하나님은 각자 다른 성향과 특징을 가진 우리를 불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성령의 지도 아래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겸손하게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최고가 되고자 하는 정신, 서로를 불신하는 태도, 지나친 자기주장, 시기심과 질투심입니다.
| 적용 |
그대의 교회가 연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하나님의 계획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완전히 서로 연합하며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동일한 판단을 내리는 완전한 통일체가 되도록 계획하신다. 이 일은 교회 내에 명백하고 단도직입적이며 산 증언이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그분의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기도였다”(증언보감 1권, 345).
기도
아버지, 불신과 분열, 경쟁과 투쟁의 정신이 사라지고, 신뢰와 연합, 협력과 섬김의 영이 이 교회를 지배하기를 원합니다. 부흥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가 제거되고 선교 사명으로 우리 모두가 하나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둘째날(월) 신약 성경 속 연합의 예
8월 12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교사강해 2)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다. 어떤 분은 손의 역할을 하시고, 어떤 분은 다리의 역할을 하시고, 우리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각자 자기가 맡은 지체가 있다. 누구에게나 예외는 없다. 우리 교회의 어느 한 사람도 손님으로 나오시는 분은 없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일군으로, 섬기는 자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나온다. 여러분들이 지체의 역할을 감당하는 만큼 우리 교회가 건강해지고, 참으로 힘이 있게 되고, 여러분들이 지체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는 만큼 우리 교회가 약해진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셨을 때 우리들에게 맡기신 지체의 분량이 있다. 우리들 모두가 그 분량을 감당할 때만 우리 교회가 건강한 몸으로 성장 할 수 있는 것을 믿는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우리가 한 몸으로서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를 향해서 자라가야 한다. 우리가 성숙해질 때 여러 교훈이나, 속임수나, 잘못된 가르침에 넘어가지 않고 요동 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성장할 때에 하나가 될 수 있다. 성장하는 것과 하나가 되는 것은 직결되어 있다. 아는 것과 하나가 되는 것이 직결되어 있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 됨에 있다.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고,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근본적인 우리를 향한 사랑에 어긋나는 것이다. 하나 되는 것을 방해 하는 것을 스스로 버리실 수 있기를 바란다.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삶이 여러분과 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가 아는 것과 성장을 통해서 하나가 될 때 우리 안에 참된 변화가 있을 것을 믿는다. 생명의 열매가 우리 가운데 열릴 것을 믿는다. 마귀와 싸워서 견고한 진을 파할 수 있는 것을 믿는다. 우리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어서 주를 위한 역사를 귀하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을 믿는다. 교회의 성장은 절대로 숫자의 성장만은 아니다. 교회의 성장은 우리가 다 한 몸이 되어서 함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이다. 저는 우리 교회에 진정한 성장이 있기를 바란다. 숫자만의 성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다 자기 지체에서 가가 분량의 역할을 감당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믿는 것에 하나가 되어서 함께 성숙해짐으로 말미암아 진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
1세기 신약 시대의 세계는 신분과 사회적 지위, 성별로 분리되어 있었으며 혼란스러운 사회였다. 평등권, 자유, 인간의 존엄성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았다.
그때 기독교가 갑자기 등장하였다. 그것은 하나의 사회 혁명이었다. 자유, 정의, 빈곤층에 대한 관심, 소외 계층에 대한 존중 등 예수님의 가르침은 급진적으로 비춰졌다. 한편 신약의 신자들은 창조와 구속이라는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연합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창조하셨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각 사람이 세상의 지위와 무관하게 너무도 귀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다음 성경 절들이 말하는 비유는 서로 다른 신자들이 신분 배경과 상관없이 어떻게 조화롭게 섞였는지 예증하는가?(고전 12:12~18, 벧전 2:4~5)
교회 안에서 연합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비유가 더욱 효과적인가? 사도 바울은 교회와 그 신자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몸’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몸은 유기적이다. 지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호 의존적이다. 모든 지체에 각각의 기능이 있다. 몸의 한 부분이 아프면 온 몸이 고통스럽다(고전 12:18~26).
베드로는 영적 건축물의 예를 들어 예수님의 이름을 빛낼 영광스런 성전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돌들로서 신자들을 묘사하였다. 이런 비유에서 각 신자는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연합의 유대는 훼손된 관계, 권력 투쟁, 분파주의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기독교를 증명하는 강력한 논증이었다. 예수님은 이런 보편적인 진리를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언급하셨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부가적용)
예수께서는 이렇게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는 요 17:21절 하반절에 나온다.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은 '과연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구나.' 하고 믿게 될 것이며, 그렇게 믿어서 모두 구원을 받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23절 하반절에 나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여기서 '알게'는 '믿게'까지는 안가더라도 부인할 수 없어서 인정하게 한다는 뜻이다. 곧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 됨은 세상의 불신자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한다는 뜻이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빌 2:10)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내심이다. 사실 세상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믿게 하고, 주 안에서 하나 된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심을 알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됨이다. 교회가 하나 됨이다. 하나 되는 것은 그러므로 단지 우리가 서로 뜻이 맞는 사람끼리 있어서 마음 편하고 좋은 것에 그치지 않는 중대한 문제이다. 세상을 주님의 나라로 회복시킬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은 그리스도께로부터 난 자들을 서로 사랑하여 하나가 되어 우리 모두가 주의 통로가 될 때 기독교의 강력한 논증이 될 것이다.
교훈 : 신약 성경은 신자들의 연합을 그리스도의 몸 또는 성전으로 비유하였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함으로 세상에 우리의 신앙을 증명해야 한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교회의 연합을 지탱해 주는 정신에 대하여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여러 사람과 즐겨 식사하신 이유는 계급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분의 모본을 따라 기독교는 성만찬이라는 연합의 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떡과 잔으로부터 음식을 나눔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한 몸이라는 정신을 나눕니다. 또한 우리는 한 피를 나눈 형제와 자매가 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우리는 각 지체로서 그분의 뜻을 중심으로 연합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돕습니다.
| 적용 |
그대는 교회의 지체로서 지금 몸의 어떤 부분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습니까?
영감의 교훈
사도의 호소 - “사도는 그가 그들에게 나타내 준 진리의 능력을 그들의 생애에 나타내도록 그의 형제들에게 호소한다. 온유와 겸손,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품성과 그분의 구원의 축복을 입증해야 할 것이었다. 몸도 하나이요, 성령도 하나이요,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모든 신자는 같은 정신과 같은 소망으로 살게 된다”(증언보감 2권, 80).
기도
아버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초청하시고, 성전의 일부분으로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임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연합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교회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셋째날(화) 연합의 요소 : 선교와 기별
8월 13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2).
교사강해 3)
예수 부활 후 사도들은 담대히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파하였다. 그때 예수 죽인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마음에 시기가 나서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밤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끌어내어 가서 성전에 서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하라 하였다(행5:20). 사도들은 담대히 그리하였다. 그러나 예수를 죽인 자들은 다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예수를 그리스도라 전하는 것을 금하고 놓아주었다. 사도들은 오히려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는 것과 전하는 것 때문에 핍박받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였다(행5:41). 그리고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5:42)고 하였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며, 교회의 사명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없이 구원 없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전함 없이 부흥은 없다. 사람 몸의 세포의 증가가 몸의 성장이고, 건강이고, 장수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전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교회성장이고, 부흥이다. 사도행전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사람들의 부흥을 정밀하게 전하고 있다. 2:41 제자의 수가 3천이나 더하더라, 3:47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4:4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5천이나 되었더라, 5:1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을 때 6:1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다,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다. 생명 있는 성도, 성장하는 성도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굳게 믿는 사람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굳게 믿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가르치고, 전하는 강한 활동성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 일어난다.
신약 교회의 신자들이 경험한 연합의 기초에는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서적 온기 이상의 것이 있었다. 행 1:8, 4:33, 5:42, 9:31, 28:28~31을 읽어 보라. 신약 교회는 무엇에 온 열정을 기울였는가? 어떻게 그런 열정으로 서로 연합했는가?
제자들은 그들보다 위대한 것에 사로잡혔다.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이 그들의 개인적인 야망을 삼켰다. 연합하지 않으면 교회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 동시에 복음 전파에 전념하지 않으면 교회는 절대 연합할 수 없다.
선교는 중요한 연합의 요인이다. 초기 신자들은 선교를 중심으로 단결하였다. 생명, 죽음, 부활, 성소 봉사, 주의 재림이 그들을 한데 묶었다. 새 신자들은 “사도의 교훈”(행 2:41~42)에 신앙의 기초를 놓았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연합을 위한 토대를 제공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이미 있는 진리(현대 진리)”(벧후 1:12)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베드로 시대의 현대 진리는 교회를 연합시켰고, 그것이 예언적 추진력을 가지고 전진하도록 몰아갔다. 나사렛 예수는 구약 메시아 예언들의 성취였다. 제자들은 예언의 성취에 관하여 긴급한 현대 진리의 기별로 연합하였다.
지구 역사의 종말에도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긴급한 현대 진리를 주셨다(계 14:6~12). 그것은 심판, 순종 그리고 주의 재림을 다루는 “영원한 복음”이다. 이것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를 하나의 세계적인 가족으로 연합시키는 요소이다. 만약 이 기별이 희석되고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거나 구시대의 산물로 취급되면 선교는 긴급성을 상실한다. 만약 교회가 기별을 오해하거나 곡해한다면, 그 사명도 불투명해진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존재의 이유는 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는 데 있다.
부가적용)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소개되었다. 썩어 없어질 이 세상 속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라 하였는데, 사실 영원한 복음이란 everlasting gospel, eternal gospel 복음이다. 이것은 영생, 영원한 삶을 소개하는 복음이라는 뜻이다. 우리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과거로부터 현재, 아니 미래까지 전해져야 할 복음이라는 뜻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은 영원한 삶, 영생의 복음인 것이다. 딛1:2에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고 하셨다.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한 것이라 영원한 복음이라 하며 또한 영생의 복음이라 영원한 복음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썩어 없어질 세상이기에 이 영원한 세계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소개하는 복음이 바로 우리가 전하는 세 천사의 기별의 핵심인 것이다.
교훈 : 초기 교회의 연합의 핵심 요소 가운데는 선교적 열망과 기별이 있었다. 재림 교회도 세 천사의 기별이라는 현대 진리 전파를 통해 하나로 연합해야 한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우리에게는 현대 진리를 신속하게 전파해야 할 긴급성이 있습니까?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긴급성을 가지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예언이 대부분 성취된 지금은 그때보다 재림이 훨씬 가까워졌음에도 긴급성이 부족합니다. 물론 재림 운동 이후에 재림 신학에는 커다란 발전과 진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으며, 짐승의 나라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어린양과 함께 승리하리라는 기별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 적용 |
그대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현대 진리를 전하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연합하라 - “기별을 전하는 자들 사이에 독자적인 정신이 지나치게 편만하다. 이 같은 정신은 제거되고, 하나님의 종들은 함께 연합해야 한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라고 질문하는 정신이 지나치게 강하다. 천사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대는 아우를 지키는 자이다. 그대는 그대의 아우를 주의 깊이 돌봐야 하며, 그의 복리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하여 친절하고 부드러운 정신을 품어야 한다. 연합하라, 연합하라’”(교회증언 1권, 113~114).
기도
아버지, 우리에게 진리를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특권임과 동시에 책임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흑암에 갇혀 있는 자들과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교회를 선교 사명으로 연합시켜 주시옵소서.
넷째날(수) 교회 조직 : 연합의 구조
8월 14일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행 15:2).
교사강해 4)
유대로부터 내려 온 성경교사들이 성경을 가르치면서 오직 믿음과 복음으로만 하나님의 자녀가 구원을 얻느냐? 복음에 율법의 계명과 행위를 지켜야 구원을 얻느냐?는 논쟁이 일어났다. 이러한 논쟁은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계속 되어 왔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는 싸움이다. 유대로부터 내려 온 성경교사들이 성경을 가르치면서 오직 믿음과 복음으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좀 부족하다고 가르쳤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왔던 모세의 율법에 명한 할례를 받아야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복음+A 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 행 15:2절에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다. 사도행전 11장 5절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그것을 먹으라. 베드로 못 먹습니다. 주권자는 난데 네가 더럽다 하느냐? 베드로 그때 이게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성령님이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가라 명령하셨고 그 명령대로 이방인 고넬료에 집에 가서 말씀을 선포했다. 그 말씀을 듣는 그들에게 성령님이 임하는 것을 보았다. 고넬료 집에 가기 전에 바리새파와 똑같은 오해와 실수를 저질렀던 것을 경험한 베드로는 예루살렘 총회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의 피로 똑같게 차별 없이 구원을 얻는다고 베드로는 가르치고 있다.
신약 성경은 초기 교회가 뚜렷하게 조직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런 구조는 교회가 교리적 순수성을 보존하고 선교에 집중하게 했다.
행 6장에서 사도들은 헬라파 과부들에게 음식을 배분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사들을 선출하였다. 교인들은 이 지도자들의 권위를 존중하였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했을 때, 그는 교회 대표자 중 하나였던 아나니아에게로 인도되었다(행 9:10~17).
바울이 아나니아에게 침례를 받은 후에 성령은 그의 봉사를 확증시키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을 만나도록 그를 이끄셨다(행 9:26~30).
행 20장에서 바울은 에베소에서 온 장로들을 만나 거짓 교사와 이설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도록 호소하였다(행 20:17, 27~32).
신약 교회는 할례에 대한 큰 논쟁을 어떻게 해결했는가?(행 15:1~31)
예루살렘 공회는 하나의 심각한 분열로부터 1세기 교회를 구했다. 행정적 권위를 가진 교회 조직은 신약 교회의 교리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이 경우에 지역 교회 대표자들은 교회의 장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교리적 논의를 위해 예루살렘에 파송되었다. 대표자 모임이 의견일치에 이르자, 그들은 결정 사항을 서신으로 기록해 문제가 시작된 교회들, 즉 안디옥, 시리아, 길리기아 지방의 교회에 전하기로 결의하였다(행 15:23).
신자들은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을 수용하면서 성령께서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으로 인도하셨다고 기뻐하였다(행 15:30~35).
부가적용)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교회로 들어오게 되자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율법 안에서 견고한 도덕적 기반을 갖고 있지 못한 이방인들로 인해 교회의 윤리적 수준이 현저히 저하될 것을 우려하였다. 그래서 이방인 개종자들로 하여금 모세의 법대로 할례 받을 것을 주장했다. 예루살렘 총회를 통해 논쟁하게 된 이 내용에 대해 베드로는 날카로운 어조로 율법주의를 경고하였다. 바울도 갈라디아서 6:13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정확히 얘기하고 있다. “할례를 받은 그들(유대 그리스도인)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이방인 개종자)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받게 된 구원의 공로를 인간이 가로채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초기교회도 이런 교리적인 논쟁이 있었지만 이를 위해 사도들의 행정 조직의 권위에 문제를 의뢰하여 교회의 연합을 유지하였다.
교훈 : 초기 교회는 교리적인 논쟁에 빠졌을 때, 주께서 인정하시는 행정 조직의 권위에 문제를 의뢰함으로써 교회의 연합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교회 조직을 얼마나 신뢰합니까?
여러 가지 요인으로 교회 조직에 대한 신뢰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지도력에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통일성에 대한 필요를 초월합니다. 게다가 정보 통신의 발달로 조직 체계의 도움 없이도 정보를 수집하거나 다른 지역과 교류할 수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조직 구조도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요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동일한 진리와 믿음을 가진 하나의 교회라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 적용 |
신자 개인과 각 교회가 재림 교회 조직을 신뢰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영감의 교훈 기 도
하나의 조직으로 연합 - “주께서는 당신의 지혜로 모든 신자가 유지해야 할 그 긴밀한 관계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과 연합하고 교회는 교회와 연합하도록 계획하셨다. 이리하여 인간 도구는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기관이 성령께 복종하게 될 것이므로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하나의 조직되고 잘 지도된 수고를 하도록 연합하게 될 것이다”(사도행적, 164).
기도
아버지, 마지막 시대를 위한 특별한 사명을 이 교회에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교단이 마지막 시대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연합의 정신과 일치의 영을 부어 주시고, 이 교회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옵소서.
다섯째날(목) 연합을 이룸
8월 15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교사강해 5)
교회는 누구의 이름으로 모이는가?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두 사람은 공동체의 가장 최소한의 구성원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신다. 두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저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은 매우 중요한 약속이다. 둘이나 혹은 셋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지극히 적은 숫자를 의미한다. 흔히 무시해버리기 쉽고 보잘 것 없는 숫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적은 수의 사람들이라도 자기 백성이 합심하여서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가 다스려 주시기를 구하는 곳에는 함께 계시겠다고 하신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함이 있는 곳이 곧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의 임재는 세상의 실존 형태와는 참으로 대조되는 실존 형태이다. 세상에서는 화려하고 대단한 모습으로 자기의 실존을 나타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주님의 임재는 자신의 이름을 불리어 지는 곳에 자신이 함께 있으시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이다.
예수께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점점 서로 가까워진다. 우리는 새로운 영적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스도의 영께서 우리로 하여금 서로를 이전과 다른 관점으로 보게 하신다. 한때 우리를 괴롭혔던 사소한 문제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르게 보인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의 관점에서 오랜 적대감을 내려놓는다. 해묵은 원한과 논쟁들이 중단되고, 장애물들이 제거된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깨진 관계가 치유된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충만히 임하셨을 때, 서로를 향한 제자들의 태도는 극적으로 바뀌었다. 십자가에서 흐르는 빛을 통해 그들은 서로를 새롭게 바라보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의 형제들에게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 한 가지 관심사가 널리 보급되었으며, 한 가지 경쟁적인 주제로 다른 모든 문제들은 사라졌다. 신자들의 포부는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나타내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었다”(사도행적, 48).
1세기 기독교에 연합의 정신을 증진시켰던 습관을 열거해 보라. 신자들을 연합시키는 데 왜 이런 습관들이 그토록 효과적인가?(마 18:16~20, 행 1:14, 12:5, 12, 6:7, 마 28:16~20)
연합을 바란다고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약 교회는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이야기했다. 그들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함께 그들의 믿음을 전하였다. 기도, 성경 연구, 증거는 교회의 연합을 조성하고, 증진시키고, 유지시키는 강력한 요소이다. 지역 사회를 위한 전도 활동에 참여할 때 우리는 일치감 또는 일체감을 경험한다. 생명력이 있고 생동감이 넘치며, 연합하여 부흥한 교회의 신자들은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지역 사회에 복음을 전한다.
부가적용)
세상적 인식은 이 두세 사람이 모인 곳을 실패한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리어 지는 가장 최소한의 공동체인 두 세람이 모인 곳에는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 얼마나 은혜로운 약속인가?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가 가정이다. 부부의 기도, 그리고 그 속에서 태어난 자녀가 생기면 세 사람이 될 수 있는데 이 가정의 기도 속에서 우리 주님의 이름이 불리어 지는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와 그리고 교인들이 모인 소그룹 속에서도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가 된다. 그러므로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은 작은 교회가 아닌 것은 그곳에 크신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교회에는 작은 교회도 없고 큰 교회도 없다. 크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결코 작은 모임이 아니다. 주님의 교회는 크고 작은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속한 하나의 교회만 있다. 하나의 교회가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뿐이지 결코 작은 교회는 없다.
교훈 : 교회의 연합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에서 시작되며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을 연구하고, 함께 복음을 증언해야 성취된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의 신앙은 개인적입니까? 아니면 공동체적입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개인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교회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무엇이라도 하려고 시도하면 잡음과 문제가 발생합니다.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영적 부흥과 선교 발전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분부대로 무엇을 하기에 앞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을 배우며, 복음 전파를 위해 함께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 적용 |
그대는 교회 연합을 위해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영감의 교훈
사랑은 여기 있다 - “성령은 기다리며 기도하는 제자들에게 충만히 임했으며 모든 사람은 그것을 체험하였다. 무한하신 분께서는 당신의 교회에게 능력 있게 그 자신을 나타내셨다. …성령의 감화로 참회와 자복의 기도가 용서에 대한 찬양의 노래와 뒤섞였다. 감사와 예언의 말씀이 들렸다. 온 하늘은 비할 데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굽어 내려다보고 찬탄해 마지아니하였다.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며 사도들은 ‘사랑은 여기 있’다고 부르짖었다”(사도행적, 38).
기도
아버지, 우리에게 한마음을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젖어 서로를 긍휼히 여기고 누구든지 용납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을 보고, 우리에게서 그분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8월 16일
“이 최초의 제자들은 다양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세계의 교사가 되어야 하였으나 매우 다른 유형의 품성을 드러내었다. 다양한 천성과 생활 습관을 가진 그들이 부름 받은 그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는 감정과 사상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연합을 이루시려고 목적하셨다. 그분은 이 목적을 위하여 그들을 당신과 연합시키고자 애쓰셨다”(사도행적, 2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연합된 교회 구조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역 교회와 합회와 연합회 그리고 지회가 제각각이라면 우리의 사명과 기별과 교회에 무슨 일이 생길까요? 이어질 혼돈을 상상해 보십시오.
➋ 교과반에서 ‘나는 왜 재림교인이 되었는가?’에 대하여 말해 보십시오. 교회에서 연합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지 않을까요? 있다면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교훈을 설교하는 자들에 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9). 이 사람들 때문에 교회의 연합에 어떤 문제가 생겼습니까?
➌ 우리의 기별과 사명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정체성에 얼마나 핵심적인 요소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는 다른 교회가 전할 수 없는 기별이 있습니다. 이런 기별이 아니라면 우리의 존재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반면 우리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 연합시키는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다시 말해 우리의 사명과 기별에 관계는 없을지라도 우리를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왜 그것들도 중요합니까?
➍ 우리의 연합이 부흥과 개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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