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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추수와 파수꾼(교사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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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추수와 파수꾼

3월 23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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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오후 6시 45분

 

기억절 :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개역, 요 15:8).

 

도입)

어느 그리스도인 의사의 간증이다. 그는 개인병원을 개업하게 되었다. 그는 늦은 밤 문을 닫으면 모든 직원들을 퇴근시키고 금고 앞에 앉아 그 날 번 돈을 세면서 하루의 피곤을 씻곤 하였다. 매 순간의 관심은 돈이었다. 어느 날 밤 책상 위에 돈을 쌓아 놓고 열심히 세던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가면 무엇이라 보고 드릴 것인가? 환자들을 고치고 돈만 세다 왔다고 보고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할 때 부끄러워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보았다. 결국은 이 말씀이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단12;3) 그 의사는 그 후부터는 환자들이 오면 가장 약할 때를 이용하여 사랑하여 주고 정성을 다하여 치료하여 주고 전도하였습니다. 병과 죽음과 내세에 대하여 말하면서 치료하였다. 밤이 되면 돈도 세고 그 날 영혼 구원 받을 명단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부터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을 생각하니 그렇게 일이 보람되고 기쁠 수가 없었다. 인생에 만족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간증이었다. 그리고 병원도 잘 되고 있다는 간증이다. 전도는 전도를 명한 주님의 마음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길이다. 천국의 VIP는 전도자이다.

연구범위: 요 1:40~46, 요 4:28~30, 눅 24:4~53, 행 1:6~8, 마 9:36~38, 눅 15장.

 

*교과를 구입하지 않으면 매일 공부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이번 과는 여러모로 지난 과의 연장선상에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라는 뚜렷한 목적을 위해 영적 지도자들을 세우셨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원리와 방법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준비시키는 영적 기초가 되어야 한다.

한편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놓으신 기초를 오늘날의 리더십 계발 이론으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광고와 선전이 영적 성장 위에 있는 이상, 그 결과는 영적 빈약에 이를 뿐이고, 개종이 회개와 회심과 영적변화를 대체하는 이상, 사명은 흔들릴 뿐이다. 영적 투쟁을 위해 리더들을 준비시키기보다 회원을 모집하고 미디어 공세를 펼치며 홍보 캠페인을 펼치기 위한 리더 훈련은 재앙을 자초한다. 진정한 전도와 제자 양육은 ⑴ 자신의 죄성에 대한 인정, ⑵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참회, ⑶ 전적인 영적 굴복 그리고 ⑷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거

룩한 기별을 전파하고픈 주체할 수 없는 충동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안교활동반과교과토의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진정한 제자는 직책이나 지위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➋ 느끼기 : 섬김의 삶을 갈망한다.

➌ 행하기 : 자신이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 또는 지역으로 인도해 주시도록 성령께 자신을 맡긴다.

 

Part 1. 인사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 리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해 줍니다.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헌금을 걷습니다.

결석자와 구도자에 대한 보고를 듣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Part 2. 나눔

안교 교사 또는 소그룹 리더(A나 B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A. ❶ 추수, 김장, 대청소 때 일할 사람이 부족하여 고생하신 적이 있습니까?

❷ 목자가 없고 추수할 일꾼이 부족하다는 말씀은 교회의 어떤 상태를 지적하고 있습니까?

❸ 예수님이 타락한 죄인들을 “잃은” 자들로 묘사하신 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❹ 우리는 익은 곡식을 추수하는 자 또는 잃은 자들을 찾는 자로서 어떻게 일해야 합니까?

B. ❶ 작년에 얼마나 많은 초청에 응하였는지 돌아가면서 말해 봅시다.

❷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사람들을 초청하는 전도 방식은 얼마나 효과적입니까?

❸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기시고 그들에게 능력과 권위를 부여하셔서 그분이 없는

곳에서도 전도하게 하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❹ 우리가 전도하기에 앞서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기 위해 어떻게 협력하여 기도할지 이야기해 봅시다.

 

결론

우리가 성령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통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종종 우리의 영적 은사를 활용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을까요?

 

Part 3. 실천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예비) 리더

❶ 지난 친교 모임에 대하여 소감을 이야기합니다.

❷ 2기에 어떻게 초청 활동을 전개할지 의견을 나눕니다.

❸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합니다.

 

첫째날(일) 3월16일

거지들의 빵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 1:40~42).

 

교사강해 1)

안드레는 메시야를 만난 후 그 은혜를 자신들만 누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를 원했다. 안드레는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가 벅찬 감격으로 증거 했다. 그리고 그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다. 가족에게 예수님을 증거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가장 먼저 형인 시몬에게 가서 증거 했다. 안드레는 멍한 사람 같이 보이지만 포인트가 있었다. 그의 고백은 조금도 모호한 데가 없는 분명한 것이었다. 그들은 먼저 침례 요한으로부터 예수님에 관한 증거의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사귐을 통해 메시야를 만났다. 그리고 바로 예수님을 증거 했다. 그들의 증거를 통해서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올 수 있었다. 만일 그들이 은혜만 누리고 증거 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하나님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증거 하는 증거의 역사가 없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는 없다. 그러나 증거의 역사가 있는 곳에 반드시 생명의 역사가 창조된다. 증거는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 방법이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은 말한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단순한 증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 복잡한 신학 이론은 생명이 없다. 박사 학위를 가진 신학자의 이론보다 별 아는 것이 없지만 확신에 찬 성도들의 증거가 더 힘이 있다. 하나님은 이런 단순한 증거를 통해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리석을 만큼 단순하게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의 말씀을 증거해야 한다.

 

지상 생애를 마치고 승천할 때가 가까워오자 예수님의 관심은 그분이 깊이 사랑하고 이타적으로 섬겼던 제자들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은 버려지지 않을 것이었다. 비록 예수님은 하늘로 돌아가시지만, 제자들이 그분과 함께 나누었던 영적 친밀감은 성령께서 대신 공급하시도록 위탁되었다. 성령의 사역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요한은 여러 장을 할애하여 그 내용을 기록하였다. 그중에 중요한 요소는 그리스도에 관한 성령의 증언이었다. 물론 성령도 도움 없이는 증언하시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주의 제자들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 예수님의 사역에 대하여 증언할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협력 없이도 천사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명령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이 거룩한 사명을 위해 죄와 실수가 많고 예측하기 힘든 인간들을 선택하셨다.

요 1:40~46, 4:28~30, 15:26~27, 19:35~36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에 따르면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과 사람은 어떻게 협력하는가?

전도는 흔히 ‘거지가 다른 거지에게 빵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안드레는 분명 이 점에서 뛰어났다. 그의 형제 베드로의 글은 언젠가 성경에 포함될 것이었고, 그의 사역은 사도행전에 기록되었으며, 예수님은 그를 가장 친밀한 세 제자 중 하나로 삼으셨다. 안드레는 그런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라는 그리스도의 단순한 명령을 따랐기 때문에 그는 특별한 인정을 받았다.

 

교훈

예수님을 증거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주님께 인도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수많은 영적 지도자가 생겨났다.

 

부가적용)

성경에 보면 거지에 대한 비유가 자주 나온다. 이는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의 형편을 묘사한 것이다. 하늘에 있는 존재들에 비해 이 땅에 썩어져 없어질 것들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비교해 보면 이 땅의 사람들은 그 형편이 거지와 같다. 인간이 입고 있는 그 몸, 곧 장막은 낡고 병들고 그 형편이 거지꼴과 같다. 탕자의 비유 속에 둘째 아들도 거지꼴로 돌아온 것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인생들의 형편이 모두 거지꼴과 같은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 아버지의 크신 긍휼로 기다려 주시는 분이 곧 우리 하늘 아버지이시다. 이 땅은 썩어질 양식을 위해 살지만 영생의 떡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어야 할 사명을 우리가 받았다. 썩어질 양식, 곧 이 세상의 헛된 것을 위해 사는 거지와 같은 이 인생들에게 하늘의 부요한 축복의 떡을 소개하고 생명의 양식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의 운명이 바뀐다. 특별히 예수님을 믿었던 수많은 제자들의 삶의 운명이 바뀌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저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인 순간 저들은 운명의 큰 변화가 찾아왔는데 저들이 모두가 영적인 지도자들이 된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그대가 사람들을 초청할 때에 성령께서 어떻게 도우실 것이라고 믿습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그릇들, 즉 전도, 행정 그리고 지도력에 탁월한 지도자들이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잊혀진 신실한 제자들의 손에 이끌려 그리스도께 인도되었던가? 비록 이들이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신실하게 예수님을 증언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업이 얼마나 무력했을지 상상해보라. 예수님은 우선 제자들이 미칠 수 있는 범위 내의 단순한 과제를 제공하심으로 더 큰 임무를 위해 그들을 준비시키셨다. 사마리아 여인, 빌립 그리고 안드레는 단순한 증언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초청의 힘을 증명한다. 우리도 모두 그와 같이 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적용|

그대가 포기하지 않고 소그룹 또는 교회로 초청해야 할 친구 또는 이웃은 누구입니까?

 

영감의 교훈

변화된 마음이 받는 첫 번째 충동- “장차 올 세상의 능력을 맛본 사람은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학식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그리스도를 고무시켰던 그 정신으로 격려될 것이다. 변화된 마음이 받는 첫 번째 충동은 다른 사람들도 구주께로 인도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이 없는 자들은 그들의 첫사랑을 잃어버린 증거를 보여 준다”(증언보감 2권, 126).

 

기 도

주님이 저에게 얼마나 좋은 분이며, 주님을 모신 우리 교회가 얼마나 좋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을 초청할 때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일하여 주셔서 그들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둘째날(월) 3월17일

예수께서 인내를 호소하실 때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 24:49).

 

교사강해 2)

우리는 왜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다려야 했는가?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7:39)고 했다. 십자가와 오순절의 성령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칠칠절은 곡식에 낫을 대는 날부터 7주를 계산하여 맞는 명절을 말한다.(출 16:9) 즉, 유월절 다음 7주 후 50일 만에 지켜지는 절기이다. 그래서 오순절이라고 한다. 그 때에는 처음 곡식을 수확할 때이었으므로 이스라엘은 이 추수의 첫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복의 양대로 예물을 드렸다. 그 예물은 종류에 상관없이 자원하는 마음이면 되었다. (출 16:10) 첫 열매를 드렸다고 해서 초실절, 맥추절(출 23:16)이라고도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므로 인간의 죄가 간과된 유월절 대속이 이루어지고,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영광을 받으셨다. 그는 하늘의 대관식을 치르시고 온 인류의 왕이 되셨다. 이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구원을 인친 성령이 임하시게 하셨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하셨는데 아담은 산영이요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시는 영이시다. 성령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임한 살려주시는 영이 임하시는 것이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임하심은 우리가 산영이었던 아담에게서 떠난 하나님의 영이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시어 살려주시는 영이 들어와 다시 살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인침의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롬 8:29).

 

눅 24:47~53, 행 1:6~8, 16:6~10을 읽어 보라. 성령을 기다리는 일이 왜 필요했는가? 초기 교회의 전도 활동에 성령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곤란한 상황을 맞이했던 바울의 경험에서 오늘날의 신자들은 어떤 격려를 받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때를 위한 인내와 기다림에 관하여 위의 성경절에서 제시하고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대화와 모본을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내를 가르치셨다. 심한 편견, 무지, 오해와 공공연한 음모를 겪으면서도 예수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셨다. 그와 같은 인내심은 하나님의 영에 대한 그분의 전적인 의지에 기초해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의지하는 경험이 없다면 천국의 확장이 매우 위태롭게 될 것을 아셨다. 반대로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교훈을 배운다면 그들의 장래 사역은 하늘의 성과로 이어질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의 첫 번째 명령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오늘날의 신자들도 그와 같은 교훈을 연마하기 바라신다.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을 신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지도를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음으로 자신과 하나님의 나라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비두니아 지역으로 들어가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고집센 바울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성령의 개입을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였다. 사도는 자신을 마게도니아로 보내시는 성령의 지시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끈질긴 노력을 기울이자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바울이 자기 계획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면 유럽 선교는 무기한 연기될 뻔하였다.

 

교훈

복음을 전하는 일은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며 그런 태도는 철저하게 성령을 의지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제자들은 먼저 성령의 지도를 기다려야 했다.

 

부가적용)

성령은 살려주시는 영(고전 15:45)이시다.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믿는 증거가 임하게 되는데 성령이 임하신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행2:38-39)였다. 인간은 성령, 곧 하나님의 영이 떠나간 존재(창 6:3)였으므로 죽은 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시면 다시 산영이 되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게 된다. 성령은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에 대한 확증이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롬 8:16)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하고 성령을 근심케 하여 떠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타락하고 부패하는 것은 성령이 그 마음에 안계신 증거가 된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계획보다 자신의 계획을 앞세웁니까?

예수님이 없는 제자들은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계획은 당시에는 기발해 보이지만 수많은 단점과 빗나간 예측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자주 실행을 서두릅니다. 그리고 난관에 부딪히며 그때서야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고 우리의 계획을 그분의 계획에 맞추고자 한다면 성공을 약속 받을 텐데 말입니다.

 

|적용|

지금 우리는 어떤 일을 위하여 기도하며 성령께서 인도하실 때까지 인내심을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까?

 

영감의 교훈

하늘의 선물을 기다리라-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도하심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 일을 처리하고자 하므로 하늘의 선물을 받지 못한다. 성령은 오직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지도하심과 은혜를 받고자 기다리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이 약속된 축복은 이와 함께 다른 모든 축복들도 따라서 임하게 한다”(복음교역자, 28 5).

 

기 도

아버지, 제 손과 발이 앞서가기 전에 먼저 무릎이 앞서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얄팍한 지혜가 미래를 아시는 아버지의 지혜에 굴복하게 하옵소서.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기다려야 할 때와 전진해야 할 때를 알게 해 주시옵소서.

 

셋째날(화) 3월18일

권위를 행사함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교사강해 3)

천국의 열쇠에 대한 이해를 하려면 다음의 성경절을 이해해야 한다.“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16:15-19) 라는 말씀에 천국의 열쇠가 들어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때 베드로가 대답을 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이라고 고백했다. 예수께서는 이 고백을 들으시고 베드로를 칭찬하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교회의 반석을 바로 사도 베드로의 고백 위에 세우신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은 매우 중요한 고백이다. 예수님을 가르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고백은 바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고백의 시작이다. 교회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사람들을 옮기는 사역을 하는 곳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고후 4:4)이라고 하셨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는 음부 곧 무덤의 권세를 이기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같은 고백이 바로 바로 천국의 열쇠인 것이다. 베드로가 고백한 이 고백이 바로 천국의 열쇠인 것이다.

 

막 6:7~13, 마 16:14~19, 18:17~20, 28:18~20, 요 20:21~23을 비교해 보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떤 종류의 권위가 있었는가?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베드로가 교회의 믿음의 기초가 되는 진리를 나타냈으므로 예수께서는 전체 신도들의 대표자로서 그를 높이셨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천국 열쇠’는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모든 성경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으로서 그 말씀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이 말씀은 하늘을 열고 닫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말씀은 사람들이 가납되느냐 혹은 거절당하느냐를 결정짓는 조건들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자들의 사업은 생명에 이르게하는 향기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거나 한다. 그들의 사업은 영원한 결과가 달려 있는 사명이다”(시대의 소망, 413~414).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사명을 맡기신 것처럼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기셨다. 아버지께서는 성령을 통해 예수님께 거룩한 능력을 부여하셨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성령을 통해 지상의 과업에 적합한 거룩한 능력을 제자들에게 부어주셨다. 어떤 신자도 예수님이 그들에게 능력을 부족하게 주셨을까봐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필요한 모든 기술과 재능, 힘과 역량이 공급되었다.

간혹 인간 지도력은 필요한 원칙을 인식하는 데 실패한다. 만약 리더가 적합한 능력을 확장시키지 않은 채 임무를 부여한다면,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교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기시고 능력을 부여하셨다. 또한 그들을 통제하기보다 권위를 주어 그분의 말씀과 모본에 따라 봉사하도록 하셨다.

 

부가적용)

기독교는 곧 그리스도, 기독(基督)은 그리스도의 한자어의 음역이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천국문을 여시는 열쇠가 되신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7-18)라고 말씀하셨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 곧 천국의 열쇠를 가지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 같은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었다. 이 고백은 천국문을 여는 열쇠요, 교회는 바로 이 고백에 기초해 세워진 천국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이 고백을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권위를 부여하시고 능력을 주시었다. 교회의 영적지도자들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고백, 곧 이 천국의 열쇠를 통해 이 고백을 통해 천국의 문을 열도록 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 3:16)고 말씀하셨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하나님은 그대에게 신자 또는 직분자로서 어떤 권위를 부여하셨습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지도자의 불안정성은 다른 사람의 사고와 하나님이 부여하신 창의력과 개별성을 제한하려는 통제 행위를 통해 표면화된다. 그렇게 위축되고 억눌린 제자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와 같은 행동은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대신 모든 악기를 일제히 연주시키려는 지휘자와 같다. 여기서 예수님의 모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약 누군가 권위를 제한하고 행동을 지시할 권한을 가졌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예수님일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제자들에게 권위를 부여하셨고 그분의 명령과 모본 외에는 그분의 영향력이 없는 곳으로 그들을 파견하여 복음을 전하며 봉사하도록 사명을 맡기셨다.

 

|적용|

그대는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자신에게 부여된 권위를 행사해야 합니까?

 

영감의 교훈

성공하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함- “그들이 사업에 성공하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하였다. 인간의 능력이나 인간의 지혜로써가 아니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였다”(사도행적, 17).

 

기 도

예수님, 우리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시고 하나님의 일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부족한 우리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허락하시며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위임된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게 해 주시옵소서.

 

넷째날(수) 3월19일

추수를 위한 일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 9:36~38).

 

교사강해 4)

교회당을 열 개 짓는 것보다 죽어가는 영혼 한 명을 구원하는 것은 더 가치 있는 일이다. 한 영혼의 가치가 이 온 우주보다 크기 때문이다. 교회라는 건물은 필요한 것이고 요긴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 교회라는 건물을 짓는 일이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영혼들을 구원할 추수꾼들, 이 땅의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영적인 일에 종사할 이런 고귀한 일들을 할 일군들이 줄어가고 있다. 이 세상에 살아갈 물질과 재정을 얻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늘어났으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애쓰는 헌신한 일군들은 줄어들고 희귀하여져 가고 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현재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 앞에 놓인 임무를 위해 어떤 중요한 기별을 들어야 하는가?

 

영적으로 수확할 곡식은 쌓였지만 추수할 일꾼은 거의 없다. 마음 밭이 준비되어 영적 씨앗이 뿌려졌고, 발아한 후 풍부한 수분과 햇빛을 받고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다. 이제 무르익은 영혼은 수확되기만을 기다리지만 추수꾼은 어디 있단 말인가? 간단하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회화적인 문체로 예수님은 전염성이 강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려 하셨다.

때로 그리스도인들은 동료 신자와의 교제를 갈망하며 함께 무리를 짓지만, 세상에서 추수를 기다리는 자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거룩한 책임감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들은 교회 일, 공공의 의무, 건물 관리 그리고 현상유지를 위한 여러 훌륭한 계획들로 분주하다. 이것들 모두가 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진지한 신자들은 전도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이렇게 하소연한다. “목사님, 이런 전도 방식도 좋지만, 이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필요 없지 않나요?”

상당히 좋은 질문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질문도 있어야 한다. “언제 예수님이 곡물창고지기의 부족 때문에 탄식하셨습니까?” 그분은 추수할 일꾼을 더 많이 보내달라고 간구하셨다.

 

교훈

교회는 내적 연합과 유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예수님은 영혼을 추수할 일꾼을 더 많이 필요로 하신다.

 

부가적용)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속적인 이 세상의 쾌락과 물질과 개인적 번영을 위해 밤낮으로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죽어가는 이 땅의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노력들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깨어 있는 사람들이 부족하다. 얼마 남지 아니한 이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데 이 종말을 깨울 깨어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 세상의 물질적 번영과 물질적 축복에 매인 사람들이 하늘의 영광과 썩지 아니할 하늘의 기업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 복음을 위해 사는 자, 복음을 위해 노력하는 자가 줄어들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 농사에 하늘의 백성들을 수확할 추수꾼들이 필요하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그대는 어떻게 추수할 일꾼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장 일을 배분하기보다 먼저 더 많은 목자와 일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이 일은 소수의 일꾼이 개인적인 노력으로 마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목자와 일꾼들을 양성하고 재생산하는 방식으로만 추수가 끝나리라는 사실을 보셨습니다. 그렇다고 앉아서 제자 양성만 외치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영혼을 수확하는 일과 새로운 제자와 리더를 양육하는 노력을 병행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적용|

어떻게 하면 교회의 영적 공동체를 유지하고 동시에 활발한 추수 활동을 전개할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간절한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의 사업의 모든 분야에 헌신적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발적인 조력자들이 필요합니다. 목사로 혹은 문서 전도자로 나아가 일할 명석하고 지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추수할 것은 많고 일꾼은 적으므로 하나님께서 일꾼들을 모집하여 추수장으로 보내주시도록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합시다”(자서전, 277).

 

기 도

아버지, 교회 안에 머물고 있는 우리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제 하늘의 은혜와 도움을 갈망하나 아직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수많은 영혼을 위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사업을 위해 더 많은 목자와 일꾼이 더해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다섯째날(목) 3월20일

잃었다가 다시 찾음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눅 15:4).

 

교사강해 5)

현대인은 많은 것을 돈으로 환산한다. 그리고 헌신하는 마음은 없고,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없다.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요.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요. 다른 사람의 즐거움이 나의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더불어 고통을 느끼고, 더불어 행복을 느낄 때 인간이 사는 참맛을 알게 될 터인데 그것을 모르고 살아간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못 마땅히 여길 때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이다. 세리와 죄인들은 잃어버린 양과 같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는데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냐. 왜 함께 기뻐할 줄을 모르느냐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음이다. 목자에게는 양 한 마리가 소중하다. 이 한 마리 양으로 인해서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예수님 앞에서 그 한 마리 양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나의 의미와 가치는 예수님 앞에서 바로 깨닫게 된다. 나 한사람이 천하보다 귀하다. 나는 하나님의 창조의 결정체요.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 그러므로 내 삶의 존재 의미와 행복은 목자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시작된다.

 

예수님은 교훈과 모본을 통해 제자들로 하여금 죄인들 심지어 창녀과 세리 같은 악명 높은 자들과도 교제하도록 가르치셨다. 그들이 어떻게 온 세상을 제자로 삼을 수 있을까? 그분의 가르침은 종종 이러한 죄인들에게 집중되었다. 예수님이 그들을 “잃은” 자로 여기셨다는 사실은 그분이 얼마나 자비로운 분인지 증명한다. 그분은 그들을 “반역적인 무리” 또는 “타락한 자들”로 여기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잃은 자”라는 표현을 선택하셨다.

“잃은”이란 표현은 다른 표현에 비해 부정적 어감이 없다. 우리는 타락한 영혼들을 책망하기보다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잃은”이란 단어는 찾는 자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하는 관대한 표현이다. 폄하하는 발언은 잃은 자들을 멀리 떠나게 한다. 중립적인 언어는 용납과 관계의 가능성을 전달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뿐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언어도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은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신자들에게 잃은 자들을 찾는 사람이 되도록 권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잃은 자들이 어떤 유형의 사람이든 어떤 방식의 삶을 살든 상관없이 그들을 사랑하고 구원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봉사는 이것이니 곧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사 58:6~7)이다. 그대 자신이 오직 그대의 천부의 사랑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대는 죄 가운데서 고생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실물교훈, 210).

 

교훈

예수님은 타락한 죄인들을 묘사할 수 있는 다른 표현보다 ‘잃은’이라는 표현을 선호하심으로 비난보다는 동정하고 구원해야 할 책임을 강조하셨다.

 

부가적용)

어떤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그 스승 밑에는 유능한 제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유달리 한 제자는 사고뭉치에다가 말썽만 일으키는 못된 제자가 하나 있었다. 늘 성실하고 스승의 말을 잘 알아듣는 제자들은 그 말썽꾸러기 제자가 항상 못마땅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저런 녀석 때문에 우리의 위신이 깎인단 말이야!”어느 날 제자들이 작당하고 스승을 찾아갔다. “선생님, 저 못된 녀석을 집으로 보내시지 않으신다면 저희들이 떠나겠습니다.”그러나 스승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 잘 가거라!”그러자 제자들은 더욱 화가 났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따졌다. “아니, 어째서 성실히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른 저희들은 냉대하시면서 저 못된 놈은 그렇게 너그러이 두둔하시는 것입니까?”이런 불평에 대해서 그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지만 저 녀석은 내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니라.”그제서야 제자들은 자신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뉘우치고 그 못된 제자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예수께서 잃은 양이라 한 자들이 세리와 창기들과 같이 세상의 버림을 받은 존재들을 지칭했다. 우리는 세상에 버림 받은 자들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야 한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그대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들에게 어떤 동정심을 느낍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그리고 그대는 불행을 당한 자와 참회하는 자들을 질투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의 마음에서 이기심의 얼음이 녹아내리면 그대는 하나님과 같은 동정심을 가지게 되고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210~211).

 

|적용|

그대가 찾아야 할 ‘잃은’ 자들은 누구이며 그대는 그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세상을 구원하는 고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은 이제부터 자기 자신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드리워진 사슬의 한 고리로, 그리스도의 자비의 계획에서 그분과 하나가 되어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고자 그분과 함께 나가는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치료봉사,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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