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과 그리스도와 모세의 법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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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과 그리스도와 모세의 법
기억절:“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 5:46).
첫째 날(일) 할례와 봉헌식 (눅2:21-24)
*도입질문: 예수님도 당시에 지켜졌던 모세의 법을 준수하셨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모세에게 법을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모세에게 주신 법이 조건이나 명령이 아닌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므로 율법 속에 담긴 의미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만나도록 주신 법이었으므로 예수님도 모세의 법에 따라
할례와 봉헌식을 행했고 산모를 위한 정결예식도 준수하였습니다.
둘째 날(월) 유대인의 명절(요5:1)
*도입질문: 구약 성경의 절기들을 지금은 지키지 않지만 여전히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유대인들은 7개의 절기와 두 개의 명절을 준수하였습니다.
유월절(1.14), 무교절(1.15), 요제절(1.16), 오순절(3.6), 나팔절(7.1), 대속죄일(7.10) 초막절(7.15-21)
그리고 페르시아에서 살 때에 유대인 전체가 한 날 죽임을 당할 위험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부림절과 기원 전 164년 마카비 군대가 그리스 군대로부터 얻은 승리를 기념하는 수전절입니다.
유대인의 7개 절기는 모두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이 되었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하늘에서의 사역 등으로 인해 지킬 필요가 없어졌고, 부림절과 수전절은 유대인에게 의미있는 날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지만 절기와 명절 속에 담긴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구원하고자 하시는 품성은 여전히 연구해야할 가치가 있습니다.
셋째 날(화) 예수님과 성전
*도입질문: 예수님께서 자신의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은 무엇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께서 12살에 유월절에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셨습니다.
성전에서 양 잡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담을 창조하신 창조주시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아담의 선택의 결과인 영원한 죽음을 창조주이신 자신이 해결하기 위해 아담처럼 하나님의 아들로서 두 번째 아담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온 부모님들에게 자신의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눅2:49)
유월절 양이 피 흘려 죽을 때 그것을 자신의 사명처럼 느끼게 된 것은 성령의 역사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12살 전에 이미 어머니 마리아로부터 자신의 비밀을 들었지만, 들었던 이야기가 생명적 의미로 느끼게 된 것은 성령님의 조명하심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넷째 날(수) 세금(마17:24-27)
*도입질문: 예수님은 당시에 부과되고 있는 세금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셨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종교적인 의미를 다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성전의 유지를 위해 성전세를 걷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성전 그 자체이셔서 성전세를 내실 필요가 없으셨지만,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지불해야 할 성전세를 내심으로 다른 이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다섯째 날(목) 법 집행(마5:17-20)
*도입질문: 예수님의 법 집행은 법대로의 문자에 매여 있었을까요? 아니면 문자를 넘어선 의미와 정신에 있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구약의 율법을 주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주신 분이 신약에 오셨을 때는 문자대로의 적용이 아니라 율법을 주신 자신의 품성대로의 적용을 하셨습니다.
마5:38-42
마5:43-44
율법을 말씀하신 분께서 신약에서 다시 말하노니 라고 말씀하심으로 율법의 문자적 적용을 넘어선 율법을 주신 예수님 자신의 품성으로 적용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구약에서 예수님의 품성대로 주시지 못하시고 다르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었습니다.(마19:8)
그러나 사람의 완악함으로 인해 그 입장에서의 최선을 율법으로 말씀하셨지만, 그 문자적인 것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본래”의 의미는 아니었습니다.(마19:8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율법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문자적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본래 의도와는 다른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것도 아니고, 조건을 다는 것도 아닌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악한 품성으로 인해 한계적인 말씀을 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본래는 그렇지 않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품성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본래 가진 사랑의 의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문자적으로 바르게 지키고 행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요7:19)
율법을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으로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볼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의 조명하심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통해 율법이 행위를 위한 법으로가 아닌 우리에게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보여 주기 위한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의 호소와 부탁으로의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율법 속에 담긴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볼 수 있을 때 그 사랑에 감동하게 되고, 사랑에 감동할 때에 그 사랑에 반응하여 사랑의 교제를 이루게 되며 그것이 바로 생명입니다.
율법대로 지키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짐처럼 부담을 느낄 때 그것은 생명 없는 일이고, 의미 없는 하나님의 마당만 밟는 모습입니다.(요5:42, 사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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