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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그리스도 시대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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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그리스도 시대의 법

 

기억절 :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롬 2:14).

 

 

 

하늘의 전쟁 후 사탄의 목적은 하나님의 율법을 파괴시키는 것이었다(쟁 582참조).

 

 율법이 없어져야 죄가 가려지고

 

하나님이 가려지고

 

폭죽 터트리듯 이 우주를 혼란으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귀의 전쟁 소동은 패자로 끝이 났지만

 

이 지상으로 쫓겨난 마귀는 이 지상을 혼동과 황무지로 만든다.

 

만일 이 지상에 법이 없다면

 

대도시는 신호등도 없어지고

 

부딪치고

 

부서지고

 

비명과 사망으로 혼란이 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가정에 법이 깨어지면

 

힘센 자가 노인들을 학대할 것이고

 

자녀들은 학대를 당하고 어린 딸은 강간당할 것이다.

 

교회에서도 질서가 깨지면 단상이 점령당하고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난장판으로 변할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들은 심심찮게 우리의 근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본래 사탄이 원하는 바였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이 지구를 혼란으로 몰아붙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법이 있다.

 

 

 

그런즉 무슨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롬 7;7)

 

 

 

이 지구상에는 각 시대에 따라 법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드셨고

 

도덕적 자유를 주셨다.

 

자유 없이는 사랑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젊은 부부가 피곤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들 부부은 마리아와 요셉 이였다.

 

특히 마리아는 홀몸이 아니어서 그들의 여정은 매우 힘들고 고달팠다.

 

그럼에도 그들은 국가의 요구에 성실하게 임했다.

 

황제의 칙령에 따라

 

그들 부부는 호적하기 위하여 고향으로 가는 길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 이였으므로

 

로마의 법은 생명과 같은 것이었다.

 

자유가 유린당하고 유대의 법은 로마의 법에 의해 감시를 받아야 했다.

 

예수님의 성장기와 초기 기독교를 연구하려면

 

시대적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물론 구원에 필수 요건은 아니지만

 

그러나 배울 수만 있다면 역사는 미래는 거울이 될 것이다.

 

니느웨성의 흔적과 유적들의 발견,

 

시리아에서 Ebla 점토판 발견,

 

사르곤 왕의 궁전의 일부 발굴,

 

궁전 벽에 새겨진 유적지 발견,

 

벨사살과 나보니더스의 점토판(Tablet) 발견,

 

바벨론 포로에게 갈대아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된 건물,

 

용광로의 발견,

 

느브가넷살 왕의 명각의 발견등

 

모든 고고학적 발견이 성경과 일치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러한 역동적이고 강열한 메타포와 이미지는 우리의 믿음을 불타게 한다.

 

 

 

모세의 법과 사회법의 차이

 

이번 기에는 십계명 연구의 기초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진행 될 것이다.

 

이 교과 전체의 초점은 십계명과 안식일

 

그리고 은혜와 상관관계에 있다.

 

로마법을 다루려면 호적령 같은 단발성 법을 다루는 것보다는

 

로마시대 초기의 시민법이나 후기에 피 정복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일들을 연구함이 훨씬 유익이 될 것이다.

 

요사이 미국에 산재해 있는 재림교회는

 

한국인이지만 미국 합회의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한국과는 약간 다른 양상의 입장이다.

 

사회법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합회의 지시를 어기면 곧 이단이 된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인 교회는 합회에 전속되어 있지만

 

미국은 예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합회의 지시에 이탈해도 책벌을 받지 않는다.

 

합회의 선택은 각 교회에 있다.

 

미국의 재림교회는

 

미국의 종교자유라는 국가적 사회법과

 

대총회의 사회법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유대나라가 비단 로마국의 속국이라 할지라도

 

로마 총독은 민사나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산헤드린 법정에 권위를 인정해 주었다(시대의 소망 133참조).

 

사회법이란 사법의 공법화 현상으로 등장한 제3의 법적영역을 말한다.

 

노동자 갈등,

 

환경문제

 

복지국가를 지향하기 위한 노동법,

 

경제법,

 

사회보장법 등이다.

 

 

 

예를 들어 빨간 불을 어겼을 경우

 

빨간불 자체가 악(惡)은 아니지만

 

빨강 불의 상징적 의미를 무시 할 때,

 

형법에 해당하는 벌을 받는다.

 

그러나 똑 같은 교통 법규라할 지라도 어떤 경우는 사회법에 저촉된다.

 

 

 

감성법은 불문율이다.

 

비단 성문화 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이런 감성 행위의 위반도 법에 저촉되어 형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속도 제한이 60마일 지역에서 30마일을 달려도 법에 걸린다.

 

콘디션 스피링 티켓이다.

 

십계명 법은 절대법이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고리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감성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율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힘으로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한다.

 

오늘 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감성과 이성의 궤리 때문에 해매고 있다.

 

왜 하나님은 율법의 강령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함축시켰는가?

 

율법의 요구를 감성으로 이해시키려는 노력 때문이다.

 

전적으로 사람을 위한 배려이다.

 

결국 하나님의 품성인 십계명을 사랑이란 감성을 통해서 사회법으로 귀화시킨다.

 

의학공부를 하여 박사학위를 받지 않아도

 

인간의 생리적 변화를 스스로 습득하여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배가 고플 때, 먹고 싸는 법을 스스로 익힌다.

 

사랑에 굶주릴 때는 짝을 찾아 결혼을 한다.

 

이런 것들은 주로 사회법에 해당한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오경에 바탕을 둔 사회법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로마법에 의한 사회법을 공용하고 있었다.

 

간음한 여인을 놓고 유대법과 로마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던 랍비들에게

 

예수님은 사회법을 이용해 답하셨다(요 8:5).

 

유대인의 사회법은 모세오경에 기초했다고는 하지만

 

이 법의 내용을 보면

 

이혼, 간음, 건강, 납세문제 등

 

거의 모든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함무라비 법전과 모세오경의 근원이 같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생들이 데모하는 것도 사회법이다.

 

국가에서도 어떻게 할 수없는 젊은이들의 스트라익크 정신은

 

하므라비 법전에도 기록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사춘기의 반항은 막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회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있어왔다.

 

이스라엘에는 사회법 이외에도 의식법이 있었는데

 

그 법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미래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가리키기 위해 제정되었다.

 

십계명과 안식일 존폐 논란이 벌어질 때

 

이 의식법은 항상 그 중심에 있다.

 

안식일 준수론자들은 십계명을 의식법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하고

 

그래야 십자가로 인해 안식일계명이 폐하지 않았음이 증명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랍비의 법 본문이해를 위해

 

바리새인들의 학문적 틀을 이룬 랍비들은

 

모세오경의 법들을 그들 나름대로 해석하여 지켜왔는데

 

처음에는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나중에는 책으로 기록되었다.

 

반면에 랍비의 법은 안식일을 준수하는 방법을 논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이다.

 

신약에 기록된 예수님과 랍비들의 안식일에 관한 논란은

 

의식법에서 비롯되었을까?

 

아니면 랍비들의 전통에서 비롯되었을까?

 

단연 랍비들의 전통이다.

 

의문의 법은 총 613개가 있다.

 

그중 365개의 명령문으로 된 법이 있고

 

나머지 248개의 법은 부정적 언어로 되어있다.

 

여러분은 치치트라는 히브리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치치트를 한국성경에는 술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랍비들의 옷에 수실처럼 매달고 다녔다.

 

옷은 성도들의 행위를 상징함으로서

 

옷에 613개의 치치트를 달아 하나님의 법을 기억하려고 하였다.

 

의문의 법은 오래전 폐지되었지만

 

그 법은 결코 없어지지 않았다.

 

돌비에 십계명이 심비에 기록된 것처럼

 

613개의 의문에 법은 우리의 육체에 달고 다닌다.

 

우리의 몸에는 365개의 경혈이 있고

 

우리의 몸에는 248개의 뼈가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기능이 우리의 몸을 콘추럴하고 있다.

 

이 613개의 기능이 마비가 된다면

 

우리는 한시도 우리의 몸을 지탱할 수 없다.

 

중대한 것은 이 생리적 법을 우리가 지키려고 노력하않아도 우리의 몸이 스스로 한다.

 

 

 

법학(legal science, Rechtswissenchaft)논리를 학문으로 끌어올린 나라는

 

고대 사회에서는 로마가 유일하다.

 

로마법이란 로마가 부족연맹체 형태의 소도시국가로 시작하여

 

대제국으로 발전하여 멸망할 때까지의 장구한 시간 동안 변천, 발전한 모든 법을 말한다.

 

기원전 451-449년에 제정된 12표법,

 

그리고 기원후 529-533년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편찬된

 

로마법대전이 그 시작과 종결이 될 수 있다.

 

로마법학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시기는 기원후 1-2세기이며,

 

이 시기의 법을 고전 로마법(classical roman law)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로마법은 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후 6세기에 이르는

 

약 1000년간의 장구한 시간동안 발전·유지되왔다.

 

로마법은 넓은 의미에서

 

고대 로마에서 시행된 법만이 아니라 18세기 말까지 유럽 전체에서 사용된 사법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의문의 율법이 더 이상 지켜지지 않게 된 후에도

 

바울은 그것의 참 위치와 가치를 나타내 보였다.

 

메시아가 초림하시는 때가 이를 때까지

 

사람들의 마음속에 믿음이 간직되어 살아남아 있었다”(부조와 선지자, 367참조).

 

이 구전법의 이름은 ‘걷다’라는 뜻의 ‘할라카(halakah)’로 알려졌다.

 

랍비들은 백성들이

 

‘할라코트(halakoth: halakah의 복수)’를 고수하면

 

613개의 율법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것들은 처음에 구전의 형태였지만,

 

나중에는 수집되어 책의 형태로 기록되었다.

 

예수님 당시의 해설들 가운데 일부는

 

‘미드라쉬(Midrash)’로 알려진 해설집에 남아있고,

 

다른 해설들은 ‘미쉬나(Mishnah)’로 불리는 법률집에 기록되었다.

 

미드라쉬는 각 절들을 주석형식르로 집대성 되어있고

 

미쉬나는 주제별로 안식일 문제를 다루고 있다.

 

613개의 모세법을 달달 외웠던 바리새인들조차

 

십계명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미쉬나의 타미드(Tamid)장에는 날마다 십계명을 암송하라는 랍비의 법이 있다.

 

사실 예수님과 동시대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는

 

모든 성경의 법에서 십계명이 차지하는 핵심 위치에 대하여 한 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십계명은 의문의 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까지도 십계명은 도덕적인 법이고

 

의문의 법은 폐지가 되었으나

 

도덕법 십계명은 폐지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

 

하지 못하였거든(고후3:7)”

 

 

 

돌에 써서 새긴 것이 무엇인가?

 

십계명이다.

 

십계명을 의문의 법이라고 하는 말씀이다.

 

의문이라고 하는 말은 문자화 시켰다는 말이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

 

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고후3:4-11)”

 

모세의 법 613계, 하나님의 법 10계는 모두 의문의 법이다.

 

의문의 법으로 육체를 빚으시고

 

영의 법으로 생기를 불어넣으신 새언약은

 

태초에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창조하신 창 2장 7절의 성취이다.

 

아담은 자기 죄로 죽었지만

 

죽게하는 의문의 법에서 재창조된 구속의 경륜을 이루신 주제는

 

이번기 동안에 절정을 이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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