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성령(교사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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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3과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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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1분
기억절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도입)
그리스도인의 몸은「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다(고전 3:16). 이것이 믿는 사람들이 가지는 바른 정체성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은 이미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의 말씀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은 이와 같이 거듭난 모든 자들 안에 거하신다.」로마서 8장 9절에서도 "...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아주 불완전한 신자들이긴 하지만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정말로 중생을 하였다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의 안에 거하신다. 고린도전서를 읽어보면 고린도에 있는 믿는 자들은 아주 불완전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에게는 온전치 못한 것들이 많이 있었고, 추잡한 죄들이 많았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심각하고 추한 죄들을 다루는 그 순간에도 그들이 '성령의 전'인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전 6:15-20절)
연구 범위 : 요 14:16~18, 요 14:26, 요 15:26, 마 12:31~32, 요 16:8, 요 3:5~8, 눅 11:9~13.
*적용 질문에 꼭 자신의 생각이나 결심을 적고 실천하십시오.
우리는 삼위 하나님 가운데 성령을 가장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안에 거듭난 삶을 창조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와 가장 가까운 분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은 정말 역설적이다.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아버지와 아들에 비하여 성령에 관한 성경의 설명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성령에 대한 언급은 많지만 대부분 은유적이거나 상징적이다. 성경은 성령의 사역에 관한 풍성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그분의 본성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는다.
또다른 원인은 성령의 사역에서 비롯된다. 성령은 우리가 언제나 그분이 아닌 그리스도께 관심의 초점을 두도록 노력하신다. 구원의 계획 속에서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을 섬기는 종속적인 역할을 감당하시지만 이런 기능상의 이유가 본질적으로 열등함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이번 주 성령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을 때, 삶을 변화시키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시기를 열렬히 기도하자.
안교 활동반과 교과 토의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셨을지라도 우리가 버려진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약속에서 위로를 찾는다.
➌ 행하기 : 우리의 삶 또는 다른 이들의 삶에 들어오시려는 성령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한다.
Part 1. 인사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 리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해 줍니다.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헌금을 걷습니다.
결석자와 구도자에 대한 보고를 듣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Part 2. 나눔 안교 교사 또는 소그룹 리더(A나 B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A. ❶ 그대가 다른 사람의 역할을 대신해 본 적이 있다면 그 경험이 어땠는지 나눠 봅시다.
❷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셨습니까?
❸ 우리가 성령을 하나님으로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❹ 실생활에서 성령께 자아를 굴복시켜야 하는 상황은 무엇인지 예를 들어 말해 봅시다.
B. ❶ 양심의 소리를 거역할 수 없었던 경험을 나눠 봅시다.
❷ 여러분은 성령께서 자신을 위해 어떤 일을 하신다고 생각합니까?
❸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침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❹ 매일 매 순간 성령의 감화 아래에 머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결론 : 예수님은 자신이 없는 동안 그분의 거룩한 협력자께서 지상의 영적 지도력을 감당할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버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여전히 우리의 모든 필요와 눈물 그리고 모든 성공을 지켜보실 것입니다.
Part 3. 실천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예비) 리더
❶ 장막부흥회나 여름 캠프에 참석할 사람들을 점검합니다.
❷ 장막부흥회나 여름 캠프에서 침례를 받을 명단을 확인합니다.
❸ 여름 행사와 침례 예정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첫째날(일) 그리스도의 대리자
7월 13일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교사강해 1)
요한복음의 14장과 16장에는 유대인들에게 잡혀가시기 직전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과 위안을 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앞으로 더 이상 제자들과 함께 하실 수 없기에 그러신 것이다. 제자들은 부활 후 예수님을 다시 만나지만 이는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 잠깐 동안의 시간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은 제자들만 뒤에 남겨진다는 뜻이었지만 대신 예수님을 대신하실 후임자를 보내주셨다. 예수님이 말하자면, “다른 형태”로 돌아오신 것이다. 앞으로 보게 되지만 정확하게 그렇게 되었다! 비록 육신으로는 더 이상 함께 하시지 않지만 예전보다도 더 같이 계시다! 어떤 방법으로?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이다. 성령께서는 진정 예수님을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육신으로 함께 계셨으면 그렇게 했을 역할을 담당하신다.
예수님은 곧 있을 자신의 죽음을 알리셨다. 제자들은 두렵고 슬픈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이 없다면 누가 그들의 교사와 친구 그리고 상담자가 될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필요를 아시고 자신의 대리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대리자에게 어떤 특별한 칭호를 사용하셨는가?(요 14:16~18 참고) 어떤 의미에서 그 이름이 매우 적절했는가?(요 14:26 참고)
돕는 자, 권고자 또는 위로자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는 ‘옆에’라는 뜻의 전치사 ‘파라’와 ‘부름 받은’이라는 뜻의 형용사 ‘클레토스’의 합성어이다. 이 말의 문자적 의미는 ‘옆에 있도록 부름을 받은 자’이며 ‘어떤 이를 돕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신약성경에서 오직 요한만이 ‘파라클레토스’를 사용했고 흥미롭게도 예수님에게도 이 단어를 적용했다(요일 2:1).
지상 사역 기간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돕는 자요 권고자며 위로자셨다. 따라서 그분의 후임자를 동일한 명칭으로 부르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성령은 아들의 요청에 따라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으셨다(요 14:16, 26). 성령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지속해 나아가신다.
제자들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동행하였다. 주께서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외로운 ‘고아들’에게 크게 위로가 되지 않는 간헐적인 방문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항구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선언하셨다.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교훈 : 예수님은 자신이 없을지라도 그분의 대리자인 성령을 보내셔서 계속하여 우리를 돕고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부가적용)
예수님께서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비록 예수님은 떠나시지만 제자들을 홀로 버려두고 가시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보혜사 즉, 예수님을 대신해서 육신이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역사하신 것과 같은 일을 하실 성령을 보내신다고 하셨다. 비록 육신은 함께 하시지 않지만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영으로 함께 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의 존재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과 조금의 차이도 없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육신으로 함께 하셨을 때 하신 일들 –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타이르시고, 위로하시는 – 을 이제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성령께서 대신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첫 번째 보혜사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셨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며칠 후 두 번째,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께서 예수님 자리를 채우시기 위해 오셨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실제로 성령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고 있습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예수님의 약속은 오직 성령의 내주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었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의 제약을 받으시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시기 어렵다. 그러나 성령은 무소부재하시다(시 139:7). 우리 구주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와 그분 사이에 놓인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성령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접근하실 수 있다.
| 적용 |
그대는 어떤 방법으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까?
영감의 교훈 :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시는 성령 -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거룩한 감화가 세상 끝 날까지 그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오순절 때부터 지금까지 보혜사 성령은 자신을 주님과 그분의 사업에 온전히 바친 모든 사람과 함께 하셨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은 권고자로, 성결케 하는 자로, 인도자로, 그리고 증인으로 함께 하셨다”(사도행적, 49).
기도 : 보혜사 성령님, 늘 제 곁에 계심을 알지 못하는 저의 무감각함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제 마음속에서 선한 일을 행하시는 성령님께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을 통해 하늘 아버지와 예수님을 늘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둘째날(월) 인격적 존재이신 성령
7월 14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교사강해 2)
보혜사(保惠師, 그리스어: παράκλητος parakletos 파라클레토스, 라틴어: paracletus 파라클레투스, 영어: paraclete)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제자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스승'으로, 기독교의 《신약성경》에 나오는 낱말로 성도를 보호하고 변호하고 중재하거나 위로하는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에서 예수는 보혜사가 곧 진리의 영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진리의 영이 성령(Holy Spirit)과 동일하다고 본다.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경 번역판마다 사용하고 있는 용어에 다소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한글성경의 개역한글판과 표준 새 번역판에서는 보혜사로 번역하고 있으며, 공동번역판에서는 협조자로, 가톨릭 성경 판에서는 보호자로 번역하고 있다. 영문성경의 킹제임스 판과 YLT에서는 Comforter ("위로자")로, NIV에서는 Counselor ("상담자" 또는 "고문")로, NASB에서는 Helper ("돕는 자")로 번역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제자들의 삶에 실제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런 불신은 결국 우리는 고아처럼 내버려졌으며 하나님을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우리 스스로 찾아내야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고아처럼 내버려지지 않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께서 예수님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주신다. 또 어떤 이들은 성경이 뒷받침 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살아생전 하지도 않은 일들을 성령께서 하셨다고 멋대로 믿는다. 진정 성령께서 그런 일들을 하셨을까? 아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봤을 때 맞아야한다. 만약 어떤 일이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하신 일이 아니다.
엘렌 G. 화잇은 “성령의 본질은 오묘이다. 사람들은 성령을 설명할 수 없는데, 이는 주께서 인간들에게 성령을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이러한 오묘에 관하여는 침묵이 금이다”(사도행적, 52)라고 기록했다.
그럼에도 엘렌 G. 화잇은 “성령께서는 인격적인 존재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우리 심령에 증언해 주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거룩한 인격적 존재이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분은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비밀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복음전도, 616~617)라고 확언했다. 이런 진술은 성경에 기초해 있다(롬 8:16, 고전 2:10~11).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는 적어도 성경을 통해서 성령이 인격적이며 신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령에 대해 주신 예수님의 말씀도 이러한 결론을 확증한다.
성령이 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그분의 행위는 무엇입니까?(요 14:26, 15:26, 16:7~14 참고)
예수님은 성령이 수행하는 활동을 몇 가지 언급하셨는데 그 모두가 그분의 인격적 특성을 암시한다.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면 어떻게 우리를 가르치며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들이 떠오르게 하실 수 있겠는가?(요 14:26)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면 어떻게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요 15:26), 세상을 정죄하며(요 16:8),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고, 듣기도 하며 말하기도 할 수 있겠는가?(요 16:13)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성령에게 핵심적인 인격적 특성인 의지(고전 12:11)와 지성(행 15:28, 롬 8:27)과 감정(롬 15:30, 엡 4:30)이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설명했다.
교훈 : 성령에 대하여 전부 알 수는 없지만 그분은 신격을 가진 인격적 존재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므로 우리는 그분의 인도와 뜻에 굴복해야 한다.
부가적용)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곁으로 가시면서 우리를 홀로 내버리신 것이 아니다. 육신으로 함께 계셨을 때와 똑같은 사역을 하실 후임자를 보내주시고 가셨다. 그 후임자가 바로 성령이시며 그의 임무는 가르치고 예수님 말씀을 생각나게 하며(요한복음 14:26), 지시하고 인도하며(사도행전 16:6-10), 위로하는(사도행전 9:31) 것이다. 이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다” (디모데후서 1:7). 이는 주님께서 그 크신 사랑으로 그분의 독생자와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선물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성령의 뜻을 어떻게 깨닫습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성령은 신성을 가진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뜻과 지도에 겸손히 우리 자신을 굴복시켜야 한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도록 영접해야 한다(롬 8:9). 그러면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딛 3:5) 우리의 품성 속에 성령의 열매가 맺힌다(갈 5:22~23). 우리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직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것처럼 그 안에서 거듭난 사람이 될 수 있다.
| 적용 |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려면 어떻게 영적 감각을 예민하게 유지해야 할까요?
영감의 교훈 : 인격을 가지신 성령 - “우리는 한 학교에 모였으며, 하나님이 가지신 만큼의 인격을 가지신 성령께서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이 터전 위에 행하고 계심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요 돕는 분임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분은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을 들으시며 마음의 모든 생각을 아신다”(설교와 강연 2권, 136).
기도 : 제 마음속에서 속삭이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매 순간 진리와 원칙을 기억하고, 선한 양심을 따르며, 사랑의 동기를 품도록 안내하시는 성령님의 뜻에 굴복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제 안에 오셔서 제 삶을 다스려 주옵소서.
셋째날(화) 신적 존재이신 성령
7월 15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교사강해 3)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또 다른 하나님의 다른 모습으로 역사한 신적인 하나님의 모습이다.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고후 4:4)이라 하셨다. 성령님 또한 인간과 교제할 수 있는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 안에 자신을 가두어 두셨지만 시공을 초월해 우리와 교제하시고 우리의 내면에 역사하실 수 있으시고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은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성령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선물 중에 가장 귀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 즉 성령님을 주신 것이다(마 7:11; 눅 11:13). 이것은 구약(겔 36:27; 욜 2:28등)에서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의 마음에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을 상기시켜 준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은 위로부터 오며 능력을 주신다. 이 약속의 성취는 상기 구절이 보여 주듯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으나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성취되어 진다. 성경은 성령을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와도 동일시하고 있다(하나님의 영=예수의 영=성령). 또한 성령은 하나님만 가진 속성을 가지고 계시며, 하나님만 하시는 신적 사역을 수행하신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과 예수님께 돌리는 신적 영광을 성령께도 돌리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소개하면서 그분을 다른 “보혜사”라고 부르셨다(요 14:16). 예수님이 ‘다른’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신 그리스어 ‘알로스’는 ‘종류가 같은 또 다른 하나’를 의미하는 반면 ‘헤테로스’는 ‘종류와 질이 다른’을 의미한다. 아버지와 아들을 결합시키는 본성의 동질성은 아들과 성령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고 말씀하셨다. 오직 신적인 존재만이 미래의 일을 말할 수 있다(사 46:9~10).
또한 성령의 신성은 예수님이 명확하게 지목하셨던 한 역할 즉 성경의 영감에 관한 그분의 역할을 통해 증명된다. 예수님은 시 110:1에 기록된 말씀을 근거로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막 12:36)했다고 주장하셨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예수님은 줄곧 성령의 인도를 받으셨다. 침례식 때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뒤에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셨다(마 3:16~17, 눅 4:1). 예수님은 시험하는 자를 이기고 사역을 실행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눅 4:14)셨다. 그분이 일으킨 이적은 성령을 통해 이루어졌다(마 12:28).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에 의지하셨다는 사실은 성령의 신적 속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증이다. 왜냐하면 신이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상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성령의 신성을 증명하는 또 다른 예는 삼위를 동등하게 언급하는 성경절에서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과 맺고 있는 관계에 나타나 있다. 예수님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마 28:19)도록 사도들에게 사명을 맡기셨다.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함을 얻지만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사함을 받지 못한다(마 12:31~32). 이는 성령이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보여준다.
교훈 : 성령은 예수님과 같은 또 다른 보혜사이자 아버지와 아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신격을 가지신 분으로서 그분을 거역하는 죄는 용서 받지 못한다.
부가적용)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 이곳에 나타난 표현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동렬로 기록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름이 단수로 사용되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동등하게 신성을 가지신 분임을 지지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님이 단순한 어떤 힘이 아닌 하나님(신성)을 되심을 알려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보혜사’에서 ‘다른’(allos)은 ‘다른 종류’가 아닌 ‘같은 종류’의 또 하나를 뜻하기 때문에 ‘다른 보혜사’란 예수님과 같은 다른 또 한 분의 인격자를 말한다. 예수님은 인격자이시다. 그러므로 인격자이신 그분을 거역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는 것과 같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마 12:31~32을 묵상하십시오. 그대는 여기서 성령의 신성을 어떻게 이해하게 됩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직접 하나님께 짓는 죄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삼위의 하나님 가운데 한 분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다. 이 성경절의 바로 앞뒤의 문장은 사람들이 구원의 사역을 펼치시는 성령의 역할에 대하여 너무 완고하게 거역하다 못해 그분이 하신 일을 마귀의 일로 간주하는 심각한 상황을 보여준다.
| 적용 |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짓지 않으려면 그대는 어떤 면에서 철저한 굴복이 필요합니까?
영감의 교훈 : 보혜사 -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보혜사는 신성의 모든 충만하심을 가진 성령이며,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룩한 은혜의 능력을 나타내 주시는 분이시다”(복음전도, 615).
기도 : 보혜사 성령님, 제게 아직도 내려놓지 않은 죄와 고집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멈추기를 바라는 성령님의 뜻을 따라 그것들을 내려놓고, 단단했던 제 마음이 말씀의 씨앗이 뿌리 내릴 수 있는 부드러운 옥토가 되도록 성령의 비를 내려 주시옵소서.
넷째날(수) 성령의 사역
7월 16일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교사강해 4)
성령님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신하는 것이다. ‘보혜사’(parakletos)란 ‘다른 사람 곁으로 불려온 사람’을 뜻한다. 누군가를 곁으로 부를 때는 도움을 받자는 데 있고, 초청에 응한 사람은 도움을 주자는 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혜사는 법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볼 때 변호사에 해당되고, 질병에 관련해서 볼 때 의사에 해당되고, 인생문제에 관련해서 볼 때 상담가에 해당된다. 이들이 인격자들인 것처럼 성령님도 인격자이시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다른 보혜사’라고 하신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셨는가? 예수님은 의사처럼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고,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 주셨고, 변호사처럼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변호하셨고, 상담가처럼 수가성 여인의 인생문제와 니고데모의 신앙문제를 상담하셨다. 구조대원처럼 광풍 만난 제자들을 구해 주셨고, 예언자처럼 생명의 말씀을 들려 주셨다. 이와 같이 성령님도 의사처럼 육신의 병과 영혼의 병을 고쳐 주시며, 변호사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다. 또 상담가처럼 우리가 연약하여 환난과 고통과 죄와 악의 수렁에서 절망하고 있을 때 새 힘과 소망을 주신다. 또 예언자처럼 귀 있는 자들이 마땅히 들어야 할 말씀들을 교회들에게 선포하신다. 또 성령님은 안내자처럼 믿는 자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이처럼 성령님은 인성을 가졌기 때문에 성도를 도울 수 있고 교제할 수 있다. 성령님은 우리처럼 지적 활동, 감성적 활동, 의지적 활동을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서 살아야 한다. 성령님은 하나님이며 인격자이시다. 성령님은 영원하며, 전지전능하며, 무소부재하시다. 성령님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 끝날까지 우리 곁에 항상 함께 계신다.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성도의 형편과 사정을 아신다. 성령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성도를 도와주신다. 성령님은 어디나 계시기 때문에 언제나 찾는 자의 곁에 계신다. 하나님은 선물로 성령님을 주셨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는 성령께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경의 영감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신다는 사실을 이미 언급했다. 오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 예수님이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성령께서는 어떤 필수적인 사역을 통하여 우리가 구주를 영접하도록 준비시키시는가?(요 16:8)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서 누가 약을 먹으려 하겠는가? 마찬가지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성령은 우리가 과거에 죄를 지었고 지금도 죄가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자상하게 그러나 꾸준하게 상기시키신다.
그다음 성령은 우리를 예수님에게 인도하며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고 증언하신다(요 15:26). 예수님은 진리이시기 때문에(요 14:6) 성령은 우리를 그분께 인도함으로써 “모든 진리 가운데로”(요 16:13) 인도하신다.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불린다(요 14:17).
일단 우리가 죄를 깨닫고 예수님과 그분의 진리로 인도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위대한 일을 행하실 준비가 끝난 것이다.
‘영으로 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요 3:5~8)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혁하려고 노력했던 자들은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무익한지 알게 된다. 하나님의 개입 없이 죄로 인해 열등해진 삶을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죄인이 거듭나려면 오직 거룩한 성령이 제공하시는 창조의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딛 3:5) 구원을 받는다.
교훈 : 성령은 우리가 죄를 깨닫고 예수님께 나아가며 모든 진리에 이를 수 있도록 이끄시며 우리의 죄 많은 삶이 거듭날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
부가적용)
우리는 영이라는 것에 대한 실체를 생각해 보자.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첫 사람 아담도 산영(Living soul)이라고 부름을 받았다. 첫 사람 아담은 산영(살아있는 영혼)이다. 그의 존재를 영적인 존재로 일컫는다. 이는 산영, 곧 아담의 모습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창 2:25)이는 살려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의 몸을 빌어 잉태하실 때, 성령께서 수태케 하셨다. 성령께서 하늘의 생명을 존재케 하시는 이이시다. 그분은 창조의 영이시다. 우리가 새 생명 가운데 새로 태어나는 것도 그분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태어날 수 없다. 성령의 사역 중의 가장 위대한 사역은 그분이 살려주시는 영이 되신다는 것이다. 성령의 사역 중의 가장 귀중한 사역은 그분의 임재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귀한 축복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_
그대는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성령이 하시는 일은 옛 삶을 수정하거나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을 바꾸고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기적의 결과는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복음에 대하여 반박할 수 없는 논증이 된다. 성령의 역사는 신앙 생활의 초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항상 그분이 필요하다. 우리의 영적 성장을 증진시키기 위해 성령은 우리를 가르치실 뿐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모든 것이 떠오르게 하신다(요 14:26). 그분께 우리를 맡긴다면 그분은 영원히 우리를 돕는 자요, 우리의 위로자며, 권고자로 우리와 함께 거하실 것이다(요 14:16).
| 적용 |
그대는 자신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사실을 어떤 경험을 통해 증언할 수 있습니까?
영감의 교훈 : 성령께서 하시는 일 -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일이다. 그대들이 마음과 뜻과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할 때, 그들의 길은 막히지 않게 될 것이다. 성령의 지도 아래 깊고 열렬하게 말씀을 연구하면, 그대들에게는 새로운 만나가 주어질 것이며, 그 동일한 성령께서는 말씀의 사용에 힘을 더하실 것이다”(교회증언 6권, 163).
기도 : 처음부터 제가 예수님을 믿도록 인도해 주신 성령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다섯째날(목) 성령으로 충만하게 됨
7월 17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5).
부가적용)
물 침례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물 침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렸다고 했다. 모든 인간은 죽음과 함께 하늘이 닫히게 된다. 땅 속에 매장되거나 수장되거나 화장되면 모든 인생은 하늘이 닫히게 되는 죽음을 맡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침례는 이 죽음의 권세를 깨고 물 바깥으로 나와 다시 하늘을 보게 되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셨을 때 하늘이 열린 것이다. 침례의 사건이 가지는 가장 특별한 의미는 이것은 하늘이 열리는 사건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건인 것이다. 그런데 침례를 받고 올라오신 그리스도께 성령께서 임하셨다. 이는 살려주시는 영이신 성령께서 임하신 사건으로 하늘의 인이 찍힌 사건이다. 인간에게 아버지의 영, 곧 성령께서 우리가 다시 살아난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치는 역사로 성령께서 임하신 것이다.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생애야말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자녀요 성령의 자녀임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방법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자녀임을 인친 사건인 것이다.
물론 성령이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열어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이끌지 않는다면 무의미하게 된다. 예수님은 하늘의 손님이 매일 우리와 동거하도록 우리가 그분을 영접하는 데 실패한다면 다른 종류의 영이 우리의 공허한 삶에 들어와 영적인 폐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설명하셨다(마 12:43~45). 예수님 자신은 성령으로 충만하셨다(눅 4:1). “그는 날마다 성령의 새로운 침례를 받으셨다”(실물교훈, 139).
눅 11:9~13은 우리가 성령을 받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이 말씀에 따르면 아버지는 얼마나 기꺼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자 하는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은 그 당시 제자들의 필요를 채우게 될 성령의 위로와 가르침의 사역을 강조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자 상황이 바뀌어서 제자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부활하신 뒤 성령에 대해 주신 예수님의 약속은 무엇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가?(행 1:4~8)
행 1:5은 성령의 침례를 받게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담은 유일한 기록이다. 침례 요한도 이런 특별한 침례에 대해 선언한 적이 있었다(마 3:11, 요 1:33). 그렇다면 성령으로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행 1:8에서 예수님은 친히 성령의 침례를 평행대구법으로 설명하셨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행 1:8), 너희가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행 1:5).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주로 물 또는 무엇인가에 완전히 잠기는 것을 의미한다.
교훈 : 우리는 성령에 대해 알 뿐 아니라 성령의 침례를 받음으로 온전히 영으로 충만하고 그분의 감화에 굴복하는 지속적인 경험을 해야 한다.
부가적용)
성령 충만이란 무엇인가? 성령 충만은 지적 충만, 정적 충만, 의지적 충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지적 충만은 영혼의 지적 상태가 성령의 지혜와 영감, 진리로 지배를 받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정적 충만은 영혼의 정서 상태가 성령의 은혜와 기쁨, 사랑으로 지배를 받는 상태이며, 의지적 충만은 영혼의 의지 상태가 성령의 권능과 믿음으로 지배를 받는 상태를 말함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성령 충만함을 날마다 지속적으로 받아야 될까? 성령 충만은 우리를 세상에서 매일 당하는 죄악의 유혹과 정욕, 모든 마귀의 올가미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아름다운 성도가 되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매일 성령의 침례를 받고 있습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그것은 인간 전존재를 포함한다. 성령의 침례는 온전히 성령으로 충만하여(엡 5:18) 그분의 감화에 전적으로 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한번에 영원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아니라 계속 새롭게 될 필요가 있는 경험이어야 한다.
| 적용 |
누군가 그대에게 성령의 충만을 받았는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 성령이 부족할 이유가 없다 -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선물로써 그분의 백성을 새롭게 하시며 당신의 사상으로 새로이 그들에게 침례 주기를 원하신다. 교회 안에 성령이 부족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께서는,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제자들에게 충만하고 능력 있게 임하셔서 각 사람의 마음을 채우셨다”(증언보감 3권, 305).
기도 : 아버지, 저는 심령이 가난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목마름과 배고픔이 있습니다. 저를 채워 주시옵소서.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매일 솟아나 마르지 않는 샘 같은 성령이 제 안에 있게 하옵소서.
여섯째날(금)
7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교회증언 8권>, 19~23 “약속된 능력”, <사도행적>, 47~56 “성령의 선물”을 읽어 보라.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모든 슬픔과 고통 중에서나 앞길이 캄캄하고 장래가 암담하게 보일 때에 또한 우리가 무기력하고 외로움을 느낄 때에 믿음의 기도의 응답으로써 보혜사가 보내신 바 될 것이다. 주변 환경은 우리를 모든 지상의 친구로부터 분리시킬지 모르지만 어떤 환경도, 어떤 먼 거리도 우리를 하늘의 보혜사로부터 분리시키지 못한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디를 가든지 언제나 그분은 우리를 지지하고 붙들며 격려하고 위로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오른편에 계신다”(시대의 소망, 669~670).
“성령은 예수께서 당신의 백성을 높이기 위하여 아버지께 간청할 수 있는 모든 선물 중에 가장 고상한 선물이었다.… 죄는 오직 신성의 제 삼위의 강력한 작용을 통해서 물리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다. 그분은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 가운데 오실 것이었다. 세상의 구주께서 이루신 일을 효력 있게 만드시는 분은 성령이시다”(시대의 소망, 67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인간은 선천적으로 자기를 높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에 반하여 성령의 겸손하고 순종적인 사역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가르칩니까?
➋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바람에 비유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비유로부터 어떤 영적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➌ 어떤 사람들은 성령이 충만한 증거는 소위 방언을 말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주장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➍ 우리는 성령의 사역을 일대일 관계를 기초로 하는 개인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와 동시에 우리 교회가 전체적으로 연합한 한 몸으로 성령의 실재적인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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