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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그리스도의 나라와 율법(토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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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그리스도의 나라와 율법

 

하나님은 시골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회를 건설했다.

공용만한 박테리아가 도시를 점령하고

우울증 같은 날개가 우주를 날아 오존층을 무너트리고 있다.

도회의 발달과 신흥신앙의 등장,

모더니즘의 근간인 새로움의 미학을 탄생시킨 것이 현대종교의 대략이다.

전통신앙인들의 고발 포즈가 위기에 처한 신앙의 순수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요사이 나는 생활주변의 모든 업무를 컴퓨터로 처리한다.

빌을 보내는 일이며,

쇼핑을 하는 일이며,

심지어 은행에 입금하는 일까지도 컴퓨터에 의존한다.

이런 현대적 문명을 뒤로하고

우리를 하늘로 옮기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이 오늘 이루어진다면

문명이 아쉬워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될 판이다.

우리가 하늘로 귀화하는 그날

우리는 분명히 컴퓨터를 버리고 시골로 향해야한다.

누군가가 하늘에도 똥을 누느냐 묻는다면 나는 명백하게 대답할 것이다.

“응”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우리의 본향 하늘! 단연 <응>이다. 나는 언젠가 똥에 대하여 시를 적은 기억이난다.

시; 똥은 잘 누능감유

 

강위덕

 

 

수술대 위에 누워 전신마취 당했던 한 여자를 알고 있다 일레오스토미(ileostomy) 장착으로 인공 항문을 사용하던 오랜 기간동안 어둠 속을 번쩍이며 내려왔을 구근의 암 뿌리들, 그 뿌리를 움켜쥐고

 

어둠을 훌쩍 뛰어 넘을 때, 용천혈*의 대침 같은 거대한 유전인자가 바코드(Barcode)에 찍혔고 위험의 독 안으로 잠입한 창조자는 오늘까지의 기적과 기적 사이의 고리를 바쁘게 연결하고 있었다 영원

 

히 폐쇄될 뻔 했던 항문! 복벽 개구부(腹壁開口部)를 봉쇄하고 천여 개의 항문 괄약근이 일제히 작동하던 날 그 여자는 한없이 울었다 “똥은 잘 누능감유” “오늘 두 번 똥을 눴슈 똥을 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건줄 예전에 미쳐 몰랐씨유” 똥을 누면서 생각하면 슬픈 운명의 원형이 몸에서 움직인다 씨잘 것 없이 생각했던 삶의 찌꺼기들, 널브러진 생각, 헛됨과 고뇌의 잔해가 앙상한 침묵 위에 무겁게 쌓

 

이고, 그는 지금 항문으로 체온을 재고 있다 그의 체온은 일생 중 가장 붉다 그건 차라리 감격의 울음 온도이다

 

 

 

* 용천혈이란 생명의 기운이 솟구치는 곳으로서

 

가운데 발가락에서 뒤꿈치 쪽으로 3분의 1 쯤 내려간 움푹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용천혈은 생기가 떨어진 사람을 기사회생 시킬 때 침을 놓는 곳이다.

 

죽은 송장도 이곳에 대침을 박으면 발가락이 꿈틀거린다는 유명 혈이다.

이주일의 나의 관심은 똥이다.

똥은 더러운 것의 대명사이다.

용변 후 손을 깨끗이 씻으라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값의 폭락을 의미할 때도 똥값이라고 말하고

망신당할 일이 있을 때에는 얼굴에 똥칠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좋은 이미지도 있다.

똥꿈을 꾸면 길몽이라고 화자 하며

그럴때면 은근히 행운을 꿈꾸어 보기도하고 복권을 사기도 한다.

이처럼 똥이 저간의 압도능력을 표현하려할 때

똥을 언급하는 것은 똥이 지닌 힘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똥집으로 산다는 말을 하는 반면

요사이 의사들은 의례히 똥은 잘 누느냐가 병원 측의 질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찍이 발명한 <카타르시스>는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절감하게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똥을 너무도 깨끗하게 소문없이 처리하는 수세식변기로인해

똥과 관련된 이미지들이 살아질 판이다.

한편 생각하면 <숨>과 <똥>의 관계적 의미는

생명의 지엄함을 일깨워준다.

이미지의 유기적인 연결이 미흡하지만

똥에 대한 접근은 신선한 것이다.

똥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다.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

계명이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수렴하여 소화를 잘 시켰다는 증거로 똥이 있고

똥으로 인해 생명의 연장을 보장받는다.

똥 눌 힘이 없어지면 생명이 끊어진다.

내가 기록한 이번기 1과에서 치치트를 언급한 바 있다.

치치트(히브리어)로서의 행함의 진리는

우리의 오장 육부에 율법의 요구가 다 들어있다.

십계명의 모든 요구사항은 곧 우리의 몸이며 이것이 바로 치치트이다.

오늘 내가 화장실에서 똥을 잘 만들었다는 의미는

율법의 요구를 잘 소화했다는 영수증이다. 

어찌 보면 좋은 신앙심은 좋은 똥이다.

더 좋은 배설물은 더 좋은 창작의 밑거름이 되고

독자의 배설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치치트의 사전적인 의미는

옛 유대인들의 두루마기에 달린 613의 수술이다.

그리고 이차적인 상징적의미는 613개의 의문의 율법이다.

곧 옷의 의미를 부여하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 그것이다.

율법은 인간의 힘으로는 지킬 수 없는 것이라고 말들 한다.

그러나 율법의 요구는 인간창조의 설계 도본이므로

우리의 몸에는 율법의 요구가 오장육부이며 살과 뼈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관리만 하면 된다.

인간의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말은

우리는 먹지만 절대로 소화시킬 수 없다는 이론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음식만 먹으면 우리는 천지를 모르고 잠자는 동안

하나님께서 소화시켜주시고 우리의 몸을 건강하도록 유지하신다.

이러한 개념은 성소에 나타난 모든 제도적 절차에서 충분히 설명되고 있다.

내년쯤에야 출간될 성소예수 시리즈 제2집을 기대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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