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과 네째날 아브라함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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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수)
아브라함의 믿음
한 가지 사건을 두고 두 가지의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는 경우를 올림픽 경기 중 심판들이나 예술작품 평론 등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관점이 다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성경이 지금 똑 같은 사람을 두고 어떻게 보면 정 반대의 의견을 말한 듯 보입니다. 사람들이 설사 그럴지라도 성경만은 일맥상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오늘 교과는 이 문제를 제시하며 공부를 시작합니다.
흥미롭게도 야고보와 바울 모두 창 15:6을 인용하지만 각자 다른 결론에 도달한 듯이 보인다. 야고보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반면 롬 4:2에서 바울은 아마도 그럴 가능성을 명백하게 부인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도 비교해 보겠습니다.
야고보서 2:21~24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로마서4:1~5, 22~24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 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비교-참믿음의 증거가 주제인 야고보서 2장
죄 용서를 받는 법이 주제인 로마서4장
부조와 선지자 p153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라 그러면 그대는 안전하다. 그대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순종을 통해 나타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요 8:39)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충실한 자들의 조상에 관하여 주께서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창 26:5)고 선언하신다. 사도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고 말한다. 그리고 그처럼 철저하게 사랑을 강조한 요한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고 말한다”
마 7:21-23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대개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음의 행위, 증거물들이라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믿음에 의한 열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설사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권능을 행한다고 해도 역시 믿음의 증거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권능 행하는 사람들도 마지막 때 주께로부터 ‘모른다’는 주님의 부인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인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것과 야고보가 강조하는 것이 정말 많이 다른가? 저자는 어떻게든지 거기에 대한 공통점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명확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증거”라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다고 제시한 성경절에는 그런 단어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굳이 무리수를 써가며 풀어야 할 만큼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단어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참 믿음은 순종을 통해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데에 야고보와 바울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22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갈라디아서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한다 말합니다.
그럼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의 순서를 뒤집었을 때도 같은가? 입니다. 다시 이야기해
참 믿음은 선한 행위를 이끌어 내는 힘이 있지만, 선한 행위가 참 믿음을 당연히 끌어내지는 못한다는것에 이 두 성경절의 충돌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다음의 공식을 통해 요약해서보면 야고보의 표현이 바울의 표현과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아브라함은 참 믿음을 가졌다.
야고보서-참 믿음은 선행행동으로 증명이 된다.
공통-아브라함은 의롭다 함을 받았다.
A=B=C, A=C (참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의롭다 함을 입었다)
믿음과 행함 p48
“죄의 용서는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 약속되어 있다. 생명의 면류관은 끝까지 충성한 자의 상급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받은 은혜를 통하여 진보함으로써 은혜 안에서 자라날 것이다. 하나님의 날에 흠 없이 나타나고자 한다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점 없이 우리 자신을 보존하여야 한다. 믿음과 행함은 손을 맞잡고 함께 간다. 그것들은 승리의 사업에 조화를 이루어 활동한다. 믿음이 없는 행함은 죽은 것이며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다. 행함은 우리를 결코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를 위해 효력을 나타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공로이다.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불완전한 노력을 하나님께 가납되게 만드실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믿음이 아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정결케 하는 믿음이다. 분노와 의심 없이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한 손을 드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의 길을 지혜롭게 걸어갈 것이다.”
우리를 의로운 행함이 넘치게 만들어주는, 생명이 넘치는 삶으로 만들어 주는 참 믿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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