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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율법에 대한 단상-은혜는 율법의 대치 개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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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율법에 대한 단상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외형적으로는 다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우상 숭배하지 않고 살인, 간음, 도적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리세인들과 율법사들이 그랬습니다(마19:16-20)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할 수 있습니까?

  자연인으로서의 우리는 절망적이게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외형적인 문제가 아닌 내면적이요 전인적인 문제입니다. 

그럼 그 사랑이 무엇이기에 할 수 없는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사랑은 하나님(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으로서만 가능한 것입니다.(롬8:1-4) 로마서 8장이 그것을 설명합니다.

 

율법 조항 이외의 것들은 어찌해야 해야 합니까?

로마서 8장은 믿음이란 곧 성령님을 통한 하나님의 마음(영)을 받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빌2:5-8참고)

십계명에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다른 사람의 과오를 용서해라, 넓은 마음을 가지라는 등의 명령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만 가능한 것들입니다. 

즉 십계명만으로는 남을 용서하지 않은 것이 죄는 아닙니다. 

겸손하지 않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만과 불관용과 욕심은 하늘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지 않으면 조항 적 율법은 지켜지나 겸손, 사랑, 관용은 결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품성을 이루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영) 또는 삼위의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성경은  율법의 역할을 무엇이라 말합니까?

 야고보서는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고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가정교사라고 합니다(약1:23-25, 갈3:23-25) 

죄와 허물을 깨달아 그리스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존재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 인도되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게 됩니다. 

구원을 갈망하는 존재에서 그리스도의 마음 즉 사랑을 삶으로 구현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 또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됩니다.


그럼 실재적으로 나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율법과 그리스도 사이에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우리의 실재모습이 아닙니까?

구원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려는 마음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율법의 역할이 끝난 존재인 줄 알았는데 아직도 율법을 다 못 지키는 존재가 누굽니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유와 해방을 맞이한 존재로 알았는데

아직도 거짓말을 함으로, 남을 미워함으로 율법의 정죄가 실재하는 존재는 누굽니까?

그러면서도 우리가 진정

자유한 사람입니까? 정죄에서 해방된 사람입니까?


나는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인 사람은(요1:12) 자유하고 해방된 사람입니다(갈4:31)

하나님의 자녀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 양육하심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장성하신 분량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양육하실 이유,

즉 아직도 부족한 부분들이 언제나 있다는 말입니다.(엡4:13)

그러므로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지속하실 것입니다(빌1:6)

노아가, 아브라함이 요셉이 모든 노독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양육을 받다가 잠들었습니다.

 

주의할 것은 

신분적으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남으로 

율법이 나를 지배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배하시나 

율법의 역할은 아직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매 순간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살아보니 

율법이 은혜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함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율법도 은혜도 어느 시기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나를 그리스에게로 인도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함을 받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은 

분리적인 것이 아니라 통일적인 것입니다.

율법이 나를 그리스도께 인도함으로 내 팽개쳐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인도하는 은혜의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율법의 지배아래 있지 않고 은혜아래 있어 율법과 동행합니다. 

동행은 지배가 아닙니다.

율법의 역할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양육하실 그 무엇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율법이 은혜가 되는 삶,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양육하시는 그 무엇이라고 믿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줄기차게 부르짖는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계속 자라가는 사람은 

자라는 선상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부족함도 모두 고쳐진 것으로, 

그리하여 의로운 사람으로 여겨주십니다.(로기제타이, 로기제마이)

그러니 자격이 됨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양육하시는 한 

나는 지속적으로 자랄 것이며, 

또 자라가는 만큼 내 자유와 기쁨은 커져갈 것입니다. 

자유와 기쁨은 정체 된 것이 아니라 날로 더해가는 동적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오히려 율법을 더욱 굳게 세운다'(롬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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