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지혜의 초청(교사들을 위한 강해와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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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지혜의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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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26분
기억절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도입)
신라 시대 김유신 장군의 누이 문희가 29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왕비가 된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 내려옵니다. 하루는 언니가 간밤의 꿈으로 언짢아하는데, 내용인즉 산꼭대기에서 소변을 보자 끝도 없이 나와 온 땅을 채우더라는 것입니다. 언니는 꿈이 망측하여 나쁜 일이 있을 징조가 아닐까 싶었지요. 그 말을 들은 문희는 엉뚱하게도 “언니, 비단치마 줄게, 그 꿈을 내게 팔아요.”라고 합니다. 언니와 달리 그녀는 꿈의 주인이 신라를 품을 만한 큰 인물이 되리라는 해석을 한 것입니다. 이후에 오빠 김유신의 친구인 김춘추가 찢어진 옷을 가져왔을 때 언니는 수줍어하며 피했지만 문희는 그 옷을 꿰매줍니다. 이를 계기로 왕족인 김춘추의 사랑을 입어 자신의 꿈 해석대로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꿈을 꾼 사람은 언니였지만 그것을 이룬 것은 동생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문희는 생각이나 그릇이 큰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꼭 그 꿈으로 인해 왕비가 된 것은 아니라 해도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 씀 하나, 입술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내가 무엇을 소유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가치를 얼마나 알고 지혜롭게 활용하는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성경에도 이를 교훈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은 꿈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형 에서의 장자권을 얻을 수 있을지 늘 생각하던 차에 배고픈 에서에게서 팥죽 한 그릇을 주는 대신 형의 장자권을 가져옵니다. 에서는 배고픈 나머지 별 생각 없이 동생의 요구를 들어주었지만 그 말로 인해 에서는 장자권을 잃어버리고 반대로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아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이 어떠한지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성경은 그 사람이 지혜자인지 여부를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 판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십니다. 또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하나님의 비밀인 바로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고전 1:24).
연구 범위 : 잠 1~3장, 창 1:1, 출 19:16, 출 20:20, 잠 11:30, 13:12, 잠 15:4.
에덴 이후로 인간이 겪는 비극의 뿌리는 잘못된 선택에 있다. “진리이시고 명철의 주재(主宰)이신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기만자의 말을 들음으로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선과 악이 뒤섞이면서 사람의 마음은 혼란해지고, 그의 지적 능력과 영적 능력은 마비되었다”(교육, 25).
잠언은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기만자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도록 돕기 위한 책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말할 때에 잘못된 선택에 대하여 경고할 뿐 아니라 그들이 옳은 결정을 내리도록 권유한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내린 결정이 그야말로 삶과 죽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잠언의 처음 세 장은 이런 교육 방식에 대하여 예증한다. 잠언의 기자는 저술의 목적이 지혜를 알기 위한 것임을 설명하고(잠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 1:7)이라는 표어를 확정한 후에 경고와 권유를 넘나들며 어리석음에 귀 기울이지 말고 지혜의 초청에 응답하도록 촉구한다.
*교사(리더)는 안내에 따라 안교 활동반과 교과 토의를 인도해 주십시오.
*교과에서 제공하는 일몰 시간은 서울 기준입니다. 실제 일몰 시간은 지역마다 다릅니다.
안교 활동반과 교과 토의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지혜가 어떤 관계인지 이해한다.
➋ 느끼기 :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
➌ 행하기 :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생활의 바탕으로 수용하고, 건전하고 행복한 삶을 경험하기 위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증진시키고 영성을 훈련한다.
Part 1. 인사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 리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해 줍니다.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헌금을 걷습니다.
결석자와 구도자에 대한 보고를 듣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Part 2. 나눔 안교 교사 또는 소그룹 리더(A나 B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A. ❶ 오늘날 무엇이 길거리에서 또는 전자우편이나 휴대폰을 통해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까?
❷ 잠언에서 지혜가 우리를 초청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❸ 잠언에서 설명하려는 지혜의 의미는 일반적인 지혜의 의미와 어떻게 다릅니까?
❹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를 수용한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지 이야기해 봅시다.
B. ❶ 지혜 말고, ‘A가 B의 근본이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❷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지혜의 출발점이 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❸ 지혜가 곧 ‘생명나무’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지 이야기해 봅시다.
❹ 하나님을 알고 나서 얻게 된 지혜에 대해 서로의 경험을 나눠봅시다.
결론 :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라는 지혜의 초청은 우리로 하여금 선과 악을 분별하고 옳은 일을 행할 수 있게 합니다.
Part 3. 실천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예비) 리더
❶ 2015년 안교 활동반 운영 방향을 소개하고, 의견을 듣습니다.
❷ ‘나의 구도자 명단과 기도 목록’을 함께 작성합니다.
❸ 안교반(소그룹) 친교와 단합을 위해 함께 기도합니다.
첫째날(일) 12월 28일 지혜의 시작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잠 1:7).
교사강해 1)
땅콩박사로 유명한 조지 워싱턴 카버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당시 미국 남부에서는 백여 년이 넘도록 목화를 재배하다 보니 땅이 황폐해진 데에다 해충이 심해 목화밭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이에 조지 카버는 사람들에게 땅콩을 심도록 권했습니다. 땅콩은 땅을 기름지게 하여 작물의 생산성을 높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후 조지카버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땅콩으로 만들 수 있는 삼백여 가지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그가 강연하던 어느 날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놀라운 발명과 발견을 하였습니까?” 물었더니 “성경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니 발명과 발견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147:5절에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지혜를 얻는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전무후무한 지혜와 놀라운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여디디야”(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애칭을 받은 솔로몬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후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고 이를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물을 때 왕으로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이 백성을 다시를 지혜라고 생각했던 솔로몬은 백성을 위한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지혜로운 스승이 많았지만 그들에게 구하지 않고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께 구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지혜는 물론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재물과 존영까지 주셨습니다.
잠 1:1~6에서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잠 1:1)이라는 표제는 잠언과 왕상 3:5~14 사이를 연결 짓는다. 열왕기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아들로 나온다. 두 본문은 솔로몬을 “다윗의 아들”이라고 일컬었을 뿐 아니라 ‘지식’, ‘지혜’, ‘재판(공평)’과 같은 핵심적인 단어들을 공유하고 있다. 두 평행 본문은 책을 조합한 인물이 솔로몬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잠언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인간의 요청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잠 1:7을 읽어 보라. 지혜란 무엇인가?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두 개념은 어떻게 서로 관련되어 있는가?
여기서 “지혜”란 일종의 종교적인 경험으로 정의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개념이 바로 잠언의 열쇠이다. 그 개념은 반복될 뿐 아니라 책 전체의 틀을 이루고 있다(잠 1:7, 31:3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신의 심판에 대한 미신적이고 유치한 두려움과는 상관이 없다. 대신 그것은 매 순간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예민한 자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여호와에 대한 경외심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계시를 받은 백성들에게 나타난 반응의 특징이었다(출 19:16, 20:20). 그것은 그분의 언약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께 충성을 다하겠다는 그들의 다짐을 설명했다(신 10:12).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께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구절은 지혜가 이러한 경외심에서 출발한다는 의미이다. 시작(근본)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레쉬트’는 창조 기사를 소개하는 첫 번째 단어를 가리킨다(창 1:1).
교훈 : 지혜의 출발점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에 대해 예민하게 자각해야 한다.
부가적용)
성공하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대부분 누군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수성가했다는 사람들도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배후에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대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혼자 힘으로 이루는 성공은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영향을 받고, 또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누구와 함께 설 것인가?”라는 질문을 늘 던지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 본 결과 그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만이 자신의 지혜의 근본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영향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솔로몬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훈계를 기록한 것이 바로 ‘잠언’입니다. 솔로몬의 잠언이라 이는 지혜와 훈계를 얻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잠 1:1-6)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얼마나 자주 또는 얼마나 깊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자각하며 삽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지혜에 대한 첫 번째 가르침은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이시고, 언제나 임재해 계시는 사랑과 공의와 구속의 하나님이라는 깨달음을 다루고 있다(요 3:16, 시 89:14, 히 9:12).
| 적용 |
그대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다는 증거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영감의 교훈
교육의 참 목적 -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교육은 서적의 지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잠 9:10)다. 교육의 참 목적은 영혼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첫째가 되고 가장 귀중한 지식은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이다. 현명한 부모들은 언제나 이 사실을 자녀들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할 것이다”(교회증언 5권, 322).
기 도
성공의 길에서도 하나님이 계심을 잊지 말게 하시고, 좌절과 낙망의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이 계심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세상이 화려함을 자랑하고 스스로 높아지려 할 때도 세상을 지으신 분이 계심을 잊지 않고 늘 경외하며 섬기기 원합니다.
둘째날(월) 12월 29일 참교육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잠 1:8~9).
교사강해 2)
솔로몬은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훈계'와 "어머니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어미의 법이란 말에서 "법"은 율법(토라)를 의미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율법을 가르쳤기 때문에 "부모의 교훈"을 "율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부모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신 6:7, 엡 6:4). 그리고 자녀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엡 6:1-3). 솔로몬은 자녀들이 부모님의 가르침을 따를 때에 그 교훈이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면류관과 목걸이가 된다고 말합니다. 면류관과 금목걸이는 영화와 존귀를 상징합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자녀는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됩니다. 반대로 부모님이 가르쳐 주시는 교양과 훈계를 멸시하는 자녀들은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 공경은 제 5계명으로서 사람에게 대한 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기도 합니다.
잠 1:8~19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 속에 등장하는 두 가지 상반된 교육 방식은 무엇인가? 여기서 부모들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핵심 기별은 무엇인가?
교육이란 모름지기 가정의 문제이다. 참교육은 무엇보다 부모에게서 비롯된다. 앞의 말씀은 이러한 교육을 “훈계”와 심지어 “법”이라고 부른다. 법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토라’는 ‘방향’을 의미한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옳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와 반대되는 ‘교육’에는 이름조차 없다. 그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는 죄인들의 목소리로 인식될 뿐이다.
“내 아들아”라는 표현은 성차별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부모의 훈계를 강조하기 위해 여러 번 반복된다. 부모는 “네 아비” 또는 “네 어미” 같이 단수 형태로 명시된 반면 정반대편에 대해서는 “악인들”이라는 익명의 복수형으로 표현된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지혜로서 가정이 모든 교육 기관 중에서 가장 위대한 기관이 될 것을 명하셨다. 어린이의 교육은 가정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가정은 어린이를 위한 최초의 학교이다. 이곳에서 자녀는 부모를 교사로 모시고 그를 평생토록 인도하여 줄 공과(를)…배워야 한다. 가정에서 끼치는 교육의 감화는 선이나 악에 대하여 결정적인 힘이 된다.… 아이가 가정에서 올바르게 교훈을 받지 않으면 사탄이 그의 택한 대리자들을 통하여 아이를 교육시킬 것이다”(재림신도의 가정, 182).
가정교육에 대한 최고의 논증은 그 결과이다. 그것은 품성이라는 내적인 자질로, 마치 머리와 목에 두른 장식과 같다.
교훈 : 진정한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부모는 값비싼 물질보다 더 소중한 품성을 유산으로 물려준다.
부가적용)
어느 선교사가 중국에서 선교활동 할 때의 일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유교적인 배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기독교사상을 처음 대하면서 거부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저들은 기독교에는 조상에 대한 제사가 없고, 부모에 대한 효가 없다고 반박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그곳의 유명한 학자를 앉혀놓고 기독교와 성경에 대하여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그는 성경 구절을 열거합니다.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신 27:16절의 말씀입니다. 신명 21:16절로 23절 잠언 15:5, 19:20절, 20:20절에서는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은 정죄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또 잠 30:17절에서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하였습니다. 잠 21:15, 마 7:10절로 12절에서도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합니다. 성경 말씀이 이러하거늘 어찌 기독교에 효가 없다고 하십니까? 옛부터 하나님을 아버지, 교회를 어머니로 고백하며 지내 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며, 훌륭한 어머니를 만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지름길이 됩니다. 게다가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통하여 나를 창조하시고, 양육하시고, 교육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됩니다 라고 했습니다. 중국 선교사가 이런 지혜로운 대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지혜를 주신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우리의 부모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여기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여겨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지혜롭게 하는 축복이 될 것입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자신의 경우를 비춰볼 때 자녀 교육 또는 가정교육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중동의 문화에서 부모는 그 자녀에게 값비싼 목걸이와 팔찌를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하지만 교육은 물질적인 풍요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다.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사업을 하느라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값질 것이다. 또한 개인의 얼굴에 해당하는 목과 머리에 대한 언급은 교육이 그 사람의 인성을 형성하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방탕한 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던 것처럼 어리석은 자와 죄인들에 대해서는 오직 발만 언급될 뿐이다(잠 1:15).
| 적용 |
그대가 현재 또는 장래에 자녀 교육에 있어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것은 무엇일까요?
영감의 교훈
부모의 책임 -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건강, 체질 그리고 품성의 계발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부모 외의 어느 누구도 이 일을 맡아서는 안 된다. 자녀의 부모가 됨으로 그대들에게는 건실한 원칙으로 자녀들을 교육하는 일에 주님과 협력하는 책임이 주어진다”(그늘 없는 가정, 187).
기도
아버지, 저희가 자녀들을 생존과 성공을 위한 교육으로 내모는 근시안적인 부모가 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명령을 따라 행하는 하늘의 백성이 되도록 우리 자녀들을 가르치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셋째날(화) 12월 30일 지혜의 초청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잠 1:20).
교사강해 3)
지혜란 무엇일까요? 가장 단순하게 말해서 지혜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삶은 그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살아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많은 궁리를 하고 노력들을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사람들이 매일매일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크고 작은 일들이 바로 지혜의 행위들입니다. 그래서 고대에 지혜는 인간이 가진 모든 기술과 재능을 의미했습니다. 사실 지혜는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재주와 재능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지혜가 시대가 흘러가면서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지혜,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지혜로 발전해간 것입니다. 지혜의 종류에는 일상적인 지혜, 자연과학적인 지혜, 사법적인 지혜, 신학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일상적인 지혜는 잠언이나 명심보감에 나오는 것과 같은 생활지혜입니다. 사법적인 지혜는 고대에서 매우 중요했습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얻은 다음에 한 것이 바로 두 창기를 재판하는 일이었습니다. 열왕기 기자는 솔로몬이 얼마나 지혜로운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창기를 재판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고 해결해주는 것도 지혜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지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신학적인 지혜가 가장 차원 높은 지혜였습니다. 그리고 지혜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런 재주와 재능일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삶의 관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지요. 지혜는 다름 아닌 세계관입니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며 부르고 있다고 했는데 왜 지혜가가 길거리와 광장에서 부르고 있다고 할까요? 잠언이 말하는 지혜란 다른 것이 아니라 ‘돌이킴’에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방식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인생을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이키는 자, 바로 그 자가 복되며 참으로 지혜로운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잠언에서 말하는 어리석고 미련한 자란 누구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지혜의 소리를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돌이키지 않는 것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 어리석음이 그 사람의 인생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잠 1:20~2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지혜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지혜에 대해` 무엇을 듣는가?
죄인들이 “가만히” 엎드려 “숨어 기다리”는 반면(잠 1:11, 18), 지혜는 밖에서 “소리를 높”이며(20절), “그 소리를 발”한다(21절). 여기서 지혜는 의인화되었다. 지혜는 길거리의 남녀들에게 도움을 제안한다. 그것은 삶의 현장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수많은 상품 더미와 소음 그리고 상인들 사이에서 지혜는 목소리를 높여 사람들을 불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목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을 것이다. 잠 1:22~32을 읽어 보라. 지혜를 거부한 결과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지혜를 거부하는 이유는 지혜 자체와 무관하다. 모든 것은 지혜를 거부한 자들의 품성과 관계가 있다. 마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그들의 품성을 잠언은 교만함과 경멸의 태도로 묘사한다(잠 1:25, 30). 즉 지혜는 순진하고 단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사실 지혜를 거부하는 자들이야말로 단순하고 순진한 이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식을 미워하는 어리석은 자들이기 때문이다(잠 1:22, 29절과 비교).
지혜를 거부하는 자들은 그 열매를 거둘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로 선택함으로 그들은 스스로 만족하며 “자기 꾀에 배부”를 것이다(잠 1:31).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거부할 때 우리는 자신을 위해 스스로 조작한 거짓에 당하든지 아니면 너무도 쉽게 다른 사람이 조작한 거짓에 당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우상으로 대체한다. 역설적이게도 신앙을 단순하고 순진하다고 조롱하며 멸시하는 자들은 자신의 방식을 미신적으로 신봉하며 결국 가장 기본적인 심령의 필요조차 전혀 만족시키지 못하는 일시적이고 쓸모없는 사물을 가치 있게 여긴다.
교훈 : 지혜는 목소리 높여 사람들을 초청하지만 이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은 결국 어리석음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부가적용)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에게 돌이키기를 요구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그 어리석음을 버리고, 미련한 자들은 그 미련함을 버리고 돌이키라고 합니다. 돌이킴 없이는 바른 인생의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떠난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저들의 어리석은 길에서 돌아오도록 이 죄인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의 부르심, 그분께서 목소리 높여 사람들을 초청하지만 사람들이 이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로 선택하여 결국 사망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십자가는 모든 인생을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사랑의 극치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왜곡시키기 위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그를 분노케 하여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분노로 바꾸게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은 십자가에 죽으시어 확증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그분의 영원무궁한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 십자가의 도, 하나님의 지혜가 목소리 높여 지금도 사람들을 초정하지만 인간은 이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어리석음을 거두게 될 것이나 하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이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지혜의 초청을 듣고 있습니까? 그 초청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삶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지혜를 찾습니다. 그들은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며 지혜와 지식으로 그들의 생각을 풍요롭게 만들어 가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지혜를 얻기 위해 영적인 서적을 읽고 영적인 교훈을 듣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에 뭔가 큰 부족과 결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지혜에 대해 읽고 듣는 상태에만 만족할 뿐 실제로는 그 교훈과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여전히 우리를 초청하기 위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교훈과 책망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 적용 |
그대가 지혜의 초청을 받고 따라야 할 교훈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하늘의 지혜를 받는 비결 -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에서 오는 지혜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회개와 믿음과 사랑이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지식의 열쇠이며,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안’(요일 4:7)다”(시대의 소망, 139).
기도
아버지, 저는 하늘의 지혜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지혜의 초청을 듣고 응답하기를 원합니다. 그 교훈과 책망을 즐겁게 받기를 원합니다. 제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고 지혜의 명령을 삶에 적용할 만큼 간절하고 순수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넷째날(수) 12월 31일 지혜의 유익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 2:4~5).
교사강해 4)
지혜를 얻으려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값진 것을 구하는 것처럼 지혜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지혜를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지혜를 찾다가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지혜를 찾는 일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렇게 쉽게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것처럼 끈질기고 집요하게 지혜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욥 28:12-19). 광산에서 보석과 금을 찾는 사람들은 이를 찾기 위해서 땅 밑 수km까지 파들어 갑니다. 그들은 보물을 찾기 위해서 깊은 곳에서 생명을 걸고 찾고 또 찾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결국 보석을 찾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끝까지 지혜를 찾고 구하는 사람만이 지혜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구하는 자가 얻고, 찾는 이가 찾을 것이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입니다." 감추인 보화의 비유 속에서와 값진 진주를 찾는 장사군의 비유에서 이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은 인생의 구원의 지혜를 묻어두신 땅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5:39)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은을 구하는 것처럼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처럼 이 성경에서 찾고 찾으면 지혜가 나타날 것입니다.
잠 2:1~5을 읽어 보라. 하나님 경외하기를 깨닫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관하여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잠언 2장에서 말하는 교육 과정은 세 번의 ‘만약’이라는 접속사에 의해 세 단계로 나눠져 있다. 첫째는 수동적인 경청의 단계이다. 이는 단순히 지혜의 말씀을 수용하고 경청하는 단계이다(잠 2:1~2). 둘째는 지혜의 부르짖음과 요구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의 단계이다(잠 2:3). 셋째는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같이 지혜를 구하고 찾는 열정적인 참여의 단계이다(잠 2:4).
잠 2:6~9을 읽어 보라. 의를 알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지혜의 습득에서 하나님이 지시는 책임은 무엇인가?
6절에서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라는 구절이 5절에서 “(네가) 하나님(의 지식)을 알게 되리니”라는 구절에 답한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구원과 마찬가지로 지혜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5절이 지혜를 구하는 인간의 과정을 묘사했다면 6절은 하나님의 사역을 묘사한다. 그분은 지혜를 주시며 지혜를 보관하시고 지혜자의 길을 지키시며 보존하신다.
잠 2:10~22을 읽어 보라. 지혜가 마음속에서 집을 발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오면)”이라는 구절은 담화의 마지막 단계를 나타낸다. 그러면 우리는 여호와의 지식을 기뻐할 뿐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영혼에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10절). 또한 우리는 악의 길과 유혹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이며(12, 16절), 의의 길을 걸을 것이다(20절).
잠 2:13, 17을 읽어 보라. 악행의 첫 번째 단계는 무엇이며 그 결과는 무엇인가?
교훈 : 우리는 지혜를 찾으며 그것을 마음속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여호와의 지식을 기뻐하며 행복한 경험을 누릴 수 있다.
부가적용)
온 몸과 정신을 다해서 지혜를 찾고 구하며, 보물을 찾는 것처럼 지혜를 찾고 구하는 사람들은 결국 지혜를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토록 찾으려는 참 지혜는 무엇일까요? 솔로몬은 그것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왜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모든 인생들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며 사람을 행복하게 하여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을 왜곡시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4] 사단은 사람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하나님의 선하심이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선포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출34:6)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구하고 그분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곧 하나님의 선하심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하심의 절정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최근에 그대에게 큰 기쁨과 환희를 준 영적인 깨달음과 지혜는 무엇입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비록 우리는 죄인이지만 그렇다고 꼭 악에 빠질 필요는 없다. 잘못된 길에 빠진 자들은 틀림없이 먼저 옳은 길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악행은 무엇보다 충실함의 결여라고 이해된다. 죄는 교묘하게 악의가 드러나지 않는 모양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죄인은 악행을 저지를 뿐 아니라 그것을 즐기기까지 한다.
| 적용 |
지혜를 찾기 위해 그대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영감의 교훈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를 존중할 것임 - “많은 사람들이 지상의 어떤 유익보다 하나님의 지혜를 존중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표준으로 삼아 순종할 것이다. 이들은 큰 빛으로 인도될 것이다. 이들은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이 진리의 빛을 그들처럼 진리를 갈급해 하는, 그들이 알고 있는 자들 앞에 놓고자 노력할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3권, 422).
기도
밭에 감춘 보화를 찾는 것처럼 지혜를 찾습니다. 어두운 저의 눈과 이해력을 밝혀 주시옵소서. 하늘의 지혜로 저를 만족시켜 주시옵소서. 세상의 지혜가 줄 수 없는 기쁨과 환희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다섯째날(목) 1월 1일 잊지 말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7).
교사강해 5)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 모든 지혜의 근원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지혜가 나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된 지혜이기에 참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 그 어떤 지혜도 우리에게 생명과 영생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우리 자신의 인생을 우리의 꾀와 지식으로 살아갈 수 없으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 잇대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지혜가 되시며 우리의 만나게 될 환난 중에 도움이 되십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시146:3)라고 하십니다.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방백들이나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참된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하나님께 구해야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악이란 자신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버리거나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2:13)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말한 악의 두 가지는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 판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팠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지혜의 구덩이를 통해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우리가 판 지혜의 웅덩이에서는 아무런 소망과 희망을 건져낼 수 없는 비참한 웅덩이 일 뿐입니다. 지금도 어리석은 행동으로 스스로의 웅덩이를 파고 있는데 그 스스로 판 웅덩이는 그 자신의 무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40:2-3). 우리 모든 인생이 빠진 이 사망의 웅덩이, 기가 막힐 이 웅덩이와 수렁에서 우리를 끌어 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지혜와 구원을 찬양하십시오.
잠 3:7을 읽어 보라. 자신을 스스로 지혜롭게 보는 관점의 함정은 무엇인가?
자기 눈에 자신이 지혜롭게 보이면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는 착각에 이른다. 이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잠 26:12). 다시금 지혜는 일종의 신앙적인 충성으로 묘사된다.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인자와 진리”를 나타내고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잠 3:1, 3, 5). 지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암시한다. 하나님의 감화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반응하는 마음의 자리에 대한 반복적인 언급을 주목하라(잠 3:1, 3, 5). (잠 2:10에서 마음은 이미 지혜를 받아들여야 할 공간으로 언급되었다.)
잠 3:13~18을 읽어 보라. 지혜의 선물과 함께 주어지는 상급은 무엇인가?
지혜는 생명이나 건강과 관계가 깊다(잠 3:2, 8, 16, 18, 22). 가장 함축적인 표현이 바로 잠언에서 일종의 약속처럼 반복되는 “생명나무”이다(잠 3:18, 11:30, 13:12, 15:4). 이 은유는 에덴동산을 연상하게 한다. 이 약속은 지혜의 획득이 곧 영생을 보장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우리의 첫 번째 조상이 에덴에서 누렸던 삶의 질적 특성이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과 동거하면 우리는 에덴의 삶을 짐작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잃어버린 왕국을 회복하리라는 약속에 대하여 소망을 갖게 된다(단 7:18 참고).
잠 3:19~20을 읽어 보라. 지혜에 대한 필요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창조 기사에 대한 갑작스런 언급이 문맥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창조 기사에서 사용된 지혜는 그것을 생명나무와 결부시킨 18절의 논증을 강화시킨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기 위해 지혜를 사용하셨다면, 그것은 하찮은 문제가 아니다.
교훈 : 우리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고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생명나무의 교훈으로부터 생명과 행복을 주는 지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부가적용)
하나님께서는 처음과 끝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때때로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자식이 어떤 길을 가야할지 조언하고 부모가 이렇게 살라는 계명을 주어 가르칩니다. 그러나 자식들은 부모는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부모의 교훈을 거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인생을 먼저 살아간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이 부모의 계명과 같은 말씀을 듣지 않아 낭패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듯이 우리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은 인간 부모의 교훈과 비교할 수 없게 완전한 교훈과 계명이 됩니다. 그 안에 생명의 길이 있으며 인간이 가장 안전하게 따를 수 있는 축복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지구역사 6000년을 돌아볼 때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살 때 이르러 온 인간의 비극과 슬픔을 우리는 묵상하며 살펴보아야 합니다. 생명나무의 교훈과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겪는 저들의 속박과 괴로움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축복과 하나님 안에 있는 번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렘2:19). 결국 인간에게 악이란 우리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고 또한 고통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지혜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최근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지혜의 범위는 우주적이며 지상에 머무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넘어선다. 지혜는 또한 우리의 영생의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교훈은 생명나무에 대한 언급 속에서 암시되며 에덴동산을 회상하게 한다. 또한 이런 관점은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잠 3:35)는다는 잠언 3장의 결론과 약속 안에 내포되어 있다.
| 적용 |
그대가 하나님과 어떤 방식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지혜로운 자가 받을 보상 - “지혜로운 자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붙잡아라. 현재의 위급한 상황 하에서 그대의 의무들이 아무리 유쾌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대의 고결함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라. 그대의 영혼의 순결함을 보존하는 것이 큰 희생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에 전진하라. 그리하면 그분은 그대의 수고에 축복하실 것이며, 그대에게 수천 배로 갚아 주실 것이다”(교회증언 4권, 117).
기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영생이며 지혜임을 고백합니다. 항상 제 마음 자리에 오셔서 저와 함께해 주시고 제가 잠시라도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겨 하나님을 멀리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여섯째날(금) 1월 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실물교훈>, 111~114 ‘감추인 보화’, <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334 ‘가정에서의 축복’, <교육>, 197~198 ‘생리학의 연구’, <화잇주석>, 잠 3:13~14, 17을 읽어 보라.
“청소년들은 하나님을 ‘생명의 원천’(시 36:9)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성경 말씀의 기초를 이루는 깊은 진리를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시자이실 뿐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이시다. 햇빛, 깨끗하고 맑은 공기, 음식물 등은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힘을 유지해 주는 중요한 요소들로써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원천들이다. 우리가 시간마다 순간마다 생존하는 것은 그분의 생명력 때문에 가능하다. 죄로 인해 변질된 것을 제외한다면 하나님의 선물은 모두 인간의 생명과 건강과 기쁨을 위해 유용한 것들이다”(교육, 197~198).
“하나님께 헌신하면 삶에 환희와 기쁨을 주는 사교 관계에서 불리하고, 건강에도 이로울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지혜의 길, 곧 거룩한 길로 행하는 사람들은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삶의 참다운 기쁨을 살아있는 그대로 즐(긴다)”(화잇주석, 잠 3:1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지혜와 지식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지식이 많지만 지혜는 없을 수 있습니까? 상당히 유식하지만 지혜는 없는 사람에 대해 모두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➋ “여호와를 경외(두려워)하라”는 가르침에 대해 묵상해 보십시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요일 4 :8)다면 어떻게 그분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사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 속에서 공의와 사랑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해소시킬 수 있을까요?
➌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특별히 인간의 심령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고려해 보십시오. 우리는 원하는 행위를 합리화시키기가 얼마나 쉽습니까? 극단적인 행위를 합리화했던 자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도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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