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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과 요나의 모험담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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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과 요나의 모험담



기억절 :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첫째 날(일) 결점이 있는 선지자


*도입질문: 요나는 어떤 성향을 가진 선지자였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요나 선지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요나 선지자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요나 선지자에 대한 평가는 달라집니다.

요나 선지자의 모습은 자신이 기록한 요나서에 가장 잘 드러나지만, 그 외에는 많이 언급되지 않아서 구약성경에서는 왕하14:25에 한번 나오고, 나머지는 예수님께서 언급한 것이 전부입니다.(마12:39-40, 눅11:29-30)


왕하14:25에서 요나는 이스라엘이 아람으로부터 영토를 되찾겠다고 예언한 선지자였고, 그가 전한 기별대로 이스라엘은 영토를 회복하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요나서에 기록된 요나 선지자의 모습은 열왕기하에서 보여 진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보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했던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아람으로부터 영토를 회복할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세움 받았을 때는 참으로 기쁜 마음으로 단숨에 처리했을 것입니다.(왕하14:25)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는 니느웨에 대하여 감정이 좋지 않았던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자신의 회개를 촉구하는 기별을 듣고 돌이켜 멸망당하지 않을 것을 염려한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다시스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한 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별을 전하기에 충실했던 요나의 모습이 나오고, 또 한 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도망하는 요나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분명히 서로 상반되는 듯 보이는 두 가지의 모습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품성의 입장에서의 순종이냐 불순종의 기준으로 보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품성의 입장에서의 선택의 자유의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해석을 하게 됩니다.

사람의 품성의 입장에서의 순종이냐 불순종이냐의 기준에서 보면 요나는 결함이 많은 선지자처럼 보이고, 상황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하는 선지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성의 입장인 선택의 자유의 기준으로 보면 요나는 자신이 가진 민족주의적 성향에 충실한 선택을 한 선지자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해가 되지 않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고,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한다할지라도 절대로 벌을 주시는 분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기별을 전하기 원하는 하나님에 맞서 정반대의 방향으로 도망가는 선택을 하고 있는 요나 선지자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니느웨 사람들을 생각하시면 안타까우셨을 것 같고, 요나의 입장에서 생각하시면 귀여우셨을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잘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껏 자신의 생각을 선택하고 있는 요나에 대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품성대로 “오래 참으시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시고”(고전13:4-5) 기다리시면서 새로운 깨달음이 있기까지 더 많은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셨을 것입니다.



둘째 날(월) 과거의 한 선교사


*도입질문: 대풍이 이는 바다에서도 요나가 곤한 잠에 빠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다시스로 가는 배에 대풍이 일었습니다. 요나서 1장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풍을 내리셔서 배가 거의 깨어지게 하신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책임지시는 사랑으로 기록하였으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지 않으신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처럼 표현하기도 합니다.(예, 1. 출7:3-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신 하나님, 그러나 실제는 바로가 스스로 강퍅케 된 것임(출8:32) 바로가 사단의 음성을 선택함으로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강퍅케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셨다고 기록하게 하심으로 바로의 창조주로서 바로의 선택에 대하여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표현법을 사용하였습니다. 2. 대상10:4 사울이 자기 칼에 스스로 자살 한 사건을 하나님은 사울이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자살한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사울의 선택의 결과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서 하나님이 사울을 죽이신 것처럼 표현하는 사랑의 표현법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과 반대의 선택을 한다고 해서 대풍을 일으켜 배가 깨어질 정도로 위협을 가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선택의 자유를 주시는 분이실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시지 않은 일을 누가 한 것일까요? 그것은 요나의 마음에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오해하게 만들고, 더불어 같이 배에 탄 사람들에 마음에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게 만들기 원했던 사단이 한 일입니다.

성경은 사단이 한 일도 사단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책임지시는 사랑으로 표현한 일이 많습니다.(욥2:3, 삼하24:1과 대상21:2 비교)


이 일로 인해 사공들은 하나님의 전능함을 깨달았지만 하나님의 품성은 오해하게 되었습니다.(욘1:16)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요일4:18) 두려워함으로 제물을 드리고 서원했습니다.


사공이 깨달은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신들보다는 전능하지만,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이것은 사단이 그들의 마음에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다른 하나님을 믿게 만든 결과였습니다.


반면에 요나는 대풍이 일어도 개의치 않고 잤습니다. 요나가 알고 있던 하나님의 품성의 일면은 자신의 선택에 벌주지 않은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요나가 하나님의 품성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서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욘1:12)고 말했지만...


사단이 대풍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오해하고자 노력하였지만,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자신의 선택대로 벌주지 않으시고 위험의 상황에서도 큰 물고기까지 준비하셔서 요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때에 요나의 마음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에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 날(화)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도입질문: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그 시간에 요나가 깨달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지내는 동안 요나는 자신의 선택을 인정하시고 성 내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조건적이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욘2:6)

완전하게 깨닫지는 못했지만(욘2:9) 제한된 영역에서나마 요나는 하나님의 품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체험한 요나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뛰어넘어 자신의 민족에게 불의한 일을 한 니느웨 사람들도 생명을 얻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을 때, 그는 그의 사명을 새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넷째 날(수) 니느웨 사람들


*도입질문: 니느웨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하나님의 기별은 무엇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께서 가장 큰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은 인류의 생명과 구원입니다. 비록 나쁜 일을 일삼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행위대로 처리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더 큰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므로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십니다.(롬5:20)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님을 떠나 있었기에, 그대로 굳어지면 영원한 생명과의 분리가 됨으로 요나를 통해 그들의 상태를 말씀하게 하였고, 자신들의 상태를 깨닫고 사랑의 하나님께로 돌아와 생명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겔33:11)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에게 생명 주시길 원하시는 니느웨 사람들이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나 강제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품성대로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선택을 고집할 때는 그들의 선택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런 시점이 오기 전에 돌이키기를 원하셔서 요나를 보내신 것입니다.



다섯째 날(목) 요나의 탄식


*도입질문: 니느웨가 멸망 받지 않았을 때 매우 싫어하고 성낸 요나 선지자가 꼭 깨달아야할 진리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체험함으로 니느웨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선포했던 요나는 마침내 하나님께로 돌이킴으로 생명 속에 있게 되었을 때, 옛날 가지고 있었던 악한 감정이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께 매우 노골적으로 화를 냈습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화를 선택한 요나에게 하나님은 선택의 자유를 주셨으므로 성내지 아니하시고, 요나가 가진 편협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고쳐주시려고 박 넝쿨을 통해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임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도에 대하여 요나가 깨달았는지를 알려주지 않은 채 요나서는 끝을 맺습니다. 요나의 마음에 어떤 선택을 하였는지 기록하지 않고 끝맺음을 한 요나서를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하나님께서 가지신 생각이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조차도 하나님은 선택의 자유 속에서 참된 진리를 깨달을 때까지 오래 동안 참고 기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은 강요하지 않고, 그것을 깨달을 때까지 오랜 동안 기다리시면서 그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실 뿐입니다.

그 사랑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 사랑에 사람들은 반응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에 끌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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