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과 에스더와 모르드개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페이지 정보
첨부파일
- 제 6 과 에스더와 모르드개.hwp (31.5K) 31회 다운로드
본문
제 6 과 에스더와 모르드개
기억절 :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 4:14)
첫째 날(일) 페르시아 속의 에스더
*도입질문: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 시대에 있었던 예수님과 사단 사이의 대 논쟁의 모습이 어떻게 표면화 되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아하수에로가 치리하던 페르시아는 세계 최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영토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127개의 도를 치리하였고(에1:1), 왕에 오른 지 3년에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180일 동안 베풀 만큼 강대한 나라이며, 능력 있는 지도자임을 만방에 드러냈습니다. 거기에다가 180일의 긴 연회가 마친 후에는 도성 수산 대소 인민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7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능력 있지만 후하게 베푸는 통 큰 지도자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영적인 부분에서 생각해보면 아하수에로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가 사단임을 깨닫게 합니다. 사단은 아하수에로의 마음에 있는 죄의 본성인 교만과 이기심을 부추겨서 지금의 최강국의 모습이 마치 아하수에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이룬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만족감에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만족감에 빠지게 하면 더욱 깊이 사단이 주는 전파에 빠져 들어가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성령의 음성은 전혀 들리지 않게 됩니다.
사단이 주는 전파에 깊이 빠져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술이 잔뜩 취한 아하수에로가 자신의 아내의 아름다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게 명령한 장면이었습니다. 이 명령은 상식적이지 않은 명령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술에 취해 이성을 상실하고 제 정신이 아닌 모든 사람 앞에서 왕비의 위치를 깎아내림으로 자신이 위치를 그 만큼 더 높이는 명령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면서 자신을 높이는 모습은 사단의 전파에 강력하게 반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또한 이런 명령은 온 페르시아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강력함을 드러내게 하는 죄의 본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상한 명령이지만 그것을 제지할 만한 사람이 단 한 사람이 없었을 만큼 당시의 상황은 사단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지배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단에 의해 죄의 본성이 한 없이 표출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단의 지배에 속하지 아니한 한 여인이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왕비 와스디였습니다. 와스디는 독재자의 저급한 욕망에 맞서 자존심을 지키기로 결심하였고, 그 결심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사단의 영향력에서부터 벗어난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와스디는 당장 왕비의 지위를 잃었고 그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지만, 그녀를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아하수에로의 교만과 강력함이 페르시아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새겨졌고, 아하수에로를 지배하고 있는 사단이 페르시아 모든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과 그 백성을 통해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준비되는 가운데 약속의 후손인 메시야가 태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계셨음을 에스더가 왕비로 준비되게 하심을 통해 드러내셨습니다.
사단의 일방적인 승리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신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날(월) 왕궁에서의 에스더
*도입질문: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자신의 민족과 종교를 드러내지 말라고 당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자신의 민족과 종교를 드러내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이 의미를 오해하면 누군가가 에스더에게 “너의 민족은 누구이며 너의 종교가 무엇이냐?”고 질문할 때에 나의 민족과 종교를 비밀로 하라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당부했던 말의 의미는 질문을 받았을 때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을 받지 않았을 때의 상황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질문을 받지도 않았는데 굳이 자기의 민족과 종교를 먼저 말함으로 포로 되어 살아가고 있는 삶에 혹시 모를 불이익과 불편함을 염두에 둔 당부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말할 수 있지만, 때와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고 내게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편견을 갖게 함으로 복음이 전달되는데 어려움을 자초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나의 신앙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누군가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는 최고의 심혈을 기울여 지혜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내어야 합니다.
그 때에 성령께서 우리가 할 말들을 우리 혀 속에 넣어주셔서 아무도 그 말에 변론하지 못하게 만들 것입니다.(눅21:14-15)
성령께서 우리 귀에 속삭이시는 사랑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하나님과 늘 가까운 사람이 되는 일이 중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상황에 맞는 필요를 채우셔서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드러내십니다.
셋째 날(화) “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에2:19-5:8)
*도입질문: 아하수에로 왕 때에 유대인들에 있었던 민족적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 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극적인 반전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모르드개와 하만 사이에 있었던 갈등이 급기야는 유대인들 전체에게로 전이 되었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장대에 매달고자 결심하였을 뿐만 아니라 모르드개가 속한 유대 민족 전체를 한 날 정하여 다 죽이고자 계획하였습니다. 이 위기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시도는 왕비가 된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의 마음을 돌리는 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의 법에 의하면 왕의 호출 없이 왕비가 왕께 나아가면 죽임을 당할 수도 상황이었기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에스더에게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법대로 그냥 앉아 있다가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유대인들이 한 날에 몰살될 위기였습니다.
진퇴양란의 상황이었지만 에스더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었기에, 그 하나님께서 아하수에로의 마음에 은혜를 더하시고, 페르시아의 법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여 드디어 왕 앞에 나가기를 결심합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삼일 동안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요청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념으로 왕께 나아갔습니다.
드디어 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뜰 곧 왕이 있는 곳 맞은 편에 었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 아하수에로의 마음에 사랑 호르몬이 많이 나오게 하셔서 에스더의 모습이 심히 사랑스럽게 느끼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사랑스러운 에스더의 모습에 왕은 홀을 내밀어 에스더가 자신에게 오도록 하였습니다.
이미 에스더를 향하여 마음을 다 연 아하수에로의 마음에 더 만족을 주고자 에스더는 모든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아하수에로의 제안에 대답하지 않고 왕을 위한 잔치에 하만과 함께 올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왕이 흡족한 상황에서 왕은 갑자기 그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역대 일기를 읽게 하였고, 역대 일기 중에 문 지키는 두 내시가 자기를 모살하고자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여 자신의 생명이 보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밤에 왕으로 하여금 갑자기 역대 일기를 읽고 싶어지게 만드신 분은 성령이셨습니다. 왕의 마음에 모르드개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갖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 이후의 일들은 에스더에 기록된 것처럼 모든 것이 역전되었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의 호위 속에 모든 사람들 앞에서 높임을 받게 되었고, 하만은 모르드개를 달려고 준비한 장대에 자신이 달리게 되었고, 유대 민족은 그 날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고 오히려 페르시아 안들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있었습니다. 에스더가 결심할 때 하나님은 그 결심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선택을 하였고, 그 선택으로 인해 역사는 바뀌었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사랑으로 섬기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신할 때 믿음과 용기가 생깁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믿음과 용기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편을 선택하게 하고, 하나님 편을 선택하면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십니다.
넷째 날(수) 모르드개와 하만
*도입질문: 모르드개와 하만의 이야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 편에 서기를 선택할 때 결국은 행복과 기쁨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고통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 편에 행복과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사람들을 통해 이루십니다.
우리들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배제한 채, 바라본다면 하나님 편이 늘 위기에 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준비를 하십니다.
현실의 너머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내가 지금 알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확신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다섯째 날(목) 이방인들이 유대인이 됐을 때
*도입질문: 아하수에로 왕 당시에 많은 페르시아인들이 유대인이 되었던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유대인들을 죽이기로 결정했던 날에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페르시아 인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페르시아 인들이 유다인들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았습니다.
왜 당시에 페르시아 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유다인이 되었을까요?
왜 그들은 유다인들을 두려워하였고, 유다인들을 두려워하는 것과 유다인이 되는 것과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방신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의 성품은 조건적이었고, 조건에 따라 사람들에게 복과 화를 주는 무서운 신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림절 사건을 통해 페르시아 사람들이 생각한 것은 자신들이 믿던 신들보다 유다인이 믿는 신이 더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죽이고자 했던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자신들이 죽었기 때문에 유다인의 신이 자신들의 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믿던 신보다 더 능력이 많은 신이라면 그동안 믿었던 신보다 더 무서운 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조건을 갖고 유다인의 신을 섬겨서 저주가 아닌 복을 받기 위해 개종한 것 같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굉장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그것은 여전히 다른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다른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시작한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새롭게 깨닫게 하셔서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겠지만, 당시의 그들의 선택은 그동안 믿었던 이방신들과 품성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고 능력만 더 위대한 신일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는 것이 사망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면 하나님의 두려워지고, 두려운 만큼 하나님과 멀리 있게 되고, 멀리 있게 되는 거리만큼 생명과 떨어지게 됩니다.
선교는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하는 내용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절대적 사랑의 그 하나님을 전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그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 이전글문창길 목사 저 : 현대인에게 말하는 요한계시록 1).요한계시록 16장 (12 - 16절) 천사가 여섯째 재앙을 쏟았다. 2).요한계시록 16장 (17 - 21절) 천사가 일곱째 재앙을 쏟았다. 15.08.02
- 다음글제7과 위대한 선교사 예수 (파워포인트) 15.07.3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