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속의 음악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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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명화가였던 이 중섭과 같은 미술학교 출신이었던
돌아가신 선친께서는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한두번 하신 기억이 난다.
빛이 사물에 비추면서 어떻게 색갈이 시각적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19세기의 음악은 다소 복잡하여 사실주의 음악,역사주의 음악,
민족주의 음악,낭만주의 음악 그리고 인상주의 음악등 다양한
음악의 주류가 형성되고 있었으나 그중에 가장 크고 장기적인
흐름을 유지하게 된 음악이 낭만주의 음악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낭만주의 음악가들이 슈베르트,
멘델스존,위버, 리스트, 하이든, 그리고 슈만과 쇼팽등이 있다.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 시작된 신앙적 흐름이 있었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1844의 사건을 낳게한 경건주의의 흐름이다.
무디나 찰스 피니등 유명한 부흥사들이 경건주의에서 탄생한
경건주의의 용사들이다. 화잇부인은 이 경건주의의 초기에서
후기에 까지 걸쳐서 살았던 경건주의의 산 증인이다.
성악을 전공하시고 평생 음악선생을 하다가돌아가신
모친의 영향으로 어린시절 부터
대학생 시절까지 유행가를 입에 담아보지 못하고 살았던 내가
처음 유행가를 불렀던 노래가 아마도
"사랑해 당신을" 이라고 하는 노래였다.
"모닥풀 피워놓고" 도 지금껏 흥얼거릴 수 있는 유행가의 하나다.
1973년 삼육대학 엘리야 관 옥상에서 벌어진 영문학과 파티에서
여기에다 음악산책을 올리시는 그분이 기타 반주를 하고 불렀던
이 노래를 듣고 학장님을 비롯하여 신학과 교수님들이 총출동
하셔서 당시 영문학과 과장이시던 이 익모 박사와 일촉측발의
"유행가대란" 이 벌어질뻔 했으나 당시에 워낙 위상이 있으셨던
이 익모 박사님의 해명으로 다행히 징계쪽으로 가지는 않고
권고 쪽으로 마치게 된 기억이 한토막 있다.
성악과 그림에 소질을 갖고 태어난 내가 학창시절엔 오로지
클라식 가곡이나 찬미가 정도만 불렀고 그림에 눈을 뜨기 시작했던
청년시절엔 오직 인상파적 기법에만 충실했다고 생각이 난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아내를 따라 미국으로 와서 사는데
그 당시에 헤리티지 라고 불리는 미국 재림교회의 주류적 음악그룹이
있었고 아내는 그 음악을 아주 즐겨 듣고 있었다.
킹스 헤랄드나 델 데커 정도의 음악만 고수하던 내가 그것 때문에
한두번 크게 다투었던 기억이 난다.
아내도 모태 교인이고 또 줄곧 삼육출신이었는데 빠르고 경쾌한
리듬이 동반된 음악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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