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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과 예수님과 예루살렘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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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과 예수님과 예루살렘



기억절: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 21:42)



첫째 날(일) 예언된 분이 오심


*도입질문: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희망의 기별을 전한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의 핵심은 무엇이었나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이 했던 첫 번째 일은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재건한 성전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비교하면 매우 보잘 것 없는 성전이었지만, 그 성전에 구약성경에 예언되었던 메시아가 올 것이었습니다. 성전이 가리켰던 메시아가 성전에 오심으로 상징이 실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이나 성전과 성전에서 행하여진 모든 의식들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들이 메시아가 할 일을 보여주는 상징들이기 때문입니다. 상징은 실제를 만날 때 그 목적을 다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스가랴의 예언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성전의 실체되신 분이 성전에 들어가셔서 메시야가 해야 할 상징이었던 어린 양이 죽는 일을 하기 위해 준비되어졌습니다.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을 통해 상징으로만 인식되어진 모든 구약의 제사들과 약속들이 예수님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월) 성전과 예수님


*도입질문: 성전이 상징했던 것은 무엇이고, 예수님 당시에 성전은 어떻게 변질되었으며, 예수님은 어떻게 변질된 성전을 회복하셨나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성전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렘17:12-13) 성전은 예수님께서 행하실 구속의 일을 기구와 제사제도를 통해 보여줍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성전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보여주기는커녕 제사장들과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돈벌이 수단의 장소로 전락되었습니다.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오셨을 때 성전 안과 밖에서 보여 지는 것들은 성전을 통해 깨닫기 원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모습이었기에 예수님은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과 짐승들을 다 내어보내시고 만인이 기도하는 집으로 만드셨습니다.


성전은 우리들 자신에 대한 상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이지만(고전6:19) 사단의 영향력을 받는 사단이 거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단이 거하는 곳을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오시고자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실 때, 우리가 그 소리에 응답하여 마음의 문을 열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사단의 영향력을 제거해 주시고 성령께서 거하실 성전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호소에 귀 기울이고, 그 호소에 사랑으로 반응할 때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으로 우리들이 구별됩니다.



셋째 날(화) 열매가 없음


*도입질문: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은 나무에게 문제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무가 생명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무가 생명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마7:17-18)

종교 지도자들이나 종교인들이라 할지라도 개인적으로 생명이신 예수님과의 교제가 있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종교적인 형식과 성경에 대한 많은 지식이 생명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오직 예수님 자신입니다.(요1:4)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받고, 그 감동에 대하여 반응할 때 생명력이 왕성해집니다.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고야 맙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된 이유는 그들이 종교적인 행위와 성경의 지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함으로 그 모든 행위와 지식을 조건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건을 제시하는 하나님에 대하여 그들은 부담스러워했고, 사랑이 아닌 억지로 하려고 하니까 힘만 들고 그런 마음의 상태 속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스스로의 행위이므로 하나님 보시기에는 계명을 지키는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습니다.(요7:19)

계명 속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이루실 약속임을 발견할 때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솟구치게 되어 계명을 이루어나가게 됩니다.



넷째 날(수) 돌


*도입질문: 버림받은 돌은 누구를 상징했나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건축을 하는데 비범하고 특별한 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돌은 쓰임새를 발견하지 못하여 쓸모없는 돌이라고 생각하여 한쪽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돌은 후에 건축물을 지탱하는 기초석이며 모퉁이 돌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모퉁이 돌, 기초석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쓸모없는 돌처럼 취급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기초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불안하고 의미 없는 삶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끝은 흙으로 끝나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나의 생명의 시작이며, 생명력의 근원으로 받아들이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은 인생 최고의 행복이 됩니다.


예수님을 우리 각자의 기초석이요, 내 삶을 지탱하는 모퉁이 돌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목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목적대로 사는 삶은 최고의 가치와 행복을 경험하는 삶이 됩니다.



다섯째 날(목) 은혜의 값


*도입질문: 우리를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잔치에는 어떤 값이 지불되었나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잔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준비하는 잔치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모든 사람들을 초청한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무료로 그 잔치에 초청하지만, 그 잔치를 준비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사랑의 잔치에는 모든 것이 다 바쳐진 잔치이지만, 우리들에게는 값없이, 공로나 행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우리에게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책임지시는 사랑으로 인해 우리들에게는 모든 것이 조건 없이 주어졌습니다. 사랑으로 마련한 잔치이므로 사랑에 감동 받은 사람만 그 잔치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에 감동 받을 때에 초청에 응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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