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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과 약속의 자녀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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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과 약속의 자녀



기억절 :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8)



첫째 날(일) 바울의 부담


*도입질문: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바울의 부담은 무엇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바울을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게 될 지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의 길목으로 하나님의 세계 선교를 이룰 수 있는 좋은 지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할 때에 이미 하나님은 이런 큰 계획을 가지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한 민족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전 세계에 보여지게 함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을 위대하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부르심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로 인해 자신들만 구원하기 위해 선택했다고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오히려 자신들의 선택함이 다른 모든 세계 사람들에게 장벽을 세우는 일이 되었습니다.


같은 이스라엘인으로서 바울은 하나님의 원대하신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부르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화합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신에 예수님의 피로 인해 세워진 교회가 그 뜻을 대신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한 편에서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과, 비록 육신적인 이스라엘인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합쳐서 영적 이스라엘인으로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은 이루어져 갈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여 이 대열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둘째 날(월) 택함을 받음


*도입질문: 야곱이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이유는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를 미워하신다는 표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야곱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것은 야곱만을 특별히 편애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에서가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서 하나님이 가지신 원대한 뜻을 이루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야곱과 에서가 다른 선택을 한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가 갖고 있는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취미를 따라 산 사람이었습니다. 둘 다에게 하나님은 기회를 주셨지만, 야곱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선택함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편애하지 않으실 뿐 만 아니라 어쩌면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사람에게 더 큰 은혜를 주고 싶으신 하나님입니다.(롬5:20) 야곱이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한 반면, 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삶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에서는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도 없고, 하나님의 밖에 머물기를 더 좋아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택의 자유로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을 떠나는 선택의 결과는 생명과의 단절이므로 하나님은 그런 선택 속에 있는 에서에게 더 큰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셔도 결심하고 그 은혜를 거절하였습니다. 계속되는 호소와 결심하고 거부하는 일이 지속되다가 이제는 더 이상의 시간과 기회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다른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는 시점이 될 때, 하나님은 에서의 선택을 인정하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무례히 행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에서가 선택한 사실로서 기록하지 않고, 에서의 선택까지도 책임지시는 창조주로서의 표현법으로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하심으로 관계가 끊어졌다라고 표현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사실적인 표현이 아니라 창조주의 책임지시는 사랑의 표현법으로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사랑의 극치적 표현입니다.



셋째 날(화) 신비들


*도입질문: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들에 대한 우리는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한 것만 겨우 이해할 수 있습니다.(신29:29) 우리의 영역에서 벗어난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에 관한 것들은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품성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이해도 못하지만 오해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용어나 표현법이나 사건들을 취급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품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기록된 글자(의문)으로만, 우리의 품성과 경험대로 해석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못 믿을 분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성경 자체의 모순으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고후3:6)

책임지시는 사랑의 표현법이 성경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지 않은 일들도 하나님을 하셨다고 기록하기 때문에 어떤 말씀이 사실적 표현인지, 어떤 말씀이 책임지시는 표현법인지 잘 구별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점점 더 오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성령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우리의 이해를 도와 말씀을 풀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고후2:10-11)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어서 하나님을 조명하고 있는 책(요5:39)이므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조명해주셔야만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을 구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눅11:9-13)



넷째 날(수) “암미- 내 백성


*도입질문: 암미 즉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언제부터 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우리는 아담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생명에너지가 아담의 허리 속에 있었던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하나님을 거절하는 선택을 할 때 미래에 태어날 우리들도 같은 선택을 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 죽은 것입니다.(고전15:22)


그런데 아담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받음으로 하나님과 인류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은 선택의 자유의 부작용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선택의 자유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닌 정 반대의 길도 선택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시기 전에 아담에게 주시는 선택의 자유의 후유증에 대한 것들도 이미 창세전에 마련하신 후에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엡1:4-5)


창조주가 되기 전에 하나님은 구원자가 되셨습니다.(사43:1) 창세전에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으로서 계시록에 등장합니다.(계13:8) 그러므로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구원이 자신이 죽으실 것을 담보로 이미 창세전에 확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실제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요19:30)


이런 구원을 이루신 것은 우리의 행위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엡2:4-5, 롬5:8)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고전15:22) 하나님 편에서는 이미 창세전에 확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냐입니다.


강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구원을 결심하고 거절하게 되면 하나님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많이 주어져서 새로운 선택을 하기 원하시지만, 선택의 자유를 넘어서서 강제하지 못하시기에 멸망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감동은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에 대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로 가길 선택하게 되고, 그 선택으로 인해 생명과의 연결이 이루어집니다.



다섯째 날(목) 걸려 넘어짐


*도입질문: 행위를 의지할 때 걸려 넘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행위 자체가 인간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하나님을 거절하는 선택을 하는 순간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사람이며,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즉시 죽는 것이 유예 됐을 뿐입니다. 그래서 없는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유예된 삶으로 인해 내가 스스로 보기에는 살아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짐으로 나의 행위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할 뿐, 하나님 보시기에는 나는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연결이 없는 모든 것들(착한 것들도 포함)이 모두 사망(죄)인 것입니다.(롬14:23)


성경이 제시하는 인간관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눈에 보여 지는 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행위는 다 죽은 행실들입니다.(히6:1) 죽은 행실로는 죽은 자라는 사실만을 증거할 뿐, 우리의 생명과는 무관합니다.(마7:16-18)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연결을 통해서만 우리의 삶은 의미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은 우리에게 주신 선택의 자유로만 가능함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셔서 감동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감동할 때만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지 않고 깊은 감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감동할 때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 관계가 바로 생명입니다.(요일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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