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내민 떨리는 손을 붙잡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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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왕하 2:9).
엘리사는 세속적 명예나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 중에 높은 지위를 구하지 않았다.
그가 갈망한 것은 승천으로 영광스럽게 되는 엘리야에게 매우 너그럽게 내려 주셨던 성령을 풍성히 내려 주시는 것이었다.
그는 엘리야에게 임하였던 성령만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를 채우기에 적합한 자가 되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고 요구하였다.
이 요구에 응답하여 엘리사는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왕하 2:10, 11)였다.
엘리야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지상에 살아 있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고전 15:51, 52)할 성도들을
예표하였다.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의 끝이 가까웠을 때에 엘리야가 변화산에서 모세와 같이 구주의 곁에 서도록 허락을 받은 것은
그와 같이 변화함을 받을 사람들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영광을 입을 이들에게서 구속함을 입은 자들의 왕국의 축소판을 보았다.
제자들은 하늘의 빛으로 옷 입은 예수를 보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는”(눅 9:35) 것을 듣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였다.
그들은 재림 때에 죽음에서 부활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모세를 보았다.
그리고 옆에는 또 세상 역사의 종말에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할 사람들을 대표할 엘리야가 서 있었다.―선지자와 왕, 226, 227(영문).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딛 3:9)
성령께서는 독설과 비판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동역하시지 않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회의에서 격론을 벌이는 사람들에 의해 생겨났으며 어떤 사람들은 싸움을 위해 공세를 취하는 습관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로 욕을 당하십니다. 날카로운 논쟁은 피하십시오.
사단의 학교에서 그의 전술을 배우지 않도록 하십시오.
성령께서는 비난하는 말을 주시지 않습니다.
환란의 때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진리의 빛을 받지 못한 모든 진실한 영혼들이 그리스도 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믿는 사람들은 매일 새로 나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저들은 귀하게 쓰이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그대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을 따라 하거나 저들과 논쟁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단순히 그대의 반대자들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단과 그의 부하들과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의 시체에 대해 사단과 다투어 변론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사단의 심술궂은 계책을 다 아시는 세상의 구속주께서 그와 다투어 변론하지 않으시고 다만 경건과 겸손을 보이시며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리라고 하셨다면 그분의 종들이 그분의 모본을 따르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유익한 인간이 그리스도께서 행여 사단에게 진리를 왜곡시키고 오도하며 그르칠지도 모르는 기회를 줄까봐 피하신 길을 걸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 역사의 현 시점에서 볼 때 우리 모두에겐 악한 대리자들의 초능력을 대항해 새로운 종류의 싸움을 시작해야 할 너무나 큰 과업이 놓여 있습니다.
말이나 행동으로 남의 허를 찌를 수 있는 기회가 아무리 많더라도 인신공격은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자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온전히 주님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밝히 드러내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진리가 죄를 드러내 보이고 인간의 마음에 자리한 거룩하게 하는 진리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십시오.
거만한 정신이 들어와 하나님의 사업을 그르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서신 21, 1895. 9. 13).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 : 6).
나는 많은 사람이 회개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음을 계시로 보았다.
그들이 “거듭나야 한다.” “새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설교단에서 반복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이러한 표현은 그들을 당황하게 한다.
그들은 구속의 경륜을 밝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회개할 때에 일어나는 생애의 변화에 관하여 어떤 목사들이 모순된 교리들을 가르침으로 많은 사람이 비틀거리다가 멸망에 이르렀다.
어떤 영혼들은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았다는 뚜렷한 증거를 기다리면서 여러 해 동안 슬픈 심정으로 살아왔다.
그들은 여러 면에서 세상과 분리된 생애를 살고 하나님의 백성과 교제함으로 즐거움을 누려 왔으나 저들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는 것이 주제 넘는 일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서 감히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회개에 따르는 특별한 변화가 있으리라는 그릇된 개념에서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
한동안 세월이 흐른 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았다는 증거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과 행동을 같이하게 된다.
그리고 저들은 그때를 회개한 날로 정한다.
그러나 나는 계시를 통해서 저들이 그보다 이전에 하나님의 권속(眷屬)으로 입적된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죄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세속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을 버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기로 결심한 때에 이미 그들을 받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구속의 경륜의 단순성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처음에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때 그분께서 그들을 가납해 주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였으면 저들이 주장할 수 있었던
허다한 특권과 복을 상실하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더욱 위험한 오류에 빠져 있다.
그들은 충동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들의 마음은 흥분되어 있는데, 그들은 그와 같이 들뜬 감정의 변화를 마치 그들이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고 회개한 증거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생애의 원칙은 변하지 않고 있다.
마음에 작용하는 순수한 은혜의 역사(役事)에 대한 증거는 감정에서가 아니라 생애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 : 20)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에 미치는 은혜의 역사는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꾸준히 깨어서 하나님의 허락들을 믿음으로 효력을 나타낸다.
믿음을 간직하고 그리스도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간절히 바라며, 회개하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실 것이다.
- 복음전도, 286,
287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을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살전 5:1~2)
의인들과 악인들은 지상에서 여전히 평범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농사하고 집을 짓고 먹고 마실 것인데, 그들은 하늘 성소에서 선포된 변경할 수 없는 마지막 심판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방주 안에 가두시고 불경건한 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칠일 동안이나 그들의 운명이 결정된 것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부주의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생활을 계속하였고
박두한 심판의 경고를 조롱하였다.
구주께서는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각 사람의 운명을 확정하는 결정적인 시간
곧 죄인들에 대한 자비의 손길이 마지막으로 거두어질 때가 밤의 도적같이 소리 없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를 것이다. (RH 1905. 11. 9)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남으로써만 일깨워질 치명적인 방심 상태로 신속히 빠져 들어가고 있다. (ST 1909. 12. 8)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면, 두려운 재앙들이 내리게 될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던 사람들은 바다에서 바다로, 북쪽에서 동쪽까지 헤맬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찾고자 이리 저리 달릴 것이나 찾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목자들은 반역한 교회와 불경건한 사람들을 위한 일을 마치고,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뜨거운 눈물을 흘릴 것이다. (원고 1 1857)
예수님께서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눅 19:42)라고 말씀하셨을 때 여러 시대 동안 세상을 내려다보신 그분의 시선이 우리의 시대에 고정되어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의탁 받은 하나님의 교회여, 지금은 아직 그대의 날이로다.
신뢰와 유예의 날이 끝나가고 있다.
태양은 신속히 저물고 있다.
해가 졌는데도 그대가 “평화에 관한 일”을 깨닫지 못할 것인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눅 19:42)하시는 돌이킬 수 없는 선언이 내려야 할 것인가? (편지 58 1887)
“기록되었으되 …기록하였으되 … 또 기록되었으되” 마 4: 4-10
과거에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던 어떤 사람들이 원수의 속임수로 말미암아 함정에 빠졌다.
그들은 저들의 위험에 대하여 경고를 받았으나 저들에게 주어진 경고를 거절하였으므로 더욱 더 속임을 받아
마침내는 주님과 그분의 동역자들을 대항해서 싸움을 싸우고 있다.
영원한 진리의 반석에 굳게 선 사람들은 때때로 매우 단호한 행동을 요구하는 그와 같은 반대에 직면할 것이다.
그런 때에는 그대가 도와주기를 원하는 자들의 심령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모든 말을 세밀히 생각해 보도록 하라.
그대의 말에 항상 굴레를 씌워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그대의 형제를 심판하는 일을 맡겨 주지 않았음을 기억하라. …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능한 모든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찾아 그것을 혼란과 시련 가운데서 투쟁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제시하라.
그러나 속임을 받은 자들을 향하여 결코 조롱하거나 비난하지 말라. …
광야에서 원수와 대면하셨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원수의 사악한 간계에 대하여 “기록하였으되”라는 말씀으로 대답하셨다.
사단이 온 세상의 소유권을 감히 주장하면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경배할 것을 그리스도께 구하였을 때
한 마디만 하셨더라면 수많은 천사들의 조력을 받으실 수 있었던 그분께서 단지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 10)는 말씀만 하셨다.
우리는 그 격렬했던 투쟁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한다.
마치 구주께서는 그 싸움터에서 돌아가실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간교한 원수를 이기셨다.
주의 깊이 선택된 그분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았다.
사단은 완전히 격퇴되었다.
사단은 어떤 궤변으로도 생명의 왕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
우리는 지금 싸움터에 서 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도록 하자. …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신다.
그리하여 하늘 가족의 일원으로 기록된 사람들은 저들의 죄로 인해 화목제가 되신 그분을 위해 살게 될 것이다.
저들이 진리를 알고 따를 때에 저들의 발은 확실한 기초 위에 굳게 선다.
홍수나 폭풍이 저들의 기초를 쓸어버릴 수 없다(서신 29. 1905).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렘 42:3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과 선하심과 자비하심과 사랑하심에 거하는 것은 지적 도덕적 능력을 강하게 하는 일이다.
이런 자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런 자는 순종하는 자녀가 되기 위해 단련을 받고 있는 동안
“이것이 주님의 길일까”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예수님에게 기쁨이 될까”하고 습관적으로 자문할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면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에 과감한 변화를 단행하는 것이 요구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 심각한 우리 죄를 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죄악의 길을 따르는 일에 습관 되어 있다.
저희의 마음은 사단의 영향 아래 굳어져 있다.
그러나 저들이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 안에 있게 될 때에 저희 마음은 사단의 유혹을 대항하게 되고 그리하여 저희 마음이 점점 맑아지게 된다.
성령의 감화로 저희 정신과 양심은 예민하게 된다.
그때에야 죄는 있는 그대로 즉 엄청나게 죄악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3주석 1150)
그리스도를 순종하는 모든 행동, 주를 위하여 극기한 모든 행위, 잘 견딘 모든 시험, 유혹을 이긴 모든 승리는
최후 승리의 영광에 나아가는 행진의 한 계단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인도자로 삼으면 주는 우리를 안전히 인도하여 주실 것이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길을 잃어버릴 필요는 없다.
절뚝거리는 사람이라도 깨끗하고 거룩한 빛 가운데서 걷는데 실패할 필요 없다.
길이 비록 좁을지라도 대단히 신성하고 또 죄가 그 가운데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들어갈 수 있으니 의심하는 마음과 떠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지 않으신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모든 절벽진 길에는 피곤을 회복시키는 기쁨의 샘이 있다.
지식의 길을 행하는 자들은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기쁨이 충만하다.
이는 저들을 사랑하시는 구주께서 보이지는 않으나 저들 곁에서 동행하시기 때문이다.
저들이 걷는 매 발걸음을 주의 손이 붙들어 주심을 더욱 분명히 깨달을 것이며
빛나는 영광의 빛은 하나님께로부터 저희 발걸음마다 그 앞길을 비추어줄 것이다. (산상 199, 200)
“흘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 11:24, 25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년 헌금을 자유롭게 바치지 않고 조직적으로 바치도록 강요된 사실을 측은하게 여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자선 제도가 당신의 섭리에 가장 잘 부합할는지를 아셨으므로, 그것에 대하여 당신의 백성들에게 지시하셨다.
십 분의 구는 항상 십 분의 십보다 저들에게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하나님의 것을 움켜쥠으로, 또는 절고 눈멀고 병든 열등한 예물을 그분께 드림으로
자신의 이득을 증가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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