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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이 우리 생애에 닥쳐올 때,그때가 바로 예수님께서 가장 가까이 계시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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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라.”(약 1:12)


시련이 우리 생애에 닥쳐올 때에, 

구름들이 수평선들을 어둡게 하는 때에 

예수께서는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구름 이면에는 의의 태양이 빛을 비추며 

천사들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 우리가 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심을 잊어버리기가 얼마나 쉬운가. 


나는 실망한 자에게 쳐다보고 살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 안에 희망을 가지라. 


왜냐하면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서 그대를 위한 완전한 희생제물이 드려진 바 되었다.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이시며 죄인의 구속자이시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바친 자에게는 영원한 기쁨, 그늘이 없는 행복의 생애가 기다리고 있다.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이켜 그대를 위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탄원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의 말씀을 들어보라.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믿음의 손으로 하나님의 허락들을 붙잡으라. 


이 축복들을 어떤 미래가 아닌 오늘 그대 자신에게 적용시키라.

아무리 강한 시험이라 할지라도 죄에 대한 핑계를 할 수 없다. 


우리의 심령 위에 아무리 무거운 압력이 놓여진다 할지라도 범죄는 우리 자신의 행동인 것이다. 


천하의 어떤 세력이라도 어느 누구에게 악을 행하도록 강요하지 못한다. 


사단은 우리의 가장 약한 점을 향해 공격해 올 것이나 우리는 정복을 당할 필요가 없다. 


그 공격이 아무리 혹독하며 기습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도움을 제공하셨으며 우리는 그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다. 


가장 도움이 필요되는 시간에, 실망이 우리의 심령을 엄습할 때에 그때가 바로 예수님께서 가장 가까이 계시는 때이다.(RH, 1907. 4. 18)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잠 20:11) 청년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하늘의 지혜를 구하는 열렬한 기도와 열성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녀의 정신과 의지를 지도하는 부모에게 그들은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마음을 올바른 방향과 적절한 시기를 잃지 않도록 바로잡아 주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한 순간의 결정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허황되고 쓸데없는 오락이나 하면서 함부로 낭비하기,

그리고 무익한 방문, 남에게 잘 보이려는 불필요한 옷차림, 

자극적인 놀이 등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 짧다. 


남들을 축복하고 우리 스스로를 위하여 하늘에 재물을 쌓는 일에 쓰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함부로 써야 할 만큼 우리는 여유 있지 못하다. 


필요한 의무를 다하는 데에도 시간이 충분치는 않지 않은가! 


우리가 맡은 생애의 사업을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정신과 마음을 계발하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꼭 필요한 의무를 외면하고 유행적인 관습과 버릇, 

속세의 사회에 영합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스스로와 자녀들에게 크나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자녀의 정신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지키는 것은 어머니의 의무이다. 


자녀의 정신을 계발하는 일에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

어머니들은 자신들의 지적, 도덕적 발전을 위하여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자신들의 천성에 푹 빠진 어머니들은 방문객이나 접대해야 할 손님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내 불안에 휩싸이고 만다. 


그들에게는 환경에 적응할 능력이 없다. 


이러한 어머니들에게는 신성하고 꼭 필요한 가정의 의무가 그저 평범하고 무심한 것으로 비친다. 

만일, 부모들이 인생에 유익한 것들을 위하여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엄숙한 의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면, 

만일 그들이 불멸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들의 아들딸들의 영혼의 내적 성전을 존중한다면,

우리는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크게 변화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증언, 146, 147)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置心)치 말지어다” 시 62:10


그대의 구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재물은 나의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나의 사업에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그리고 고통당하는 자를 도우며 

흑암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의 문을 여는 데 투자하도록 

그대의 손에 맡겼다. 


재물은 그대가 신뢰하는 것이나, 그대의 신이나 구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선을 행하기 위한 통로들은 많이 있다. 그것들은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그대의 곳간은 크다. 이미 너무 커져 있다. 


만일, 그것이 차고 넘친다면, 그것을 더 크게 짓는 대신에 그대의 보물을 그대 앞서 하늘로 보내도록 하라. 


공궤해야 할 과부들과, 그대의 가정에서 돌보아야 할 고아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대의 풍부한 창고를 열어서 나누어 주라.


생명의 떡을 갈급해 하는 영혼들이 있다.

그러므로, 전도 사업을 원조해야 하고, 집회소들을 건립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사업이 그대의 관심뿐만 아니라 

그대의 재산까지도 요구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대는 그분께 그분의 것을 돌려드려야 한다. 


그분께서는 그대가 영원한 기쁨 가운데 그대의 수확물을 거두어들일 수 있도록 그대가 지금 씨를 뿌리기를 요청하신다.


하나님의 선물들은 그것들이 나누어질 때에 증가한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선지자 엘리사가 기적으로 빚을 갚아 준 가난한 과부의 실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 여자는 기름 병 하나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선지자는 이웃에 가서 그릇들을 빌어 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기름은 모든 그릇들이 가득 찰 때까지 그 한 병으로부터 계속 흘려 나왔다. 

기름을 받기 위해 더 이상 가져 올 그릇이 없게 되었을 때에야 공급은 중단되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선물들이 선의 통로를 통해 흘러나가게 하는 한, 주님께서는 넘쳐나도록 공급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누가 그대에게 빛을 줄 것인가? 


그대는 선천적으로 빛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나님은 빛의 근원이시다.


진리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반사되도록 우리의 마음속에 비춰졌다. -1886년 1월 14일, 영문 시조.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눅 22:24)


그리스도의 보좌의 좌우 편에 앉게 해달라는 요한과 야고보의 요청은 다른 제자들의 분노를 일으켰었다. 

두 형제가 감히 가장 높은 자리를 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에 열 제자는 흥분했으며 서로의 사이가 소원해질 위험성이 생겼다. 


그들은 자신들이 깔보였다는 것과 자신들의 충성심과 재능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유다는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제일 신랄하였다.

제자들이 다락방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마음은 적개심으로 가득찼다. 

유다는 그리스도 왼쪽 바로 곁으로 밀치고 들어갔으며 요한은 오른 쪽에 자리 잡았다. 

거기에 가장 높은 자리가 있다면 유다는 기어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을 것이며 그 자리는 그리스도 다음 가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다는 반역자였다.

또 다른 분쟁의 요인이 발생했다. 

그 절일(節日)에는 종이 손님들의 발을 씻겨 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그런 봉사를 위한 준비가 다 갖추어져 있었다. 

물주전자 대야 그리고 수건이 거기 있었지만 종은 없었다. 

그 일은 제자들이 행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각기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종의 역할을 행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제자들의 난처한 표정을 보신 그리스도께서는 일어나셔서 그의 행동을 방해할 겉옷을 벗고 수건을 취하여 허리에 동이셨다. …

예수께서는 유다의 발을 제일 먼저 씻기셨다. 

유다는 예수님을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손에 넘겨주기로 이미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비밀을 아셨다. 


그럼에도 그분은 사실을 폭로하지 않으셨다. 


그는 그의 영혼의 구원을 심히 갈망하셨다. 


그분의 심령은, 내가 어떻게 그대를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그분은 유다의 발을 씻기는 자신의 행동이 그릇 행하는 제자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가 불충성의 행위를 완수하지 못하도록 막기를 바라셨다. 


그리고 잠시 동안 유다의 마음에는 그때 그 자리에서 죄를 고백하고자 하는 충동으로 온 몸에 전율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낮추려 하지 않았다.

그는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하였다. 


그는 자신을 낮추고 계시는 구주에 대하여 어떤 항의나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행동에 마음이 불쾌했다. 

예수님이 그처럼 자신을 낮추실 수 있을 진대, 그는 그분이 이스라엘의 왕이실 리가 만무라고 생각했다. …


회개했다면 유다도 영접을 받고 용서를 받았을 것이다. 

그의 영혼의 죄책은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말끔히 씻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과신과 자기를 높이고 자신의 지혜를 높이 평가한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였다. (원고 106, 190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이날 아침 주님께 대한 나의 기도는 주의 풍성한 은혜를 받기 위함이었다. 

나는 주 예수님은 나의 조력자이시며 또한 나는 부요한 은혜를 받을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특별한 증거를 받지 아니하고서는 

하루를 시작하고자 결코 선택하지 아니하였다.

아침 예배시간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로써 나의 탄원을 끝마치는 것을 나의 특권으로 여겼다.


내 자신의 필요를 채워야할 일이 너무나 많으므로 나는 때때로 잘못된 것을 구하지 않는지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진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모범적인 기도를 드릴 때에

나는 이 몇 마디 가운데서 나의 모든 필요가 포함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특별한 개인 기도를 드린 후 주의 이 기도(주님의 기도문)를 드리곤 하였다.


내가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의 기도를 되풀이할 때에는 

내가 잘못된 것을 구하지 않을 줄로 알고 

평강 가운데 내 일을 하기 위하여 나아갈 수 있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종종 시장과 도시들의 거리에서 기도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부르셨다. 


모든 시대에 있어서 사람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였다.
우리가 마땅히 무엇을 위하여 기도할지 알지 못하나 우리에 대한 그리스도의 교훈은 뚜렷하고 명백하다.(MS 146, 190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음이라.” 스 8:22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위하여 큰일을 해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연구열을 재생시키고 거룩한 성의 건설에 있어서 그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에 돌아가고 싶다고 그의 소원을 이야기했다. 


에스라가 그 백성을 충분히 보호하고 돌봐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전적인 신뢰심을 표명했을 때 왕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


왕은 그를 메데 파사 왕국의 특별 대표로 삼아서 그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목적을 이행하도록 광범한 권력을 그에게 위임해주었다. …
그들 앞에서 수개월이 걸릴 여행이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아내와 자녀, 소유물 외에 성전에 그 봉사에 쓸 많은 보화들을 가지고 가게 되었다. 

에스라는 원수들이 길 곁에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을 죽이고 물건을 약탈해 가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왕에게 그들을 보호해줄 호위 군사를 요청하지 않았다. …

이 문제에서 에스라와 그의 동료들은 이방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기회를 보았다. …


그러므로 그들은 그 분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를 결심하였다. …


그들은 하나님께만 속한 영광을 사람의 능력으로 돌릴 기회를 이방인들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방인 친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신뢰심의 진실성에 대한 한 가닥 의문이라도 일으키게 할 수 없었다.

(선지 609-616)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잠 27:9).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일에 공평하게 성실하려면 마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어야 한다. 


우리의 애정은 범위가 넓어야 하고, 특별한 신뢰를 나타내며 우리에게 아첨하는 몇몇 사람에게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교우 관계는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치중하게 해서 더 큰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등한히 하게끔 이끄는 경향이 있다.

애정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우리를 특별하게 아껴 주고 

우리에게 아첨하기 때문에 호의를 갖게 되는 몇몇 사람에게 우리는 우정의 동아리를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너무 자주 주고받는 편에는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들에게 최선의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힘과 칭찬과 듣기 좋은 말과 애정을 가져다 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공급해야 할 것을 다르게 공급하는 일이며, 그렇게 함으로 인간 친구가 그리스도께서 받으셔야 할 애정을 취해 간다. …

막역한 친구, 동료들이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사랑과 신뢰를 빼앗아 간다.…

자신이 제일 인기 있는 사람이 되거나,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사람에게 아첨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대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불쌍한 사람은 혹 없는지, 특별한 친절을 받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런 사람을 그대의 사욕 없는 관심을 베풀 대상으로 삼아라.


특히 매력적인 사람은 친구가 없어서 전전긍긍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외모가 덜 매력적인 사람, 소심하고 다른 사람과 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좋은 품성의 특성들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산 바 된 사람들이다. (청년 지도자, 1893년 5월 25일자)

불안감과 향수병 혹은 고독감이 그대에게 유익할지도 모른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대의 가장 열렬한 소망과 갈망을 만족시킬 우정과 사랑과 위로를 그분 안에서 발견하도록 가르치실 작정이시다.

그대의 유일한 안전과 행복은 항상 그리스도를 고문으로 모시는 데 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다른 친구가 없더라도 그대는 그분 안에서 행복할 수 있다. (서신 2b, 1874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엡 6:24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어떤 신학상의 주의에 동의하는 까닭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의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실생활에 옮기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진리를 믿고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성결하게 하는 진리를 통하여 오는 능력과 은혜를 받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만일 저희를 진실하고 친절하고 참된 관용하고 거룩한 마음을 갖도록 하지 아니한다면

이를 소유한 자들에게 저주가 되고 그들의 감화로 말미암아 세상에 저주가 된다. (2소망 24)

세상은 진실 된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한 사람들은 세계 도처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이 우리 교회에 나타날 때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들은 그분의 사업을 이행할 것이다. 

그때만이 본성적이고 유전적인 성품의 기질들이 변화될 것이다. 


성령의 내재하심은 저들을 그리스도와 같이 나타내 보일 수 있을 것이며,

저들의 순수한 경건성에 비례하여 저들이 하는 사업도 성공을 거둘 것이다. (목사 416)

우리가 공언한 믿음을 명예롭게 하자. 

아름다운 성품으로 우리의 생애를 꾸려나가자. '


거친 말과 거친 행동은 그리스도의 것이 아니라 사단의 것이다. 


우리의 불완전함과 결함에 집착되어서 그리스도를 부끄럽게 할 것인가? 


그분의 은혜는 우리에게 이미 언약되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은혜는 우리 생애를 아름답게 할 것이다. 


곧 결함은 좋은 것, 완전한 것으로 변화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생애를 아름답게 만들었던 그 은혜가 우리 생애도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참되고 사랑스러운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성경진리를 보급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논증이다. 


그런 그리스도인만이 그리스도의 참 대표자이다. 


그의 생애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리뷰지 1904. 1. 14)

매일 매일 나타내는 우리의 언행은 우리와 교제하고 있는 자들에게 인상을 끼치고 있다.


참되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선한 목적으로 강하게 되어 죄를 사랑하는 이 불신의 세상 앞에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나타낸다. 

(선지 34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일 2: 28


때때로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지만 아직 당장은 그 일을 시작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


그대는 그대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원수에게 줌으로 자신에게 많은 손실을 가져 올 뿐만 아니라 

그대의 자녀로 하여금 영원한 사물을 등한히 하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들은 온갖 나쁜 면에 있어서 그대를 모방한다. 


그대는 영원한 사물을 등한시함으로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가르치도록 그대에게 책임 지워 주신 지식, 


곧 자녀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좋아하고 존중하며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바로 그 지식을 자녀로부터 박탈하고 있다. …

그대의 어린 자녀들은 어른들 앞에서는 민첩하고 주의 깊이 행한다. 

그대는 저들의 마음을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그대가 행동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꼴 지우고 있다. 


저들은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는데 그것은 그대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가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으므로 그대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리며 

그대 자신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정말 두렵고 쓰라린 일이다.


더욱 두려운 일은 그대가 그대의 자녀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는 일이다. …


그대의 위신이나 사회적인 지위와 같은 그 모든 것은 단연코 잊어버리고 그대의 자녀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으로 출발하라. 


그대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인정하는 일을 등한히 함으로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솔직히 시인하라. 


그리고 그대가 바라는 바는 그대들이 한 가족으로서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 일이라고 저들에게 말해 주며 

그대의 자녀와 더불어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하도록 하라. …

그대는 예수님 안에서 그것을 발견할 때에만이 쉼을 얻고 화평을 누릴 수 있다.


세상과 세상의 처세법과 관습은 무수한 고통의 원인이다. 


많은 사람들은 충족되지 못한 욕망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데 그것은 저들의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라는 짐이다(서신 26. 1879).




“불의를 하는 자들은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계 22:11)


조사심판 사업이 마칠 때 모든 사람의 운명은 생명이나 사망으로 결정될 것이다. 

은혜의 시기는 주님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나타나시기 조금 전에 마쳐진다. (RH 1905. 11. 9)

조롱하는 자들은 자연계의 현상 곧 변화가 없는 사계절의 연속, 결코 비를 내린 일이 없던 하늘, 부드러운 밤이슬로 싱싱해지는 푸른 들을 가리키며 

“그는 비유로 말하는 자가 아니냐”하고 부르짖었다. 


그들은 의의 전도자를 경멸하는 가운데 미친놈이라고 하고 이전보다 더 향락을 추구하며 죄악의 길로 걸어갔다. 


그러나 그들의 불신은 예언된 사건을 막지는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오래 참으시고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충분히 주셨으나 

그 정하신 때에 이르러서는 심판과 형벌이 당신의 자비를 거절한 자들 위에 내려졌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재림의 때에도 그와 같은 불신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 


구주께서는 노아시대의 사람들이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이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다(마 24:39).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는 자들이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 사람들의 사는 것과 같이 살고 

그들과 함께 금지된 향락을 즐기며 세상의 사치가 교회 안에서도 보통 일이 되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모든 사람들이 세속적인 번영을 꿈꿀 바로 그 때에

돌연히 그들의 빛나는 환상과 기만적인 소망들은 끝장이 날 것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338, 339)

은혜의 시기의 마지막과 환난의 때를 위한 준비에 관한 여러 가지 사건이 밝히 나타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마치 이 중요한 진리들이 그들에게 전혀 계시되지 않았던 것처럼 그것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단은 사람들에게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될 모든 영향력을 빼앗아 버림으로 그들이 환난의 때에 준비되지 못하게 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

(각 시대의 대쟁투 594)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행 4 : 33).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신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부활하신 구세주의 기쁜 소식이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전달되었다. 


사도들의 마음은 깊고 풍성한 사랑으로 가득 차 넘쳐흘렀고, 

그것은 그들을 땅끝까지 보내어 하나님께서 명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구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다.

그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증거함으로 마음이 기별의 능력에 압도되었다. 


교회는 사방에서 모인 개심한 무리를 돌아보았다. 


신자들이 거듭남을 경험했다. 


죄인이 값진 진주를 찾음으로 그리스도인과 연합했다. 


복음을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자들이 복음 옹호자가 되었다. 


신앙인들의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드러내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사역으로 교회에는 생명의 말씀을 받는 자들이 더해 갔고, 

그들은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을 평안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한 소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사역을 하도록 온 힘을 다하였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기별을 선언하였다. 


그들은 위협과 협박에 굴복하거나 제지당할 수 없었다. 


주님은 그들을 통해 말씀하셨고,

그들이 가는 곳은 어디나 병든 자들이 나음을 입었고, 가난한 자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복음을 받아들였다. 


인간이 성령의 능력에 자신을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강력하게 일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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