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이 고통, 비탄 그리고 인간적 고뇌를 유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혼을 더럽힐 수는 없다.
페이지 정보
본문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삼상 3:19, 20).
오늘날도 고대 이스라엘이 경험한 것과 같은 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의 부흥이 필요하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들이 모두 내딛어야 할 첫 계단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이 일을 할 수 없다.
우리들은 각각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우리들의 우상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때에 주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구원을 나타내실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589, 590(영문).
“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엡 3:17, 18)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순전한 원칙들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영광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늘이 준 빛을 우리를 둘러싼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반사할 수 있다.
죄인들은 우리가 어둠의 자식이 아니라 빛의 자식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떻게 그들이 이것을 아는가? 우리가 맺은 열매를 보아서 안다
우리에게 영적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빛의 통로로 삼으시는 분은 영혼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가진 빛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나눠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과 아주 가까이서 살면 살수록, 그분이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더 분명히 느껴질 것이다.
우리가 그분 속에서 정결함을 바라보면 우리는 우리의 품성의 결함을 더 명확히 가려낼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을 사모하고, 그분 안에 있고, 그분께서 지니신 천상의 품성의 완전하심으로 빛나는 그 충만하심을 열망한다.
그리고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그분의 형상으로 변하게 된다.
날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씨를 심는다.
만일, 우리가 불시의 씨를 뿌렸다면 불신을 거둬야 할 것이며, 교만을 심었다면 교만을 수확해야 할 것이다.
또 완악함을 뿌렸다면 완악함을 추수할 것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채워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다.
우리의 결점과 죄에 미련을 두지 말고 우리 마음을 서둘러 바로잡는 일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부요한 축복의 창고를 여는 믿음의 열쇠를 갖게 된다.
거기엔 우리가 꺼내야 할 무궁무진한 충만하심이 있다.
우리에게 거룩하신 주님의 약속이 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쟁취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을 수도 있다.
우리가 보석 문을 들어설 때 음악보다 아름다운 말씀을 들을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 할지어다” (ST, 1887. 8. 18)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3)
사람의 영혼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진행되는 투쟁을 이해하는 자들이 많지 않다.
그들은 임마누엘 왕의 피 묻은 깃발 아래 서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의 투쟁의 참여자가 되어야 하며
흑암의 세력을 대적하여 결정적인 싸움을 해야 할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 싸움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바울은 에베소의 형제들에게 바다의 물결처럼 흔들리거나 요동하거나 마음에 겁을 먹지 말고 강하라고 권면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으로 강하여질 것인가.
자신의 힘으로써? 아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0-13)
영생을 얻는 데는 언제나 싸움과 투쟁이 포함될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음을 나타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병들이다.
그의 군대에 응모된 자들은 어려운 일을 행하도록 기대되고 있는 바 그 일은 우리의 정력을 최대한도로 필요하게 할 것이다.
군인의 생애란 공세적인 투쟁과, 불굴의 정신과 인내의 생애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시련을 견뎌야만 한다.
승리란 의식이나 과시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최고의 대장되시는 하늘의 하나님께 단순히 순종함으로 얻어지게 된다.
이 지도자를 신뢰하는 사람은 결코 패배를 모를 것이다.(RH, 1908. 12. 17)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20, 21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그들의 마음도 있다.
주님께서 주신 재물의 재능을 가진 자들은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그들은 순전히 이기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돈을 투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낭비된 돈은 무엇이든지 간에 주님의 보물을 보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탁월하신 선을 힘입어, 성령께서는 인간 대리자를 통하여 일하시며, 그로 하여금 크든지 작든지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하게 하고,
그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보탬이 되게 하신다.
그대 자신의 이기적인 만족을 위해 주님의 돈을 사용하고자 할 때는 언제든지,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믿음으로 한 식구가 된 자들에 특히 그러해야 한다.
만일, 많은 재물을 소유한 자들이 진리를 전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대리자들이 된다면,
그들은 믿음의 식구들 가운데 아무도 굶주리거나 헐벗을 필요가 없도록 저들의 보화를 현명하게 사용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그토록 많은 불행이 쌓여 있는 이유는,
돈을 위탁받은 자들이 금과 보석으로 된 쓸데없는 장신구들을 구매하고 장식용으로 현란한 물건들을 구입함으로
성화되지 못한 욕망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돈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신 바 된 영혼들은 음식을 위해 애쓰고 있으며,
그들의 부르짖음은 만군의 하나님의 귀에 상달된다. …
진리가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자 하는 자들은 해야 할 일이 있다. …
소수의 목사들뿐만 아니라 전 교인들을 통해서, 사업이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늘의 주(主)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저들의 우상을 버리고, 온갖 사치한 욕망들을 끊어 버리며,
단순히 과시와 자랑을 위한 일에는 아무것에도 빠지지 말고, 의복과 가구를 경제적으로 구입하는 방법을 연구하도록 요청하신다.
- 1895년, 편지, 90.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요 14:30)
하늘의 사령관께서는 유혹자의 맹렬한 공격을 받으셨다.
그분은 이 세상을 장애물 없이, 깨끗이 치워진 길을 따라 통과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분의 은혜로우신 자비와 인애하심을 통해 백성들의 영혼을 그분은 왕국으로 끌어들이는 일을 자유롭게,
아무런 장애 없이 하도록 되어 있지 않았다.…
이 세상이 태어난 어떤 사람도 그 기만자의 권세를 피하지 못했다.
악의 동맹체는 그분께 대항하여 싸움을 하고, 가능하다면 승리를 거두기 위해 그분의 뒤를 쫓아 다녔다. …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과 인격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계획을 완수하신다면, 자신의 악마적인 권세가 끝장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생애는 악마적인 대리자들과 더불어 싸운 끊임없는 싸움의 생애였다. …
먹이가 그의 손아귀에서 거듭거듭 벗어나면서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하고 강렬해져갔다. …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바로 직전에 구주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암흑의 권세의 때였지만, 그분의 승리를 예상하시면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구속 사업이 완성된 것을 보시면서, 그분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위대한 최후의 구원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미래에 있을 것들을 현재의 것인 양 나타낼 수 있으셨다.
무한한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확실하게 만든 그 위대한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으셨다.…
그리스도의 초림 이전 이 세상의 상태는 그분의 재림 직전에 있을 세상의 상태에 대한 정확한 묘사이다.
동일한 죄악이 존재할 것이다.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에 동일한 기만적인 권세를 행사할 것이다. …
그는 생명의 임금에 맞서서 마지막 싸움을 싸우도록, 그분의 보좌의 기초인 하나님의 율법을 전복시키기 위하여
그의 인간 하수인들로 구성된 군대를 확보하고 있다.
사단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주장하는 바로 그런 인물이 세상 임금 이며,
승리는 그의 것이라는 믿음을 백성들에게 확증시켜 주기 위하여 기적들을 행하면서 일할 것이다.
그는 그의 세력들에게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들을 공격하도륵 할 것이다.
사단이 고통, 비탄 그리고 인간적 고뇌를 유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혼을 더럽힐 수는 없다. …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치열한 투쟁에 들어갈 것을 예상해야 하는 바,
이는 예언의 말씀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서신 43, 1895)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 6:12).
하늘의 존엄자께서 지상봉사 사업을 하시는 동안 종종 열심히 기도하셨다.
흔히 그는 기도하시면서 온 밤을 보내셨다.
그가 이 세상의 어두움의 권세를 느꼈을 때에 그의 심령은 슬픔으로 가득 찼고
또한 그의 아버지와 더불어 교통하기 위한 한적한 장소를 찾기 위하여 바쁜 도시와 소란한 군중들을 떠나셨다.
감람산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시기를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무리들이 밤에는 쉬기 위하여 예수님을 떠나간 후에 그는 그날의 수고로 피곤하실지라도 쉬지 않으신 때가 많았다.
도시가 고요해지고 제자들은 잠을 잠으로써 새 힘을 얻고자 다 물러갔을 때에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날마다 직면하는 악한 감화에서 보호함을 받고 또한 자신의 심령이 다가오는 날의 의무와 시련을 위하여 힘을 얻고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감람산에서 그의 아버지께 거룩한 탄원의 기도를 드리셨다.
그의 수종자들이 자고 있는 동안 그들의 거룩한 교사께서는 밤새도록 기도하고 있었는데
이때에 밤이슬과 서리가 수그린 그의 머리 위에 내렸다.
그리스도의 모범은 그의 수종자들을 위하여 기록되어 남아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축복과 힘의 근원이셨다.
그는 병자를 고칠 수 있었고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었다.
그의 명령에는 비록 폭풍이라 할지라도 순종하였다.
그는 부패로 인하여 더럽힘을 받지 않았으며 죄를 알지 못하시는 분이셨다.
그러나 그는 그의 아버지에게서 도움과 후원이 요구되는 고민을 참으셨으며 종종 심한 울부짖음과 눈물로써 기도하셨다.(RH May 19, 1885)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슥 4:10
여호와의 전을 재건함에 있어서 스룹바벨은 수많은 난관에 직면하면서 일했다. …
그러나 주께서 건축자들을 위하여 개입하셨고 이제 그의 선지자를 통하여 스룹바벨에게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 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전 역사를 통하여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던 큰 난관의 산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들 앞에서 무너뜨려졌다.
주께서는 그러한 장애물들을 믿음의 시험물로써 허용하였다.
우리가 사면 팔방으로 장애물에 에워싸일 때 이때야말로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성려의 능력을 신뢰해야만 할 산 믿음의 활용은 영적인 일의 증가. 요동치 않는 신뢰감의 계발을 의미한다.
사단이 그리스도인의 길 앞에 높은 장애물들은 믿음의 명령 앞에선 사라지고 만다. …
세상의 길은 허풍과 자랑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길은 작은 일의 날을 진리와 의의 영광스러운 승리의 시작으로 만든다.
때때로 그는 그분의 일꾼들에게 실망과 명백한 실패를 허용함으로써 그들을 훈련시키신다.
그들이 그 난관들을 극복하기를 배우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그들의 앞을 가로 막는 번민과 장애물 앞에서 동요하도록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그들의 확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확고히 붙든다면 하나님께서는 길을 분명하게 밝혀주실 것이다. …
스룹바벨의 용맹한 정신과 요동치 않는 믿음 앞에서 난관의 큰 산들이 평지가 될 것이다. (선지 594, 595)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11)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영혼에게 올무가 되는 사람들을 멀리해야 한다.
그들의 도덕적 취향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그대가 향상시켜서 순결하고 거룩한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 수 없는 사람들과 접촉하더라도,
그대는 그들과 교제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체로 고집이 세고 드센 기질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원수의 공작을 받을 때, 그들은 영혼을 의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릇되고 위험한 길로 끌어들이는 일에 효율적인 하수인이 되어 버린다.
이 영혼들을 두르고 있는 도덕적 분위기는 악에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오로지 더럽히는 감화를 끼칠 뿐이다. (청년 지도자, 1892년 9월 29일자)
그대가 교제하는 사람들이 불완전하지 않거나 죄가 없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를 택할 때에는 가능한 한 표준을 높게 세워야 한다.
그대의 도덕적 기초는 그대가 택하는 친구들에 의해 측정된다.
그대는 본받기로 선택하지 않을 본을 보이는 사람들과 친밀한 우정의 관계를 형성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신앙과 그것이 실생활에 끼치는 감화를 크게 존중하는 사람들을 동료로 선택하라.
끊임없이 내세를 염두에 두라.
이런 교우 관계로 마음에서 이런 생각이 사라지게 만들지 말라.
허영심이 강하고, 부주의하고, 불경한 사람들과의 교제만큼 진지한 인상을 효과적으로 쫓아 버리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아무리 지적으로 위대하게 된다 하더라도, 신앙을 경박하게 대하거나 무관심하게 취급한다면,
그대는 그들을 친구로 택해서는 안 된다.
다른 면에서 그들의 태도가 매력적일수록, 그대는 동무로서 그들이 끼치는 감화를 두려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대를 불경건하고 신앙심 없는, 불경한 감화로 에워쌀 것이며,
그 감화에 많은 매력이 가세한다면, 그것은 도덕성을 지키는 일을 매우 위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서신 17, 1878년)
담대하게 다니엘 같은 사람이 되라.
담대하게 홀로 서라.
악한 동료들의 계획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들 앞에서 겁쟁이처럼 입을 다물고 침묵한다면 여러분은 그들과 한통속이 되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겠다는 용기를 가지라. (재림교 성경주석, 1155)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딤후 2:1
디모데에게 보낸 바울의 말 속에 나타난 교훈은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당부하기를 “강하라”고 했다.
그러면 자신의 지혜로써 강하라고 했던가?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고 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자기의 재간을 의뢰하거나 자신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또 종교 활동을 하는 중에 위축되어서는 안 되고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사업에서 무력해서도 안 된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무력함과 무능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믿는 신뢰심을 갖는다면
어떤 위급한 상태에라도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은혜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정병은 갖가지의 유혹을 필연코 만날 것이나
그 유혹을 싸워서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보다 강렬한 투쟁에는 보다 크신 은혜가 주어져서 영혼의 필요를 채울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맹렬한 투쟁과 쓰라린 경험을 통과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이다.
그러나 그 참된 그리스도인은 영혼의 원수를 성공적으로 물리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굳건해질 것이다.
어둠이 수시로 영혼을 짓누를 것이나 참 빛 곧 의의 태양에서 발해지는 빛줄기가 어둠을 물리칠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영감된 기별에서 전해들인 사실을 성실하게 증거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일군은 이웃에게 진리를 전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갖추어진 풍부한 준비들을 보다 분명히 볼 것이며,
투쟁과 슬픔과 시련의 때를 위해서 준비해 놓으신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좀 더 똑똑히 볼 것이다.
인간 대리자들의 불완전한 행함이 우리의 중재자 예수의 이름으로 받으신바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기이한 구속의 경륜을 따라 풍부한 은혜가 준비되어 있다.
인간은 미력한 힘 밖에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비록 최선을 다한다 할지라도 보잘 것 없는 일 밖에는 성취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당신의 도움이 필요 되는 일은 무슨 일이든 도와주실 것이다. (리뷰지 1896. 6. 16)
“그는 홍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 30
나는 우리들 가운데 실제적인 신앙이 결핍된 것을 볼 때에 매우 슬프다.
자아는 크게 드러나면서도 그리스도의 정신은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는 거룩한 빛으로 계몽을 받고 날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헌신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았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않으며 그분의 덕을 생애에 실천하지 않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기쁨과 고상함과 소망이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면
그것은 자존심과 교만을 위해 사용될 것이다.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심령 가운데 거하실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교훈이 실행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처럼 고상한 견해를 가지게 되므로 자신을 낮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애정은 예수님께 집중되고 우리의 사상은 하늘을 향하여 힘 있게 이끌림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흥하시고 나는 쇠할 것이다.
마음은 하늘의 사물을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아야 한다.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을 분별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스도의 탁월하신 품성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우리는 죄의 반역적인 성질을 보게 될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심령 가운데 예수님의 생애에 나타난 덕성을 계발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의 품성을 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갈바리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는 자아를 높이지 않게 될 것이고
자신의 무가치함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얼마나 큰 값이 치러졌는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마치 미덕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완전한 확신 가운데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저들은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껴야 한다.
바로 그것 때문에, 곧 자신의 죄악 때문에 저들은 회개하고 돌이켜 자신을 겸비케 하고 저들의 의가 되시는 구주께 나아올 필요를 느껴야 한다
(원고 21. 1889).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6:14)
법왕교도와 개신교도와 세속인들은…이 연합을 온 세계 교회의 큰 운동이라 하며 오래 기대한 복천 년의 전조라 할 것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588, 589)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0)
철학의 이론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공포를 털어버리고, 종교지도자들이 오랜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올 것을 가리키며,
세상 사람들이 심고 집짓고 잔치하고 연락하며 하나님의 경고를 거절하고
그분께서 보내신 사자들을 조롱하며 자신들의 사업과 향락에 몰두할 때에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결단코 피하지 못”(살전 5:3)할 것이다. (부조 104)
싯딤 골짜기의 주민들처럼 사람들은 번영과 평화의 꿈을 꾸고 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는 하나님의 천사들로부터의 경고가 있는 반면에
“침착하여라 경고를 받을 만한 까닭이 없다”고 하는 다른 소리들이 들린다.
하늘이 죄인들에게 임박한 멸망을 선포하는 동안에도 군중은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부르짖는다.
그들이 멸망당한 전날 밤에도 평야의 도시들의 주민들은 향락에 도취되어 하나님의 사자와 공포와 경고를 비웃었다.
그러나 그렇게 조롱하는 자들은 불꽃 속에서 멸망하였고 그날 밤에 자비의 문은 악하고 부주의한 소돔의 거민들에게 영원히 닫혀졌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경시를 당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 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할”(사 13:9)것이다.
세상의 큰 무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하고 신속하고 만회할 수 없는 멸망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고에 주의한 자들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고”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그들의 “방패와 손 방패”가 될 것이다. (부조 167)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막 10 : 19).
그토록 명백한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일반적으로 불법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천지간에 당신의 통치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율법을 거슬러 싸우는 대 반역에 오랫동안 가담하여 이 일에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싸울 때에 빛을 향해 눈이나 양심을 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계몽되지 않도록 저들의 눈을 감는다.
그들의 처지는 그리스도께서 저들에게 가져오신 빛을 보지 않으려 한 유대인들의 경우처럼 절망적이다.
주님이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그 누구도 행했거나 할 수 없던 일들을 행하시는 기적들을 통해서
당신이 메시야라는 놀라운 증거를 제시하셨건만,
그들의 마음은 녹아 내려 굴복하고 저들의 악한 편견을 정복하는 대신에
사단이 하늘에서 추방될 때 가졌던 것과 같은 사단의 증오와 분노로 채워졌다.
빛과 증거가 클수록 그들의 증오는 더욱 컸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죽임으로 빛을 소멸하기로 작정하였다.
우리의 사업은 우리의 믿음에 관한 이유를 듣고자 하는 갈망이
- 이전글우리가 기쁨으로 섬기며 증거해야 할 참 좋으신 하나님 13.09.10
- 다음글은혜스럽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시적인 유예기간을 주셨다 13.09.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