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회개가 있을 수 없으며, 또한 죄의 악한 요소를 분별할 수도 없다. > 엘렌의 글방

사이트 내 전체검색

엘렌의 글방

죄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회개가 있을 수 없으며, 또한 죄의 악한 요소를 분별할 수도 없다.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믿음과 행함

제 1 장
엘렌 화잇이 논제를 명확히 함

이 원고는 1890년 배틀크릭에서 개최되었던 목회자 수양회 때에 기록되어 원고 36으로 분류되었고,

1977년 2월 24일과 3월 3일자 리뷰 앤드 헤랄드지에 게재되었다. 

요긴하게 규명해 주는 이 설명은 연대순으로 배열된 다음의 18개의 주제들에 대한 서론으로서 적절하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믿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9-11). 


외관상 사람의 헌신과 경건과 성화의 부족은 우리의 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데서 온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계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한 계층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교리를 곡해하여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밝혀진 조건과 일치되기를 등한히 한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계명들을 믿고 순종하노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에게 새로운 빛,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비췬 귀중한 빛의 광선들과 반대되는 위치에 스스로를 두는 자들 측에도 충분하게 동일한 큰 오류가 있다.


먼저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모든 자들을 위한 놀라운 것들을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보지 못한다. 


나중 부류의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여 더 중한 것, 곧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등한히 한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 안에 있는 놀라운 것들을 분별하기 위해 이해의 눈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한편으로 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율법과 복음을 분리시켰고, 그런가 하면 우리 역시 다른 관점에서
거의 동일한 일을 해 왔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와 그분의 위대한 구속의 계획의 완전한 의미를 백성들 앞에서 지지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비할 데 없는 사랑을 무시해 버리고, 이론과 논리를 도입하여 논쟁적인 설교를 해 왔다.

개심하지 않은 자들이 ---위에 서서 ---해 왔다. 


그들의 마음은 살아있고, 매어달리고, 신뢰하는 믿음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감격의 증거를 결코 경험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모든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용서에 대해 설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십자가를 쳐다볼 때 그대는 십자가를 지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될 것이다. 


세상의 구속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세상의 구주를 바라보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희생을 쳐다보고 바라보는 자는 누구든지 마음이 녹아지고 깨어져서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 바치고자 하지 않겠는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이 요지(要旨)가 충분히 자리를 잡아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속주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그분을 통치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계명에 순종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확신하고 완전히 믿고 신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증거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 안에서 진정한 사슬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역사하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으로 역사한다. 


그대의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라. “주님, 나는 주님께서 나의 영혼을 구속하기 위해 돌아가신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생명을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실 정도로 영혼의 가치를 존중하셨다면 나는 거기에 응답하겠습니다. 

나의 생명과 그 모든 가능성을 바치고 나의 모든 연약함을 당신의 보호에 맡기는 바입니다.”

의지는 하나님의 뜻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일이 이루어질 때 마음과 정신의 밀실을 비추는 빛의 줄기가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을 것이다. 

영혼은 빛을 어둠이라고 부르고 어둠을 빛이라고 부르는 편견으로 가리워지지 않을 것이다. 

빛이 심령의 밀실들을 모두 채우게 될 때 하늘에서 오는 빛은 환영을 받는다. 

이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선율이 된다.

믿음과 불신
우리는 어느 정도 진심으로 믿고 있는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이것은 기도를 통해 주님과 함께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회의론으로 교육을 받아 불신을 간직해 왔고, 의심스런 의혹들이 그들의 경험 속에 스며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각성될 때, 그들은 자신의 불신을 고백하는 것이 마땅히 해야 할 개인적인 의무임을 깨닫는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보내진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열고 죄악에서 의로움에 이르고 의심에서 믿음에 이르는 길에 믿음으로 스스로를 던진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붙인 불꽃 대신에 그분의 빛을 따르기 위하여 거리낌없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다. 

그들이 자신의 헌신을 계속 유지할 때 그들은 증가된 빛을 보게 될 것이며 그 빛은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영혼 속에 자리잡은 불신은 매혹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뿌려온 의심의 씨앗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불신의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 

이들 독초가 뽑혀질 때, 그들은 자양분의 부족으로 말과 행동에 있어서 자라나지 못할 것이다. 

영혼은 믿음과 사랑의 귀중한 식물들을 마음의 토양에 심고 거기에서 간수해야 한다.


구원에 대한 잘못된 생각
세상에서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이 죄악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것은 양심의 순결을 희생시키고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하게 하고 그분에게서 영혼을 분리시키고 마침내 하늘 나라를 잃어버리게 한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는 죄와 그분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죄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영혼을 상실하는 대가를 지불하게 했다.

누가 우리의 구속주께서 당신의 생명을 희생하고 산 모든 인간의 감화력에 대한 책임감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심판의 자리가 마련되고 모든 영혼의 구원과 멸망을 확정하기 위해 책들이 펼쳐질 때에
나타날 광경이 어떠하겠는가? 


충성되고 의로운 자들에 대한 상급과 불순종한 자들과 불성실하고 불의한 자들에 대한 형벌을 최종적으로 내리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생활하셨고, 인간을 사랑하셨고, 인간을 위해 생명을 버리신 분의 과오없는 결정이 요구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모든 사람의 행동과 책임을 완전히 평가하도록 위임받으셨다. 

다른 사람들의 죄에 동참한 자들과 하나님의 결정에 반대하는 행동을 한 자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두렵고 엄숙한 장면이 될 것이다.

한 백성으로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대해 잘못된 사상들을 받아들일 때의 위험이 나에게 반복해서 제시되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사단이 이 관점에 대하여 마음을 혼란시키기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마치 가인의 제사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과 그분과의 관계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율법이 회중들에게 크게 강조되고 제시되어 왔다. 

나는, 구원에 대한 잡다하고 혼란한 사상들 때문에, 그리고 목사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접근하고자 활동해 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믿음으로부터 분리된 것을 보았다. 

수년 동안 나의 마음에 강조되어 온 요점은 그리스도의 입혀진 의이다. 

나는, 이 문제가 나에게 그처럼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던 때에 그것이 전국을 통하여 우리 교회에서 설교의 주제가 되지 않았음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내가 백성들에게 전한 모든 설교와 대화의 주제로 삼았다.
내가 15세에서 20세의 시기에 기록한 글들을 살펴보노라면, 동일한 빛 가운데서 그 문제가 제시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엄숙하고 신성한 목회 사업에 임하는 자들은 먼저 실제적인 경건의 산 원칙 안에서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에 대한 교훈을 통하여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은 무엇이 진지하고 산 믿음을 이루는지에 대하여 교육을 받아야 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속의 계획과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보냄을 받는다. 

사실상 그들이 회개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깨우침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들은 진정한 회개를 설명하는 주제를 더 한층 특별히 강조하기 위하여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침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회개하였다는 증거를 보여주어야 한다.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가장 좋은 선행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욱 열렬하게 강조하고, 보다 빈번하게 되풀이하고,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보다 확실하게 정립시켜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요점은 없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문제를 연구할 때, 경건의 비밀을 이해해야 할 사람들이 내세우는 주장이 얼마나 사소한 문제에 대한 것인지를 발견하고 우리는 마음이 아프다. 

들은 진리를 믿고 진리를 가르치노라고 공언하는 형제들의 진실한 사상을 너무도 경솔하게 말한다. 

그들은 나에게 드러난 바와 같이 진실과는 너무도 멀어져 있다. 

원수가 세속적인 것의 먼지와 안개로 그들의 마음을 너무도 엉클어지게 하였으므로 그것이 그들의 믿음과 성격의 한 부분이 된 그들의 이해력 속으로 스며든 것 같다. 


그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의 잘못된 사상을 포기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새로운 회개뿐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그렇게 되어야 할 것으로 내게 보여진 바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구명 기구에 매달리듯이 믿음의 난파를 면하기 위해 사소한 것들에 매달린다.

리스도께서는 “너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하도록 나에게 말씀을 주셨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논쟁의 정신을 버리고 전심으로 주님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들이 신앙 경험이 분별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은 설교할 때마다 회중 앞에 이 문제, 곧 진정한 경건의 단순함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소망과 믿음과 완전한 신뢰의 보증 속으로 들어가고자 갈망하는 주리고 목마른 모든 영혼들의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피조물의 공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일에나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어떤 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그 주제가 뚜렷하고 분명하게 밝혀주도록 하자. 


믿음과 행함으로 어떤 사람이 구원의 선물을 살 수 있다면 창조주는 피조물에 대하여 의무 아래 놓이게 된다. 

여기서 거짓이 진리로 받아들여질 기회가 주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하는 어떤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카톨릭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구원은 품삯처럼,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채무의 일부분이 된다. 


그러나 만일 자신의 선한 행위 중 어떤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면, 구원은 오로지 한 사람의 죄인으로서 그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기 때문에 받은 은혜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완전히 값없는 선물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선한 행실 안에 있는 타락한 인간의 공로로는 자신을 영생으로 이끌 수 없다는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이 모든 논쟁은 끝이 난다.

오로지 은혜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빛은 이 주요한 주제를 나의 마음 속에 있는 어떤 다른 문제보다 중요하게 여기게 한다. 

칭의는 오로지 은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떤 행위로도 얻을 수 없다. 

만일 부자가 돈과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들을 주님께 바친다면 그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공을 이루었다는 생각으로 그 헌물을 헛된 것으로 만드는 잘못된 사상이 들어오게 되고, 주님께서는 그 선물 때문에 특별한 호의로써 그를 돌봐주어야 할 책임을 지게 된다는 분명한 내용으로 그 문제가 내 앞에 제시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거의 분명하게 교육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요구하는 재물이 당신의 섭리가 알려주고 당신의 사업의 설립이 그것을 요구할 때에 당신께로 돌아올 것을 믿고 사람에게 당신 자신의 재물을 빌려 주셨다. 


주님께서는 지성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세속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건강과 재능을 주셨다. 

그분은 땅의 사물들을 창조하셨다. 그분은 그 모든 부(富)를 계발시키고자 당신의 거룩한 능력을 나타내신다. 

그것들은 그분 자신의 경작에서 나올 결실들이다. 그분은 태양과 구름과 빗방울을 주셔서 모든 식물을 번성하게 하신다.

그대는 하나님께 고용된 종으로서 경제적인 방법을 따라 그대에게 필요한 대로 사용하고 하나님의 요구와 균형을 이루기 위하여 그분의 수확물을 거두어 들였다. 

그대는 다윗처럼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공로로 만족이 이루어지면 주님의 소유를 그분께로 되돌려 드릴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주님께서 당신의 섭리를 따라 그분께서 지시하는 대로 사용되어야 할 그분 자신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상실된 하나님의 은총
반역과 배신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하였다. 

은총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안에서 주어지지 않으면 인간에게 아무런 가치를 지닐 수 없었으므로 하나님의 은총은 인간의 권리가 아니다. 

이 점이 이해되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업을 진척시키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고 그분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을 복되게 하는 데 사용하도록 맡겨준 보화, 곧 하나의 값없는 선물로서 자비하신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그 특권들을 상실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 하나님의 나라의 율법에 순종하기를 거절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그는 하나님의 정부에 불충하는 자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로 주신 모든 축복을 완전히 가치없게 만들었다.

이것이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스스로를 분리시킨 후의 인간의 위치였다. 

그 때부터 그는 공기를 호흡하거나 햇빛을 쪼이거나 한 조각의 음식을 먹을만한 더 이상의 자격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멸망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사랑하시므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선물로 주셔서 인간이 지은 범죄의 형벌을 그로 받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보증인과 대리자가 되고자 제안하시므로 

인간은 비할 데 없는 은혜를 통하여 또 하나의 다른 시험인 


두번째의 은혜의 기간, 곧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지 않도록 경고를 받음으로써 그들의 경험을 가져야 했다. 


사람이 햇빛의 선물과 식물(食物)의 선물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형유하는 한 그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인정하고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분에게로 되돌려지는 어떤 것이라도 그것을 주신 그분의 소유에 불과하다.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였다. 

그런데 구속주를 통하여 새롭고 선명한 약속들이 다른 기초 위에서 이루어졌다. 

모든 축복은 중보자를 통하여 와야 한다. 

이제 모든 인간 가족은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맡겨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이거나 간에, 그것이 금전의 선물이거나 가옥과 토지의 선물이거나 이성(異性)의 능력과 육체적 능력과 지적 능력이거나 간에,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성실하게 쓰여지도록 현실 생애와 미래의 생애의 축복 가운데서 하나님의 보화로서 우리의 소유로 주어진다. 


모든 선물은 십자가로 인쳐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상(像)과 표제(表題)를 지니게 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가장 작은 이득으로부터 가장 큰 축복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하나의 통로, 곧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었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닌 피로 뿌려진 초인간적 중재를 통하여 흘러온다.


이제 한 영혼도 이미 하나님의 것이 아닌 어떤 것을 그분께 드릴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이 사실을 명심하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유용성에 있어서, 사업에 있어서, 믿음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은,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의 손을 언제든지 얹으시고 이것들은 내 것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 곧 내가 그대들 자신을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세상을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내가 그대들에게 위탁한 선물과 축복과 기증물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사람들 앞에 제시해 주어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

창조는 하나님께 속한다. 

주님은 인간을 소홀히 함으로 그의 호흡을 멈추게 하실 수 있다. 

사람의 존재와 그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다. 

사람의 가옥들, 그리고 가치있는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간에 그의 개인적인 획득물은 하나님 자신의 기증물이다. 


사람의 마음을 계발시키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나님께로 돌려드리는 것도 모두 그분의 선물이다. 

가장 귀중한 헌물들이 하나님의 제단 위에 놓여질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분의 관대하심 때문에 바친 자를 찬양하고 높이고 칭송할 것이다. 


그런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영혼 속에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언제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들을 하게 하고,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하게 된다. 그는 언제나 그에게 요구된 의무를 행한 것에 불과하다.

결코 타락한 적이 없는 하늘의 천사들은 끊임없이 그분의 뜻을 행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에 대해 분주하게 자비의 일을 수행하는 중에 각 시대를 통하여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를 막론한 하나님의 인간 피조물을 보호하고 돌보고 인도하면서 “모든 것이 주의 것이며,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진실되게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눈으로 천사들의 봉사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인간의 상상력으로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천사들의 봉사와, 그들이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해 내고 승리하게 하고 사단의 올무로부터 그들을 끌어내기 위하여 치르는 투쟁을 깨닫고 깊이 생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우리의 행동과 신앙적인 정서가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피조물의 공로

피조물의 공로를 열렬하게 옹호하는 사람들 때문에 논쟁이 생기고 각 사람이 주도권을 잡기 위하여 노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언제나 원칙과 품성을 통하여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잘못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혼돈의 안개 속에 빠져 있다. 

그들은 불로 연단한 금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필요하며, 그리스도의 순결한 품성의 흰 옷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영생의 삯을 얻기 위하여 피조물들의 공로가 전혀 쓸데 없다는 것을 놀라움으로 식별할 수 있는 하늘의 안약이 필요하다. 

활동의 열성과 강렬한 애정, 높고 고상한 지력의 성취, 폭넓은 이해, 그리고 우리의 구속주의 발 아래 놓여진 가장 겸손한 자기 비하(自己卑下)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처음 주신 은혜와 재능보다 조금도 나은 것은 없다. 

정해진 의무 외에 더 주어질 수 없으므로 그들이 처음 받았던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향기로운 향의 연기로 위대하신 여호와 앞에 상달되어 향기로운 냄새로 가납되기 전에 세속적인 냄새로부터 정하게 되도록 그리스도의 의의 불 위에 놓여져야 한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사실 그대로 제시할 수 있을지 묻는 바이다. 


주 예수님은 역시 하나님의 선물인 산 믿음으로 인간이 당신의 의를 붙잡을 수 있도록 제시해 줌에 있어서 모든 능력과 모든 은혜와 모든 회개와 모든 성향과 모든 죄의 용서를 주신다. 

만일 그대가 사람에게 있는 선하고 거룩하고 고상하고 사랑스런 모든 것을 함께 모아서 그것들이 인간의 영혼의 구원이나 공로에 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천사들에게 제시한다면 그 제안은 반역으로 간주되어 배격당할 것이다. 


천사들은 그들의 창조주 앞에 서서 그분을 두르고 있는 비길 데 없는 영광을 바라보면서 창세 이후로 굴욕의 생애가 주어진 하나님의 어린 양이 죄 많은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시고, 멸시를 받으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셔야 했던 것을 보고 있다. 

어느 누가 그 무한한 희생을 측량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가난을 통하여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고자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어떤 업적도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의 위에 놓여진다는 이유에서만 나의 요구는 가납된다. 

용서의 은혜에 공로가 되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이다. 

“주님, 나의 손에는 가치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 뿐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

인간은 그에게 영광이 주어지는 칭찬받을 만한 어떤 공적을 이룰 수 없다. 

사람들은 인간을 영광스럽게 하고 인간을 높이는 습관에 빠져 있다. 

나는 그런 사실을 보거나 들을 때 전율하게 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사람들의 가정 생활과 마음의 내면 상태가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적지 않게 내게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락하고 불결하고 부도덕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모든 행위로부터 나오는 것은 그들을 하나님께로 전혀 이끌 수가 없다.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증하기 때문이다. 


죄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회개가 있을 수 없으며, 또한 죄의 악한 요소를 분별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인간의 시력으로는 결코 미칠 수 없는 예리한 지각을 가지고, 더러운 영향력과 불결한 심령과 손 때문에 방해를 받은 인간이 그들의 운명을 영원히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죄와 그 치료제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우리는 진리가 아닌 영혼의 회개에 관하여 전해진 것들을 너무 많이 듣는다. 

사람들은 회개가 하늘에 들어가는 길이요 문이라는 것과, 회개에는 그가 용서를 살 수 있는 어떤 보장된 대가가 있다는 것을 상상하면서 인간이 회개하면 용서를 받는다고 생각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사람이 스스로를 회개시킬 수 있는가? 더 이상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 

눈물과 탄식과 결심,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능력들의 적절한 작용과, 하나님의 소유로 되어 있는 삶을 개선하는 데 있어서 죄로부터의 방향 전환에 불과하다.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얻게 하고, 또한 하나님 앞에 값지고 훌륭한 무엇인가를 바치는 데 있어서 인간에게 있는 공로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돈과 집과 땅을 바침으로써 그대 자신을 가납될만한 대열에 둘 수 있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믿음에 공로를 둘 때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위험이 생긴다. 

그대가 그리스도의 의를 값없는 선물로 받아들일 때 그대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값없이 의로워진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그것은 지각을 주신 하나님, 마음을 감동시키신 하나님,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도록 제일 먼저 마음을 끌어주신 하나님께 즐겨 헌신하고 봉사하도록 마음을 묶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동의이다. 


믿음은 지적 능력을 하나님께 바치고 마음과 의지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리스도를 하늘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으로 삼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행함의 공로로 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배우고, 그들의 유일한 소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확고하고 완전한 신뢰로 바라볼 때 자아는 매우 작아지고 예수님은 매우 크게 될 것이다. 


영혼과 육신이 죄로 얼룩지고 더럽혀져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선한 행위로 구원을 얻고자 스스로의 제한된 힘으로 투쟁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구원의 어떤 부분을 담당해 주실 것이므로 그들이 나머지 부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현실과 영원을 위한 유일한 소망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사역과 인간의 사역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재능과 능력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일하시며 그분이 인간에게 나누어 주신 재능과 함께 협력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사업을 함으로써 승리자가 되어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인간에게 수행할 능력을 주신 사업을 하시겠다고 제안하지 않으신다. 

인간이 행할 부분은 인간이 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동역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온유와 그분의 겸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