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심, 악의, 악한 생각, 악한 말, 탐심... 반드시 버려야 할 무거운 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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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 22:2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우리의 믿음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하는 말씀으로 입증될 것이다.
실망이 닥쳐올 것은 뻔 한 이치이며 우리는 분란도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크든 작든 하나님께 모든 것들을 맡겨야 한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근심 걱정이 엄청나게 많아도 당황하지 않으시며 우리의 짐이 무거워서 감당 못할 만큼 무거워도 당황할 분이 아니시다.
그분의 보살피심은 모든 가정에 두루 미치고 각 사람을 부요하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와 슬픔을 상관하고 계신다.
눈물 한 방울까지 표시해 두시고 우리의 우유부단한 감정도 어루만져 주신다.
우리에게 허락되는 환난과 시련은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목적을 성취하심으로써
우리를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시키고,
그리하여 그분의 존전에서 찾을 수 있는 완전한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성경은 아주 강경한 어조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시는 일의 중대함을 우리 앞에 제시한다.
베드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 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라고 명하신다.
그리고 영감의 사도는 거룩함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주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선언했다.
거룩함은 하나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고, 그분의 형상을 닮을 수 있겠는가! (5증언, 742-744)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2, 33)
우리는 동일한 슬픔의 잔을 마셨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기쁨과 안식과 화평이 섞여 있었다.
그는 만사를 훌륭하게 행하시는 바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인간들을 고의적으로 괴롭히거나 슬프게 하시지 않으신다.…
이 세상사는 시련과 근심과 슬픔의 장면이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시험을 견디어야만 한다.
우리의 모든 더러운 것이 타버리고 고난의 풀무에서 우리가 정화된 순금으로 나올 때까지 풀무의 불은 켜 있어야만 한다.
때때로 그대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흑암에서 빛이 나올 것이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 1:21)
이것이 그대의 마음의 언어가 되게 하라.
자비의 구름은 가장 어두운 시간에서까지라도 그대 머리 위에 배회하고 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메마른 땅을 적시고 그것에 생기를 주기 위하여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무수하다.
하나님의 자비는 그대 위에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대의 눈이 열려질 수만 있다면 그대는 하늘 아버지께서 그대를 향하여 사랑으로 허리를 굽히고 계신 것을 볼 것이다.
또한 그대가 그의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고통과 고난으로 부복한 그대에게 동정의 음성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써 굳세게 서라. 그리하면 그대를 위한 안식이 있다.(Letter 71, 1878)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잠 2:10, 11
이스라엘의 시대에서처럼 지금도, 모든 청년들은 실제 생활의 의무들에 대하여 배워야 한다.
각자는 어떤 분야의 수공에 대한 지식을 얻어야 할 것이며, 만일 필요한 경우에는 이것으로 저희 생계를 꾸려 갈 수 있다.
이것은 생활의 변동에 대한 보호뿐 아니라 육체적, 지적, 도덕적 발전 면에도 필요하다.
생계 유지를 위해 수공에 의지해야 할 필요가 없는 자들까지도, 일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육체적 노동 없이는 건전한 신체 조직과 원기 왕성한 건강을 소유할 수 없다.
규칙적인 노동으로 단련하는 것은 강하고 활동적인 지력과 고상한 품성을 얻는 데 필요하다. …
청년들로 저희를 창조하신 목적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저희 이웃에게 축복이 되게 하신 목적을 깨닫게 하고,
그들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신 부드러운 사랑과 현세의 훈련으로 그들을 준비시키야 할 높은 운명
즉 저희를 불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그 운명과 명예를 알게 하라.
그리하면, 무수한 청년들이 수치와 염오로써 저희가 이제까지 열중하던 저열하고 이기적인 목적과 천박한 향락에서 돌아설 것이다.
그들은 다만 상급에 대한 희망이나 형벌의 공포심에서가 아니라
죄의 근본이 비열한 것을 느끼고,
죄를 미워하고 죄를 피하기를 배울 것이니,
이는 죄가 그들의 천부의 능력을 부패시키고
인격에 오점을 찍기 때문이다. …
사람들 중에서 성공하고 명예를 얻을 수 있게 하는 품성의 요소
곧 보다 큰 행복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욕망, 불굴의 의지, 열렬한 노력, 끈기 있는 인내 등을 깨뜨려 버리지 말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다만 이기적이요 일시적인 이익보다 훨씬 더 높은 사물, 마치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높은 사물로 향하여야 한다.
현세에서 시작된 교육은 내세에까지 계속할 것이다. -부조와 선지자, 601, 602.
"빌라도가 애수를 눌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요 19:12)
헤롯은 그의 악마적인 일을 마친 후에 판결을 언도하지 않은 채 그리스도를 빌라도에게 돌려 보냈다.
빌라도는 진리에 대하여 확신을 가졌고 그것을 깨달았지만, 그것에 굴복하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빌라도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에 관하여 그의 확신을 받아들이라는, 보이지 않는 영향을 받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의 흔들리는 마음은 그리스도께서는 참칭하는 분이 아니시며,
그분의 말씀이나 행동 가운데 조금의 기만도 찾을 수 없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
악마적인 광포한 무리들 앞에서, 그는 십자가 대신에 매를 때리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결연한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매질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십자가 형벌에 미치지 못하는 그 어떤 것에도 동의하려 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단의 통제 아래 있을 때 오늘날 인간 본성의 모습이다. …
그리스도를 정죄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관원들은 상관하지 않고 군중들의 인간적 측면의 동정에 호소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제사장들과 관원으로부터는 이런 방면에서의 어떤 기대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리스도에게서 아무런 죄도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선언하는 짧은 연설을 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고소하는 증언들에 신빙성이 없다는 헤롯의 증언을 확증하였다. 그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
빌라도는 빛과 압도적인 증거와 확신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그들이 바라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음을 보았다
빌라도는 그의 편에 증거와 공의를 가지고 있었으며, 만일 그가 그리스도의 무죄를 주장하는 편에 굳건히 섰다면,
그는 시기하고 종교를 공언하는 백성들의 가공할 만한 증오심과 적의에 자신의 순진무구함을 팔아버림으로써
후일의 후회와 절망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매질을 당하셨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한 기별이 빌라도에게 그가 막 행하려는 그 행동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
빌라도가 그 죄수를 심리하는 동안 그의 아내는 하늘로부터 온 한 천사의 방문을 받아,
밤의 이상 가운데서 예수님을 보았고 그분과 대화하였다. …
그녀는 빌라도의 정죄를 듣고 그가 그리스도를 그분을 죽이는 자들에게 넘겨주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공포의 외침과 함께 깨어났다.
펜과 종이를 청하여 그녀는 그에게 경고의 말을 썼다.
이제, 빌라도가 진퇴양난에 빠져 있을 때에 한 기별자가 그에게로 나아와 그의 아내가 보낸 기별을 전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원고 112, 1897)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단 9:3, 4)
기도와 자백에 대한 다니엘의 모범은 우리의 교훈과 용기를 위하여 주어졌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포로를 위한 지정된 기간이 거의 끝나감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리라 약속한 까닭에 그들이 행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지 않았다.
금식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그는 자신의 죄와 백성의 죄를 자복하는 가운데 주님께 간구하였다.…
다니엘은 자신의 선을 근거로 하여 간구하지 않고
도리어 그는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단 9:18)라고 말하였다.
그의 간절한 욕망은 자신을 열성 있고 열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계속해서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고 말하였다.…
다니엘의 입술에서 나온 기도야말로 얼마나 훌륭한가.
그것은 심령의 겸비함을 얼마나 훌륭히 나타냈는가.
하늘 불의 따뜻함이 하나님께 올라가는 그 말씀 가운데서 인식되었다.
하늘은 그 기도에 응하여 다니엘에게 하늘의 사자를 보내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드려진 기도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승리할 것이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 5:16) (RH Feb. 9, 189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눅 1:17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인간에게 맡기신 사업 중 가장 위대한 사업을 이 사가랴의 아들에게 맡기시기 위하여 부르신 것이었다. …
요한은 여호와의 사자로 나가서 사람들을 하나님의 빛으로 이끌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사상을 새 방향으로 이끌어야 했다.
그는 저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의 신성성을 인식하게 하고 하나님의 완전한 의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해야 했다. …
그는 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건전한 체력과 건전한 정신력과 영적 능력을 가져야만 했다.
그러므로 그는 식욕과 정욕을 지배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능히 자기의 모든 능력들을 지배할 수 있어서 광야의 바위나 산들처럼 주위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사람들 가운데 설 수 있어야 했다.
침례 요한의 시대에는 재물에 대한 탐욕과 사치와 외양을 사랑함이 널리 유행하였다.
관능적인 쾌락, 먹고 마시는 잔치가 육체적 질병과 퇴폐를 일으키고 영적 통찰력을 흐리게 하고 죄에 대한 감각을 감소하게 하였다. …
그는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하여 길을 준비함으로 주의 재림을 위하여 백성을 준비시킬 자들의 한 상징이 되었다.
세상은 방종에 빠져있다.
오류와 우화가 많으며 영혼을 멸망시키기 위한 사단의 올무는 증가되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고자 하는 자는 절제와 자제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
이 자기 수양은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실행할 수 있게 하는 정신력과 영적 통찰력을 얻게 하는데 불가결한 것이다.
(1 소망 115, 116)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단 1:8)
영감은 뒤이은 모든 시대의 청년들을 위한 빛나는 모본으로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의 역사를 기록했다.…
그들의 능력들을 하나님의 사업을 하기 위해 손상됨 없이 보존하려는 사람들은
온갖 해롭고 저하시키는 탐닉들을 철저하게 삼갈 뿐 아니라
그분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엄격한 절제를 준수해야 한다.
청년들은 식욕을 자극하는 유인물들에 에워싸여 있다.…
다니엘처럼 자신을 더럽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절제의 습관이 주는 보답을 받게 될 것이다.
신체적 스테미나와 지구력이 더욱 증강되어 그들은 비상시 끌어다 쓸 저장고를 갖고 있다.
바른 신체적 습관은 정신적 우월성을 육성한다.
지력과 체력과 장수는 불변의 법칙에 좌우된다.
이 문제와 관하여는 어떤 우연도 없다.
자연 법칙을 위반한 결과에서 사람을 보존하기 위해 더 높은 힘이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문 시조, 1882년 3월 2일자)
모든 청년들이 물어야 할 질문은…내가 내 성벽의 충고를 받아들여 내 식욕을 방종할 것인가,
아니면 양심의 명령을 따라 신체를 연약하게 만들 모든 행습을 삼가므로 그것을 보존할 것인가?
내가 세상의 관습들의 먹이로 전락할 것인가…아니면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온갖 관습들과 단절할 것인가?
세상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을 것인가?…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은 원칙에 걸려 있다는 것과, 유혹자와 타협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반사된 빛과 진리가 사람이 수여할 수 있는 어떤 영예보다 더 귀중하였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바벨론 왕국의 유대 청년들처럼 확고하고 진실하며, 겸손하고 성공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영예롭게 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일에 다니엘이 취했던 길을 택하는 모든 청년들 또한 영예롭게 하실 것이다.
(청년 지도자, 1894년 10월 25일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1, 2
시기심, 악의, 악한 생각, 악한 말, 탐심-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불멸의 생명을 위한 경주를 성공적으로 달리고자 하면
반드시 버려야 할 무거운 짐들이다.
죄악으로 인도하고 그리스도께 욕을 돌리는 모든 습관이나 행위는 어떠한 희생을 하고라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영원한 의의 원칙들을 범하는 어떠한 사람에게도 하늘의 축복이 따를 수 없다.
고대 경기에서 경쟁자들은 극기와 엄격한 훈련에 몰입한 후에도 승리자가 보장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경주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할지라도 한 사람 밖에 상을 받을 수 없다.
한 손만이 탐내던 면류관을 잡을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상을 얻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나
저희가 그것을 얻으려고 손을 내밀 순간 그들 앞에서 타인이 탐하던 보물을 붙잡기도 하였다.
그리스도인이 싸우는 경우는 이와 같지는 아니하다.
조건을 갖춘 자는 한 사람도 경기가 끝날 때에 실망하지 아니할 것이다.
열렬하고 끈기 있는 자들은 아무도 성공하지 못할 자가 없을 것이다.
경기는 빠른 자의 것이 아니요, 싸움은 강한 자의 것이 아니다.
가장 강한 자처럼 가장 연약한 성도도 불멸의 영광의 면류관을 쓸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통하여 그들의 생애를 그리스도의 뜻에 일치하게 하는 자들은 모두 승리할 것이다. …
모든 행위는 생애의 승리나 패배를 결정하는 저울에 그 무게를 갖다 놓는다.
그리고 승리자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그것들로 저희가 노력한 힘과 열심에 비례할 것이다.
바울은 악에 대한 그의 투쟁은 생명이 지속하는 한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세속적 욕망이 영적 열심을 이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자신을 항상 엄격히 경계해야 할 필요를 깨달았다.
그는 전력을 다하여 타고난 성벽과 싸우기를 계속하였다.
그는 언제나 그의 앞에 도달하여야 할 이상을 간직하였고 하나님의 율법을 즐겨 순종함으로 그 이상에 도달하고자 노력했다. (행적 312-315)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으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일 3: 14
나는 우리가 우리들 상호간의 관계에 대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단호하게 제시해 주는 바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생각을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시키고자 하는 이기심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심지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필요에 대해서는 깨닫거나 생각하지도 않고
저들의 생각을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시키는 많은 실례들을 볼 때에 종종 괴로움을 받는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거대한 피륙 안에서 모든 공동생활을 통하여 서로 서로 연결되어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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