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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여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라 하리라.”(슥 13:9)


주님께서는 시련으로 그의 자녀들의 힘을 시험해 보신다. 


마음은 견딜 만큼 튼튼한가. 


양심은 거리낌이 없는가. 


성령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정신을 증거하는가.


이와 같은 것을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시험해보심으로 확인하신다. 


그는 또한 고난의 풀무로 모든 더러운 점으로부터 우리를 정화시키신다. 


그는 우리들에게 시련들을 보내시는 바 이는 우리에게 필요 없는 고통을 가하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바라보게 하고 우리의 인내를 견고하게 하며 

또한 우리가 반역하지 않고 주님을 의뢰하기만 한다면 주님의 구원을 볼 수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함이시다.…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부드러운 것만큼 강하다. 

그것은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보다도 더욱 참된 사랑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변할 수 있으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바울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 39)고 하였다.

모든 시련에 있어서 우리는 강한 위로를 받고 있다. 


구주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지 않으셨는가. 


그는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시지 않으셨는가. 


그는 모든 시험과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것을 당신께 가져가라고 초청하시지 않으시는가. 


우리는 내일의 무거운 짐에 대하여 우리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지 말라. 


용감하고 명랑하게 오늘의 짐을 짊어지자.(ST Nov. 5, 1902)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시 92:12)


 열대의 태양 광선을 피해 몸을 숨길 수 있는 곳도 없는 사막의 뜨거운 모래 위를 기를 쓰며 걸어가고 있는 기진맥진한 나그네를 보라. 

물은 떨어지고 그에게는 타는 목마름을 풀어줄 어떤 것도 없다.

혀가 굳고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린다. 

죽을 때가 다가왔다는 생각과 함께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갑자기 그의 눈에는 황량한 모래벌판 위로 솟아오르는 푸른 잎이 무성한 야자나무 한 그루가 비친다. 

그는 희망으로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앞으로 나아간다. 

야자수의 생장력과 신선함은 자신의 뜨거운 피를 식혀주고 생명을 소생시켜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신이 가물가물한 나그네에게 이정표가 되고 위안이 되는 사막의 야자수처럼,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사막에서 곧 죽어갈 것이라는 불안에 휩싸여 있는 영혼을 생명수로 이끌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또 모든 사람을 초청하시는 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숨겨진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영원한 생명이 솟아 나오는 샘물이시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야자수 나무 뿌리와 같은 것이다.

그 뿌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 아래로 뚫고 들어가서 생명의 샘에서 생명을 취한다.

그리고 세상은 온통 부패로 뒤덮여 있으나 그는 하나님께 참되고 충성스럽다. 

그리스도의 의의 아름다운 감화력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그의 감화력은 향상되고 복되다. 

가장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예수님의 제자일지라도 남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심결에 그들의 감화력이 작용해서 축복의 물결이 생기고 그 물결은 깊어지고 커진다. 


그리고 최후의 상급을 받는 날이 이르도록 그들은 그 복된 결과를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염려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고 충실히 노력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은 점점 더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다. (ST, 1902, 8. 6.)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딛 3:2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 유용하고 추앙받는 일꾼들이 

인간의 가장 비천한 신분으로서 초라한 일상 업무들을 수행해 나가는 가운데 훈련을 받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 


모세는 애굽의 유망한 통치자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애굽의 궁정에서 취하시어 그에게 지명된 일을 하게 하실 수가 없으셨다.

40년간을 신실한 목자로서 지낸 후에야 비로소, 그는 자기 백성의 구원자로 보냄을 받게 되었다. 


기드온은 타작마당에서 이끌어 냄을 받아, 이스라엘 군사들을 구원할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다. 


엘리사는 밭고랑을 떠나 하나님의 분부를 이행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기별을 주셨을 때, 그는 밭을 가는 농부일 뿐이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자들은 모두 많은 수고를 치러야 할 것이다. 


또, 그들의 받을 교훈의 공과는 지혜 있게 선택되어야 하며, 그 개성과 사업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신중히 젊은이들을 다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 차례 나에게 제시해 주셨다. 


곧, 인간의 지성을 다루는 일은 가장 섬세한 분별력이 필요한 것이다. 


젊은이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모두, 위대하신 교사와 밀접히 생활하며 그분의 정신과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 계급의식이나 자신을 찬양하는 경향을 띤, 몰인정한 비판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예수님의 종교는 결코 인간을 격하시키거나 거칠고 비겁하게 만들지 않는다. 


또,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버려 구원하신 자들에 대해 냉정하게 대하는 태도를 취하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냉정한 비판을 조장하는 일 곧 허물을 꼬치꼬치 캐내려는 성격은 그릇된 일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에 위배되는 불신과 의심을 조장하며, 그 마음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


이런 종류의 일에 힘쓰는 자들은 참 그리스도교의 정신으로부터 서서히 떠나가게 된다. -복음 교역자, 332~334.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 도다 …” (요 11:50)


유대의 대제사장직은 가야바로 끝났다. 

이 거만하고 위압적이고 사악한 사람은 대제사장의 의복을 입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는 그 일을 할 능력이나 권세를 하늘로부터 받지 못했다. … 

사실상, 가야바는 대제사장이 아니었다. 


그는 제사장의 의복을 입고 있었지만, 하나님과 어떤 살아 있는 연결도 맺고 있지 않았다. …

그리스도에 대한 모의 재판은 그 제사장직이 얼마나 비열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제사장들은 예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하여 맹세하여서 거짓 증언을 할 사람들을 고용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실상 그리스도께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 

그분을 쳐서 말한 증언들이 거짓이며, 

그 증인들이 가장 저열한 타락성의 요소들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고용되었다는 것이 그렇게 하여 드러났다. 


예수를 넘겨준 그 사람들이 그분의 무죄성에 대한 증언을 듣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고 빌라도는 단언하였다. 

그리고 유다는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얻은 그 돈을 제사장들의 발 앞에 던지면서,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라고 증언하였다.

이전에, 그리스도를 매복하여 붙잡아 사형에 처할 계획을 수립하기 위하여 열린 산헤드린 회의에서 가야바는,

온 세상이 저를 좇는 것을 너희들은 볼 수 없느냐고 말했다. 


다른 의원들에게 그리스도께 대한 그들의 격정과 적대감을 억제할 것을 호소하는 몇몇 공회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그분을 사형에 처해지는데서 건지기를 원했다. 

그들에 대한 대답으로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그는 ‘타락한 제사장직’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 도다”라고 말했다.

이 말들은 그 의미를 알지도 못한 한 사람에 의해 발해졌다. 

가야바는 자신의 죽음으로 예표와 그림자들의 필요성을 끝장내시고, 드려지는 모든 희생 제물마다에 죽음이 예표되었던 그분을 정죄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말은 그나 혹은 그와 결탁했던 자들이 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 말들로 그는 아론의 제사장직이 영원히 그쳐질 때가 왔다는 증언을 하였다. …


가야바는 참된 대제사장께서 직무를 수행하러 오실 때에

예표와 그림자가 그 실체를 만나게 되어 있었던 바로 그 직무를 수행하러 오실 때에

예표와 그림자가 그 실체를 만나게 되어 있었던 바로 그 직분에 있게 될 사람이었다. … 


의롭든지 불의하든지 온갖 품성의 사람들은 그들의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형성해온 품성을 가지고 역사를 성취하는 데 있어서 그들 각자의 역할을 행할 것이다. (원고 101, 1897)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가기까지 피하리이다” (시 57:1).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그처럼 자주 실망을 주는 인간의 동정과 인간의 도움에 너무나 두텁게 신뢰하는 것에 대하여 나는 매우 섭섭함을 느낀다. 


그러나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그는 오늘이나 어제나 영원토록 똑같이 친절하시고 부드럽고 동정적이고 사랑스러운 구주이시다



사단은 지금 온 힘을 다해 일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있는바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많은 경험을 가진 자들도 실수하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흠이 없으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라.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며 믿음 가운데서 기도하라. 


그 다음 그대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신뢰하라. 


그는 그 날을 위하여 당신께 위탁된 것을 지키실 것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겸손히 행하라 


주님께서는 인간의 심령을 둘러싸는 모든 슬픔과 모든 근심과 모든 시련을 아시며 어떻게 치료해야 할 것을 아신다.…


그대는 하나님 안에서 용감하게 행할 수 있다. 


기도로써 다음의 말을 주님께 말하며 또한 길 가면서 주님께 이야기 하라. 


“내가 당신을 찾으며 당신을 따르리이다. 또한 당신을 섬기리이다. 


내가 당신의 날개 그늘 아래 거하리이다. 


당신의 뜻대로 나를 명하소서” 


언제나 하늘의 지도하심에 복종하라. 


시련이 이를 때에 그대의 심령에 인내심을 가지라. 


주를 앙망하며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서 그대의 성실함을 굳게 붙잡는 중에 

그대와 관련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유익이 임하도록 구하기 위하여 한 목적을 가지라. 


그는 그의 허락을 이행하실 것이다.(RH Dec. 20, 1881)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느 6:3


느헤미야는 주님과 협력하고자 자원하였으므로 하나님께 선택되었다. …

그는 그릇된 우너리가 시행되는 걸 보았을 때 수수방관하고 서서 침묵함으로써 거기에 동조하지 않았다. …

그는 의를 위하여 확고하게 섰다. (3 주석 1135)

하나님의 종들이 사단의 대리자와 동맹하도록 유혹하기 위하여 어둠의 왕자는 제안할 수 있는 모든 술책을 다 사용할 것이다. …


느헤미야처럼 그들은 확고하게 대답해야 한다. “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예루살렘 성벽 건축자들처럼 그들은 위험이나 조롱 때문에 그들의 역사를 떠나기를 거부해야만 한다. …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옴에 따라 사단의 유혹은 하나님의 일군들에게 더 큰 힘을 가할 것이다. 

그는 성벽 건축자들을 조롱하고 능욕하려고 인간 대리자들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 원수의 공격을 대항하려고 건축자들이 내려간다면 이것은 사업을 지체 시킬 뿐이다. …


무관심한 영혼은 쉽사리 유혹의 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생애에 고상한 목적과 높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악이 발붙일 곳이 거의 없다. …

인간의 능력으로 대처할 수 없는 모든 긴급 사태를 위하여 하나님은 도울 준비를 갖추고 계시다. 


그는 모든 험한 길에서 우리를 돕고, 우리의 희망과 보장을 강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에 빛을 비취주고 우리의 심령을 정결케 해주기 위하여 성령을 주신다. 


만일 그 백성이 그분의 섭리의 암시를 주목해서 살피고 

그분과 협력하려고 준비한다면 그들은 놀라운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선지 659, 660)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랑을 멸하시리라”(고전 3:17)


천연계의 법칙들을 무시한다면 품성의 완전을 달성할 수 없다. 


그런 행위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범법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율법은 모든 신경과 근육과 우리 존재의 모든 섬유질에, 사람에게 위탁된 모든 기능에 기록되었다. 


이 선물은 오용되고 타락시키는 일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류를 향상시키는 일에 그분께 존귀와 영광이 되도록 사용하라고 주어졌다.…

마음과 몸 사이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어느 하나가 영향을 받으면 다른 하나도 항상 다소간은 영향을 받는다. 


죄 되고 건강을 해치는 습관의 세력에 매어있는 동안에는 거룩한 진리들을 깨달을 수 없다. 


지성이 흐려지면 도덕적 능력들이 약해지며, 죄는 죄되게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의 매우 고상하게 만드는 주제,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주제들이 한낱 한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렇게 되면 사단은 심령 속에 뿌려진 좋은 씨앗을 쉽게 낚아 채 갈 수 있다. 


이는 그 영혼이 전혀 그것의 참된 가치를 이해할 상태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기적이고 건강을 파괴시키는 방종이 

하나님의 저 큰 날을 위해 한 무리의 백성을 준비시키게 되어 있는 그 기별의 영향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 세상 역사의 대단히 엄숙하고 두려운 순간에 살고 있다. 

신체적 법칙을 범하여 부주의한 자기 저하의 생애를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우리 앞에 박두한 저 큰 시련의 날에 서지 못할 것이다. 

신체에 대하여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그것을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두려운 셈이 있다.…


참된 종교와 건강의 법칙은 병행한다. (리뷰 앤드 헤랄드, 1901년 11월 12일자)

어떤 상황에서도, 편리하다고 해서 가장 엄격한 성실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하게 된다면, 

양심이 강퍅하게 될 뿐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도덕적 의무를 범할 길이 마련된다. 


우리의 최대의 현세적 관심사인 신체의 건강을 바르게 취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유혹에 넘어가고 더 높은 요구 사항들을 범할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서신 29a, 1875)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6


겸손으로 옷 입는다는 것은 

우리가 지식이 불완전하고, 포부가 미약하고, 우리 생애에 있어서 비겁하고, 

그 일에 성공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참된 겸손은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원하시는 자를 통하여 역사하신다. 

어떤 때는 그는 위대한 사업을 행하시기 위하여 가장 미약한 그릇을 택하신다. 


는 당신의 능력은 약한 사람을 통하여 나타나는 까닭이다. 

우리는 우리의 표준에 따라 갑은 크고 을은 작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표준을 따라 판단하시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크게 보이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에게도 크게 보이고 우리에게 작게 보이는 것이 하나님에게도 작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물 379)


자신을 보좌에 앉히는 곳에는 신앙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을 자랑하는 일로 자기의 목적을 삼는 자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행함에 충분한 일군이 되게 하는데 있어서 유일한 미덕이 결핍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자만심과 자부심을 품는 때마다 사업은 훼손을 받는다.

자기의 개인 생애에, 날마다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일에,

진실된 목적과 순결한 사상을 갖는 일에, 어떤 불쾌한 일에 있어서도 온유함을 유지하는 일에, 

믿음과 경건에, 작은 일에 신실함에, 또 가정 생애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

이러한 자가 하나님 앞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교사나 순교자보다 오히려 더욱 귀한 자가 될 수 있다.

성공의 비결은 우리의 지식이나 지위에 있지 아니하고 또 우리의 인원수나 우리의 재간이나 사람의 뜻에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는 가운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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