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난 극기 시련 없이 승리를 얻고자 기대하지 말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승리하시는데 있어서 고난을 당하셨다.
페이지 정보
본문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증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 13)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시련을 보내시는 것은 목적이 없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들이 처음에서 끝을 볼 수 있고 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의 동역자로서 성취시키고 있는 목적의 영광을 볼 수만 있다면
그들이 인도받기를 선택할 그 길 외에는 결코 다른 길로 그들을 인도하시지 않으심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보석들이다.
그들은 그의 사랑의 빛을 비치는 가운데 당신을 위하여 밝게 비쳐야만 한다.
그들의 광채는 그들이 받는 닦는 일에 달려 있다.
그들은 닦임을 받도록 선택할 수도 있고 또는 닦임을 받지 않은 채 남아 있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의 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가치가 있다고 선포를 받은 모든 자들은 닦는 과정에 굴복해야만 한다.
주께서 주시는 닦임이 없이는 그들은 보통 자갈보다도 더 빛을 반사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에게
“너희는 나의 소유이다.
내가 너를 샀노라.
지금 너는 하나의 거친 돌에 불과하다.
그대가 내 손 안에 네 자신을 둔다면 내가 너를 닦을 것이며 그리하여 네가 비출 그 빛은 내 이름에 영광을 가져오리라.
아무도 너를 내 손에서 뽑아낼 수 없다.
나는 너를 내 특별한 보물로 삼으리라.
나의 대관식 날에 내 기쁨의 면류관에 있어서 하나의 보석이 되리라 하신다.”
거룩하신 일꾼께서는 가치 없는 물건에 거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그는 귀중한 보석만을 궁전의 식양을 따라 닦으시며 모든 거친 가장자리를 잘라버리신다.(RH, 1912. 3. 7)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위 말씀에 의하면 믿을 무엇이 있고 고백할 무엇이 있는 것이다.
먼저 마음이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참된 종교의 기초이다.
그럴 때 죄가 있음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죄로 인하여 병든 영혼은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용서를 구하러 나사렛 예수께로 나아간다.
그는 원수와의 싸움을 피하지 않고, 유혹을 물리칠 힘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바라본다.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한다.
그에게 성경의 진리는 새롭게 보이며, 그의 관심을 끄는 빛이 아주 강렬하게 진리를 비춘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그에게 진리의 엄중함을 드러내 보인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공부하고 구주의 품성이 흠없이 순결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면 될수록 자신의 선함에 대한 믿음은 점점 작아진다.
예수님을 끊임없이 가까이서 바라보면 볼수록 자신 안에서의 완전함은 발견하기가 점점 힘들게 될 것이다.
자기의 의로움은 사라지고 반석이신 그리스도 예수 위에 떨어져 형편없이 깨어진다.
그는 자신의 성질 때문에 심한 압박을 받고 때로는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고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받아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붙잡고 그분의 분명한 약속에 호소할 것 같으면
그는 어둠을 뚫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찬란한 햇빛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만약, 마음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의 보물고가 된다면 그것은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이들은 시험을 받는다.
그러므로 거룩한 자비가 필요하고 신실한 종교적 믿음과 원칙이 필요하다.
입술은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입에서 나온 말은 적어야 하고 잘 선택되어야 한다.
성경에서 찾은 귀중한 약속으로 마음을 채워라.
사단이 홍수처럼 그대를 엄습할 때
“기록되었으되”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기를 삼아 사단의 유혹을 대항하라.
이 말씀은 사단의 세력을 깨고 그대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다. (HS, 129, 130)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벧전 2:4, 5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이 수년에 걸친 온갖 쓰레기로부터 정결하게 될 때, 하나님의 이름은 그대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 인간 대리자들을 지배하실 때, 어떤 부정한 사업도 실행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일하는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는 정직과 신실함과 자발적인 태도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일꾼들의 품성은 순결하고 견고한 재목들로 꾸며져야 한다.
거래에 있어 정직함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이다.
피륙의 모든 실은 주님에게서 연유될 것이며, 각 일꾼들은 옷감을 만들기 위하여 자신의 실을 피륙 속으로 짜 넣을 것이다.
옷감은 커다란 베틀로부터 완전한 무늬를 이루어 나올 것이다.
삼천 년 전, 다윗은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이미 불결한 영혼들은 깨끗해지고 순결해지고 거룩해질 필요가 있다.
그 때,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증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선한 행실로써 빛을 비추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거룩한 사물을 취급하는 당신의 백성들이 모든 사업상 거래에서 하늘의 원칙을 반사하며,
그리스도께서 하신 대로 하나님의 품성의 빛 곧 하나님의 사랑을 비추기 위하여 하나님과 연합하도록 요구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생애는 온통 놀라운 빛으로 빛날 것이다.
우리의 모든 부분은 빛이 되어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가 어디로 향하든지 빛은 우리에게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반사될 것이다. …
성령의 열매란 무엇인가?
우울과 슬픔과 애통과 눈물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성령의 선물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스페셜 인스트럭션 리가딩 로얄티즈, 20, 21.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막 14:32)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 자신과 그분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당부하고 떠나시면서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 이 세 제자를 택하시고 동산의 격리된 곳으로 더 나아가셨다.
이 세 제자는 그분이 변화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하늘의 방문객들인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이 경우에도 그분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다. …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적 동정을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셨다.
그리고는 돌 던질 만한 곳만큼 그들로부터 물러나셔서 얼굴을 땅에 대고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는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
초인간적인 고뇌와 더불어 씨름하고 계셨던 그분은 인간적인 동무를 갈망하시면서 제자들에게로 오셨다.
그러나 그분은 실망하셨다.
그들은 그분께서 그들로부터 얻기를 기대하셨던 도움을 드리지 못했다. …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그리스도의 고뇌에 찬 기도를 들어보라!
제자들이 감람나무 가지 밑에서 자고 있는 동안 인자 -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시는 분 - 는 차디찬 땅바닥에 엎드러지셨다.
영혼의 고민이 그에게 닥쳐왔을 때, 커다란 피 땀방울이 그의 털구멍에서 밀려나왔다.
그리고 내려 깔리는 이슬은 겟세마네의 풀밭을 축축이 적셨다. …
여기 신비스러운 잔이 그의 손에서 떨렸다.
여기서 잃어버린 세계의 운명이 저울에 달려 있었다.
그분이 이마에서 흘러나오는 핏방울을 씻어버리고
무죄하고 그럴 만한 일은 조금도 안 하신 자신을
공의로운 율법의 형벌 아래 놓고 있는 멸망해 가는 세상의 죄책으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뽑아 던지실 것인가?
그분이 죄인의 대속주와 보증인이 되기를 거부하실 것인가?
그들에게 또 다른 기회, 또 다른 유예의 기간을 주기를 거부하실 것인가?
아버지로부터의 분리, 범죄와 죄에 대한 형벌이 하나님의 율법을 크게 하고 불변성을 증거하기 위하여 그분에게 떨어질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율법의 변개할 수 없는 성격에 관하여 하나님의 왕자와 사단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그 쟁론을 영원히 종결지을 것이었다.
하늘의 폐하께서는 고뇌로 당황해 하시는 것 같았다.
어떤 인간도 이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쟁투를 예측하셨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었다.
이제는 그 “때요 어두움의 권세”이다. (원고 42, 1897)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그리스도는 우리들이 따라가도록 주신바 된 완전하고도 거룩한 모범이시다.
우리는 결코 그 모범과 등등하게 될 수는 없으나 우리의 재능에 따라 그것을 모방할 수 있다.
우리가 타락하여 아무 도움 없이 우리의 죄가 많음을 인식하게 될 때에,
또는 참된 회개와 통회로써 우리 심령을 괴롭히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겸비케 할 때에,
또는 그리스도의 이름 가운데서 열렬한 기도를 드릴 때에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을 진정으로 바칠 때에 우리는 하늘 아버지께 분명히 받으시는바 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노력하는 모든 노력은 전적으로 무가치함을 깊이 인식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승리자(예수)의 이름과 힘으로써만 정복자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의 권능을 믿고 그의 이름으로써 하나님께 탄원하면 우리는 결코 버림을 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도움은 만물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에게서 이르러 온다.
우리의 화평은 그의 사랑이 우리를 향하여 작용하고 있다는 보증 안에 놓여 있다.
만일 믿음이 이 보증을 붙든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얻은 것이다.
우리가 이 보증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 없이 승리를 얻고자 기대하지 말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승리하시는데 있어서 고난을 당하셨다.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써 고난을 당하며 식욕을 버리고 오락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하도록 부름을 받을 때에
우리는 불평하지 말고 도리어 우리가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주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참으신 시련과 극기와 고난에 매우 작은 정도나마 참여하게 된 특권에 대하여 기뻐해야만 한다.(RH Feb. 5, 189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조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 느 3:5
느헤미야의 열성적인 정신을 제일 먼저 본받은 사람들은 제사장들이었다.
그들의 영향력 있는 지위 때문에 이 사람들은 이 사업을 진전시키거나 방해시키거나 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맨 처음부터 그들이 즐겨 협조함으로써 그 일이 성공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
모든 종교 운동에 있어서 그 사업이 하나님의 사업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냉담한 자세로 그 일에 협력하기를 거부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그 기록이 하늘에, 생략도 과오도 없는 책에 그대로 보존되며
그들이 그것에 의하여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할 교회를 등한시한 것도 모두 기록된다. …
느헤미야의 영감을 주는 감화에 비하면 드고아 귀족들의 모본은 별로 큰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애국심과 열성으로 불타올랐다.
능력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각계각층의 시
- 이전글우리에게 평안과 그분의 의를 주시려고 사랑하며 살라는 계명을 주신 하나님 13.09.16
- 다음글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깨끗게 하시며 그분의 자녀로 살아갈 힘을 주시는 하나님 13.09.1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